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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2장-개전-(2-2)[3]

2008.01.06 15:02

울프맨 조회 수:204

“자. 그럼 이것으로 오늘의 모든 수업을 마치도록 하자. 주번하고 청소당번은 남아서 청소하고 숙제 안한 녀석들도 남아서 도와주도록~ 나머지는 일찍 끝났다고 딴 데로 새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도록 해라. 이상!”

담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시장 통으로 변했다.
이날은 하루 수업 중 마지막 시간이 담임의 과목인 국사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종례가 이루어진 까닭이었다.
평소 종례보다 약 30분정도 집에 일찍 가는 혜택을 누리게 된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바람이나 가방을 싸들고 교실 밖을 향해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청소 당번을 맡은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기위해 서둘러 청소를 시작하느라 교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신없는 상황일수록 차분하게 빛을 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반의 미화 부장이자 이번 주 청소당번인 소연이었다.

“자, 자, 우리도 빨리 15분 안에 끝내고 가자~! 남자 넷, 준혁이, 민수, 정길이, 현태는 책상밀고, 동헌이 길주는 복도부터 빗자루로 쓸자~. 책상 민 애들은 밀고 바로 쓰는 애들 도와주고, 영준아 넌 지금 바로 대걸레 빨아와. 빨고 오면 다 밀고 쓸었을 테니까 바로 닦아주고, 책상 원위치 시키면서 다시 쓸고 닦고~ OK? 그리고 여자애들은 나랑 같이 사물함, 칠판, 교탁, 창틀 닦자~ 자. 그럼 실시!”

하나의 작업이 시작되고 끝나는 동시에 다른 작업이 시작되도록 능동적으로 맞추어진 소연의 완벽한 지시에 토를 다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반발은커녕 소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주어진 각각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 참……. 볼 때마다 신통하단 말이지…….’

영준은 청소도구함에서 자신의 임무인 대걸레 두 개를 꺼내며 순식간에 정돈되어가는 교실의 모습에 감탄했다.
사실 영준 또래의 아이들은 짓궂고 장난기가 많아서 청소시간에 농땡이를 치거나 남아서 장난을 치며 방해만 되는 경우가 태반이고 누군가 시키거나 뭔가를 지시하면 듣는 둥 마는 둥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소연의 말에는 토를 달거나 반항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개 그런 경우 아이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녔거나, 힘이 세거나, 아니면 굉장히 예쁘고 잘생겨서 인기가 많은 것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소연은 위의 경우 중 어느 쪽에도 해당이 되지 않았다.
단지 남들과 달리 특별히 뛰어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꾸밈없이 솔직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해맑게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연이와 함께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
그런 점들 때문에 소연에겐 적이라고 부를 만한 상대도 없었고 교사부터 학생까지 폭넓고 양호한 대인 관계를 지니고 있어 아이들이 불만 없이 소연의 말을 잘 따라주는 것이라고 영준은 결론을 지었다.

“자... 그럼 나도 슬슬 할 일을 해볼까?”

여자애들과 어울려 즐겁게 청소를 하는 소연의 모습을 보며 영준은 자신에게 배당받은 임무 대걸레를 들고 교실을 나섰다.
그러나 영준의 발이 향하고 있는 곳은 결코 대걸레를 빨러 가는 방향이 아닌 엉뚱한 곳이었다.
대걸레를 빠는 남자화장실과는 정반대 방향인 동문 현관을 향해 영준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밖으로 나가 수돗가에서 걸레를 빠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훨씬 가까운 남자화장실로 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영준 역시 남자화장실을 이용해왔기 때문에 걸레를 빨기 위해 밖으로 나가 수돗가까지 갈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영준의 기행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수돗가의 반대방향인 소각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소각장에 도착해서야 영준은 걸음을 멈추고 대걸레를 세워두었다.
그리곤 마치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는 듯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여긴 지금 아무도 없어. 그리고 나도 빨리 돌아가서 청소해야하니까, 용건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게 좋아. 그러니까 어서 나와.”

영준의 말대로 학교는 아직 종례가 끝나지 않은 시각이었기에 소각장에는 영준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영준의 말을 들어줄 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영준의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소각장 맞은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이가 있었다.
바로 전학생. 기륭이었다.

기륭은 영준을 향해 의혹을 잔뜩 담은 시선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계를 다루는 기륭이 즐겨 쓰는, 존재를 감추고 은신하는 능력은 비슷한 계열의 능력들 중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것이었다.
스승이자 숙부인 도룡 이외에 간파한 이가 적과 아군을 통틀어 아직까지 없었으며 한국으로 오기 전엔 이 능력을 이용해 적의 백인 간부 중 ‘마왕 키신저’와 1:1의 상황을 만들어 제거한 전적까지 있었다.
그런데, 능력자도 아닌 그저 일반인에 불과한 영준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자신의 존재를 간파한 지금, 기륭이 의심을 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준 역시 그런 기륭의 속내를 읽은 듯 짐짓 입가에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떻게 알았냐는 눈치인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거잖아. 특수요원이라는 네가 이 학교에 전학을 올 일은 아마 거의 없겠지. 만약 무리해서 전학을 온다면 백퍼센트 나에 관한 일 때문일 거야. 이 학교에서 나만큼 너, 그리고 요 근래의 사건들과 연관된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네가 전학을 왔다는 것은 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것이나 혹은 사라진 희연과 관련된 이야기일 수 있고, 그렇다면 나에게 지난 상황이나 앞으로 닥칠 일등을 알려주기 위해 접촉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이니, 그 접촉시간을 생각해 보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바로 전학 온 당일인 오늘. 그리고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때가 적합하겠지. 그래서 일부로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너를 부른 거야.”

영준의 청산유수와 같은 명쾌한 해석. 그러나 기륭은 흔한 칭찬의 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칭찬 대신 기륭은 예의 그 무감정한 어투로 말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영준은 기륭의 말에 일순 긴장했다. 요 일주일 사이 평온한 일상 이면에 어떤일이 벌어졌는지 영준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희연의 거처를 찾아내어 소탕전을 벌이기 전에 인질로 쓰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신병을 확보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요 일주일 사이 새로운 적의 증원이 생겨 영준이 모르는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준의 그런 우려는 기륭의 말과 함께 필요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요 일주일 동안 자취를 감춘 적의 위치를 추적해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보복의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상부의 지시에 의해 보복대상을 특별보호, 관리하기 위해 내가 파견되었다.”

“그 말은.... 아직 못 찾았다는 말이지? 그럼 앞으론 어떻게 되는 거야?”

구체적으로 묻진 않았지만, 영준의 물음엔 여러 가지가 담겨있었다.
앞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적의 탐색이나 전투에 차질이 벌어질 일, 유사시에 영준 자신이 해야 할 일 등이었다.
그러나 기륭은 그에 관해선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단 한마디로 잘라 끊으며 발걸음을 돌릴 뿐이었다.

“여기서 해줄 말은 끝났다.”

영준은 기륭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는 얘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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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입니다. 아직까지 한일도 별로 없는데 시간은 자꾸 가기만 하네요...

써야할것도 잔뜩, 쓰고 싶은 것도 잔뜩, 하지만 다른 할일도 잔뜩......

이럴땐 정말 똑같은 사람이 세명정도 있으면 합니다.(넌 이거쓰고, 난 이거쓰고, 넌 또 딴거 쓰고....--;;)
그래봐야 핑계지만... 기다려주신 분들 봐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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