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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11

2008.01.02 08:25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89

에렐의 뒤를 따라 차에 오른다.
그녀는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뜬금없이 바다에 와서, 뜬금없는 소리를 해버린 나에게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다음에는?”

문을 닫은 뒤에도 별 말이 없자 에렐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진다.

시계를 바라본다.
이미 오후. 식사 시간이라고는 한참 지난지 오래.
하지만 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돌아가자.”

“……뭐?”

내 말을 잘 못들은 것인지, 아니면 내 요구가 이상했던 것인지,
에렐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자고 했어.”

그 표정에 답해 다시 한 번 말한다.

“볼일은 끝인가? 그걸로?”

어이없다는 듯이 묻는 에렐에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다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뒤, 차에 시동이 걸린다.

“□□□□”

내가 알 수 없는 말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아마도 이해할 수 없다든지, 그런 의미의 말이겠지.
하지만 그에 대꾸해 줄 생각은 없었다.

나 역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니까.



바다에 오면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답은 구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털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쌓이기만 한 것 같았다.

과연 내 말에, 에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 들었던 그녀의 말에 난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방금 전에 보았던 풍경이 거꾸로 흘러간다.
그 속에서 시간 역시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보석처럼 붉은 눈동자.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난 과연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모습을 눈앞에 두고, 난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머루.”

아직까지 내 이름의 발음이 어색한 것일까?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흘리는 사이 에렐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복잡한가?”

주어가 생략된 짧은 물음.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나 때문?”

여전히 짧게 끊어 묻는 에렐.
하지만 그 말에 답할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일 수도, 내저을 수도 없었다.

창 밖에 고정시킨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다행이군.”

그 침묵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에렐은 그런 말을 꺼냈다.
나도 모르게, 에렐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에렐은 말을 잇는다.

“조언한다.”

에렐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들 속에서 오직 에렐만이 멈춰있는 듯 보인다.

“할 말은 해라. 제때에.”

그녀가 한 말의 의미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에렐의 옆모습.
그 모습을 계속 볼 자신이 없어 다시 시선을 옮긴다.

잠시, 주머니 속의 휴대 전화에 생각이 미친다.

정리.

이전부터 질질 끌어왔던, 오늘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시작.

어느 순간 파고든, 오늘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난다.

“어렵군.”

에렐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에 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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