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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13

2008.01.03 21:20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68


“그러다 다쳐, 이런걸 어떻게 혼자서 들려고… 들어 줄게.”

에렐은 자신의 키보다도 큰 책장을 들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배달되어 왔던 물건들의 상태를 보아하건데, 이 책장 역시 원목으로 되었다든지 하는 고급품이겠지. 물론 그런 것은 책이 들어있건 말건 굉장히 무겁다.

에렐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결국 되돌아와 버렸다.
어쩌다보니 책장을 안으로 옮기는 것을 도와주는 형태가 되어버렸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온 날 보고 에렐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충 높이를 가늠해보니 책장을 세운 채로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크기다.
혼자서 들어보려 했지만, 역시 힘들 것 같다.

“내가 그 쪽으로 밀테니까 받아줘.”

책장의 윗부분을 밀어 넘긴다.
에렐이 그 부분을 받아 지탱하자 책장은 가로로 누워버린다.
힘을 주어 책장을 들어올린다. 역시 상당한 무게다.
얼굴을 굳힌 채,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간다.

5개의 책장을 모두 옮기고, 책장의 위치를 잡아 고임목까지 괸 다음에야 일은 끝났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고맙다.”

이마의 땀을 닦는 내게 에렐은 억양이 없는 말투로 감사를 표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은 뒤 몸을 돌린다.

“……가는건가?”

그런 날 붙잡는 에렐의 말.

“여기에 이유가 있지 않나? 다시 온.”

고개만을 뒤로 돌려 바라보자 에렐은 슬쩍 인상을 찌푸린 채로 서 있었다.

“있었어. 하지만 잊었어.”

내 답에 여렐의 표정이 재미있게 변한다.
하지만 사실인걸.
단지, 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볼 일이 끝난 것이긴 했지만.

그저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로 이유는 그 것 뿐이었다.

“□□□…….”

에렐이 중얼거린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몸을 돌린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 역시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에렐에게 느끼는 감정은, 확실히 이상하다.

처음 본 순간 넋을 잃어버렸다.
그 것은 어떤 감정이었던가.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며 달려오게 만들었다.
어떤 느낌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져,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힘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함께 바다에 가자고 했고, 갔다온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한 애정인가? 하지만 그 것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힘들다.
아니면 다른 감정인건가? 하지만 그 외의 표현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대체 난, 지금 그녀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옛 연인이 살던 집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단지 며칠 전에 처음 보았던 사람에게.

“…….”

가볍게 한숨을 쉰다.
하지만 내 물음에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가지 마라.”

하지만, 에렐은 그런 나를 잡는다.
고개를 돌리자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밥. 안 먹었다. 먹고 가라.”

에렐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부엌이 보인다.

그제야 아침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맨몸으로 이곳에 와서, 바다에 간 뒤, 그냥 돌아왔다.
배고프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오늘 먹지 않을 것 같았다.”

부엌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게, 에렐은 그런 말을 던진다.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
확실히,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맞지만.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잡념을 떨쳐내고, 냉장고의 문을 연다.
얼마 전에 채워넣었던 식료품들이 가득 차 있지만, 끌리는 것은 없었다.

그냥 가볍게 만들어 볼까…….

요란하게 무언가를 해 볼 기운이 없기에 간단한 찬거리만을 꺼내본다.

하지만, 그런 날 말리는 손길이 있었다.
에렐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앉아라.”

“응?”

“앉아 있어라.”

비어 있는 손으로 식탁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앉아서 기다려.”

그렇게 말한 뒤 냉장고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무언가를 꺼내들고 있는 에렐을 말려보려 하지만,
에렐은 그 보석같이 빛나는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듯 바라본다.
문득, 그제서야 양 눈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 똑바로 응시하는 왼쪽 눈동자.
어딘가 이상한 곳을 바라보는 듯, 초점이 전혀 맞지 않는 흐릿한 오른쪽 눈동자.

그 눈을 보는 순간, 잠시 말문이 막힌다.

“에…… 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조금은 위압적인 말투로 변한 에렐의 말에 결국 기세가 꺾인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요리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은 틀림없지만.

“……알았어.”

간단히 답한 뒤 식탁쪽으로 가 앉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에렐의 모습을 쫓는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지, 에렐은 말없이 서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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