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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그 정장차림으로 교실 창문 밖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놈은 내 환상이 아닌 실제인 건가.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왜 온 거야 도대체. 어느새 그놈은 기도자세로 들어가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곧 번쩍. 이번에는 무슨 권능인가요.

“후, 역시 시간 관련으로는 사용하기는 힘들어.”

“음? 무슨 소리야?”

“지금 너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1초 동안 1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거야.”

“무슨 이유로.”

“급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급하게 할 얘기라니. 혹시 라면이 먹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사실은 라면이 먹고 싶어서……. 아니 잠깐 때리지 마, 농담이야.”

농담이라니 다행이네. 안 때려도 되니까.

“사실은 문제가 생겼어. 어제 너랑 내가 계약을 할 때 그 힘의 파동이 이 일대에 전해졌는데, 아마 이 근처에 살고 있던 악마들이 눈치를 채버린 것 같아. 천사인 내가 인간계에 내려와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 일단 천사하고 악마는 인간계에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투를 벌이지 못하게 규정이 맺어져 있지만, 인간계에 있는 악마들한테 천사의 기운은 별로 좋은 게 못되거든. 그래서 아마 악마들이 너를 노리고 달려들 거야.”

악마? 천사 다음메뉴는 악마? 게다가 나를 노리고 달려든다니 무슨 소리야. 도대체 왜!

“어째서.”

“그야, 나를 다시 천국으로 돌려보낼 방법은 네가 죽는 것 밖에는 없으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죽는다니. 멋대로 계약해놓고는 도대체 뭔 소리야. 왜 내가 죽어야 하는 건데?

“사실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려고 했는데 계속 악마의 기운이 네 쪽에서 느껴지니까 걱정이 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무슨 이상한 일 없었어?”

“하늘에서 볼링공이 떨어지고, 책상 다리가 부러지고, 국어선생님이 하이라이스를 전력으로 던진 일 밖에 없는데 왜. 하지만 악마라면 좀 더 거창하게 사람을 죽이는 거 아냐? 갑자기 불에 타버린다던가, 감전사라거나, 한방에 죽일 수 있는 건 수두룩하잖아.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

당신 얼굴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한 거야. 정말이야? 악마들이 볼링공이나 책상이나 하이라이스로 공격을 한다고?

“음……. 생각보다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군.”

어디가 심각해. 이건 심각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쪼잔하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볼링공은 모르겠지만 다른 건 살상용조차 아니잖아. 하이라이스로 사람이 죽나.

“규정상 천사나 악마나 인간을 직접적으로 죽이지 못하도록 되어있어서 말이지. 직접적으로 죽이려고 했다고 판정이 나면 그 자리에서 징벌이 가해지기 때문에 원래는 그런 식의 공격은 하지 않아. 게다가 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공격을 한다면 이건 정말 큰일인 거야. 공격을 한 악마가 벌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상다리나 하이라이스라면 몰라도 볼링공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다고 생각을 해 봐. 죽지는 않아도 거의 죽을 거라고. 그리고 책상다리가 우수수 부서지면, 아니 이건 아니고, 하이라이스가 마구 날아오면 이것도 무서운 거 아니겠어?”

아니 죽어요. 볼링공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면 죽는다고. 거의 죽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네놈이랑 염라대왕하고 면담하러 가야 한단 말이다. 책상다리야 암만 부서져도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이라이스도 잔뜩 날아온다고 죽을 리는 없지 않나? 죽나? 어쨌든 말을 듣고 보니까 심각한 사태로구나. 쪼잔함과 심각함이 서로 뒤섞이면 굉장히 심각해진 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도 깨달았다. 역시 저놈은 재앙 덩어리였어.

“심각하네.”

“그렇지? 심각하지? 네가 죽으면 누가 내 라면을 끓여준단 말이냐. 이건 정말 심각한 사태야.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내가 너를 악마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겠다. 일단은 그 국어선생부터겠네.”

퍼억.

역시 저놈은 때려야 하겠다. 사람 목숨보다 라면이 더 중요하단 말이냐. 무슨 천사가 이래.

