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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12

2008.01.02 21:26

미에링 조회 수:170




"돌아가자고 했어."

재차 묻는 나에게 마루는 그렇게 또박또박 다시 답했다.
그리고 난 당황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볼일은 끝인가? 그걸로?"

바닷가의 모래를 잠시 밟으며 걸은 것 뿐,
그것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날 여기까지 오게 해 놓고.
정말이지…

"실례라고, 이쯤 되면."

그렇게 중얼거리며 난 조금씩 식어가고 있는 차체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 채 침묵을 시작한다.

차체의 흔들림에도, 살짝 거칠게 틀어버린 커브의 쏠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허공을 보며 어딘가로 빠져버린 눈을
차창에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난데없이 말을 가르쳐 준다며 찾아오더니,
정말로 난데없이 바다를 가자고 한다.
그러더니 와서 몇 걸음을 걷더니 아무 말 없이 돌아가자고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히 화를 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내기 이전에 그의 표정에 신경이 쓰였다.
그저 단순한 생각에 잠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헤메이고 있는 눈동자였다.

"머루."

내 부름에 그는 그제서야 창 밖에서 눈동자만을 잠깐 돌려 나를 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내 발음이 어색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그 웃음에도 그의 눈빛은 헤메이는 채였다.

"복잡한가?"

짧은 나의 질문에 마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느닷없이 이런 곳에 오자고 한 것도, 그리고 그렇게 그곳을
걷다가 갑자기 돌아가자고 하는 것도, 그래, 무언가 생각할 것이
있다는건 이해 못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내가 동행하기를 원한것은 어째서.

"나 때문?"

구체적으로 어떤 한 가지 의미에 끝을 둔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나 때문에 그가
고민할만한 무언가가 생겼다는건, 반갑지 않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난 어떻게 말 해야 할까.
난 아직 냉정함이 부족한 걸까.

마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향한 채로 말이 없다.
그리고, 난 그런 그의 반응을 부정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그렇게 짐작했다. 그리고 그 멋대로의 결론에 스스로
다시 대답을 내어 놓는다.

"다행이군."

그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난 운전을 위해 차창 앞쪽을 보고 있기에 그를 마주 볼 수는 없었다.
그저 그의 시선을 느낄 뿐…

하지만 어딘가 막혀버린 듯 머뭇거리고 있는 느낌만은,
바라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조언한다."

내가 지금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저 흔들리는 시선 속에 묻어 둔 말을, 꺼내기를 바랄 뿐.
그 말이 어떤 말이 되더라도.

마루가 무슨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도, 결국은 그가 살아온,
혹은 살아 갈 시간의 이야기일 뿐,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아니, 끼어들 수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할 말은 해라. 제때에."

마루는 그렇게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허공을 바라만 보던 눈 보다
조금은 더 흔들림이 담긴 눈으로, 그는 창 밖의 풍경을 쫒았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하아."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차에서 내리자 입김이 흩어지며 차가운 바람이
가슴 속 깊이 불어 들어온다. 덜컥, 하고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이어 한번 더 들리고, 마루가 차에서 나온다.

"배웅은 하지 않겠다. 내일 제 시간에 와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마루,
차는 대문 앞에 세워 두면 내일 아침에 찾으러 올 것이다,
난 천천히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참 친절하군."

현관 앞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완충 포장이 되어 있는 내 키보다
팔길이 하나 만큼은 더 큰 책장 5개였다. 오늘 내가 집을 비운다는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 짐을 밖에 놓아두고 가버린
모양이었다.

연락처와 짧은 메세지가 적힌 쪽지가 붙어 있긴 했지만,
이제와서 사람을 부르기엔  어딘가 내키지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 이건 너무 무책임한 경우가 아닌가.
받는 사람이 없다고 짐을 팽개쳐 놓고 가다니,

…분명 로베스가 있었다면 무책임한 처사에 대한 변상을 요구할
것이라며 화를 냈겠지만.

짐에 이상이 없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그런데, 이걸 들여놔야 하는건가.

우선 현관 문을 열어두고, 난 책장을 들어 보기 위해 기울였다.

"………………"

역시 무겁다. 들 수 있을까.
하지만 문 밖에 밤새 세워 둘 수도 없는 일, 바닥에 끌면 가구
아래부분이 긁힐 터였다.

조금 더 책장을 내 쪽으로 기대며 기울인 뒤에 가운데 쯤을
손으로 지탱,
…그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어엇?"

갑자기 나를 짓누르는 책장의 무게가 확 가벼워 진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서 고개를 들자 애매한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이 맞이한다.

"그러다 다쳐, 이런걸 어떻게 혼자서 들려고… 들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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