Skip to content
 
당신의 시작은 길고 긴 여정의 끝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끝에 다다르기 위해선 아주 길고, 길고, 길어서, 어딘가로 빠져나갈 수조차 없는─

아주 길고 긴 여정을 해야할지 모릅니다.

 

나의 시작은 짧고 기한없이 지나쳐버릴 당신의 끝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끝에 다다르기 위해선 아주 길고, 멀고, 보이지 않는 당신의 여정이 끝나고서야─

아주 길고 긴 여정을 밟아나가야 하겠지요.



 

그대… 보고 있나요?
작은 선율 속에 숨어있는 가련한 생명들의 놓치기 쉬운 눈물을─.
 
그대… 듣고 있나요?
인간의 시대 속에 창백한 숨결을 내뿜고 있던 가련한 생명들의 웃음소리를─.
 
그대… 알고 있나요?
광대하고 너른 환상의 바다에서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련한 생명들의 존재를─.
 
 
그대… 아직 믿을 수 있나요?
누구도 존재하고 있다, 생각하지 않아 세상에게 버림받고 지워지려고 하는 가련한 생명들의 마음을─.
 
 

 

 추상적인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추상적이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도 기묘한, 그리고 푸석푸석한 느낌을 주는 추상화였습니다. 그것을 내 식대로 구분해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바탕은 작은 파란색 동그라미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동그라미들은 연결되는 점이 없지만, 멀리서 보면 커다란 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동그라미인데, 멀리서 보면 커다란 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바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커다랗고 파란 원으로, 캔버스의 네 귀퉁이 부분을 제외하면 그려져 있습니다. 원의 내부엔 빨간색, 보라색, 노란색, 검은색으로 뒤죽박죽되어진 소녀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약간 어린 소녀가 기묘하게 웃음 짓는 모양인데, 어떻게 보면 빨간 열매가 맺힌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몸체를 지닌 사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소녀의 얼굴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째서냐 하면, 붉은색으로 칠해진 원이 너무나도 이지적인 느낌의 눈알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작고 더럽게 칠해져있었습니다. 말라 비틀어져 굳어버린 물감을 억지로 짜내어 분필처럼 긋고 그 위에다가 물을 뿌려버린 느낌으로 칠해져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한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배경은 작은 원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원, 그리고 그 안의 그려진 소녀의 얼굴─ 까지 했지요. 그 얼굴 안에는 작은 바다가 그려져 있습니다. 색은 한없이 검푸른 남색으로, 흡사 해저 사진을 보는 듯한 색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다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렇습니다. 바다를 칠한 색에는 여러 가지 색채가 혼색되어 있습니다. 남색, 이것이 주축을 이뤘고 청색, 담청색, 청현색, 감색, 숙람색, 벽자색, 흑청색─ 청록색·자색계통으로 잔뜩 칠해져있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희한한 색을 아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표현하기 참 어려운 공간이기 때문에, 이런 희한한 색들을 이리저리 섞어야지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색들이 섞여있는 그것을 나는 바다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바다에는 나비 같은 것이 그려져 있습니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점들처럼 이리 저리 찍혀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비처럼 보였으나, 어쩌면─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지요.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본 추상화의 바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나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생명들의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푸른 바다에서 일어났던 그 외침의 시작은 이랬습니다.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나는 당신이 너무도 보고 싶어요, 라는 말이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누가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바다에서 어떻게 소리가 날까?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해했습니다. 소리치는 무엇이 어째서 나를 보고 싶어 할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서워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충동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무서워서, 겁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시대를 살아간 젊은이가 외쳤습니다. "아아, 그것은 요정의 소망이다──! 요정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거야!"

 

 누군가는 비웃었습니다. "세상에서 요정이라 불리는 건 전부 가짜라구, 젊은 친구."
 누군가는 걱정했습니다. "젊은 청년이 딱하게도─ 몹쓸 병에 걸렸나봐요."
 누군가는 동조했습니다. "요, 요정이라구─? 그런 게 정말 있을까? 어쩌면 진짜로…?"
 누군가는 광분했습니다. "요정은 어떤 '악마'냐! 요정은 어떤 '이단'이냐! 요정이란 도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누군가는 생각을 바꾸려 했습니다. "자네 말대로 요정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마음 내키는 대로 퍼뜨리는 행위는 잘못된 행동이라네.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잘못이지. 그런 마음은 오래가지 못하고 질려버리기 마련이니깐, 자네도 얼른 생각을 고치게나."
 누군가는, 누군가는, 또 누군가는───.

