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50
2008.06.02 17:13
"하아, 하아…"
해변에서부터 누군가를 업고 온 마루는 막 내 앞에 멈추어 서서
숨이 차 말을 꺼내지 못한 채 간절함과 곤란함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베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뒷 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고, 마루는 업고 온 사람을 뒷좌석에 조심스럽게 앉히고
있었다.
슬쩍 살펴보니 검은 머리칼을 어깨를 조금 넘길 정도로 기른
여성이었다.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인다는 느낌, 지친 표정이 가득한 채
쓰러진 모습이, 상태가 꽤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마루의 표정 또한 보통은 아닌 것 같다.
…
"후우… 미안, 에렐. 일단… 병원으로 부탁해도 될까?"
다시 탑승을 마친 차 안의 서로의 위치는 조금 전과 다를것이 없었다.
단지 그 여성이 마루의 옆 자리에 추가되었을 뿐.
"…안내하도록."
일단은 차를 출발시켰다. 조금 거칠게 가속이 시작된다.
로베스가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정면의
차창을 향하며 시트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순식간에 올라가는
엔진의 회전수에 맞추어, 어느 새 트랜스미션은 최종 변속단계.
콰악-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아, 엑셀레이터를 밟는 소리다.
"우앗…"
급격한 가속에 마루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속도계는 바라보지 않는다.
엔진 소리는 올라가다못해 이젠 오히려 조용하게 들리는 것 같다.
노면에 달라붙는 타이어의 소리가 묘한 이중음을 내며 머리를 울린다.
바람이 흔들어놓는 차체의 가느다란 떨림이, 아찔할 정도로
온 몸을 타고 올라온다.
하지만 난 다른 때처럼 상쾌하게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곧, 이 직선 도로가 끝난다.
속도를 줄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올 때의 기억으로는 곧 나올 커브는 이 속도 그대로
돌다가는 차체가 밖으로 굴러버릴테지…
맨 처음 달렸던 그 때처럼.
결국 난 클러치를 밟음과 동시에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트랜스미션을 저속으로 변경했다.
…엔진의 회전수 차이에 의해 급격하게 줄어드는 속력,
피가 앞으로 쏠리는 기분이다.
"후으…"
그제서야 숨을 놓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짧은 시간에 다시 돌아온 코너를 돌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시가지를 향해 천천히 주행해 나갔다.
무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답답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
...
로베스는 어째서인지 조금 전부터 별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웃는 표정과 고민하는 표정의 중간쯤 될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마루는 조금 전의 여성을 데리고 병원 안으로 들어간지 10여분.
그리고 난 병원 앞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멈추고, 보닛에 걸터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로베스는 그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사이드미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다.
차가운 바람, 하지만 차체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처음엔 제법 뜨거워서. 무심코 몸을 기대었다가 놀랐지만.
"에렐리니아, 질식?"
이번엔 이해하지 못했다.
"어려우면 이 쪽으로 말해."
내 말에 배시시 웃으며 로베스는 다시 말을 꺼냈다.
"질투냐고 물어본거였어."
난 로베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로베스는 여전히 나를 보며 웃고 있다.
그러더니, 내 손가락을 잡고는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상태에는 많이 서투르니까, 에렐리니아는."
그러더니 내 손을 멋대로 들어 올려서는 내 뺨을 폭 하고 찌른다.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야."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일까, 로베스에게 그런 것을 묻기도 전에,
마루가 병원의 정문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마루 교사님, 계집 몸뚱이는 어떤가요?"
"아아, 이틀정도 쉬면 괜찮을거라고 하네요…"
마루, 저런 단어 선정에 잘도 익숙해졌구나.
"그래서 말인데 에렐,…"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곤란해 하고 있는 마루.
하지만 난 그보다 먼저 마루에게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섰다.
"환자를 봐주도록. 그때까지 휴일로 해두도록 하지."
탁-
대답도 듣기 전에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아 버린다.
로베스는 인사를 하고 오는지, 조금 늦게 차에 올라탔다.
"에렐리니아,"
막 다시 시동을 거는데, 로베스가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며
슬쩍 웃는 것이었다.
"뭔가."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내 팔을 슬쩍슬쩍 잡아 당기는 로베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일단은 차를 출발시킨다.
"…안내하도록."
왜 답답한 기분이 드는지, 로베스는 왜 재미있다는 것 처럼 웃고
있는지, 모를 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디로 가서 뭘 먹어야 맛있는지도, 모를 일 뿐이었다.
"에렐리니아의 집도 내가 안내해 줘야 하는거야?"
"……"
그런 말이었던가,
그제서야 난 가볍게 픽, 하는 웃음을 띄웠다.
이 답답한 기분이 어째서이든,
그래. 그 동안 조금은 제대로 신경 써 주지 못했던 로베스에게,
오늘은 잔뜩 신경을 써 볼까.
그렇게 난 로베스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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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흐...
만약 동인지가 나오면 에렐 마루 가 아니라 에렐 로베스가 나올 것 같다는건 착각이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