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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25

2008.02.05 20:03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94

아누라크의 말일까?
에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였다.
하지만 그뿐.
에렐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도망치듯 아래층으로 내려와 버린다.

“하아…….”

겨우 진정되나 싶었던 가슴이 부서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정말, 이번 것은 예상 밖의 기습.
부주의하게 쫒아 올라갔던 내 잘못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선명할 정도로 눈에 들어왔던 에렐의 몸.
잠옷을 걸치기 직전의 그 몸은…….

“우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 분명한 양 뺨을 두드린다.
고개를 흔들어보고, 크게 숨을 내쉬어본다.
하지만, 도무지 가슴은 진정되지 않는다.
하지 않으려 할수록, 조금 전 보았던 에렐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안되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그대로 머리를 처박아 버린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손을 들어 머리를 마구 헤친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차가운 물이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그렇게 머리를 식힌 뒤에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거울을 보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함께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보였다.

다행이다. 좀 진정된 느낌이다.

한숨을 쉬고는 뒤에 있던 수건을 들어 머리를 대충 털어냈다.
적당히 물기를 닦아낸 뒤 바깥으로 나온다.

에렐은 어느샌가 통화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친 모습.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린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크게 한숨을 쉬자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천천히 에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까?
역시, 일단은 사과를 하는 것이 좋겠지.

“저기, 에렐.”

“음?”

조심스레 말을 걸자 에렐이 대꾸하며 고개를 돌린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덤덤한 표정.
하지만 이상하게도 약간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잘 열리지 않는 입을 재촉해 간신히 작게 한 마디를 꺼낸다.

“그……, 미안.”

“…… 괜찮다. 내 부주의다.”

내 사과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가볍게 넘어갈 만큼 철면피는 못된다.

“아니,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신경 쓰지 않는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투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에렐에게서 전해지는 느낌은 약간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우으, 이거…… 정말 제대로 실수한 것일지도.

스스로를 탓하며 한숨을 쉰다.
무언가 이야기를 할 만한 화제를 찾아보려 하지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조금 전처럼, 그저 머뭇거리며 대화를 이어나가보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뿐.

에렐의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찾지 못한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를 얼마간.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던 것인지, 빈 잔을 들고 일어나려던 에렐을 불렀다.

“에렐.”

“왜 그러나?”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고개만을 돌려 이 쪽을 바라보는 에렐의 모습.
그 모습을 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 무슨 전화야?”

“…….”

에렐은 답이 없었다.
내가 괜한 것을 물은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문득, 그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얼핏 본 것이지만,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전 통화를 할 때, 에렐의 표정이 살짝 굳어있던 것을.

“아니, 그게…… 기분이 안 좋은 듯 해서.”

어쩌면, 에렐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조금 전, 작긴 했지만 분명히 가볍게 웃었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것은 나 때문이라기 보다는…….

“……옛 친구다.”

에렐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용히 답했다.

옛 친구라…….
아마도 아누라크에 있던 친구겠지.

그 친구가 무슨 일로 에렐에게 연락을 한 것인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에렐의 얼굴이 굳어진 것인지 역시 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것은 그리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잠시 말을 멈춘다.
에렐이 이 쪽을 바라본다.
그 붉은 눈동자를 잠시 바라본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문득, 자신이 왜 이런 것을 묻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곧 사라져버린다.
스스로도 무슨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자야?”

그런 물음을 던질 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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