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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지금으로부터 아주 조금 전의 이야기.

그곳은 아주 먼 장소.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뒤. 예를 들면 거울 속.

태초의 어둠 속에서 탄생한 「관찰자(옵저버)」는 가면 같은 얼굴을 하고 비웃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수없이 일어난 죽음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온 몸을 피로 치장하고 온 몸을 피냄새로 치장한 원념 덩어리.

피의 바다와 살점의 섬과 창자의 물결 속에서 사멸된 자들은 자문한다.

이 세상에 신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 것 따윈 없어.

이 세상에 악마란 존재하는 것인가.

-당연히 없지.

이 세계에 진정으로 기적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약한 자들이 갈망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

「관찰자」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무한히 펼쳐진 평행 세계(미러 월드)중 하나일 뿐.

이 우주에는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우주의 근원인 8개의 차원─그리고 8개로 나뉘어진 시간의 초침은 한 자리에 집결한다.

이 이야기는 파멸을 알리는 전주곡이자 시간의 초침을 둘러싼 싸움의 종막.

사람들의 소원, 갈망, 희망, 기도가 겹쳐 하나의 거대한 광기를 이루고,

여기 이 세상의 모든 악(앙그라 마이뉴)과 정반대의 신념을 지닌 두 남자의 결전이 펼쳐진다.


Game Start.


서기 3942년. 안드로메다 성운 혹성 BT-13

─────콰아아앙!

모든 것이 정체된 무음의 세계에 일순간 압도적인 질량의 격돌로 찢어발겨진 대기가 비명을 지른다.
맞부딪힌 '한 자루'의 검이 불꽃을 토해내고, 검을 쥔 거인의 전신이 육중하게 진동한다.
살벌하리만큼 거대한 대검을 쥐고 있는 거인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거인에서 나는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 아니 그마저 확실치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빛나는 적색과 은색의 머리카락. 언듯 보기엔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장담할 수 있는 건, 그것은 분명 몸집이 크고, 또한 몸이 근육과 뼈, 피가 아닌 기계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서로를 밀어붙이던 양방의 균형은 거인의 포효와 함께 깨어졌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어이, 카이토(Kaito). 괜찮아?〕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묵묵하면서 혈기가 넘치는 목소리.

"아아, 간신히 죽음은 면했다. 류크."

그것에 카이토라 불린 자가 다소 지친듯한 기색의 목소리로 화답한다.
방금 전의 격돌을 보면 이 세상에 흔히 일어나는 전투나 다를바 없어 보인다.
물론 이곳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전장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진공의 세계. 즉 우주(Space)다.
아무리 뛰어난 병사라 할지라도 기체(Robot)의 도움 없이는 맨손으로 곰을 때려잡겠다는 소리와 같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싸우는 자들 또한 기체를 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탑승한 '것'을 일반적인 기체라 하기엔 너무나도 생김새가 독특했지만.

방금 대검으로 무언가와 격돌한 기체─시바(Siva)는 등 왼쪽에 상하로 커다란 네 장의 천사의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으며, 오른쪽에도 마찬가지로 네 장의 악마의 날개가 말로 이룰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두부는 붉은빛과 은빛의 머리칼에 황금색의 왕관을 쓰고 있었고, 성난 빛을 띤 인간이나 다름 없는 인상이었다. 양 팔과 더불어 양 다리는 언밸런스하게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으로 섞은 듯한 형태였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혼돈의 신. Chaos(혼돈)가 형상을 띄게 되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이미지에 부합했다. 허나 빛과 어둠이 반으로 나뉜 모습에서 신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흉측하다 못해 괴기스러울 정도다.

멀찍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기체─다크 엠페러(Dark Emperor)는 우주라는 이름의 어둠에 동화되어 형태는 보이진 않았지만… 뚜렷하게 드러나있던 것은 새빨간 눈…마치, 인간이 흘리는 그런 피 같은 색상을 가진 보는 것 만으로도 심장마비에 걸릴 듯한 무섭고 날카로운 눈매. 붉은 눈을 한 무언가. 전체적인 형상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거인. 악마와도 같은 그 모습은 전체적인 실루엣으로 봤을 때 마치 어둠 그 자체가 형상을 이룬 것처럼 보었다. 그리고 6장의 날개가 있는데 비물질 같은 블랙홀로 이루어져 있고 날개는 얇고 길었다. 그것의 주위는 항상 왜곡되어 있으며 가뜩이나 검었던 우주의 표면은 죽어가는 것 같이 더욱 짙게 검어지고 유동되어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쳇, 성가신 능력이군. 시바를 상대로 여기까지 버티다니 칭찬해주지."

