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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雜談. 타심구현자 Part3, 33.8℉

2007.06.25 05:15

Lunate_S 조회 수:199

그것은 차가운 여름,
정말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나를 사랑해줄 거죠──?」


  하루고, 이틀이고, 정말 한심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세고 있자니, 허탈감만 몰려왔다. 누군가 지나가다 이런 내 모습을 보게 된다면, 거렁뱅이라고 비웃겠지. 정말로 거렁뱅이로 보이니 별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중얼거린다. 생존을 위한 희생일 뿐이야─ 그렇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자기합리화다. 웃기지 않은가─. 살고 싶다고, 삶을 포기하다니. 사실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어쩌면 의외로 많을지도─ 라는 것도 단순한 자기만족이겠지. 그렇다. 나는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도망칠 수 없는 그런 위협. 사실, 죽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다. ‘녀석’에게 죽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단지─그것 뿐.

  벌써부터 감흥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히는 감흥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숨어사는 이유, 이렇게 삶을 포기한 이유, 이러면서까지 살아가고 싶은 그 이유를, 숨김없이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덮디 더운 여름,
다른 세계의 만남을 통해 시작됐다.


  나는 인터넷 채팅이란 것에 빠져있었다. 그것이 가진 오묘함과, 현실과는 다른 양면성의 뒤죽박죽 된 채로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흉내 낼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런 것을 들킨다 한들, 내게 가해지는 비난을 피해 다른 가면을 쓰면 끝나버리는 희한한 세상. 그렇기에 나는 즐기고 있었다. 그것이 가진 영향력을 알지 못한 채로──.


  어떤 여자애가 있었다. 스스로 투병중이라고 말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불치병이라고─? 웃기고 앉았네…, 어떤 채팅 포탈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기억에서 잊혀지기 쉬운, 추억거리도 안되는 그런 캐릭터를 가진 여자애가 있었다. 아니지─ 실제로는 중년에다가 오타쿠인 남성이 꾸미고 있는 캐릭터일지도 모르지만.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의 장난에 맞춰주듯이 나 또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편의상 그녀라고 칭하겠다)와 나의 대화는 며칠이고 계속 되었다. 서로의 관심거리(아마도 음악이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은 일의 대한 투과, 싫어하는 사람 뒷담이라든가 일상에서의 수다까지. 그러다가 그녀의 투병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나에겐 아무런 마음도,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순수하게 이 장난을 즐기고 있었던 것뿐이었으니깐──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지 못했고, 알 생각도 없었다… 아마, 도.


  2달─ 아니 3달인가──. 그쯤 지났을 때,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그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타자로 챗창에 타이핑을 했다. '당신이 좋아지고 말았어요.' 라고. 거기까진 좋았다,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었으니깐. 그런데 다음 얘기는, 즐기기 위해 채팅을 이용하는 내가 장단맞춰줄 그런 성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와 놀기 위해 지켜야만 하는 규칙. 그 넘어서는 안 될 선을, 그녀는 넘어버린 것이다. 고백에 대한 다음 말은─ '저를 만나러 와주실 수 있나요?'였던 것이다. 채팅창에 떠오른 고백이 뇌로 들어온 순간부터 멍하게 있었던 나는, 주소를 적는 것을 보자마자 도망치듯 대화방에서 나와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친년, 미친년, 미친년! 아니야, 어쩌면 미친놈일수도 있잖아?! 미친놈, 이 미친 새끼! 시발, 젠장 도대체 뭐야 이 새끼는?! 자기가 정말 불치병 환자인 줄 아는 거야, 뭐야?! 또라이 아냐? 혹시 정신병원에 있는 건가? 오라─ 그럴 수도 있겠어. 암, 그렇고 말고. 어딘가에 있는 또라이가 미치광이 토막 살인이라도 저지르려고 사람을 꼬시는 건가. 긴장으로 가득 찬 정신이, 세상이 피폐해지는 대사를 지껄이고 있었다. 그것도 반복재생으로. 한참을 욕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꽤나 흘러있었다. 그리고 꼬르륵─ 하는 소리로, 수축된 신체가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일단 뭔가 먹자. 그렇게, 그 사건은 넘어갔다.


