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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06

2007.12.27 22:35

미에링 조회 수:183



소개도 없이 갔던 것이 굳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그렇다면 꽤나 세심한 사람이다. 그 정도로 다시 찾아올 정도라니.
하지만 등을 돌리고 대화를 하다니, 역시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한 그 남자에게서
돌아서서 다시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저물어 어둠이 깔린 하늘 아래 보니 환할때보다 집이 조금 커 보이는
느낌이었다. 하긴, 혼자 살기에는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큰 집이니까.

본가, …아니, 이전의 집이 지나치게 쓸데없이 컸던 것 뿐이지.
아버지와 둘, 그리고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는 나 혼자…
집사도 메이드도 모두 떠난 그곳은 너무 쓸데없이 넓기만 한
공간이었다. 거기에 익숙해 져 있었을 뿐, 그다지 그 남아도는
허전한 공간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사실 이 집도 나 혼자 쓰기엔 넓어 보이지만,
내 짐이 도착해서 이것저것 좀 채워지면 나아질 테지.

그렇게 슬슬 정원을 지나 현관 앞에 서려는데,
돌아간 줄 알았던 기척이 아직 대문 앞에서 들려왔다.

"잠깐"

조금 전의, 음.. 마루 라고 했던가.
아직 닫히지 않은 어두운 대문 밖에서 그가 이쪽을 보고 들어 오고
있었다. 아누라크에서는 보기 드문 색인 완전히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
이 나라에서는 가장 많이 보이는 모양이었지만.

그리고, 그가 대문 안에 한 걸음을 들인채 서서 나를 마주 본다.

"'연'어演語, 가르쳐줄게."

느닷없이 그는 그런 말을 했다. 단어를 알려준다는 것일까?

"연어는 물고기다. 알고 있다."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하하… 아니, 이 나라 말. 가르쳐줄게."

그제서야 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나라, 연 의 언어를 알려준 다는 것인가. 역시 이 나라의 말은
다른 의미라도 발음이 완전히 같은 경우가 많아서 어려움이 많다.

"여러가지로 참 갑작스러운 사람이군."

난데없는 그의 제안에 조금 놀랐다고 할까…
내가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알아듣기 어려운지
그의 얼굴이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 된다.

"아아, 마음 말아라. 혼잣말이다."

그의 표정이 가벼운 쓴 웃음이 된다. 그런 표정을 보지 않아도
내 말이 많이 어색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계속 이렇게 쓸 수도 없겠지.
배울 상대가 있다는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좋다. 지불은 당신이 정해라. 요구 기간은 한달 한정로 한다."

나에게 관계가 생겨서 좋을건 없다. 또 다시 저주받은 운명을 만들 뿐,
로베스처럼 나의 저주받은 운명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 곳까지 와서 또 다시
내 운명을 시험할 생각은 없었다.
보수와 기간을 확실히 정해서, 그런 관계로 끝내야 한다.

그러고보니 이제 완전한 어둠, 밤이다. 찬 바람도 슬슬 불어오고…
한참을 고민하는 그에게 일단 손짓을 했다.

"토종… 아니, 머루. 우선 안에서 대화."

그의 표정이 무너졌다.

"마루 라니까…"

그리고는 내 손짓에 따라 따라 들어오는 그.
…권할만한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은 유감이었다.
현관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그는 한참 이 텅 빈 집 안을 둘러본다.
둘러보는 눈빛이, 낯선 곳을 마주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이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을까.

"아…. 그러고보면,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문득, 나를 보며 그런 것을 묻는다. 하긴, 이름을 모르면 부르기
곤란하겠지. 이름을 알려준다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건 아닐테니…

"에렐리니아 에프렛. Erelinia Efrett."

그는 그 이름을 기억에 새기기라도 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말 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난 그에게 가슴 속으로 속삭였다.

그 이름을 새겨 두지 마,
눈 앞에서 사라지면 바로 잊어버리도록 해.

그리고 난 낮게, 말했다.

"저주받은 이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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