카이토는 끓어오르는 전의를 삭히지않은 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무언가에게 분명 '말을 걸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
실체는 없다. 본체는 수없이 많은 사념체가 결합한 형태. 물리적인 공격은 일체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아 천검 소환.〕

그 순간, 다크 엠페러의 날개가 일제히 펴지며 뾰족한 모양의 비실체 공격이 적을 향해 발사됀다.
그러나 그 공격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힌 듯 튕겨나온다.

「세상을 하직하기 전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를 이길수 없다. 포기해라.」

오한이 들 정도로 차가운 음성은 여러명이 동시에 말을 한 것처럼 목소리의 기복이 심했다.
그 말에 담긴 내용은 대국의 황제가 소국의 왕에게 고하는 최후통고와 같은 오만함이 담겨 있었지만,
내일 아침에 해가 뜬다는 것과 같은 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듯한 어조였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하지만─네놈이 쓰레기라 생각한 존재에게 당하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군."

얼음장 같이 서늘한 어조엔 명백하게 상대를 비꼬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허풍인 것일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은 시바를 향해 수많은 많은 구체를 날린다.

"일격에 보낼 수도 있는데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이유는  봐줘가면서 싸워도 이긴다는 거로군.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도 정도가 있어!"

고막이 터져나갈 듯한 굉음과 함께 내려친 일격은 공간 전체를 가르는 예리한 참격.
시바의 오메가 블레이드는 자신을 향해 오는 공격들을 일섬에 갈라버린다.

─────콰쾅!

-에너지 한계까지 앞으로 5분 정도 남았어요. 시바라 해도 그 이상의 공격은 어려워요.

시바의 내부에서 앳된 소녀의 음성이 들린다. 그 말을 듣자 카이토의 얼굴에 초조한 감정이 떠오른다.
기계 융합 사고 시스템. 통칭 B.S(바이오닉 솔루션).
이것과 일체화된 상태에선 뇌의 사고가 일반인의 12배가량 높아져 그만큼 정확성도 올라간다.
그녀가 말한 5분은 대략 6~7분으로 보는 것이 옳으리라.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간다.
전투가 1시간 이상 지속되고 있어 일반 기체의 50배나 되었던 에너지도 고갈 직전이나 다름없었다.
카이토는 입술을 질게 깨물며 토해내듯 내뱉는다.

"죽을때 죽더라도… 놈만은 반드시 지옥으로 보낸다."
-카이토 씨….

시바의 메인 컴퓨터를 담당하는 소녀는 착잡한 심경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았다. 동양인 특유의 검은빛이 감도는 앞머리를 조금 가릴 정도의 짧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진한 머리카락 때문인지, 하얀 피부는 중성적인 이미지가 감돌았다. 쌍커플이 있으며, 속눈썹이 찐해, 그를 여성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 아래 자리잡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눈. 강한 인상을 주는 적색 눈과 적색 눈의 오드 아이를 지니고 있었고, 그런 그의 동공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똑바로 선 콧대와 앵두같이 촉촉한 빨간입술 또한 중성적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장시간 계속된 전투로 단정한 얼굴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수척해졌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조종대를 잡고 있는 손은 당장이라도 경련을 일으킬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두 눈의 초점은 흐릿하고, 입가엔 마르지 않은 피가 묻어 있었다. 지금의 그는 억지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을 뿐,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는 육체라는 것을. 그 모습이 그녀─시아(Xiah)를 슬프게 하는 요인인 동시에 끝까지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 굳건히 버티고 있는데 자신이 보기해선 안된다고. 미약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응원이었다. 비록 그 결과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할지라도.

"시바와 다크 엠페러의 모든 공격들이 통하지 않아.
이대로 가다간 녀석을 쓰러뜨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지쳐 돌아가시겠군. 안 그래?"

