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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27

2008.02.06 19:36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200


“아까와 같은 종류다. 괜찮나?”

에렐은 다시 한 번 커피를 타서 들고 오며 묻는다.

“응, 몸이 따뜻해져서 좋아.”

그 말에 답하며 잔을 받아들었다.
조금 전에 마셨던 것과 같은 녀석이다.
버터커피 라고 했던가? 그러고보니 버터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커피라고는 인스턴트 밖에 못 마셔본  내가 이런 것 까지 먹어보다니, 호강하는군.

어쩐지 내가 알던 세계가 또 하나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잔을 들어올린다.
커피향과 버터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조금 전까지 두근거리던 가슴이 약간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입으로 잔을 가져간다.

그러다가, 그 상태 그대로 멈추어버린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에렐 밖에 없을테니 그 시선의 주인공은 에렐이겠지.
고개를 돌리자 에렐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쓰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 얼굴을 굳힌 채.

“에렐?”

“……아니다. 아무것도.”

내 부름에 에렐은 문득 정신이 든 것처럼 대꾸했다.
그 모습에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이상한…… 말 했어?”

“아니라고 했다.”

이번에는 딱 잘라 말한다.
평소와 다름없는 에렐의 모습이었다.
마치 조금 전 보았던 모습은 내 착각이었다는 듯이.

“뭐…… 그럼 됐고.”

그 변화에 일순간 심통이 일었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듯이 답하고는 다시 커피를 들어 마신다.
에렐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 과연, 난 어떤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커피잔을 모두 비우자 에렐은 특별한 말없이 일어나 잔을 치웠다.
그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간 대화는 제로.
그저 시계 소리만을 배경 삼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되었나? 더 필요한 것은?”

잔을 치우고 온 에렐이 묻는다.
그 말에 다시 한 번,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떠올려본다.

마음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말.
들어줬으면 하는 말.
물어줬으면 하는 말.
들어보고 싶은 말.
물어보고 싶은 말.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굉장히 긴 이야기였지만…….
난 그 어떤 것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난 일부러 에렐을 찾아간 것일까?
무엇 때문에 에렐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일까?

스스로가 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답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내 태도를 에렐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도무지 나지 않는 결론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본다.
에렐은 내 답변을 듣지 못하면 영영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서 있었다.
그 이유가 단지 나 때문이 아니라 에렐의 성격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신경 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건넨다.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내 말에 에렐이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짧은 한 마디의 말.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힘든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입 안에서 맴도는 가운데,
가볍게 내 옆의 소파를 톡톡 하고 쳤다.

그 몸짓을 알아들은 것일까?
에렐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쩐지 에렐의 분위기가 달라보인다.
이전과는 달리 내 앞에서 가볍게 웃는다든지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서일까?
이상할 정도로 쓸데없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막는다.

그 반면, 스스로는 아직까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무언가 바뀌어 보자고 한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저, 마치 달라진 척 그렇게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

에렐에 대해 알고 싶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는 말해 줬던 적이 있던가?

에렐의 진심을 대하고 싶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진심으로 에렐을 대한 적이 있던가?

에렐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직까지 제대로 웃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건가?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쉰다.
내 옆에 앉은 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에렐의 모습을 힐끔 바라본다.
어쩐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렐.”

“듣고 있다.”

괜시리 불러본 이름.
기다렸다는 듯이 되돌아오는 답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잠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더불어 새로운 기분도 들었다.
가슴은, 평소의 에렐을 만날때와는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조금은 달릴 수 있을 것처럼.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줄래?”

내 말에 에렐은 잠시 가만히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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