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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아직도 여기 자국이 남아있는데, 왜 자식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거야? 아직 암시가 걸린 상태인 건가. 그보다 선생님이 악마가 아니라면 우리 학교에는 이제 위험요소가 없는 거겠지. 안심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어이, 네가 말한 대로 쫒아 다니지는 않겠지만, 텔레파시로 자주 대화를 하도록 하자. 어쨌든 위험한 건 변함없으니까.”

‘아니, 선생님이 악마가 아니라면 우리 학교에는 일단 없는 거 아냐? 니가 느낀 것도 없으니까 선생님이랑 싸우고 놀았을 거 아냐.’

“논 게 아냐. 그건 항상 하던 결투다.”

‘결투는 무슨 얼어 죽을 결투냐.’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아까 너랑 교실에서 대화할 때 잠깐 감지된 기운이 있었는데, 금방 사라졌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잘못 느꼈나 했는데, 네가 교실에서 분필에 맞고 있을 때도 기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단 말이야. 그걸로 봐서 아마 널 노리는 악마는 기운을 감추는 일에 상당히 능숙할 거야. 그리고 악마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널 충분히 죽일 수 있겠지.”

‘그런 거면 왜 이제야 얘기하는데…….’

하여간 맘에 안 드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쨌든 너는 내가 꼭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내 라면을 이대로 잃을 수야 없지.”

포기. 더 이상 태클 걸고 싶지 않습니다. 나보다 라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아무리 태클을 걸어봐야 멈추기는커녕 진로수정도 안하고 곧장 달려 나가는데, 누가 막을 수 있으리. 그래 변태 천사님 당신은 그냥 그렇게 사세요. 나는 수업이나 들으렵니다.

‘수업은 끝났는데, 왜 아무런 연락이 없지.’

그래도 없으면 허전할 지경이 되어버린 금 까마귀를 생각하면서 짐을 꾸린다.

“어이~!”

음. 옆자리의 그분이 부르신다. 이번에는 또 무슨 기술이라도 시전 하시려고 그러시나요.

“오늘 같이 집에 가자.”

방긋 웃으며 얘기하신다. 웃는 모습을 보니 등골이 오싹하지만, 거절해도 좋을 건 없을 것 같고 어차피 집도 같은 방향이니까 오늘은 같이 가볼까.

“그러지 뭐.”

왜 좋아하는 거야.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 실컷 패대기치던 녀석하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집에 같이 돌아가자는 권유를 한 것인가. 그래도 이렇게 나란히 서서 걸어가니 아까 나를 던졌던 괴한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이런 분위기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흥분하기만 했으니 지금이라도 마음을 편히 가져볼까.

“너도 이쪽 길로 가는 거 맞지?”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지만, 조용히 내 옆에서 걷는 그녀가 신경 쓰인다.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걷기만 하고 있다…….

“저기…….”

정신없이 걸어와 버렸네. 너무 편하다. 사람이 조용해진 것만으로 이렇게 편할 수 있다니, 새삼 놀라울 다름이다. 벌써 갈림길인가. 왠지 아쉬운걸. 지금의 조용한 그녀라면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고 보면 게임이나 만화 같은 데서는 이런 상황에 아마도,

“우리 집에 들렀다 가지 않을래?”

그렇지 이 대사. 이겁니다. 기다렸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 이런 그녀가 이런 대사를 날려주는 건 스트라이크! 랄까 갑자기 캐릭터가 바뀌었다고 해도 너무 다른데, 오히려 불안한 걸.

“지금까지 때리고 그랬던 거 미안해서 그래. 차라도 대접 할 테니까. 응?”

예, 좀 이상하면 어떻습니까. 가죠. 암요 당연히 가죠. 그렇게 그녀의 초대에 나름대로 순수한 기대를 가지고 따라 들어온 그녀의 집은 간결하면서도 세심한 배치가 돋보이는 화이트 톤의 단독주택이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 걸까.