  그 일이 있던 이후로, 나는 그 채팅 포탈에 접속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혹시라도 다른 곳까지 찾아볼까봐 아예 채팅을 끊어버렸다. 그런 류의 정신병자들은 집착이 강해서, 어디까지 쫓아올지 모른다. 눈이 지나가던 통로에 적혀있던 문장 속에서, 아마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전부터 게임에 눈독을 들였던 나는 채팅이 필요 없는 게임을 택해서 시작했다. 그렇게, 그 사건은 잊혀지고 있었다. 잊혀졌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작은 방심, 그리고 나의 심각한 오해였던 것이다.


  진짜로 '그녀'였던, 여자애가 있었다. 진짜로 불치병에 걸려있던 여자애가 있었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던 여자애를… 보았다.

  사건의 발단은 오류, 전개는 모순, 결과는 악몽.



그것은 유난히도 시원했던 여름,
따스하게 보였던 소포 하나가 도착했을 때, 일어났다.

「XXX님 귀하──────.」라는 편지를 몇 장씩이나 동봉한 채.


  그것은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태어날 때부터 잔병을 달고 살던,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그러한 잔병이, 사실은 불치병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비참한 심정을 담은,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불치병임을 알게 된 것은 9살. 그 후로 10년 동안 병원에서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병원에서의 사소한 행복과 무의미한 희망에 가능성을 걸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던 이야기들. 언제는 즐거웠고, 언제는 슬펐던 이야기들. 그러다가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 대화한 것.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차가움, 냉대冷待. 따스함, 후우厚遇. 그리고── 나와의… 만남. 언제나 뚜렷한 거리를 두고 냉대도, 후우도 아닌 자신을 그대로 바라봐주었다는 나와의 만남. 함께 대화하면 언제나 즐거웠고, 행복했고, 아픔이 가셨다는 나와의 만남. 그 모든 것이, 몇 장의 편지에 적혀있었다.


  소포 안에는 곰 인형이 들어있었다. 한 팔로 들어올 크기를 가진 작은 곰 인형. 그리고 편지가 또 하나 들어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부모가 쓴 것, 그러니깐── 이것은……………. 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직접 쓴 편지도 기가 막혔지만, 부모란 인간들이 쓴 편지는 더더욱 가관이었다. 내가 만났던, 그 소녀─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나랑 같은 음악을 좋아했던 그 소녀는 이미 세상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마지막 소원. 게다가 이 곰 인형이─ 그녀가 내게 보내는 자신의 유품이란 소리였다.

  나는 팔에 끼고 있던 곰 인형을 집어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미친년, 진짜로 미친년이었어! 부모란 인간들까지, 싸그리 미친 새끼들! 내 본명은 어떻게 알고, 아니, 내 주소는 어떻게 알고 보낸 거야──! 미친놈들, 이 미친놈들아! 유품을 왜 나한테 보내고 지랄이냐고! 내가 그런 년 알게 뭐야, 젠장할─! 장난삼아 상대해줬더니 이젠 아주 기어오르려고 들어?!
  ──헉, 허억, 헉. 헐떡거리는 호흡을 가누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지? 아─ 다른 포탈에서 정말 친하다고 생각한 녀석들에게 가끔 말하기는 했다.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았지? 이름만 알면 주소는 알아내기 쉽다는 건가─? 아니면 불치병 환자라고 나라에서 소원이라도 들어준 거야, 뭐야? 흥신소라도 알아본 건가? 시발, 뭐 이딴 나라가 다 있어. 시발, 시발, 다 뒈져버려, 시발───!!
  ──헉, 허억, 헉. 헐떡거리는 호흡을 다시 가누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때였다.

