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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35

2008.02.15 07:49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201

“…….”

눈을 뜬다.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정신을 차린다.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한 번 켜준 뒤에 옆으로 굴러 이불 안에서 빠져나오다가,

- 쿵

“윽!”

떨어졌다.

“뭐야, 이건?”

찌릿찌릿 하고 울리는 어깨를 문지르며 내가 떨어진 곳을 살펴본다. 앉아 있을 때 거의 어깨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는 커다란 침대가 내 옆에 있었다.

침대?

내 방에 침대가 있을 리가 없잖아. 라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흐릿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리 익숙하지 않은 풍경.

…….

맞다. 여긴 내 방이 아니구나.

머리를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머리맡에 놓았던 안경을 쓴다. 흐리게만 보였던 방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흰색을 위주로 해서 꾸며진, 부드러운 색감의 방. 그 방을 잠시 둘러보다가 침대 위의 이불을 간단히 정리한다. 옷을 갈아입고 잘 때 입었던 옷을 개어 정리한 뒤에 벽에 걸린 거울로 다가가 적당히 머리를 매만진다. 부스스한 머리가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

그렇게 매무새를 정리하던 중, 자신도 모르게 손이 멈춘다.

“에렐…….”

어제 밤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렐의 권유, 그 권유를 받은 뒤 주고받은 대화, 그리고…….

가볍게 뺨을 두들긴다. 짝짝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달아오르려고 하던 정신이 겨우 가라앉는다. 아하하, 내 대체 어제 무슨 소리를 지껄인거지?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적당히 고개를 흔들어 준 뒤에 방 바깥으로 나갔다.

“일어났나?”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부엌 쪽에서 에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잘 잤어?”

“그래.”

적당히 인사를 건네며 부엌 쪽으로 다가간다. 부엌 안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밥 준비하는거야?”

“그렇다. 씻고 와라.”

내 물음에 에렐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답했다. 그 태도에 조금은 섭섭한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목소리가 평소랑은 달리 좀 누그러진 것 같다는 생각을 위안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식사 준비를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상태로 요리를 하는 것도 왠지 보기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에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욕실에서 적당히 얼굴을 씻어낸 뒤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샌가 에렐은 식사 준비가 끝난 것인지 식탁에 간단한 요리들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는 중이었다.

오트밀 죽과 샐러드, 달걀부침, 작은 빵. 아침에 어울리는 가벼운 음식이었다. 가볍다고는 하지만 내가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는 훨씬 호화로웠지만.

“잘 먹을게.”

“그래.”

그리고 맛 역시 몇 배는 뛰어났고.

어쩐지 최근 들어 호강한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을 먹는다.

에렐 역시 내 앞에서 천천히 밥을 먹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다. 그저 식기 움직이는 소리만 조금씩 울릴 뿐.

“…… 저기, 에렐.”

“무슨 일인가?”

결국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식사를 모두 마친 뒤였다.

“그, 잠시 집에 좀 다녀와도 될까?”

무덤덤하게 내 말을 받는 에렐에게 그런 말을 꺼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집에 가는 것이?”

그 말에 에렐은 이상하다는 투로 되물었다. 에렐의 말에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며 답한다.

“아니, 그게……, 출근 시간이 늦어지잖아.”

스스로 말해 놓고도 참 어설픈 표현이다 싶었다. 뭐, 일단 이 곳이 직장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에렐은 딱히 신경 쓰는 것이 아닌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관없다. 다녀와라.”

“그래. 빨리 갔다 올게.”

에렐의 말에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음? 차라도 마시고 가는 것은 어떤가?”

“아니, 금방 올 거니까. 1시간 정도면 충분할거야.”

어디까지나 매일 하던 집안 정리와 나오기 전 집안 확인을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 뿐이다. 물론 어제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밖에서 잔 일은 거의 없기에 하루 일과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찝찝한 것 뿐.

하지만 그 것을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실 걸어서 15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인 만큼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고.

에렐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에 가볍게 답하며 부엌에서 나온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빨리 해치우는 것이 낫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사실은, 에렐과 같은 곳에 앉아 있는 것이 왠지 힘들 것 같았던 듯 싶다.

에렐의 집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크게 한 숨을 쉬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스스로도 몰랐지만, 조금은 기분이 고양되어 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오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바깥의 공기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 하루 차이였지만 이상하게 많은 것이 바뀌어 있는 듯한 느낌.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날도 많이 풀린 것 같고.”

겨울이 거의 다 간 것처럼 훈훈한 날씨였다. 그래, 어쩐지 지금 나의 마음 속 느낌도, 나와 에렐의 관계도 이런 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혼자만의 바램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걸어온다.

어쩐지, 웃음이 새어나왔다.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우체통에 꽂혀있는 한 장의 편지를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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