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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30

2008.02.08 04:12

미에링 조회 수:189



"에렐의 옛 이야기, 해줄 수 있어?"

마루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꺼낸 이야기,
그리고 마루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조금은
짐작했던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지난 날은…

"들을 만 한게 아니다."

내 대답에 위축되는듯한 마루의 표정,
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얘기하기 어려운거야? 어떤 얘기든 난 괜찮은데…"

얘기하기 어렵냐고 한다면 그다지 그런건 아니다.
한때는 내 삶을 싫어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덤덤해졌다고 해야 할까,
익숙해진다는건 이런 것일지도 모르지.

"얘기하는 것은 쉽다. …정말 듣고 싶나? 불쾌해질 거다."

알기를 원한다면 굳이 감출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꺼내지 않을 뿐, 하지만 내 과거 같은 것을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괜찮아. 불쾌해지지 않을거야."

다시 내 눈을 마주보는 마루,
하지만 이번만큼은 난 그의 눈을 흔들림 없이 마주하지 못했다.

왜일까,
이제와서, 겨우 이 정도에 흔들리는 걸까.


…이제 와서,



과거가 싫어진거니…?





"그런건… 듣고 나서… 판단해라."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난 그렇게 말했고,
마루는 대답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옛 이야기라.
어떤 것을 이야기 해야 할까.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지난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전에 마루가 물어봤던 것 부터,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할까.

"내 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마루의 끄덕임,

"이 눈을 오래 보고 있지 않는게 좋다."

그 말에 오히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의아해 하는 마루,
그러고 생각해보면, 마루가 이 눈을 오래 마주 한 적은 없었다.

"왜…?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이 눈이 예쁘다… 라.
그 말도 듣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아버지 말고는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알기 전 까지 뿐일 것이다."

마루는 아직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내 표정이 살짝, 굳어 있기 때문일까..

"내 옛 얘기는 간단하다."

살짝, 시선을 돌린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내 지난 날들 같은건,
매번 같은 얘기니까.

"내 주변에 다가오면 죽는다. 저택의 사람들, 친구,
  우연히 다가온 타인, 그리고 아버지까지."

왜일까,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 뿐이야.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알았다."

마루는 아직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내 눈과 입술 사이,
애매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조심하는게 좋다. 머루, 너도."

자세하게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켜보았던 죽음의 순간 하나까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렇게까지 이야기 할 만큼,
그것은 기분 좋은 얘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 마다,
아버지의 죽음이 눈 앞에 되살아난다.

"내 눈을 피하는게 좋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루의 손이, 손가락 끝에 스쳤다.
그리고, 한 걸음, 돌아 가려는데…

나이트웨어의 끝자락이 어딘가에 걸리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그 당겨짐에 난 멈추어 서야 했다.

"그런거, 상관 없어."

마루가, 내 옷자락 끝을 잡고 있었다.

"피하지 않을거야."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다.

"예쁘기만 한데, 왜. 죽긴 누가 죽어. 여태 잘 살았다 뭐."

일어서서, 멈추어 선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뭐가 어떻게 죽는다는건지 몰라도 나도 목숨 질겨.
  그러니까 걱정 마. 그런걸 신경썼던거야?"

나에게 한걸음, 더 다가온다.
마루의 눈이, 내 눈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눈이,
눈동자가 들여다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많이 가까운 것 같은데…

"머루."

"응?"

숨결이, 목소리가, 뺨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오지 않아도 들린다."

그리고 조금 뒤로 물러서려는데, 마루가 잡고 있는 손을 살짝 당겼다.

"에렐의 눈, 자세히 보고 싶었어."

마루의 눈동자에, 내 눈이 희미하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그는 가까이에 있었다.

숨결이, 입술 위를 스친다…



"눈, 예뻐. 피하긴 왜 피해. 계속 보고 싶은데."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왜일까, 숨이…

조금, 가빠지는 것 같은 기분…

"에렐, …"

그의 눈동자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응…?"

그리고…
숨결이, 조금 더 가빠졌다는 생각이 들던 중,

무언가,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입술에 닿았다….






짧은 순간,
분명히 잠깐이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언지 깨달았을 땐,
그 잠깐이 지나고,
굳어 있는 내 앞에서 마루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였다.

"그, 미, 미안…"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음, 그러니까… 미안, 나도 모르게… 랄까, 말이 안되지만…"

왜일까, 계속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어떤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돌아섰다, 그리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에렐…? 기분, 상했어…?"

난 계단에 발을 올리고서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괜찮아, …잠시 후에 얘기해."

난 서두르듯이, 계단을 올라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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