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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비 오는 날의 귀가길

2007.06.28 03:53

슈봉 조회 수:256

평소처럼 10시까지 진행되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확실히 예고를 했었지만, 난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난 일기예보를 불신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무턱대고 기다렸다. 그저 이 비가 그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치지 않았다. 간단히 그칠 비가 아니었다. 결국 '아, 비를 맞으면서 집에 가는 것도 때로는 나쁘지 않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었기에 학교를 나왔다.

평소와 같았다. 평소처럼 차도에는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차가 지나가고, 도로에는 나와 같은 복장을 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맞춰 걸어가며, 아파트의 불빛은 달이 내뿜는 빛을 능가할 정도의 밝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다만 다른 것은 비가 온다는 그 사실 하나 뿐이었다. 다른 것은 다 똑같고 그것만이 다를 뿐인데....



달라보였다. 다르게 느껴졌다.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나를 앞질러가던 차의 수가 줄었고, 나와 같은 복장을 한 학생들의 수다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아파트의 불빛은 평소만큼의 강함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혼자였다.

참고서와 공책이 들어있는 검은 가방을 메고, 실내화가 들어있는 실내화 가방을 한손에 들고, 평소와 똑같은 길로 평소와 다름 없이 걸어서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긴 싫었다. 평소와는 다른 비오는 상황을 이용해서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마을버스에 타니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본다. 비를 맞았기 때문이리라. 하긴 '비오는 날에 비를 흠뻑 맞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바보'로 소문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좌석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MP3를 킨다.'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 들을만한 곡은 뭐가 있을까, 음.' 하고 생각하며 곡을 선곡하던 그 때. 버스가 집에 다 와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를 타고 왔는데, 집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변함이 없다. 또 혼자서 묵묵히 걷는다. 하지만 여기는 꽤나 상점가라 평소와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점가를 지나니 또 다시 평소와는 다른 광경.

그리고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을 일으켜도 변함없이 혼자 걷는 내가 있었다.

"우산도 안 쓰고 뭐하는 거야?"

어라.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통화중인가 보다. 나랑 상관 없겠지'라고 단정짓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야!, 김현구! 너 말이야, 너!"

어라. 김현구라는 건 내 이름인데. '설마 나인가?'하고 뒤를 돌아본다.

거기엔...우산을 쓴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밤의 어둠과 손에 들고있는 우산에 얼굴이 가려져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치마를 입고 있는걸 보아하니 여자아이란 확신이 들었다. 내 친구 중에 한 밤중에 다리털을 전부 밀고, 여자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녀석이 있지는 않으니까. 근데 갑자기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누구인지 모르겠어? 몇년 간, 같은 학원에 다녔잖아?"

우산에 가려져있던 얼굴을 보았다. 어라? 강은하잖아?

"넌 뭐하고 있어?, 학원 가? 열심이네."

은하는 몇년 간 같은 학원에 다녔다. 난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학원에 다녔다. 동기는 간단했다. 부모의 욕심. 뭐 나쁘진 않았다. 은하와는 그러던 중 만났다. 아마 중학교 1학년때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다. 우리 지역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라, 서울과는 다르게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고,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수능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무튼 그런 시기에 나와 은하는 만났다.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친하게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고, 같이 논 적도 별로 없다. 그냥 학원에서 같은 수업을 몇년 간 들었던 그런 사이였다.

"그러는 넌 비에 쫄딱 젖어서 뭐하는거야? 물에 빠진 생쥐도 아니고..."

물에 빠진 생쥐? 그거 진부하지만 제대로 된 표현이네. 진심으로 감격한다. 멋쩍게 웃는다.

"아무튼 아는 애가 비에 맞는 걸 모른 척 하기도 뭣하니까, 집 앞까지 데려다 줄게. 우산 같이 쓰자."

이건 무슨 급격한 제안이란 말인가. 접점이라곤 학원밖에 없었던 아이가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니까 좀 당황스럽다. 아니 나도 일단 남자고, 여자애랑 같이 우산을 쓰는 건 남자로서는 뭐라고해야하나. 동경하는 상황인데.

"넌 안 바빠?"

그러고보니 학원 가는 도중이 아니었던가. 날 데려다 주면 학원에 늦을텐데.

"왜? 안 쓸거야? 그럼 난 학원 가고"

은하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윽. 네, 잘못했어요. 즉답을 하지 않은 제 잘못입니다. 제발 씌워주세요. 헤헤.



"꽤나 오랫만에 만났네."

그건 그렇다. 난 고3에 진학하면서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으니까. 이유는 그냥 간단하다.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져서랄까.

"그러네. 잘 지내? 성적은 올랐고?"

"내가 너인줄 알아? 이래뵈도 너보다 성적이 높다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한데?"

윽. 그렇다. 난 반에서 상위권이지만 은하는 전교에서 상위권. 오히려 그녀가 나를 걱정해야할 상황이었구나. 이건. 뻘쭘해져서 화제를 바꾼다.



"뭐 남자친구 같은 건 없어?"

"뭐 그렇지. 게다가 올해에는 수능을 보니까, 남자친구 만들 생각도 없고 말야."

우와, 그건 아깝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은하는 성적이 좋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꽤 곱상하게 생겼다. 검은 생머리는 윤기가 넘치는데다, 교복이 잘 어울린다. 꽤나 인기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본인이 저렇게 나오면 답이 없구나. 남학생 동지들이여. 흑흑.

그렇게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지리는 교과서 외의 사례가 너무 많이 나와서 어렵다던가, 국사는 문화사부분을 정말 대충 가르친달까. 뭐 대부분 공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험생이니까 당연한 화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평소와 달리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있어 정말 좋았다.

"집 앞에 다 왔네."

아쉬웠다. 그녀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오늘을 평소로 바꿀 순 없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 혼자의 귀가길이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오늘 이렇게 그녀와 귀가를 하니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이 왜 귀가길에 그렇게 수다를 떠는지를 말이다.

"그럼 난 학원 갈께. 너도 공부 열심히 하고."

그녀가 그렇게 멀어져간다.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녀를 잡으면 학원에 못 갈테니까.

오늘 일로 하나 느낀게 있다.

사람은 하나보다는 둘이 좋다는 것.

그리고

난 그녀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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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좋습니다. 장편처럼 연재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없거든요. 그래서 단편입니다.

새벽 3시경에 놀다보니 비가 오길래 한번 써봤습니다. 아, 풋풋하네요.

음음. 제 경험 기반 소설입니다. 뭐 각색한 부분은 좀 많지만 말입니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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