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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09

2008.01.01 18:31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73

겨울의 바다는 사실 그다지 갈만한 곳이 못된다.
언제였던가……, 그녀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가…….
반쯤은 객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된 사안.
어느 샌가 우리 둘은 바닷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당신이 좋아.’

한참 동안이나 추운 겨울 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그녀가, 파랗게 질린 입술을 열며 꺼낸 말.
스쳐지나가는 듯이 흘러나온 이야기에 현실감이라고는 없었다.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느낌이 좋았어. 아, 이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일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이어지는 말.
하지만 그에 답할 수는 없었다.
그저 바보처럼, 무엇인가 잘못 들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을 뿐.

‘대답, 안 해줘?’

여전히 바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묻던 그 목소리.
해가 뜨는 바다도, 해가 지는 바다도 아닌,
무드라고는 전혀 없는 텅 빈 바닷가에서…….



“…….”

기다리고 있던 에렐리니아 씨를 보았을 때 그녀는 말없이 이쪽을 쏘아볼 뿐이었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 모습이 너무 어이없어 할 말을 잊은 것일까?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날 바라보는 에렐리니아 씨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차의 조수석에 올라탄다.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새하얀 코트.
그 눈과 같은 코트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 잠시 눈길이 움직이기는 했으나 그 것 뿐이었다.
그 침묵은 차에 시동이 걸리고, 천천히 도로를 향해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

“…….”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고마웠다.

문득, 자신의 옷차림을 다시 바라본다.
마치 조금 전, 조깅이라도 하고 온 듯한 체육복에 운동화 차림.
에렐리니아 씨가 말이 없는 이유는 역시 후자가 맞는 듯 하다.

차는 부드럽게, 고속도로로 빠져나간다.

목적지는 이전과 같다.
하지만 주변에 보이는 풍경은 이전과 다르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나의 모습은 이전과 같다.
하지만 내 주변의 모습은 이전과 다르다.

썰렁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도로의 풍경.
간간히 지나가는 차 몇 대만이 전부인 곳.
그 곳을 달리며 몇 번이나 내 쪽으로 향하는 에렐리니아 씨의 시선을 느낀다.

하지만 그에 답하지는 않는다.
그저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창에 기대어 바깥으로 시선을 고정시킬 뿐.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바다에 가고 싶어.’

뜬금없는 제안.
같이 운동하자고 아침부터 불러내더니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어이없어 하는 나를 뒤에 둔 채,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 발걸음을 성큼성큼 옮기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것은 지갑 속에 남아있던 현금 약간.
교통비만으로도 간당간당할 것 같은 금액으로 어느새 둘은 기차에 올라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깊게 생각에 잠긴 채 창 바깥의 풍경에만 빠져 있을 뿐이었다.

대체, 그녀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다 왔다. 머루.”

“…… 아아.”

에렐리니아 씨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다.
분명히, 이전에 보았던 모습의 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느 곳을 걸었고, 어느 곳에서 멈추었고, 어느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인지.
그 것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바다의 모습.

“…….”

언짢은 듯이 날 바라보며 에렐리니아 씨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차에서 내려 백사장 쪽으로 걸어갈 뿐.

이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텅 비어있는 백사장.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적막함 속에서 유일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 곳에서 이전에 걸었던 길을 걷는다.
내 뒤를 따라 에렐리니아 씨가 자박자박 하며 모래를 밟고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

난 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체 이곳을 걸으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발걸음을 멈춘다.
뒤에 따라오던 발소리 역시 멎는다.

몸을 돌린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새하얀 여성.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새빨간 눈동자의 빛이 찌르는 듯 아파온다.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새파란 바닷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바닷가.

“에렐.”

그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천천히 입을 연다.
처음으로 불러보는 호칭.
지금 에렐리니아 씨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

바람이 분다.
파도 소리에 섞인 한 마디 말이 그 바람을 타고 허공에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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