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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14

2008.01.05 13:42

미에링 조회 수:172


달칵, 팬을 달구던 불을 끄고 그릇으로 천천히 옮겨 담는다.
이걸로 마무리,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금방 끝날 것으로만 하다 보니 그다지 볼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오믈렛과 스테이크 정도일까, 데코레이션 같은 것 역시 생략했다.
물론 백포도주 같은 것도 없다. 스프도 생략, 고기를 숙성시킬
시간 같은건 물론 없다. 소스는 어떻게인가 된 모양이지만…

"초라하다. 먹어라."

그래도 싸구려 식당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지금은 자신이 없다. 그냥 허기를 채우는 데에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지만.

"에……"

마루는 포크를 잡기만 한 채 머뭇머뭇 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걸까, 그렇다고 해도 별 수 없지만.

"다른 종류를 원하나?"

"아니, 그게 아니라…"

입맛에 맞지 않는걸까, 혹은 좋아하지 않는 종류?
다른 메뉴를 원하는지 물어볼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그가
포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륵,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썰어 나가는 마루,
그리고 한 입을 물었다. 그 즈음에서 나도 식사를 시작했다.

"에렐, 요리 잘 하는구나…"

먹다 말고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포장된 과분한 칭찬은 필요 없다."

애써 좋은 말 해주는 거라면 역시 내키지 않으니까.
아버지는 물론 맛있다고 해 주셨던 요리였지만, 로베스로부터는
크게 좋은 평가는 얻지 못했다.

"정말인데… 이런 정도 요리라면 생일날 얻어 먹기도 어렵다고."

그런 말을 하며 한 입을 더 입에 넣는 마루, 조금 전까지는 딱히
내키는 표정까지는 아니었던 그가 꽤나 잘 먹어주고 있다.

"생일, 탄생 날 말인가. 너의 그 날은 언제?"

마루는 우물거리며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 안의 것을 삼키고는
손가락을 헤아린다.

"그러고보니 며칠 안 남았구나…"

"언제냐."

그다지 크게 관심을 두려는건 아니었지만,
그냥 알아두는 정도일까. 무언가 신세도 지고 있고, 그런 날을
기회로 보답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오고 가는 것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하면 떨어지기 어렵다.
약속한 기간동안에 있다거나 하지라도 않는 이상은,
그냥 알아만 놓고 지나가자.

"열흘 조금 더 남았을거야."

…약속한 기간 내에 있다.

"날자를 말해라."

그는 애매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다.

"아니 뭐, 그런 날은 몰라도…"

정말 몰라도 된다면 저렇게 애매한 답을 내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대충 둘러대는 쪽이 되겠지.

그다지 그런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어릴 때의 기억으로 알고는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기억되고, 기념되는 것의 작은 기쁨.
약속한 기간 동안이니, 빤히 매일을 마주하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어차피 보게 되는 거라는 구실도 있다.

그래,

나의 이 저주받은 운명인지,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인지 알 수 없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들만 아니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기쁨 정도는 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해라."

그의 눈빛에 담긴 망설임은, 결코 거부를 뜻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아니, 그… 12일 뒤…"

날자 계산을 마치고 날자를 기억에 새겨 둔다.

하지만, 굳이 내가 왜 이런걸 묻고 있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여린 부분이라도 잔뜩 있는건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이유 같은건 구실에 맏겨 두자.
왜 라는 물음에 그저 그러고 싶었다고 단순하고 답하자.

적어도, 알게 된 이상 어쩐지 모른 척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작은 기쁨을 기억하는 이상…

"그 날은 좀 더 제대로 된 밥을 주겠다."

그래, 식사 대접 정도라면 굳이 특별할 것도 없겠지.
오래 남을 것도 없겠지. 그런 생각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난 어느 새 비어 있는 그릇들을 들고 일어섰다.

문득 생각이 난 탓일까,
내 목에 걸린 채 옷 속에 가려진, 작은 목걸이의 촉감을 확인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겨우 1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겨 주셨던,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던 생일 선물을.


그런 날 따위. 이젠 잊고 살자고 생각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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