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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17

2008.01.16 22:16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89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자리에 눕는다.
단지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짧은 통화.
그 의미를, 에렐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문득, 이전에 그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바보, 여자의 감을 무시하면 안돼.’

아마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지 않았을까?
내가 에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내가 한 말의 의미 역시 조금은 알아챘으리라.

그 것은, 과연 에렐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졌을까?

고개를 흔든다.
적어도, 지금은 그 답을 얻을 수 없다.
내일 에렐을 보게 된다면, 알 수 있겠지.
그렇다면, 지금 이 곳에서 이렇게 마음 쓰는 일은 없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에렐에 관해 ‘오늘까지는’ 어떠한 답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까지는’ 에렐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뭐, 인연이 닿는다면…….”

입버릇처럼 해오던 말을 되뇌여본다.

학창 시절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갔을 때,
가까운 이웃이 멀리 떠나갔을 때,
직장 동료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
내가 모두에게서 떨어져 나오면서, 이렇게 홀로 지내게 되는 순간에도 해 왔던…….

사람 사이의 감정이란 참 우습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처럼 고민하던 문제를,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단순하게 모든 것을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을,
어째서 이렇게 금세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나 좋아했던 감정은, 이제 희미하다.
그만큼이나 궁금해했던 의문점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 답은……

“에렐…….”

새하얀 눈길에서 만난 새하얀 여인.
그 사람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지우듯이 하얗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난 지금 이 순간
그 새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에 다시 한 번 다른 그림을 그려보려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지금까지 고민해 왔던 것이 바보같다 생각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아마도 그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였겠지.
혹시나 못다한 연이 있다면, 그 것은 언젠가 더해갈 날이 찾아오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하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새로운 인연이 될 것 같은 하얀색의 누군가를…….

내일 에렐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날 맞아줄지는 알 수 없다.
날 바라보는 에렐의 눈이 어떤 식으로 보일지 역시 알 수 없다.
그 것은 변해 있을수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겨있던 붉은 눈은, 여전히 그렇게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어쩐지 사람을 멀리하는 듯한 에렐의 태도는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제야, 에렐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온다.
더불어, 에렐에 대한 작은 소망이 피어난다.

에렐에 대해 알고 싶다.
에렐의 진심을 대하고 싶다.
무엇보다, 에렐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크게 한숨을 들이킨다.

에렐은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이렇게 바꾸어 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에렐을 바꾸어주자.

그런 작은, 하지만 커다란 소망이 떠오른다.

무언가가 변화한 내일을 기다리고,
무언가를 변하게 할 미래를 꿈꾼다.

눈을 감는다.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기다린다.
새롭게 시작될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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