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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해방으로의 전진.

2007.04.06 01:18

Tonaituh 조회 수:228

뚜벅뚜벅. 합성수지제의 복도에 내 발소리는 조용히 울렸다.



오늘은 박사가 왠일인지 그의 방으로 나를 초대한 날이다. 지금까지 이 어이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날 초대할 때는 언제나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났던지라, 오늘도 그의 방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그닥 경쾌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또 뒷감당을 어찌 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이러한 박사와 자꾸 연관되어, 계속 박사의 뒷감당을 하는 건 솔직히 말하면 돈과 시간을 쌍으로 낭비하는 일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오늘도 그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눈 앞에, "WMW"라 쓰인 조그만 문이 보였다.



달칵. 문을 조용히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조용한 안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이놈의 박사가 노망이라도 나 지 실험기구를 다 버리고 어디론가 숨어버린 게 아닌가, 란 상상에 잠겨 있는 그 때. 뒤에서, 그건- 불쑥 나타났다.



"아마핫. 안녕하신가."



간 떨어질 뻔 했다. 이놈의 박사는 아무래도 날 놀래키는데 재미가 든 모양이다. 박사는 너무나도 즐겁고 경쾌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지옥의 문지기다. 박사가 저러한 얼굴을 할 때, 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저 얼굴을 봤을 땐 온 도시가 마이크로단위의 로봇들에게 겁에 질려 있어야 했고, 두 번째로 저 얼굴을 봤을 때 박사의 신체 안에는 이상한 생명체와 로봇의 결합품이 돌아다니는 중이였다. 내가 저 박사를 만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저 표정이 위험하다- 라는 건 종만 치면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내가 뼈아픈 기억들을 통해 자동으로 학습하게 된 사실이였다.



박사는 묘한 조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면서, 예의 설명을 꽥꽥 소리지르며 차차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자네는 인간인가-?

아마, 물론 인간이겠지. 나는 지금 새삼스레 자네가 우리가 전 세기에 정복한 위대한 옛 것들의 스파이라거나, 아니면 인간의 탈을 쓰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외계인 일당이란 이야기를 하련 것이 아니야. 자네는 내가 장담하건데, 아마, 물론, 확실히 인간이야? 그렇지 않나?



아아.. 감격했다. 이 박사도 때때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줄 아는구나. 이 사람도 분명 어릴 때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평범해지고 싶었던 안경 쓴 어린애였을꺼야.



그럼 자네는 왜, 인간인가?



취소다. 이 인간은 분명 근본부터 맛이 갔을꺼야. 뇌내혁명이 필요해.

박사는 찌릿거리며 째려보는 나의 눈을 무시한 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아, 불행히도 우리는 왜 인간인걸까. 대체 말이야. 라고 나는 생각했네. 우리가 인간이란 건 우리에게 엄청난 제약을 씌워 주고 있어. 우리의 유전인자가, 우리의 뇌가 우리의 사고의 흐름을 멋대로 결정한단 말일세. 자네 혹시 내가 자네에게 싱긋 웃으면, 어떠한 생각이 드나?



사고 치겠군.



그래, 분명 그렇겠지. 그런 큰 사고는 내 자랑스런 훈장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 사고는 뭔가 잘못되어있지 않나? 내가 자네한테 싱긋 웃는 건 분명 매우 높은 확률로 사고를 친다는 의미겠지만, 단순히 내가 오늘 나온 지나치게 강력한 실험결과에 고양됐을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 내가 발표한 새로운 이론에 너무 감격한 것일수도 있지 않나?



...그게 그거 아냐?

아무래도 이 인간. 이제 슬쩍 어딘가의 회로가 타들어간 모양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중요한건 그게 아냐. 이렇게 주어진 정보로 유추해낼 수 있는 사실들은 무한하지. 다만 우리는 그 중 극히 일부 몇개만을 취사선택해서 그걸 중심으로 유추한단 거야. 물론 이게 나쁘단 말이 아냐. 논리에 의한 정보의 취사선택- 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겠지. 세상엔 필요없는 것도 있었고, 필요 있는 것도 있었으니까. 우리의 뇌는 취사선택되지 않은 정보를 분류하는데 익숙치도 않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런 취사선택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라. 우리의 사고는 이미 인간 뇌의 한계를 벗어났어. QMP&QMD^2의 보조를 받은 인간의 사고능력은 이미 예전 인간의 그것과는 대략 3*10^3배의 격차를 보여.

그런 우리에게 취사선택이 필요할까?

필요하지 않아. 우리에겐 이제 주위에서 감각기관이 입력시킨 모든 데이터를 모두 인지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 껍질을 벗어버리면 더 한층 성숙해질 수 있어. 왜 굳이 논리란 굴레를 씌워 우리가 입력받은 데이터를 취사선택해야하는거지?

나는 말야. 이제부터 취사선택을 하지 않겠어. 논리를 버리겠다.



미친거 아냐? 그렇다고 해도 그게 가능해?



어차피 논리마저도 그저, 뇌내 활동에 불과할 뿐이니까. 우리의 취사선택을 관장하는 부분은 대뇌의 정확히 이 부분, 여기부터 여기까지야. 그리고 이 중에서도, 이 안을 돌고 있는 전류, 이 전류의 연속적 흐름에 의해 논리가 생겨나고, 취사선택이 시작되지. 이 흐름을, 부수어버리면 되는거야!



그게 가능하냐?



가능해. 가능하고말고. 이 장치를 쓰면 말이야. 자세한 이론이야 자네한테 이야기해봤자 어차피 알지도 못할테니 넘어가고, 그냥 간략하게 스캐닝과 분해, 재구성정도로만 이뤄진단 걸 알면 되네.



아.. 네. 뭐 이제 간섭하고 싶지도 않아.

어련히 잘 하시겠지. 박사는 그 금속의 묵직한 질감을 느끼게 하는 헬멧처럼 보이는 장치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거기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광전선들을 박사가 애용하는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박사는 말했다.



자네는 이걸 받게.



털썩. 가벼운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떨어진 것은 한눈에 봐도 낡았다,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기저기에 가볍게 긁힌 자국이 있는 QMD^2였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실험이나 생각해왔던 가설들의 데이터를 담고 있다. 자네한테 그런 걸 주는 건, 사실 말이지, 나도 이제 어찌 될지 몰라. 이번 실험은 나 자신이 직접 실험체라고, 게다가 영장류는 실험재료로 당췌 구할 수 없어서, 비슷한 실험 데이터마저 구하지 못했어. 하지만 말이지. 논리가 없을 때의 새로운 세상을 가장 먼저 체험한다는건, 또 가장 큰 행복 아니겠어? 거기에 일단 길이 보이면, 달려가봐야하고 말이지.



아니잠깐이놈이지금뭐라고하는거야지금그럼이거말도안되는거잖아야잠깐스



박사는 더할 나위 없이 싱긋 웃으며,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광전선에서 순식간에 여러 빛이 지나간 것 같았다. 아름답게 빛나는 색들의 향연을 보면서, 나는 잠시 박사에 관한 일은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스라한 광경에서 깨어나 박사를 보았을 때-

난 거기에 있는 것이야말로 죄악이라고 해서 도망나왔다. 발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 눈에 무엇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저 지워버렸을 뿐이다.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지우고 싶어서, 잊고 싶어서.



나는 그 이후로 박사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저 준막장소설
이제 슬슬 양이 늘어가는 건 기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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