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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늦으면 죽는다. 아니 죽지는 않을까. 어쨌든 몸에 안 좋아. 학교다! 정말 순식간에 왔구나. 시간은, 아직 10분. 5분이나 남았으니 괜찮겠지.

“후…….”

교실 문을 급히 열고 한숨을 내쉬니 교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린다. 이 시선은 그거다. 동정의 시선. 늦었구나. 뭐 대충 예상은 했지만 죽도록 뛰어온 게 왠지 아까운걸.

“이야압!”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교실이 빙그르르 돌아간다. 발이 바닥에서 떠오르더니 허공을 가르고 바닥으로 직격탄을 내리꽂는다. 오, 무릎까지 전해져오는 이 짜릿함. 미칠 듯 하구만. 어라, 잠깐 이걸로 끝이 아닙니까.

“오오~ 신기술이네.”

어떤 놈이냐 그런 무신경한 한마디를 내뱉는 놈은. 나중에 죽었어. 어쨌든 저릿저릿한 다리가 다시 허공으로, 그리고는 다시 떨어진다. 이번에는 어께부터 바닥으로 낙하. 사람 살려. 아무도 안도와줍니까. 교실에서 학생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말입니다. 좋아, 뭐 이제 끝났겠지.

“늦었어. 너!”

귀를 울리는 호통소리. 이게 무슨 여자애 목소립니까. 어디 시베리아 호랑이 목소리지. 아니 하이톤이니까 어딘가에서 들었던 공룡시대 시조새 소리.

“아니, 어쩔 수 없이 늦을 때도 있는 거야! 그렇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메다꽂는 법이 어딨냐!”

“지각하는 버릇 고치도록 나보다 늦을 때마다 혼내주겠다고 분명이 약속 했잖아!”

그러니까 그런 약속 일방적으로 하셨잖습니까. 아, 정말 신경써주는 건 고마운데 하필이면 신경써주는 여자애가 너 하나냐고. 여자복은 지지리도 없다니까.

“최근에는 늦게 온 적 없어. 게다가 오늘은 지각도 아니잖아!”

“나보다 늦게 왔으니까 약속 이행이야. 그리고 최근에는 안 그랬으니까 같은 애매한 생각이 안 좋은 거라구!”

아, 교직원 파일이 눈앞에 나타났다.

툭. 툭.

“이놈들. 아침부터 싸움질이냐. 자리로 들어가.”

자리로 돌아가 봐야 옆자리라서 별로 소용도 없지만, 일단은 자리로 들어갔다. 옆자리에서 가벼운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분명 나를 괴롭히면서 즐기고 있는 거야. 신기술 테스트라던가 스트레스 해소. 생긴 건 예쁘장한데 격투기 마니아라서 아깝다니까. 어라, 펜을 돌리고 있다. 오늘 나를 메다꽂은 것이 어지간히 즐거운 모양이군. 뭐야 너 왜 휘청 거리냐. 아니 내가 휘청?

“어라.”

책상이 왜 가라앉습니까. 어라, 아니 잠깐만. 책상 다리가, 부러졌잖아!

“……. 뭐야 무슨 일이냐.”

보고도 모르십니까. 선생님, 책상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거기서 먼저 다치진 않았냐고 물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라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뭐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그래 구체적으로 내 옆자리의 그분. 웃고 계십니다. 아니, 다들 웃고 있나.

“바보냐, 어서 일어나 앉아.”

선생님 정말 인심 한 번 야박하십니다. 하긴 이렇게 넘어진 채로 책상과 뒤섞여 있어봐야 별로 의미도 없지만, 그래 세상은 원래 야박한 거야.

“괜찮냐?”

옆자리의 그분께서 물어보신다. 어쩐 일이십니까. 평소엔 나를 뒤집어 넘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더니 내 몸 걱정을 해주시는 겁니까. 표정이 정말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어. 감동이 막 밀려오려고 하는 것만 같아. 감동 대 돌진이라는 느낌이다.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라니까. 이런 신기한 장면도 볼 수 있다니.

“조심해. 그러다 다치면 꼭 내 기술에 걸려서 다친 것 같잖아.”

예……. 예. 어련하시겠어!

“선생님, 책상 가지러 다녀오겠습니다.”

