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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07

2007.12.28 08:13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84

에렐리니아 씨는 상당히 잘 사는 집안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에프렛 가문이라고 했던가?

그날 어느 나라의 말인지 알 수 없는 에렐리니아 씨의 말 속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던 단어.

‘에렐리니아 에프렛’

그 것이 그녀의 이름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에프렛 이라는 호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에프렛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표정이 굳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결국 호칭은 에렐리니아 씨로 확정.

“어이, 머루. 쌀은 아직?”

“…….”

더불어 내 이름은 마루가 아닌 머루로 확정된 듯하다.

프라이팬에서 잘 구워진 팬케이크를 꺼내어 접시에 옮긴다.
냉장고의 잔량 계산을 잘못한 것인지, 남아있는 음식 재료가 거의 없었기에 우유와 계란 남은 것을 이용해 대충 만든 팬케이크.
노랗게 익어있는 얇은 팬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에렐리니아 씨가 기다리는 식탁 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쩌다가 내가 밥까지 해서 먹이게 된건지…….

처음 온 날, 괜한 객기로 음식을 만들어 준 것이 잘못이었을까?

에렐리니아 씨는 내가 해준 음식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먹이가 마음에 든다. 일 기간동안 요리자도 겸해라. 가격은 추가해 주지.’

그 한마디로 개인 교사직에 주방장까지 겸업하게 되어버렸다.
먹이 부속품 - 아마도 식료품이겠지 - 의 구입에 드는 비용은 전부 에렐리니아 씨가 부담.
그 외의 모든 것은 내게 맡긴다는 조건.

겨우 말을 가르쳐준다고 한 사람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는 이유가 궁금해 물어보았지만 답은 해주지 않는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들이 없는지 물어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며칠 동안 계속 에렐리니아 씨의 짐과 세간이 - 하나같이 ‘억!’ 소리나게 비싸보이는 것들로 -  밀려들어오는데 반해 정작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에렐리니아 씨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다시 말해, 에렐리니아 씨는 무작정 혼자 이 곳에 왔다는 것.

왜일까?

나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음 속 한 곳에 궁금증을 감추고, 평소와 다름없이 언제나의 하루를 보낼 뿐.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하지만 그 곳에서 무언가가 변해가는 느낌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에렐리니아 씨의 집으로 출근.
거의 몸종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틀린 말을 그 자리에서 교정해 주는 정도의 교습.
식사는 세 끼 모두 그 곳에서 해결.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 것이 새롭게 변한 나의 하루.
하지만 그렇게 변화한 뒤, 다시 그대로 고정되어 버린다.

언제나처럼, 변화는 한 순간.
그 뒤에는 다시 굳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고여 있는 물은 썩어 들어간다.
지금 내가 이 며칠밖에 되지 않은 익숙한 하루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렇게 힘들게 에렐리니아 씨를 붙잡았을 때 바랬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 집이 누군가의 집인 것을 알면서, 이곳에 매일 같이 찾아오면서,
그 말도 안 되는 용기와 의지는 대체 지금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머리가 이상하다.”

“응?”

“이상하다고. 네 머리.”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있던 모양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얼굴, 아니면 표정.”

“……그런가.”

아직까지 단어 선택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에렐리니아 씨의 말을 교정해 준 뒤 말을 돌린다.

“냉장고가 비었어.”

“그런가?”

서로간의 대화는 언제나 최소한.
꼭 필요한 용건 외의 대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에렐리니아 씨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내게 넘긴다.
그 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서로간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 것은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에렐리니아 씨가 원하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그렇게 생각을 곱씹으며 팬케이크를 입 안에 집어 넣는 순간,
에렐리니아 씨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봉급을 정하지 않았군.”

돈 이야기가 나오자 기억이 난 것일까?
에렐리니아 씨는 포크를 식탁 위에 내려놓더니 양 손으로 깍지를 끼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정할 것은 정해라.”

사무적인 말투.
맨 처음, 그녀에게 말을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 집요할 정도로 계약을 강조하는 모습이 기억났다.
그 것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다시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바다.”

짧게 끊어 말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 쪽을 바라보는 에렐리니아 씨.
그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한다.

“바다에 같이 가고 싶어.”

혼자서는 갈 수 없다.
혼자서는 그 곳에 갈 만한 용기가 없으니까.
하지만, 함께라면…….

“뭐?”

“잠시만이라도 좋아. 10분만이라도 좋아. 바다에 가고 싶어.”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답을 만들어 보는거다.

작은 계기. 그 것에 자극받아 멈추어 있던 태엽을 돌린다.
스스로 움직일 리가 없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그 바램에, 멈추어 있던 태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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