  진정해요, 일단 진정해요, 진정하세요. 중얼중얼. '누군가'가 와서 귓가에 속삭인다.
  그래, 진정하자.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한다.

  어라라─? 문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속삭였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것은 곰 인형. 나를 보면서 '씨익'하고 웃는 듯이 보였다. 이, 이건 뭐야아─! 어느새 내 옆으로 와있던 거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마음이 창백하게 얼어붙는다. 바, 방금 말한 것이─ 너냐? 조심스럽게 묻는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다. 이런 멍청한 짓을─ 누군가 보고 있다면 얼마나 비웃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멍청한 짓이었다. 그래도 찜찜한 기분은 버릴 수가 없어서, 곰 인형을 잡아 창밖으로 던졌다. 불현듯 녀석이 나의 손을 꽉 쥐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로 가서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요, 얼른 일어나요, 날이 밝았어요. 중얼중얼. '누군가'가 와서 귓가에 속삭인다.
  으, 으으─. 벌써 아침인가. 그렇게 나는 눈을 떴다.

  어라라─? 방금 말한 '누군가'는 누구였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것은 흙탕물에 젖어있는 곰 인형. 나를 보면서 '씨익'하고 웃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힘찬 비명. 바, 방금 말한 게 너냐?! 대답은 없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대답은 없다. 너, 너는 뭐야─?! 대답은 없다. 곰 인형을 버린 것이, 꿈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흙탕물에 젖어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침대에서 벗어난 나는 보고 말았다. 현관문부터 이어져 있는, 흙탕물로 젖어있는 작은 발자국을. 화들짝 놀라서 침대를 바라본다. '녀석'은 없다. 없다. 없다─?

  여기에요, 여기라고요, 나를 바라봐요. 중얼중얼. '누군가'가 발밑에서 속삭인다. '녀석'이다. 내려다 본 방바닥엔 곰 인형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벌린다. 벌려질 수 없는, 헝겊으로 된 입을 벌려서 내게 말한다.


「이제는 나를 사랑해 줄 거죠──?」



여기까지가 찌는 듯이 더웠던 여름이,
시원하게 변했던 날까지 있었던 이야기.


  오늘도, 오늘도─. 하루고, 이틀이고, 정말 한심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세고 있자니, 허탈감만 몰려온다. 누군가 지나가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거렁뱅이라고 비웃고 있다. 정말로 거렁뱅이로 보이니 별수는 없지만. 하지만 이렇게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살고 싶을 뿐이야. 녀석은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 자신을 버린 나를 증오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웃음이 나오는데, 웃기지도 않다─. 살고 싶다고, 삶을 포기하고 있다니. 사실 이런 아이러니도 없을 텐데.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도망칠 수 없는 그런 위협이 내 주위에 존재한다. 솔직히 죽는 건 두렵다. ‘녀석’에게 죽는 것은 더더욱 두렵다.
  단지─그것 뿐.

  숨김없이 털어놓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아─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나는 피할 수 없을 거야. 그것은 어디까지고 쫓아올 테니깐. 내가 죽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아, 따라왔다.」




















「나를 사랑해 줄 거죠──?」


──────────────────────────────────────
 원래는 리얼돌 계열에 인형으로 하려고 공부를 그럭 저럭 해놨는데, 결국 곰인형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코카콜라 때문에──. 코카콜라는 내 곰인형이죠. [...] 하얀 백곰인형이라 코카콜라 선전에 백곰을 따서 코카콜라라고 지었습니다. 귀엽죠─? [...]

 그렇다고 코카콜라가 누굴 찾아가서 사랑해 줄 거져 ㅇㅇ? 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처음엔 여자애가 「나를 사랑해 줄 거지──?」하는 식으로, 반말을 지껄이게 해볼까─ 했는데, 왠지 존댓말이 좋아서 그냥 존댓말로 갔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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