 

 모두는 결국, 결론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사고오류란, 다수가 지지하는 목표를 벗어나는 범주의 행위를 어떤 객체가 실행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사고오류는 전체에서 떨어진 부스러기가 된다. 그러므로 그런 사고 상태를 가진 개체가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전체에 대한 위험이다. 그렇다면 요정이란 무엇인가? 전체는 요정을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요정에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행위는 전체에 대한 위험, 즉 사고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피고가 단순히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오류를 가졌다면 일은 도리어 쉬워졌다. 그런데 피고는 요정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푸른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요정'의 소망이라고 주장했다. 있고 없고를 떠난다, 이것은 전체의 법칙으로는 통용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사고로 대단히 파멸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것을 전체는 그릇된 사고라 판단했다. 그릇된 사고는 전체에게 독이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고를 가진 피고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전체의 사도로서, 그릇된 사고를 가진 피고에게 소리를, 그리고 언어를 빼앗도록 하겠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흐트러뜨렸고, 많은 사람들의 입이 그를 망가뜨리고… 부셔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 시대에 살았던 젊은이가 언어를 빼앗기기 전,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말은 이랬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도 좁아서, 모든 것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빼앗기고 마는구나."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막으려던 기침 소리가 작게 새어나와도 '너는 그릇된 자다'라고 불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음악이 울면, 가냘픈 몸을 이끌고 선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짓눌리고 마는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숨소리조차 듣지 못하게 쥐 죽은 듯이 날아다니는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두려움에 떨었고, 한순간도 주의를 늦출 수 없던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결국─ 존재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서, 세상에게 삭제 대상으로 지정된, 요정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요정들은 항상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안전하고 확실하게 존재를 알릴 수가 있을까?】
 요정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너무 크고, 너무 무서워.】
 요정들은 항상 우울함에 잠겨있었습니다. 【나타나는 것은 죽음, 보이는 것은 죽음, 들리게 될 것도 죽음─.】

 

 그래서 요정들은 결심했습니다. 나아갈 곳이 없다면, 나아가는 길을 아는 누군가를 불러들이기로, 어느 때보다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요정의 외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의 소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나는 당신이 너무도 보고 싶어요, 라는 '저주'를 인간에게 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몸도 마음도 잊어버리게 되는 저주'를 인간에게 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시대를 살아간 청년이 있었습니다.
 또래의 소녀들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심약한 마음을 가졌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처음부터 청년이었습니다. 어째서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알지 못했던, 고대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청년은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아가는 길을 얻기 위해 인간으로 둔갑한 요정일지도─ 물론 그것은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청년이 진짜 청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이상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푸른 바다에서 들려온다는 '기묘한 소리'에 대해서. 청년은 어떤 것과 관련된 무엇이라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항구를 찾아갔습니다.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말입니다. 그런 기분을 둘로 나눠서 무언가와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뒤로 한 채, 그는 항구도시를 지나쳐 바다를 향해 걸었습니다. 바다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묘한 소리'를 듣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궁금해 했습니다. 어째서 나를 부르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청년은 바다를 바라본 순간부터, 어떤 것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눈에 수많은 그들이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나비 같은 날개, 귀여운 외모를 가졌지만 냉철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요정'들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요정에게 선택 받았기에, 몸과 마음이 잊혀져버렸기에 또래보다, 혹은 더욱 어린 아이들보다도 연약했던 것이었습니다. 요정의 세계를 바라보고, 요정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던 청년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아, 그것은 요정의 소망이다──! 요정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거야!" 그렇게 얼마 동안, 그는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것을 두려워한 다른 이들에 의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청년은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청년은 많은 교리에서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청년은 결국, 가족들에 손에 의해 재판장으로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법 앞에 서게 된 청년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이제는 모두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요정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자신들의 상상보다 훨씬 무섭고, 잔인한 생물이란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요정들은─
 아직도 길을 찾고 있겠지요.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