아카츠키 류크(Akatsuki Lyuk)는 난감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기에 류크는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있는 곳은 안드로메다 운하의 행성 알렉스에서 6251km 떨어진 혹성 BT-13의 대기권 위다. 1시간은 버텨냈지만, 그 이상은 장담할 수 없다. 보통의 물리 공격은 일체 통하지 않고, 이력(異力)이 주입된 공격은 공격은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모두 간파해버리므로 오래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쪽은 이쪽이다. 적에게는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크로노스 군과 같은 평범한 인간은 적을 인지할 수 없고, 카이토와 자신만이 인지할 수 있다. 덕분에 지원군은 있으나 마나였다. 다크 엠페러를 가동시키는 원동력은 콕핏트와 연결된 파일럿. 다시 말해 류크 자신이다. 말이 좋아 5분이지 1분도 힘들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을 멈추면 적은 자신들을 일격에 보내 버릴 것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결과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소리다. '진퇴양난이란 이런 상황을 말한 거였나.' 류크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망은 어리석은 자의 결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어이 카이토. 할 말이 있다."

류크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카이토에게 그가 맡을 일을 전달한다.
사실 그로서도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둔 거라 정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카이토는 시종 침묵을 고수하다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이 내린 결론을 말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감수하도록 하지.〕

그 말을 듣자 류크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죄책감이 일었다.
카이토가 할 행동은 어떤 의미로는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즉, 미끼가 되란 것이다. 아리카도를 포함한 크로노스 단원들도 있었지만 애당초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놀아줄 적도 아니다. 그 동안 자신은 숨겨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이 공격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카이토에게 달려있다.

'부탁한다. 카이토.'

그는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겼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카이토의 포효가 전장을 뒤흔듬과 동시에 시바가 질주하기 시작한다.
일말의 소음도, 기척도 없이 육중한 거체가 말 그대로 한줄기 탄환이 되어 적을 향해 뻗어나간다.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시바는 점차 그 속도를 높이더니 이윽고 악귀와 같은 기세로 적을 향해 폭주한다!
그 형상은 그야말로 광란하며 사냥감을 쫓는 맹수의 그것.
이윽고 시바의 오메가 블레이드는 빨려들어가듯 적의 본체에 직격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러나, 적의 재빠른 반격으로 왜곡필드가 생성되며 오메가 블레이드와 맞부딪힌다. 맞부딛힌 검과 왜곡필드를 중심으로 원형의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검과 왜곡필드가 부딪힐 때마다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고, 시바의 외부 장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서로의 격돌이 불러온 막대한 충격에 시바의 상체가 튕겨나갈듯 뒤로 젖혀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시바는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일말의 동요도 없이 다시 상대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튕겨나온다.

「훌륭한 기백이지만 나에겐 무의미하다」

이어서 적은 아공간에서 운석을 소환하여 일제히 시바에게 날린다. 시바의 외부 장갑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공격들이었으나 0.1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공격은 점차적으로 장갑에 피해를 주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아무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돌격한 것에 불과했으나, 그것이야 말로 류크가 노린 바였다. 그 증거로 카이토는 이쪽을 향해 오는 운석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버 드라이브(광란의 질주)를 사용하기 위해 메인 시스템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가 시전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이며, 시간 벌기용 공격. 적은 그에 대한 대비책을 이미 알고 있으나, 이쪽의 진정한 목적까진 눈치채지 못할터. 짐이 되는 것보단 무언가라도 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카이토가 내린 결론. 물론 시아는 무모하다며 그를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에너지 한계까지 앞으로 3분 40초. 류크는… 아직인가 보군."

카이토는 쉴새없이 계기판을 조작하며 무덤덤하게 중얼거린다. 겉으로 보기엔 아직 여유로운 것 같았으나 조종석 주변에는 그가 토한 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내상은 그보다 더 심할 것이다. 적어도 늑골 두개는 나갔으리라. 아무리 시바가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체라 한들 인간이 다루기엔 벅차다. 중상이나 다름 없는 몸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정신에 앞서 육체가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그를 시아는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이제 그만… 하세요. 더는 당신의 육체가 견디지 못해요! 그만하면 됬어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런데 왜… 왜 당신만 상처입어야 하는 거에요-!

그녀는 애통한 심정으로 처절하게 외쳤다. 그가 중상을 입게 된 것은 자신의 탓도 있었다. 수십년간 묵묵히 그를 따라온 것은 그를 지키기 위해서였지 상처를 입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리리스의 딸이자 지고의 흡혈귀로서 적들을 위협해왔으나 지금의 그녀는 계약자의 목숨조차 제대로 지켜줄 수 없었다. 자신의 무력함이 이토록 원망스럽기는 처음이다. 원망은 빠르고 격하게 슬픔을, 분노를 허공에 흩뿌린다. 수많은 감정이 쌓여 실체화를 하려던 순간,

"시아, 난 괜찮아.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줘."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몸으로 설득력 없는 말을 하는 카이토였다.
그리고는 묵묵하게, 대검을 휘두른다. 또다시 튕겨나왔다.

