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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가 불리하다는 거야! 인간이 천사의 권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줄 알아!”

화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일단 불리한 계약 조건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애초에 내가 태클을 걸고 싶은 부분은 그게 아니라 왜 사전 동의 없이 계약을 해버렸냐는 것……아니, 이게 아니라 왜 우리 집에 나타났느냐 그거다. 왜 느닷없이 나한테 키스를 했느냐 그거다.

“그러니까 나는 천사란 말이다. 천사. 봐 날개도 있고, 너희들 눈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게 보일 텐데?”

그러니까 대뜸 천사라고 해봐야 누가 믿느냔 말이다.

“증거는?”

“증거?”

“당신이 천사라는 증거를 대보란 말이야. 대뜸 남의 집에 홀딱 벗고 나타나서는 날개나 파닥거리면서 나 천사에요. 해봤자 믿을 놈 하나도 없거든?”

고민하는 표정이다. 저 날개 어께부분에서 자라있고, 인공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정말로 빛나고 있고……. 사실 이미 천사라고 믿어야할 타이밍인 것 같지만, 일단은 개기고 보는 거다.

“음……. 말로 설명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 같고 또, 귀찮으니까 그냥 내 이 자리에서 천사의 권능이라는 걸 보여주지!”

뭔가 보여줄 생각인 모양인데, 옷이라도 좀 입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뭇 진지한 녀석의 표정을 보니 지금은 태클 걸 타이밍이 아닌가 싶다. 손을 들어 올리고 합장? 아니 기도를 드린다고 해야겠군. 그런 포즈로 녀석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중얼중얼……. 아무래도 남한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지만, 미안하게도 내 두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바닥아 깨끗해져라. 바닥아 깨끗해져라. 바닥아 깨끗해져라. 아, 그리고 덤으로 내 얼굴도 깨끗해져라…….”

‘미쳤어.’

분명히 미친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빛이 번쩍 하더니 순식간에 바닥에 흩어져있던 라면이랑 라면국물이 사라졌다. 그놈 얼굴에 붙어있던 라면들도 사라졌다. 확실히 얼굴이 깨끗해지니 잘생기긴 했구나. 그런데 이제 저놈이 천사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 같다. 천사의 권능 치고는 쪼잔 하긴 하지만, 일단 청소할 때는 굉장한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저놈이 천사라는 얘기가 사실이면 내가 저 녀석이랑 계약을 했다는 것도 사실일 거고, 내가 저놈 시종이 되었다는 것도 사실일 터인데, 하필 왜 시종이지?

“성공이네, 음. 너 이제 믿을 거지? 자 어서 라면 끓여와.”

다짜고짜 라면이라니 무슨 소리야. 아니 아까부터 라면타령을 하긴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알아차리지를 못한 것 같다.

“그래 당신이 천사라는 건 믿을게. 그런데 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녀석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건 말이야. 일단 네가 내 시종이니까 얘기해두는 건데 말이지. 사실 나는 한국의 라면을 먹으러 왔어.”

“뭐?”

“그 왜 천국에는 라면이 없거든. 라기보다는 안 먹어도 안 죽으니까 식문화가 발달을 못했지. 게다가 온통 열매 없는 나무랑 풀들밖에 없어서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거든.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예전부터 라면이라는 걸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단 말이지. 천국에서 수행의 일환으로 인간계 관찰만 하다가 이집 저집 라면 끓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도 답답해서 그냥 내려와 버렸어. 그리고 제일 라면이 맛있는 집이 어딜까 찾다가 여기 오게 된 거지. 음 그러니까 너는 천사한테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느낌. 아니 그것보다는 네 라면이 천사한테 선택받은 라면이다 이 말씀이야. 귀중한 말씀 고맙게 들어라.”

아니 안중요해. 뒤로 갈수록 알 수 없는 얘기가 되고 있잖아. 게다가 맨 뒤의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아. 나보다 내 라면이 더 상위클래스냐.

“음 어쨌든. 내가 인간계에 내려온 이유는 라면이 먹고 싶어서야. 그러니까 어서 라면을 끓이란 말이야. 이 종놈아.”

아, 신경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죽이자. 천사건 뭐건 다 때려죽여 버리자.

“우왓! 야 뭐하는 거야. 그만둬. 야 나 천사다. 천사라고. 벌 받을래? 천사의 권능이면 네놈쯤 간단하게 죽일 수도 있어!”

