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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37

2008.02.20 07:42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225

방 안으로 들어와 겉옷을 벗어 대충 던져 놓는다.
보일러가 켜져 있지 않기에 조금은 서늘한 느낌의 자취방.
하지만 어디까지나 에렐의 집에 비해 그럴 뿐, 바깥에 비하면 훨씬 따뜻한 곳이었다.

보일러를 작동시키려다가 그만둔다.
곧 나갈텐데 굳이 쓸데없는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어제 나갈 때의 모습 그대로인 방의 모습.
따로 정리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일러의 계기판, 수도, 가스 밸브, 콘센트.
건드린 적이 없으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본다.

"후으."

그러다가 문득 이런 자신의 행동이 우스워, 모든 것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앉아버린다.
시선이 닿은 곳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겉옷.
정확히는 그 곳에 깔려 있는 한 장의 편지.

한숨이 새어나온다.
조금 전 에렐의 집에서 빠져나올 때 느끼던 기분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느낌.
어줍잖은 핑계로 그 곳에서 잠시 벗어나려 했던 것이, 어째서 이런 일을 만들어 버린 것일까?

한 장의 편지.
들어 있던 것은 작은 사진 한 장.
사람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는 황량한 바다의 모습.
보내는 사람조차 써 있지 않은, 그런 짧은 편지.

하지만, 누가 보낸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익숙한 바다의 풍경.
그 사진을 보는 순간의 느낌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편지를 대충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뒤 옷을 갈아입는다.
어쩐지 어지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무슨 행동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문을 잠그고 바깥으로 나온다.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진 길, 에렐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한 인연.
새로이 시작하려 하는 인연.
그 것이, 어제까지 생각하고 있던 나와 그녀들에 대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것은 변하기 시작했다.

끊겨져 버렸다고 생각한 실이 사실은 아직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것도 단 한 장의 사진 만으로.
이미 완전히 끊겨버렸다면, 지금 내 가슴이 이렇게 요동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그 실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나와 에렐의 사이에.
아무런 상관 없어, 라고 기세 좋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저, 난...

"실례하겠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뒤에서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만, 길 좀 물어보겠습니다. 원주민님."

어쩐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표현이었다.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는 새하얀 색의 스포츠카의 운전석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말에 반응한 것을 본 것인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사과합니다만, 사림 중천가의 140-5번지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묘하게 엇갈리는 단어 선정.
왠지 한 달 전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 여성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정신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사람을 본 것처럼 날 바라보는 여성의 눈길에 무안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되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어디라구요?"

"사림 중천가 140-5번지 입니다."

내 사과에 그 여성은 괜찮다는 듯이 가볍게 미소지어준 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천천히 그 주소를 읽었다.

"... 140-5번... 지..."

그리고, 그 입에서 나왔던 말을 가만히 되뇌어 본다.

"그, 알 수 없습니까?"

내가 보이는 태도에 조금 불안한 것 같은 말투로 묻는다.

"아닙니다."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저어 준 뒤 한숨을 쉬며 답했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죠."

어쩐지, 머릿속이 한층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로베스라고 소개한 여성의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목적지는 당연히 에렐의 집.
어쩐지 익숙한 말투다 싶더니, 아누라크 사람들은 다 그런거냐?
왠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하는 로베스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이제는 익숙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고 있는 집 앞에 도착한다.
차가 멈춘다.
로베스가 건네는 감사를 적당히 받은 뒤 차에서 내린다.

에렐의 친구... 라고 했던가?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에렐의 태도.
그 누구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던 것 같던 모습.
접근조차 거부하며 거리를 두려 했던 에렐.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온 것 같은 로베스의 태도.
에렐의 이름이 거론 된 것만으로도 좋아하던 모습.
에렐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며 그녀를 걱정하던 로베스.

그 둘의 상반된 느낌은 안 그래도 복잡하던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는다.

벨을 누른다.
그리고는 한 동안 반응이 없다가,

"마루?"

에렐이 직접 대문을 열고 나와 얼굴을 비추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 로베스."

내 뒤에 서 있던 한 사람을 본 뒤,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되뇌인다.

"... 오랜만이야."

그런 에렐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로베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하지만 기쁨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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