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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04

2007.12.26 01:10

미에링 조회 수:172



조금 키가 작은 듯한 그 남자의 안내는 정확했다.
이곳 사람 중에서도 지리에 밝은 사람일까.

내가 몇 시간을 헤멘것이 허무할 정도로 곧바로 도착한 곳,
대충 방향과 위치를 생각해 보면 난 이 근처를 묘하게 비켜가며
빙글빙글 돈 꼴이 된다. 묻지 않았다면 오늘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날이 저물 시간, 하지만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고맙다. 차 한 대 마시고 가겠나?"

아직은 말하면서도 어딘가 내 스스로도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 곳의 말.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어딘가
어색하게 말하고 있다는 건 상대의 표정을 봐도 알 만 하다.
오늘부터 다시 이 곳의 언어에 대해 알아보던가 해야지,
이대로는 어려울 것 같다.

"아뇨, 바빠서…"

하지만 내 작은 사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정말 바쁜 사람을 잡은건가,
그렇다면 대단한 실례인데.

지금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시 보기를 기대하는 것도
바보같은 일. 사례는 단념하기로 한다.


티리링-
초인종 소리는 맑은 종소리였다. 대부분 사용하는 전자음이 아닌
실제 종을 울려 내는 소리.

=대문 열렸어요=

그 말에 대문을 밀어 보니 간단하게 열려 버린다.
난 집 안으로 발을 들이다, 문득 거리를 돌아 보았다.


회색 하늘은 서서히 짙은 회색을 띄며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를 덮은 흙빛 섞인 눈도 하늘처럼 어둡게 물들어 간다.
그러고보면 이 나라는 유난히 거리도 어디에도 흙이 드러난 곳이
많다. 아누라크 전체가 그런건 아니지만, 레페스티아에서 집 정원
외의 곳에서 흙을 보려면 시 외곽의 산으로 올라가야 했던 것을
생각 해 보면 그것 만으로도 굉장한 차이. 낯선 느낌이 드는 큰
이유중 하나는 이것이겠지.

"뭐, 나쁘진 않지.."

그렇게 집 현관 앞에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에렐리니아 씨 맞죠? 집 주인에게 부탁받고 기다렸는데,
  늦어서 얼른 가야해요. 여기 계약서 있고, 집 주인 연락처랑
  부동산 서류같은건 이 봉투에 다 있고요. 문제 있으면 연락 해보세요.
  늦어서 바로 가야해요."

현관에 손을 대자 마자 튀어나온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성은
내 끄덕이는 대답을 보긴 한 것인지 서류 하나와 봉투를 내 손에
건네주며 정신없이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역시 뭔가 틀린건지 살짝 어색한 표정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는지
그 여성은 종종걸음으로 뛰어 나가 버렸다.


철컥,
우선은 대문부터 닫는다.
들어와서 보니 집 상태는 사진으로 본 것 보다 괜찮아 보였다.
집 주인이 성격이 나쁘지 않았던지, 문이나 다른 집 상태를
보아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실내 바닥재와 벽지도 새로 되어 있었고,
구석구석의 상태도 괜찮았다. 묵은 먼지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걸로
보아 꼼꼼했던 모양.

문득 로베스 생각이 난다.
로베스도 구석에 먼지까지 매일매일 털어내곤 했었지.

"…쳇."

쓸데없는 생각을.
오늘은 가구도 뭣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내일로 미룬다는건
내키지 않지만 지금은 어수선하게 무언가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짐은 내일 부르자.

그렇게 생각하고 코트를 벗어서 거실 한 구석에 놓아두었다.
옷을 걸어둘 곳이 없네, 하는 생각에 집을 둘러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새삼 다시 새겨진다.

옷을 걸 곳은 물론, 앉을 의자도, 침대도, 담요도 무엇도 없다.
하지만 역시 호텔 같은건 내키지 않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바닥에서 자볼까…
어릴 때 이후로 몇년 만이지, 그런 생각에 피식 하고 웃어 버린다.

그렇게 정하고 잘 방을 정하려는데, 밖에서 기척이 있는 듯 했다.


티리링-

울리는 벨 소리, 분명히 초인종 소리였지.
찾아 올 사람이 있나? 밖은 이제 어둠, 게다가 난 이 곳에 온지
한나절도 되지 않았다. 용무가 있는 사람이 있을리가,
그래도 찾아온 사람을 그냥 보낼 수는 없겠지.

난 조금 무거운 느낌의 현관을 열고 대문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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