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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31

2008.02.10 00:48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84

평소와는 달리, 에렐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린다.
단순히 내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에렐은 평소와는 달리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하지만, 그 것에 대한 의미 따위를 생각할 수 있을리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거지?

손을 입술로 가져간다.
조금 전, 짧게나마 느껴졌던 부드러운 감촉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스스로도 무엇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행동.
그 짧은 순간 동안의 무모함은 너무나 세게 내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에렐의 모습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에렐의 따뜻한 호흡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에렐의 붉은 눈동자가 아름답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순간,
에렐의 몸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진다.
스스로 무슨 행동을 한 것인지, 그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은 것은
에렐이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뒤에서야 가능했다.

……키스…… 해 버린건가…….

어쩐지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다.
그대로, 풀썩하고 탁자 위로 축 늘어져버린다.
얼굴을 양 팔 안에 깊숙이 묻어버린다.

지금 그 무엇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도망치듯이, 그렇게 숨듯이 좀 더 머리를 파묻어버린다.

“우으…….”

뜨거워진 얼굴.
도무지 어떻게 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마구 밀려오는 후회감.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감.
내 경솔한 행동 때문에 에렐이 날 멀리 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떤 것도 속시원하게 답 내줄 수 없는 질문들이 떠오르고,
어떤 것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없는 이야기들만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괜찮다고…… 했었지?”

에렐이 남긴 마지막 말.
비록 마지막 말은 아누라크의 말이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해 주었다.

그리,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착각뿐일지도 모른다.
내 기대감에 치우친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에렐은 분명히…….

= 괜찮아. □□□ =

과연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 알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부정일까? 긍정일까?
내게 해주려던 말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혼잣말일까?

이토록이나, 저 나라의 말을 모르는 것이 후회되는 순간은 없었다.
알기는커녕, 접해보지도 않았기에 단어 하나 모르는 말.
그렇기에 도무지 에렐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아…….”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전히 두근거리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잔에 남아있던 주스를 입 안에 털어넣고, 그도 모자라 차가운 물을 한 잔 따라 마신다.
조금은 식어가는 정신.

문득 에렐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스스로, 그 눈동자는 불길하다고 했지. 보는 사람은 죽는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에렐의 사람들을 거부하려 하는 듯 했던 행동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죽어갔기에?

“……알고 보니, 바보였잖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단순한 우연이었을 뿐이잖아. 그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죽었을 뿐.
그게 에렐의 탓일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에렐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에렐이 그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래서 사람들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는 거라면,
살아주면 되는 거다.
보란 듯이 당당히 살아남아주면 되는 거다.

“에렐…….”

이름을 입 속으로 되뇌어본다.
그 쓸쓸해보이는 듯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붉은 빛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그래, 반드시 에렐의 생각이 단순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자.
그렇다면 되잖아.
그렇다면, 분명히 에렐도 웃을 수 있을거잖아.
그 것이면…… 되잖아.

들고 있던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천천히 다시 거실로 나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에렐은 자리에 없었다.

시선을 돌린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저 위에, 그 바보 같은 하얀 누군가가 있겠지.

지금, 내가 좋아하게 된 듯한, 그 누군가가.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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