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18
2008.01.17 01:32
입김이 아침 햇살을 받아 물든다.
그래, 아침이 찾아왔다. 하얗던 세상은 이제 그림자 속에만 남은 채
며칠에 걸쳐 원래 색을 찾아 가고 있었다.
"…?"
뺨에 차가운 것이 닿아 올려보니 하얀 것이 내려오고 있었다.
…눈?
햇살을 받으며 맞는 눈이라니,
하늘을 올려다 보자 동쪽 하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름이 온통
하늘을 덮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2층 방에서 정원이 내려다 보이도록 내어져 있는 발코니에서
나는 햇살 아래 눈을 맞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뜬 눈으로 누워있다
잠이 깨어 버려, 책을 몇 권 읽다가 새벽부터 발코니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거리를 내려다 보니, 저 멀리 익숙한 모습이 걸어 오고 있다.
난 안으로 들어가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 현관을 나서 대문 앞으로
갔다.
철컥, 하고 대문을 직접 열자 그 앞에 놀란듯한 표정의 마루가 서 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 멈춘 손이 아침의 찬 공기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가만히 서있지 말고 들어와라."
마루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으, 응…"
약간 멍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마루를 앞서 정원을 지나 현관을 열고
들어선다. 밤새 깨어 있으면서 난방을 해 둔 덕분일까, 집 안에는
제법 온기가 있었다. 오늘은 기온이 많이 내려간 모양인지,
마루의 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더 창백해 보였다.
"난방을 강화해 주겠다. 몸을 데워라."
입술까지 창백해지기 직전인 것을 보고 난 내 코트를 그에게
덮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마루가 그것을 거절했다.
"아니, 이건… 에렐이 덮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난 춥지 않다."
"하지만…"
마루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내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거나 할 틈도 없이 그는 손을 문질러 주며
다시 날 바라본다.
"손도 다 식었고, 입술도 새파래. 뭘 하고 있었던거야"
마루의 말에 그제서야 난 내 손이 식을대로 식어서 뻗뻗해 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입 안까지 차가워 질 정도로 몸이 식어
있었다는 것도.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새벽부터 계속 밖에 서 있었던 탓이겠지, 이제서야 조금 몸이 서늘해
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실내는 충분히 따듯했다. 난 다시 코트를 그에게 건네어,
그의 몸에 걸쳐 주었다.
"너부터 신경 쓰는게 좋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겨우 코트를 받아 걸치고 그는
거실에 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난 그 자리를 마주보고 탁자를
사이에 둔 자리에 앉는다.
"정말 괜찮은데…"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입술만을 달싹이고 멈추는 마루,
다음 말을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난 마루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의 다음 말을 재촉하려 했다. 그런데, 한 순간 마루의 모습이
흐릿해 지는 것이었다.
"아… 바보같은."
앉는 순간 피로감이 갑자기 몰려왔다. 하마트면 방금 눈을 감아 버릴
뻔 했던 것이었다. 하루밤 새운 정도로 이렇게 피곤할 리가 없을텐데,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왔다. 잠깐 소파에 몸이라도 기대 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내 코트를 담요처럼 몸에 두른 채 손을 녹이고
있는 마루의 모습을 보며 몸을 뒤로 살짝 기댄다.
……그리고, 그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나의 의식은 흐려질 대로 흐려져,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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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마루 걱정만 하고.
꼭 누구 같다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