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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오래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쯤 귀 기울여도 좋은 이야기를──.

 

이것은,
기묘하게 더운 날에 기록된 한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한 소녀의 이야기.

 

 

 

 

 그날따라 묘하게도 시라의 기분이 가라앉아보였다.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벗어 던졌다. 주방으로 들어와서는 토스트를 집어 들고 오물거리는데 양 볼이 핼쑥해보였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싶어 말을 건네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물 데워줘, 목욕할래──'였다.  묶은 머리를 푼 채, 하늘색 파자마로 갈아입고 나온 시라가 욕탕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소녀가 어질러놓은 것들을 정리했다.구두를 가지런히 모아두고,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있는 정장을 옷걸이에 걸고 옷장 안에 집어넣었다.

 

 ─우리 꼬마 숙녀님은 이런 게 너무 부족하다니깐.
 하긴, 이런 걸 처리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일 테지.

 

 시라가 나오기 전에 저녁이나 준비하자 마음먹고 주방으로 향했다.

 

 

 

 턱, 턱─ 딱딱한 음향을 퍼뜨리며 토마토가 썰렸다. 스파게티라… 오랜만에 만들어서 별로 자신은 없지만, 시라라면 좋아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
 퉁… 하고 욕탕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종종대는 발걸음이 귓가로 다가왔다. 작고 귀여운 것이 뒤로 접근한 느낌이 들더니, 고사리 같은 손이 앞치마 자락을 잡았다. 잠깐 손을 내비두고 고개를 돌리니, 몸에 수건을 두른 소녀―워낙 작다보니 수건이 종아리까지 감싸고 있었다―의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나를 향해 입을 벌리더니─,

 

 "류트…, 머리 말려줘."
 부끄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래야 우리 공주님이지.

 

 수건으로 소녀의 기다란 머리를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퍼져나가는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최대한 부들부들하게 흔들었다. 방법은 좌우반동으로─.

 

 

 

 머리카락을 다 말린 후에야 식탁을 향해 움직였다. 새큼한 토마토 향내는 부엌을 장악했다. 좋아, 완벽해.
 시라에게 의자를 빼주고, 반대편에 마주보고 앉았다. 팔목을 식탁에 괴고 양손을 일자로 펴서 턱을 기댄 채, 소녀가 포크를 드는 걸 지켜보았다.

 

 후루루──────────룩.
 시라의 작은 입으로, 포크에 돌돌말린 스파게티면발이 딸려 들어갔다.

 

 "맛있어─!"
 잔뜩 찌푸린 것만 같던 소녀의 얼굴.
 환하게 밝아지는 소녀의 얼굴.

 

 '맛있다'는 사소한 한마디와 변해있는 소녀의 표정에 가슴이 뛰었다.
 시라 기분도 괜찮아진 것 같은데, 그거 한번 물어볼까──? 그런 생각으로,

 

 "저기, 시라─."
 나직한 음성이 대기를 갈랐다.

 

 "우웅………?"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소녀의 눈빛.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아까 왜 그랬던 거야?"
 "……아가라이(아까라니)?"
 두볼 가득 차있는 면발을 미처 삼키지 못한 채, 우물쭈물 대답하는 시사를 보고 살짝 웃으며 음식을 삼킬 때까지 기다렸다.

 

 꿀───꺽.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을 때 말야."
 "퇴근…? 집에…?"
 "응─."
 시라는 기억을 회상하는 듯, 검지를 볼에 찔러 넣고 시선을 위로 향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쪽을 향해 시선을 옮기더니─,

 

 "류트가 물어본 게…… 뭔지 잘 모르겠어."
 이제 대답해주겠지, 하는 기대에 어긋나는 대답을 뱉어냈다.
 기다려봤자 원하는 건 손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까, 집에 들어오는데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서, 어디 아프기라도 하나 했지…."

 

 …아, 아───?
 생각이 떠오른 듯 주먹을 쥐더니 다른 손을 탁 치는 소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토해냈다.

 

 "옜날에… 그러니깐 류트를 만나기 전에, 이 세상에 존재했던 '나'와 비슷한 '인간'을 만났어."
 "……정말…?"
 이건 조금 놀랐다. 그렇다는 건, 음울사고陰鬱思考가 흘러나왔었다는 건데….

 

 "그 사람, 울고 있더라. 그래서 시라가 꼬───옥, 하고 껴안아줬어. 그걸로 끝…. 집에 왔을 때는 아무 이유없이 그냥 그랬어. 욕조에 들어가있다가, 껴안아준 걸 생각하니 나도 많이 변했구나… 느껴져서."
 "……그랬었구나."
 이건 정말 다행이었다. 시라가 시라로 있어줘서─.

 

 "류트……, 방금 안심했지?"
 "으응, 조금."
 "걱정하지 마. 시라는 강하니깐. 그리고─ 류트가 옆에 있어주면…, 류트가 옆에 있을 때면─ 더욱 강해지니깐…………. 그러니까…, 그러니까──안……, 언제까지나… 시라 옆에………."
 다소 수줍어하는 눈치로 말을 끊는 소녀.
 그것만으로도 시라의 마음은 내게 다가온다.

 

 커다란 미소로 화답하며, 수백번은 중얼거렸을 말을 가슴 속으로 삼켰다.

 

 

……언제, 어느 때라도
항상 시라 옆에 서있을게───────.

 

────────────────────────────────────────────────────────
 이건 뭥미.

 리드 캐릭터, '아홉 구름의 덧없는 꿈' 유리와의 연계 SS.

 

 물론 그쪽에서 류트는 안 나오지만─. (내가 쓰질 않았으니_-....)

 

 여하튼, 류트의 시점에서 SS를 써준 이상한 글.

 뭐, 주축은 어디까지나 시라지만─ NPC로 등장하는 류트도 엄청난 비중을 가진 캐릭터임. [먼산]

 

 프레스피프랫의 배경을 설명하는 단편, '악보산으로부터 배송된 오선지(현시점에서의 가제)'란 놈의 원제목이 '마음을 노래하는 소녀와 과거를 연주하는 악사의 이야기'일 정도니깐──.

 

 

 결국 인핸에서 먼저 출범해서, 류트만 따로 뗀─ '과거를 연주하는 악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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