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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2장-개전-(2-1)

2007.07.23 21:44

울프맨 조회 수:157

2장. 개전

2-1. 파란

영일의 하루는 지구대장의 불호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근무의 연장이라고 하는 것이 좋으리라.. 새벽 근무를 마치고 다음 조와 근무 교대해야하는 시간이었지만, 영일은 교대는커녕 출근한 지구대장에게 쓴 소리를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순경!! 자네 정신이 있는 거야? 그런 흉악범을 만났으면 지원을 요청했어야지!! 같은 조인 박경장... 자네는 대체 뭐한 거야? 오순경이 그러고 있으면 도와줬어야 할 거 아냐! 그때 뭐하고 있었어? 왜 말 못해? 또 잤지? 순찰차 안에서 또 잤으니까 몰랐겠지?! 근무태만인거야 뭐야 ?! 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영일은 같이 새벽 근무를 돌았던 박경장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보며 속이 쓰리는 것을 느꼈다.

‘당분간 죽어지내야겠구나......’

자신만 욕을 먹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한 귀로 흘릴 수 있지만, 몇 년은 경찰 선배인 박경장은 결코 뒤탈이 좋은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구대장의 호통이 끝나고 박경장은 영일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날리는 것이었다.

‘이제 난 죽었다.....’

영일은 지구대 후문으로 끌려가 박경장에게 30분의 추가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욕설과 인신공격이었는데, 영일은 그런 폭언의 포화 속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지구대장의 책망도 박경장의 분노도.....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하긴, 연쇄살인마를 혼자 상대하고........ 체포하지도 못했고... 피해자 신원확보도 못하고 보고도 안했으니까... 욕먹어도 싸지....’

오순경은 자신의 상식 밖의 행위로 앞으로의 공직생활이 순탄치 않게 흘러갈 것을 한탄하며 지구대에 주차된 자신의 빨간 마티즈에 시동을 걸었다.
감봉대신 시말서를 쓰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지만, 그가 진정으로 근심하는 것은 그런 일상적인 평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여자를 어떡한다...........’

자신의 원룸에 도착한 영일은 얼룩얼룩 핏자국에 물든 자신의 이부자리를 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기묘한 일이 벌어졌던 것은 전날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그날의 근무는 영일에게도 동료인 박경장에게도 다소 무리인 일이었다.
이미, 그날 아침까지의 새벽 근무를 한 상태라면, 그날 하루는 푹 쉬고 다음날 아침부터 씽씽하게 근무하는 것이 정상적인 3교대 근무의 패턴이었지만, 새벽에 근무를 해야 할 윤경장이 급한 집안 사정으로 교대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오순경과 박경장은 하루에 두 번 근무라는 강행군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사람은 원래 밤에 자고 낮에 움직이는 존재인지라, 몰려드는 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창 젊은 영일과는 달리 박경장은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아닌가, 결국 몰려드는 피로에 만신창이가 된 박경장은 평소처럼 영일에게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줘”라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기시작하고 말았다.
여기까진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박경장의 취침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많이 이르다 뿐이지, 어두워지는 거리를 순찰차로 순찰하며 무전에 귀를 기울이는 아주 평범한 하루였던 것이었다.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는 열악한 치안의 신도시 신토.... 그러나 그날 하루만큼은 그 흔한 술주정꾼의 행패신고조차 없는 조용하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밤이었다.

“오랜만에 조용한 밤이로군.....”

이 도시가 항상 오늘처럼 조용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며 순찰차를 도로변에 잠깐 세워둔 영일은 잠을 쫓기 위해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그러나, 영일이 커피를 식히는 법은 보통의 방법과 달랐다.
흔히 커피를 식히기 위해 입김을 후후 부는 것과 달리 영일은 그저 손을 펼쳐 컵의 주둥이에 살짝 얹어 뚜껑을 닫는 것처럼 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영일은 컵에 대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컵속의 커피는 소용돌이를 그리며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능력자. 그것이 바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영일의 숨겨진 이면이었다.
철들 때부터 자신에게 남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고, 활용법을 터득했으며 이젠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이 힘.
큼직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터지는 혼란스러운 치안의 도시라 해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뿐이었기에 영일의 힘은 이 도시에서 아무소용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커피를 다 마시고 순찰을 시작한 영일의 가슴은 흥분으로 빠르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순찰차가 멈춘 장소는 바로 오늘 아침 기괴한 사건이 벌어졌던 곳.
수십 구의 변사체가 무더기로 버려졌던 골목길에서 영일은 극도의 흥분과 동시에 불길한 예감을 느낀 것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많이 정리되어 폴리스 라인만 쳐져있을 뿐이었지만, 영일의 눈에는 그 기괴한 광경이 아직도 생생했다.
처음에는 단지 한곳에 시체가 몰려있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불과했지만, 과학수사원 쪽의 지인에 의해 투기된 시체들 중 일부가 실종되었거나 사망사고를 당한 후 시체를 찾을 수 없는 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영일에게 알려지면서 그의 흥분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앞의 사실을 알려주었던 지인이 시체들이 모두 치명적인 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려오자 영일은 한 가지 확신에 이른 것이었다.
다시 그 장소를 찾아온 영일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뭔가가... 시작되고 있다......”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일상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거대한 무언가가 이 도시에서 시작되려는 것을 예감한 영일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 일상의 시작.
그것은 바로 지금껏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그의 힘이 발휘될 날이 다가온다는 것이기도 했다.
영일은 호주머니속의 방울을 만지작거리며 커피를 단숨에 비우곤 순찰차로 향했다.



골목을 나선 영일의 순찰차는 차례차례 근무코스를 돌며 근무를 계속했다.
평소와 다른 평화롭고 조용한 밤의 연속.
그러나, 그런 비정상적인 평화와 고요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영일은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럴 수가!!”

영일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오늘의 일상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바로 어떤 코스에서도 느끼지 못한 강렬한 위화감과 경고. 그것을 지금의 장소에서 느꼈고,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주변의 모습은 이윽고 영일의 눈에 불길한 정적으로 비춰졌다.
아직 일과를 끝내기에는 분명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인기척은커녕 차한대 지나가지 않는 주위의 모습은 상식적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변두리도 아닌 도심 한가운데에 자욱한 강렬한 피 냄새.
코를 진동하는 역겨운 냄새............. 거리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을 보며 영일은 처음으로 쓸모를 발휘하기 시작한 능력자로서의 직감을 발휘했다.
모든 사태의 근원. 죽음의 기운과 이질감의 원천이 되는 한 장소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병원. 성지대학 병원이었다.

영일의 육감은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이곳은 위험하다!’

그러나 영일은 자신의 육감이 알리는 경고를 무시했다.
아침과 같은 참사가 또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눈앞의 사태를 무시하고 도망치기에는 그의 정의감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일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파트너 박경장을 흘끔 쳐다보곤 곧바로 병원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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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록 2장이 시작되었습니다.
1장을 겨우 끝내고 1달의 유예를 두었지만, 1달동안 거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 거북이 연재가 시작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크게 벌려둔 1장을 이제 2장부터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산더미 같은 고민을 안고
몽환록 2장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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