“네놈한테는 내 라면이 내 목숨보다 중하다는 거냐! 그리고 말이야 아침에 그 옷을 입느라고 권능인가 뭔가 사용했고, 지금 대화하려고 사용했으면 오늘은 땡인데, 도대체 뭘로 지켜준다는 거냐? 볼링공이 떨어지면 대신 맞아주기라도 할 거야? 앙?”

그래 그리고 지금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교실 상황을 봐라. 분명 애들 머릿속에서는 내, 니가 여길 왜 왔어! 라는 외침이 처리되고 있을 텐데 10분이 지나고 네가 사라져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친 게 되는 거잖아.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고 싶어서 환장했냐?”

“아파, 그리고 시간 다 됐다.”

그렇게 시간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놈은 사라지고, 나는 주먹을 든 채로 창밖을 보고 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보며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옆자리로부터 동정의 시선이 내리꽂힌다. 이것으로 영락없는 미친놈이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죽여 버릴 테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수업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비는 수밖에 없겠다. 또 중요한 정보가 기억났다. 오늘 머리 많이 쓰게 되는군. 오늘은 목요일, 첫 수업은 국어다. 지금 내게 하이라이스를 던진 장본인이 교실 문을 열고 그 아름다운 척하는 작태를 뽐내며 들어오고 계시다. 지켜준다며. 위협으로부터 지켜준다던 천사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자, 수업 시작하겠어요. 모두 교과서 펴고. 거기, 교과서 피세요!”

나 말입니까 선생님. 분명히 수업 시작 전에 펼쳐놨는데요. 왜 나를 그렇게 살기등등한 눈으로 보면서 소리치시는 겁니까. 분필은 왜 높게 들어요. 어이, 동작 그만!

따악. 소리와 함께 분필아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내 이마에 꽂힌 것 같은 충격이 왔다. 아파. 아니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를 만큼 아파. 두개골이 부서지겠다. 아이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인데 왜 다시 뒤로돌아 수업을 시작하는 겁니까. 내 대답은 안 들어요? 어쨌든  내가 예상하건데 오늘 수업 도중에 적어도 열 번은 내게 분필을 던질 것이다. 그런데 악마치고는 정말 쪼잔하군. 분필 던지기로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거기 학생! 딴 짓하지 마!”

이정도야 피할 수도 있지. 그런데 타격소리가 왜 분필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쇠공이라도 던진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거죠? 분필던지기로는 벌을 안 받는 모양인데, 분필을 미사일 같은 파괴력으로 던져도 직접적인 해악으로 판정되지 않는 겁니까? 그런 애매한 규정이 도대체 어디 있어! 그런데 왜 너희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야. 분필이 투포환처럼 날아왔잖아. 벽에 금이 갔다고. 왜 멍하니 수업만 듣고 있는 건데?

“음. 아마 학생들한테 암시가 걸려있는 걸 거야. 직접적으로 조종한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 하지만 현재 상황을 정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이 맑고 고운 소리는 무어란 말입니까.

“아, 이거 텔레파시다. 그 생각으로 대화하는 거 있잖아.”

‘그렇군. 이렇게 생각하면 전달이 된다 이거지? 그러면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왜 아까 텔레파시를 사용하지 않은 거지? 그러면 오히려 더 빠르지 않나? 그러면 내가 미친놈이 되지 않았어도 되는 거 아닌가?’

“깜빡하고 있었어.”

깜빡 좋아하네. 나를 골탕 먹이려는 속셈인거 다 알고 있다. 왜냐면 방금 키득거리는 소리가 텔레파시로 전달됐거든. 실수시겠지만.

‘집에 돌아가면 죽었어.’

“윽, 잘못 보냈다. 진정해, 정말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 그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분필 또 날아온다고.”

콰앙.

콰앙? 아까보다 강해졌어? 금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꼭 영화나 만화에서나 봤을법한 자국이 생겼잖아. 벽이 패였다고. 말이 되나 저게?

‘어떻게 해야 되냐.’

“글쎄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기요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이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여기 학생들 모두 암시에 걸렸다고 하지 않았나? 저렇게 당당하게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아직 남아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태클을 걸고 당당하게 일어나서, 일어나서 선생님한테로 다가가서, 그래 그대로 업어치기…….

‘선생님한테 업어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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