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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58

2008.06.23 10:52

미에링 조회 수:200


촤아-

물줄기가 작은 연못에 얇게 퍼져 떨어져 내린다.
둥그런 모양의 물줄기에, 수면 아래에서 비추는 조명이 반사되어
희미한 푸른 빛을 띈다. 밤에 본다면 꽤 멋지겠지…
오늘 연못 물이 얼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요 며칠은 기온이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다.

로베스는 분수를 보다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다시
분수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더니 나를 슬쩍 보고 생긋 웃는다.
그 알 수 없는 행동에 난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스위치를 하나 더 넣으면 거실에서 바깥쪽으로 난 큰 창쪽으로
분수가 뿜어지는 분수에서도 물이 나오겠지만, 그런건 여름에
하는게 좋겠지, 아직은 서늘한 날씨다.

그냥 나가려는 로베스에게 외투를 입혀주며 나도 입고 나왔지만,
확실히 차가운 바람이다. 아누라크의 바람보다는 덜 차갑긴 하지만…

"이젠 감점."

로베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정원수 뒤에 가려져 있는 분수의 스위치를
끄고 돌아선다. 분수가 뿜어 나오는 모습은 5분정도 보았을까.

로베스는 어딘가를 향해 혀를 빼꼼 내밀더니 돌아서서 나를 바라본다.

"에렐리니아, 충동구매하러 가자."

그러니까, 또다시 난데없이…
그렇게 말하려고 해도, 로베스는 어느 새 키를 챙겨 왔는지
현관문을 잠그며 나에게 차 키를 건네고 있다.

"…언제 챙겼지?"

"방금~"

로베스가 예전부터 손이 빠르긴 했지만…

그렇게 느닷없이 나왔던 정원에서,
더욱 느닷없이 외출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살 건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겠지."

차고의 전동 셔터를 올리며 로베스에게 묻자, 로베스는 어깨를 으쓱
하며 생긋 웃었다.

"내가 앞잡이 할게."

난 별다른 대답 없이 차량 출입문까지 개방을 마친 뒤,
도어 컨트롤러를 들고 로베스에게 손짓했다.

"타라."

차고의 셔터와 차량 출입문 모두 원격 컨트롤이 되는 방식이어서
별도로 다시 차에서 내려 닫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건 편하다.
아누라크에 있는 이전의 내 집이라면 물론 고속 개폐식
자동 셔터를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지금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차량 출입문이 완전히 열리고, 로베스가 차에 올라 타서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킨다.
차체가 출입문을 빠져나온 뒤, 컨트롤러의 조작에 맞춰 셔터의
구동음이 멀찍이 들려온다. 찰캉, 하는 차량 출임문의 잠금 소리를
확인하며, 집 앞을 벗어난다.

"이번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가줘."

로베스의 말에 맞추어 골목을 돌아 나아간다.

"저 앞에 보이는데서 다시 오른쪽."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인데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반대편에서 차가 온다면 둘 중 하나는 후진으로 골목을 빠져나가야
할 정도의 넓이였다.

"이번에서 오른쪽으로."

왠 검은 승용차가 골목을 빠져나오려다가 내 차와 마주친다.
곧바로 후진으로 물러 서 주자, 직진으로 빠져 나가며 힐끗
내 쪽을 바라보는 상대 운전자.

무례하네.

"이제 쭉 밟아줘."

커브를 틀자마자 로베스는 정면을 가르켰고, 난 그 말에 따라
직진으로 한참을 나아갔다.

"자, 스톱."

로베스가 차를 세운 곳은 자그마한 편의점 앞.
…온 길을 생각해 보면 처음에 집 앞에서 한 번만 틀어서 오면 될
길을 한 바퀴 돌아 온 셈이 된다.

"싸구려 빤쥬랑 에로잡지를 사올게."

하지만 그 길을 안내한 로베스는 이미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가
버린 뒤였고, 난 뭔가 어이없는 품목을 들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로베스, 속옷이라면 나에게 얘기하면 될 것을…
그보다, 무슨 잡지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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