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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26

2008.02.05 21:57

미에링 조회 수:244




"에렐."

잔을 들고 일어나려는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마루가
나를 부른다. 빈 컵을 들고 일어나려던 난 그의 부름에 멈추어 선다.

"왜 그러나?"

고개를 돌리자 눈을 마주하며 그는 잠깐 뜸을 들인다.

"그, 무슨 전화야?"

그의 질문에 난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걸려오기를 원하고 있지 않았던 전화.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떻게인가 알아내어 연락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랬다.

"아니, 그게… 기분이 안 좋은 듯 해서."

내가 아무런 답이 없자 마루는 곤란한 얼굴을 숙인다.
그다지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 이대로 아무 답을 하지 않는 건
괜히 신경쓰이게 하는 일이겠지.

"…옛 친구다."

유일하게 내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
아니, 그래서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언가 더 궁금한 것이 있는 눈으로 마루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보통은 이 시간에 전화가 오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이니,
궁금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관심일까.

"남자야?"

그렇게 묻는 마루,

"여자다."

답하고 나서 질문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혹시, …

하지만 이내, 괜한 망상이 떠오를까, 난 생각을 관두었다.
쓸데없는 짐작은 좋지 않아.

난 무슨 생각을 하려고 했던거지,
왠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나에게 그정도의 생각을 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던가.
아니면 그 정도로 난 지쳐 있는건가.

그리고 난 그런 나 자신에게 실소를 머금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지운다.

"왜, 관심있나?"

"아, 아니… 그냥…"

마루는 고개를 저으며 내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이렇게 보면 왠지 귀여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빈 컵을 싱크에 넣어 놓고 정리는 조금 미루어 버린다.
고민거리라고 할까, 오랜만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 같다.
아니, 고민한다고 어떻게 되는 일은 아니지만.

고민 자체도,
고민할 필요 없는 일로 고민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하아…"

한숨과 함께 부엌에서 나오자, 마루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그래, 어쨌든 마루도 이곳에 있으니 얘기해 주는것이 좋겠지.

"3일 후, 여기에 온다."

마루가 고개를 갸웃 한다.

"응?"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한듯 한 마루에게 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로베스. 친구다."

마루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다녀가는거야?"

난 그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와서 한동안 머물 듯 하다."

"에…… 그렇구나."

마루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겠지만…


마루를 뒤로 하고, 난 다시 계단을 오른다.
평소엔 가뿐할 걸음이 왠지 쳐지는 느낌이었다.
한숨을 삼키고, 계단을 다 올라서,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천창을 올려다 본다.
삼켰던 한숨이 다시 몰려 나왔다.

"하아…"

로베스, 왜 다시 날 찾아 오는거야.
그래, 너는 분명히 내 곁에서도 잘 지낼 수 있었지.
하지만 넌 네 자신 외에 모든 것을 잃었잖아.
이제 그 정도면 됐잖아?

너를 위해 저택도, 가산의 절반도 모두 네 앞으로 돌려 놓고
온 것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다시 나에게 올 필요는 없는데.
아니, 오지 않기를 바랬는데.

네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 줄 수는 없어도,
그 정도면 다시 네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넌 다시…


톡톡-
노크 소리가 나를 천창 위 검은 하늘에서 이 방 안으로 되돌려 놓는다.
마루인가…

"무슨 일인가."

내 목소리에 방문이 조심스럽게 밀리며 열린다.
아, 또 안 닫고 들어왔던가.

"전화기를 또 놓고가서, 미리 가져다주려고."

그러고보니 내려갈때 손에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놓고 와 버린 것인가… 나도 정신이 없구나.

"고맙군."

전화기를 건네받고 돌아서는데, 마루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커피 한 잔, 더 부탁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본 마루의 눈은, 어딘가 할 말이 가득한 눈.
그리고 입가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쿡…"

웃고 말았다.

"귀엽잖아."

중얼거림처럼 튀어나온 나의 말에,
알아듣지 못한 마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에게, 난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섰다.

"아니다. 커피를 생산하겠다."

그리고, 내 말이 어딘가 또 어색했는지,
이번에는 마루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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