-언제나… 당신은 혼자서 모든 것을 끌어 안으려 하는 군요. 그렇게 내가 못 미더운가요?

어딘가 살짝 토라진 듯한 태도였다.
물론, 본인은 위로할 생각으로 건넨 말이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낸 꼴이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지켜주고 싶은 상대에게 오히려 보호 받아야 되는 상황은 그녀를 격하게 만들었다.

─────콰앙-!

충돌한 무기가 튕겨나온 순간, 시바가 상대를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시바의 대검이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그것을 앙그라 마이뉴가 재빨리 왜곡필드를 생성하여 막는다.
대검과 왜곡 필드가 부딪힐 때마다 격렬하게 불꽃이 튀며, 충격파가 일어난다.
그렇게 수십합을 교환하던 둘의 균형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미스릴보다 단단한 오메가 블레이드에 금이 간 것이다.

-어서 대답 해봐요! 나를 믿지 못한다면 믿지 못한다고!
어차피… 지금의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잖아요…

그것이 그녀가 지금까지 꾹 참고 있던 진심이었다.
입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에 깊숙히 박힌다.
지금의 상황은 그녀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모든 공격을 상쇄하는 적.
자신의 연산 속도가 아무리 빨라봤자 그것 또한 적은 간파해버린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고로 자연스레 극도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카이토에게 내지른 말은 화풀이다. 그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품은 응어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화를 내서 속이 가벼워진다면 묵묵히 듣고 있겠다는 것이 카이토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이제 속이 후련해?"

시아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 카이토였으나,
숨겨진 뜻을 시아가 알 리 없었다.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지금 무슨 말을….
"속에만 꽁하고 박아둔 진심을 털어놨으니 아까전보다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다소 자신을 옭아매던 거무틱틱한 감정이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카이토가 처음부터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미는 한편,
그 본인이 괴로울텐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배려해주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 무렵, 다크 엠페러는 기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적이 자신을 신경쓰지 않길 바라며 류크는 비기를 사용하기 위해 1800자가 되는 마스터 코드를 일일이 입력하고 있었지만, 그 또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글자라도 틀리게 입력하면 모든 기밀이 삭제되는 동시에 자폭하도록 되어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최대한 집중하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류크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고 봐야겠지만.

"쳇, 거 더럽게도 기네. 언제까지 입력해야 되는 거야 이거?"

그에따라 당연히 불만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걸린 일이었기에 포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꽤나 근성있는 남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되었군. 슬슬 '그걸' 사용해야 겠어…."
-……….

방금까지의 격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시바가 다급히 상대와 거리를 둔다.
배려가 아니라 단순한 시간 끌기였던 모양이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짖궂군요. 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라니… 그래도 내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말했는데."

카이토는 쓴웃음을 지으며 계기판 밑에 달린 프로그램 입력 키보드를 꺼내 빠른 속도로 입력한다.
그러자 조종석 주위을 감싸고 있던 구체들이 일제히 섬짓한 공명음이 울려퍼지며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언어로 표현하자면 독주 협주곡(Solo Concerto)라 해야 될까.
이윽고 모니터 중앙에 Complate on이라는 글자가 표시되었다.
그것을 본 카이토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이것이 놈에게 통할거라곤 생각지 않아. 주의를 최대한 이쪽으로 돌리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가 눈을 감고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뜬 순간 그의 두 눈은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죽음을 관장하는 자. 오버 드라이브 실행을 위해 마스터 프로그램과 커넥트(연결)하겠다."

카이토의 입에서 그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현재 남은 에너지 잔량은 15%입니다. 원래의 출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허가한다. 코드 넘버 CIVMSTY018257. Chaos(혼돈)모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남기고 전부 개방할 것."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음성. 그를 모르는 사람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면 소름이 오싹 돋았을 것이다.
적과의 거리는 1680m. 공격이 도달하고도 남을 거리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담담히 키(Key) 코드를 고한다.

"최종 병기 in Over Drive(초월 질주)."
-소울 차지

그와 동시에 8장의 날개가 각각 고유한 문양을 나타내며 일제히 펴지며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것은 멀리서 마스터 코드를 입력중인 류크와 앙그라 마이뉴도 알 수 있었다.