그러면 내가 죽기 전까지 실컷 두들겨 패주마. 이야 죽어라. 죽어버려!

“그만 때려 좀. 아파. 천사도 인간계로 내려올 때는 실체화해서 내려오기 때문에 아픈 것도 느낀단 말이야. 멍도 들어, 팔, 다리도 부러지고 붓기도 한다구! 야, 듣고 있어?”

그냥 무시하고는 사정없이 두들긴다. 천사가 라면이 먹고 싶다고 남의 주택에 불법 침입을 해서는 느닷없이 알몸으로 남의 첫 키스를 뺐어가고는 라면 끓여오라고 시켜? 그게 천사냐 그냥 미친놈이지. 아 짜증나.

“저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응? 사실 나 아직 천사의 권능은 하루에 두 번밖에 못 쓴단 말이야. 저기요, 살려주세요.”

“잘됐네. 그럼 일단 맞자.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내일 천사의 권능으로 치료하면 되겠네. 그 다음 그 권능이란 걸로 나한테 복수하면 될 거 아니야!”

녀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러게 누가 남의 속을 긁으래? 내가 아무리 여자 복이 없지만 적어도 첫 키스는 여자하고 하고 싶었다고!

“적어도……. 적어도 첫 키스는 여자랑 하고 싶었단 말이다!”

나름대로 흥분해서 되는대로 소리를 질렀는데, 마침 그놈이 듣더니 피식 웃었다. 아마 그 뒤에 마지막 남았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내 무수한 주먹이 그 녀석에게로 날아갔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 시점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석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 녀석 위에 올라탄 채로 주먹을 높게 치켜들고 있었는데, 그녀석의 불어터진 얼굴을 보니 미안해서 그만 두기로 했고, 그 다음은 지금 이 상황이다.

“오, 먼저 스프를 넣고 끓이는 거냐?”

라면을 끓이고 있다. 얘기해보니 라면만 끓여주면 돌아간다고 하기에. 실컷 두들겨 패기도 했고 미안해서 그냥 끓여주고 있다.

“오, 나는 계란을 하나 풀어주면 좋겠는데.”

“귀찮게 하지 마. 정신 사나워져.”

“오옷! 그거 장인정신이라고 하는 그거냐!”

절대적인 문제점, 귀찮다, 시끄럽다. 라면하나 끓이는 데 이 호들갑은 무어란 말이냐. 어쨌든 원하는 대로 계란 하나 풀어주고…….

“야! 그걸 풀면 우째! 나는 위에 올려놓는 게 더 좋단 말이야!”

“그럼 니가 끓여 드세요. 이거 그냥 버릴까?”

“아뇨. 그냥 먹겠습니다.”

완성. 녀석은 기쁜 듯이 냄비를 받아간다. 그리고는 금방 다 먹어버린다. 라면을 저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군.

“맛있어. 역시 맛있어.”

연신 맛있다며 먹어대다니. 그렇게 좋은가? 뭐 이걸로 저 녀석도 돌아가겠고 모든 것이 전부 원상복귀 되겠지. 아니, 내 첫 키스만 빼고.

“아, 열받아.”

녀석이 나를 쳐다본다.

“아직도 계약한 것 때문에 삐져있는 거냐? 남자가 쪼잔 하게 그런 일 가지고 삐지고 그러는 거 아냐.”

“또 맞을래?”

침묵. 아무리 생각해도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다. 어서 먹고 돌아가라. 아무래도 계속 보고 있으면 또 돌아버릴 것 같아.

“다 먹었다. 야, 잘 먹었어. 그럼 나는 간다?”

아 드디어 가는 거냐. 잘 가라. 다신 오지 마라.

“라면 잘 먹었다.”

또 빛. 이동하는 건 하루 두 번 제약에 걸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느새 그 녀석은 사라져버렸다. 거참 오늘 하루 휘황찬란한 하루가 되 버렸구나. 라면을 조르는 천사라니. 기가 차다. 게다가 첫 키스. 아, 짜증나. 그런데 그녀석이 계약 조건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계약을 하면 계약한 인간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어이. 깜빡했다. 나 너 죽을 때까지는 천국으로 못 돌아가.”

나신의 번쩍거리는 천사님께서는 순식간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 그 수려한 용모를 자랑하고 계셨다. 하나님 맙소사 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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