교실 밖으로 나갔다. 요즘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군. 하늘에서 볼링공이 떨어진다거나, 책상다리가 갑자기 부러진다거나. 뭐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는 것 보다는 낫지. 암. 그렇고말고.

“안녕. 어디가는거니?”

음? 국어선생님께서 여긴 왜 오셨지? 수업이 없으신가. 손수 옥상까지 책상을 가지러 온 건 아닐 텐데. 유명하시잖수 그 미모로 남학생들 부려먹기.

“책상 가지러 왔죠. 아침부터 책상다리가 부러졌거든요.”

“어머, 그거 참 당황스러웠겠구나.”

암요. 당황스럽죠. 선생님은 학생 걱정은 하나도 안 해주시지, 반애들은 웃지, 그분은 미묘하게 어긋난 걱정을 해주시더랍니다. 당황스럽죠.

“예, 당황…….”

뭡니까! 무서운 속도로 제 얼굴을 스쳐지나가 철퍽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서 흘러내리는 저 물건은 무엇입니까! 카레라이스? 아니 하이라이스? 아니 누가 던진 거지? 선생님이 던지신 겁니까? 교사가 학생한테 하이라이스를 던져요?  그것도 얼굴 직격으로. 안 피했으면 얼굴이 하이라이스 범벅? 신 메뉴 개발이라도 하는 중이십니까!

“아…….”

없네. 정작 던지신 분은 사라지고 없구나. 아, 하이라이스……. 도대체 내가 뭔 잘못을 했기에 교사로부터 던져진 하이라이스 폭격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요. 재미있는 일이네요. 진심으로.

철컹.

어차피 하이라이스를 던지느니 어쩌느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안 맞았으면 된 거다. 분명 내가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굉장한 일을 겪어서 분명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을 하는 걸 거야. 그렇지. 하늘에서 볼링공이 떨어지는 일도 있을 수도 있는 일이고, 책상 다리가 갑자기 부러지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국어선생님이 갑자기 하이라이스를 던지고 사라지는 것도 뭐, 내가 굉장히 배고파 보였는가보다. 분명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거야. 분면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하는 것 같으냐! 말도 안 돼!

“다녀왔습니다.”

교실은 이미 조례가 끝난 상태로 담임선생님은 수업준비를 위해 돌아가셨고 학생들은 수업준비를 위해 놀고 있다. 참 즐거워 보이는군. 나도 적당히 수업준비를 해야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데 책상가지고 오는 게 이리 오래 걸렸니?”

음? 아.

“아니 뭐, 별 일은 없었지만.”

“없었지만?”

“국어선생님이 하이라이스를 던지고 사라지셨어.”

“뭐!?”

그래 이해할 수 없다는 그 표정. 역시 내가 과민반응 하는 건 아니었나보군.

“……. 미안해.”

“응? 응!? 미안하다고?”

처음 봤다. 수십 번을 패대기쳐지면서도 단 한 번도 사과의 한마디를 건네지 않던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들어서 사고의 연산에 문제라도 생기신 겁니까.

“내가 하도 괴롭혀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거잖아. 한군데도 다치는 곳이 없어서 참 튼튼하네, 좋다. 라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머리에서 문제가 온 거야……. 미안해.”

“그런 게 아니야! 너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이란 말이다.”

“하지만, 국어선생님이 학생한테 갑자기 하이라이스를 던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는걸.”

그러면 내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냐. 내가 과민 반응하는 것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남한테 얘기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얘기였구나. 뭔가 이상한일 이라는 범위가 하룻밤 사이에 너무 넓어져서 나는 이제 이상한 일을 겪어도 이상한 일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 건가. 그래 망할 놈의 천사. 그놈 때문이다. 망할 놈.

“어이, 여기 봐라. 나 왔다.”

그래 너, 네놈 말이다. 그 상판을 보니 열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뻗치는구나. 창문 밖에 그놈이 아른거릴 정도라니 내 머리가 상당히 돌아버린 것 같긴 하군. 말도 하고 있잖아. 어이. 라던가. 여기 좀 봐. 라던가. 나 왔어. 라던가. 아니, 잠깐.

“니가 여길 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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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도배같아요...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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