"Are you ready?"
-Yes, My Master

그것은 공격을 알리는 최후의 선언이었으나, 앙그라 마이뉴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차피 꿰뚫고 있는 공격이었기에 무얼 할 작정인지 지켜나 보자는 심사였으리라.

"!"

그 순간, 시바를 중심으로 막대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2초도 지나지 않아 그 범위는 300km까지 증폭된다.
오버 드라이브가 적에게 명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일순간!
그 폭발적인 일격은 말 그대로 상대를 날려버렸어야…했었다.
앙그라 마이뉴는 공간을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왜곡시켜 공격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카이토는 적이 그렇게 행동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은 정말 괴물이다. 그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지. 하지만 진짜는 이쪽이다!'

「너의 공격은 그걸로 끝인가? 기대했던 내가…」

앙그라 마이뉴는 비웃음 섞인 말을 하려다 뭔가를 눈치채었다.
시바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던 것이다. 허나, 카이토가 다음에 할 공격따윈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앗!"

벼락같은 참격이 앙그라 마이뉴의 정수리에 내리꽂힌다.
그것을 앙그라 마이뉴가 실체가 없는 왼팔로 다급히 쳐낸다.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방법이 너무 뻔해!」

그러나 기습적으로 날린 공격은 적의 일갈과 함께 무산되며 좌측 어깨장갑이 폭음과 함께 날아간다.

"크윽!"

카이토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조금은 의외성 있는 판단을 기대했던 앙그라 마이뉴는 공격 패턴이 너무나도 뻔하자 더이상 이들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어리석은 적─그의 관점에선 자신에게 대적했다는 것 자체를 부질없는 행위로 간주했다─에게 영원한 안식을 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을 내리치려던 순간 카이토의 웃음 소리를 들었다.

"하…하하. 아직이다. 아직이야! 나는 아직 지지 않았어. 사명을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아."

믿기지 않는 패배로 인한 실성인가?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반칙이라고 밖에 할수 없는 권능을 맛보았으니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의 승리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인간 뿐만 아니라 신조차 그를 상대할 수 없다.
자만도 뭣도 아닌 말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그 뒤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오메가 블레이드 in 웨폰 브레이커(무기 파괴)."

그 순간, 대검이 빛을 내뿜으며 산산 조각나면서 왜곡 필드를 뚫고 앙그라 마이뉴의 본체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무리 사람의 허와 실을 파악한다해도 이것까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기습'이었으리라.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잔꾀를 부르는군. 허나 나에겐 소용없는 짓. 장난은 끝이다!」

말과 동시에 사념체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흔들이 급격히 재생되기 시작한다. 현재 상황을 재빨리 분석해 상황을 수습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왜곡필드를 뚫고 온 검의 잔해들을 실체가 없는 팔로 쳐내고 시바의 중추를 내부에거 꺼낸 무형도로 베어낸다. 그 결과 카이토가 시도한 특공은 무산되었다.

"크헉!"

카이토는 다량의 피를 내뱉으로 고통에 겨운 표정을 지었으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는다.
가증스러운 적에게 한방 먹여주었다는 기쁨이었으리라.
자신이 비록 이곳에서 죽게된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게임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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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간간히 뵙던 분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 처음뵙겠습니다. 간만에 SF(?)물로 찾아 뵙는 백작입니다.
환영 -고어 스크리밍 쇼- 2편과 같이 올린 '파멸의 전주곡'의 후속작.
광란의 협주곡의 오프닝입니다만, 어떻게 잘 보셨을런지 모르겠군요.

사실대로 밝히자면 고어~ 보다 이 작품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작년 7월 말부터 구상하기 시작한 이래 설정집 분량이 1mb에 육박.
그것만 따로 책을 내도 될 상황에 이르러 오늘에서야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닝은 상, 하로 나뉘어지며 파멸의 전주곡에서 출현하지 못한 인물들
(카이토, 류크, 앙그라 마이뉴)이 등장합니다.
2005년 8월에 시작한 이래 제대로 완결 짓지도 못하고 끝내,
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이렇게 후속작의 오프닝에서
못다한 라스트 배틀 만이라도 재현시켜보자는 취지에서 써봤습니다.
몇몇 분들은 그리우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빠른 시일내 오프닝 下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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