“여기, 잠깐 앉아서 기다려. 금방 먹을 거 준비해 올 테니까.”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자 복도 없이 지낸지 벌써 18년. 왠지 욕같이 들리는 시기에 다다른 지금 드디어 복이 굴러들어오는군요. 아무리 속에 괴한이 숨어있는 아가씨라도 지금 이 상황이 좋아. 그냥 현재를 즐기자. 카르페디엠!

“차는 홍차로 줄까, 커피로 줄까?”

“커피로 부탁해.”

부엌 쪽에서 들리는 짤랑거리는 소리. 물 따르는 소리. 기대감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구나. 어제 당한 첫 키스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역전홈런 한방이다! 이제야 드디어 소원을 이루고 당당한 여성과의 키스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앞서간 느낌도 들지만 느낌만으로도 지금 기분은 최고조다.

“여기 커피. 입에 안 맞을지도 모르겠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이건 맛있는 커피가 될 겁니다. 그리고 앞서가는 상상의 나래. 날개를 달고 훨훨. 아니 너무 앞서가면 끝이 안 좋다. 자중하자.

“그동안 나 많이 미워할 거라고 생각해서, 혹시라도 오늘 집에 오기 싫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아냐, 별로 나쁜 감정 같은 거 없어.”

웃자. 아니 안 웃으려고 해도 웃음이 실실거리며 올라온다.

“다행이야. 싫어하면 어쩌나 해서…… 정말로…… 다행이야.”

어라, 울어? 아니 잠깐만, 이 상황에서 울면 나는 어찌하라는 건가요. 그래, 이대로 안아준다거나 다독여주면 진도는 그대로 앞으로 나가는 거겠지요. 침착해라. 여기서 살짝 안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저기, 괜찮아?”

침착. 침착. 나는 침착하고 있다. 접근. 여기서 조금만 더. 양팔을 벌리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살기를 띄며…….

‘살기!?’

달려든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대응하지도 못한 채로 양팔을 구속당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직행. 양팔을 밧줄로 묶고, 이게 뭐하는 짓이십니까!

“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널 죽이려는 거지.”

“그러니까 왜!”

“왜냐면, 내가 악마니까.”

충격고백. 오 전 사실 악마였어요. 세상에 평소 행실은 악마였지만, 진짜 악마였습니까.

“악마라고?”

“그래, 나는 지상계에서는 평범하게 단련하며 살고 있는 여학생 김 오련이지만, 지옥에서는 그 이름도 악명 높은 한반도 담당 사령관이자 우리 아빠 박 금자의 셋째 딸! 박 삼자다!”

“푸훕.”

웃을 상황이 아니라는 건 잘 아는데, 이름이 삼자래, 삼자. 이거야 뭐 김 오보다 더하잖아. 천사들은 그래도 센스가 있는 거였구나. 아빠 이름은 금자고 딸 이름은 삼자래. 코미디 설정이라도 되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말로 하자고. 저기 웃은 건 잘못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표정은 그만둬. 다가오는 것도 그만둬. 정말로 나를 죽이겠다는 의지는 이미 투철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만둬.

“으아아악. 뭐하는 거야!”

양팔이 묶였으니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냥 날리는 대로 날아갈 수밖에. 그런데 옷걸이에 부딪히니 아프긴 아프구나. 세상에 뼈라도 부러졌을 거야.

“죽었어.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리다니……. 용서 못해.”

왜 천사나 악마나 하나같이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는 거냐고. 그러니까 지을 때 제대로 지으란 말이다.

“거기서 동작 그만!”

이 목소리는 금 까마귀! 그래 드디어 구하러 와줬구나. 조금 늦었어. 인마, 올 거면 좀 빨리 왔으면 좋잖아.

“내 라면시종을 건드리는 녀석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세상의 사랑과 평화와 라면을 지키는 정의의 천사, 골드 크로우 여기에 등장! 자, 라면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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