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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38

2008.02.21 05:09

미에링 조회 수:195



"마루?"

대문을 열자 눈에 가득히 들어오는 그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까아만 실루엣은…

"…로베스."

내 앞으로 다가오며, 나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오히려 난 웃을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그리고, 속성이긴 하지만 나에게 이 곳 말을 가르쳐 주었던 것은
로베스였다. 그랬던 로베스 답게 제법 유창하게 말을…

"못 본 동안 면상이 판판해졌는걸."

유창하게는 취소다.

"짐작하건데 그건 '얼굴 좋아졌다'라고 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 동안 마루에게 배운 것이 꽤 성과가 있는 모양인지,
이젠 단어 선정에는 조금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난 별다른 말 없이 마루와 로베스에게 안쪽으로 손짓을 한 뒤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왜일까,
별 것 아닌 말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새 소굴, 이모양 집구석이었구나. 옛날동안 궁금함이 폭동이었어."

로베스의 말을 들으며, 처음에 내가 썼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마루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다.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루, 그리고 난 다시 그를 외면한다.

마루, 처음 나와 대화할 때, 속으로 웃지는 않았을까…

"언어 구사가 어렵다면 아누라크 어로 말해도 된다."

하지만 로베스는 고개를 저으며, 손에 든 큼직한 가방을 내려놓았다.

"안 넘어져. 곧 완치될거. 그러나, 이 놈분은 왠 녀석님?"

문득 마루를 바라보며 묻는 로베스,
그리고 마루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 개인 언어교사다."

그러자 로베스는 환하게 웃으며 마루와 마주 섰다.

"에렐리니아, 귀여운놈분을 납치했어, 교사닮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로베스는 마루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고,
마루는 애매하게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로베스, 그런 말은 실례다."

마루는 손을 저으며 웃지만,
확실히, 이런 애매한 언어 사용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하, 난 괜찮아, 에렐."

"아, 실례했습니다. 연 나라의 말, 아직은 낯설게 뵙습니다."

계속해서 괜찮다며 손을 내 젓는 마루,
난 두 사람에게 우선 자리를 권했다.

"우선 앉아라. 차를 주겠다."

소파에 마주 앉는 두 사람, 문득 마루와 나란히 앉아있던 것이
떠올랐다. 옆에 앉는다는건, 조금 다른 의미인 걸까.



차는 따뜻한 레몬 티, 그것을 탁자에 내려 놓고, 난 양 쪽에 앉은
둘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루의 옆에 앉았다.

"약속보다 빨리 왔군."

로베스는 생긋 하고 웃어 보인다.

"으응. 보고싶어서 정신병듯 해서."

그러더니, 찻잔을 잡으려는 내 손을 꼬옥 잡는 것이었다.

"살해할만큼 보고싶었어, 에렐리니아…"

내 손을 살짝 당기며, 조심스럽게 뺨을 가져다 대는 로베스,
그 살짝 감은 눈이, 너무나 기뻐 보여서, 난 손을 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괜찮은걸까,
난 그 고민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로베스의 손을 마주 잡지도, 손을 빼 내지도 못한 채,
아무런 표정 없이…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머무를 곳은?"

로베스는 짧은 기간의 여행에 저만한 짐을 가지고 다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즉, 머무를 생각으로 왔다는 얘기.
내 차까지 대신 받아서 온데다가, 연락처와 주소까지도
알고 있었다면 역시 그럴 셈으로 왔을 것이다.
내 질문에 그제서야 내 손에서 뺨을 뗀 로베스는,
나를 바라보며 생긋 하고 웃는다.

"에렐리니아와 밤을 보낼거야."

마루가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그리고 난, 찻잔을 비우고 나서 저쪽 방을 가르켜 주었다.

"그럼, 저쪽 빈 방을 써라."

마루가 썼던 방과 마주 보고 있는 방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로베스에게, 난 한 마디를 덧붙여 두었다.

"언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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