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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이다. 나는 너희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고 있던, 뭐라 그러냐 그걸……. 그래, 천사. 천사다 이놈아. 너희들은 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모시고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 천사는 신보다 조금 덜 절대적인 거잖아. 그러니까 라면 내놔.”

도대체 이놈은 뭘까. 변태라는 말에 약간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이 씰룩거리고 있지만, 여전히 천사니, 신이니, 라면이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보아하니 도둑놈 치고는 너무 눈에 띈다. 번쩍번쩍 빛이 나다니, 이건 무슨 영화촬영용 특수효과인 건가? 아니면 이건 지금 일반인 대상 몰래카메라? 그냥 노출광인 변태라고 하는 게 제일 낫겠다.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어이, 전화라도 할 생각이냐? 어디로?”

“경찰.”

음. 그녀석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난다. 역시 뭔가 캥기는 짓을……. 아니 지금도 하고 있으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한가.

“이봐, 그건 관두라고. 아마 경찰 쪽에도 천사가 몇 명인가 감시 역으로 섞여있을 거란 말이야. 그보다 경찰을 부르면 너도 곤란하잖아.”

누가 곤란해. 여기는 내 집이고, 침입자는 네놈인데. 버튼을 누르자. 어서 경찰을 불러서 내쫒아 버리자.

“겨……. 경찰을 부르면 나는 서슴없이 널 덮치겠다.”

“뭐?”

“너……. 네놈을 덮치고 경찰이 오면 조크에요 조크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워낙 장난을 좋아해서. 죄송하지만 돌아 가주시겠어요. 조금 바빠서. 라고 네……네놈의 알몸뚱이 위……위에 올라탄 채로 마, 마 마……말해주마.”

그건 또 어디서 나오는 설정이야. 사람 살려. 진짜 변태가 나타났어요. 노출증도 모자라서 남색가였어. 오, 나는 이제 저 변태의 손아귀에 놀아나다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겁니까. 나는 살며시 들고 있던 수화기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경찰에 연락하면 나를 덮치겠다고? 당신 정말 변태야? 그리고 도대체 우리 집에 찾아온 이유가 뭐야.”

역시 변태라는 말에 반응한다. 얼굴이 씰룩씰룩, 얼굴에 붙은 라면 면발들도 함께 씰룩씰룩. 지금 자기 꼴이 어떤지 알긴 하는 건가.

“너, 너 아까부터 자꾸 변태라고 하는데 말이지…….”

음. 자기 입으로 내뱉는 변태라는 단어에도 반응하는군.

“처, 천사한테 그런 망발을 지껄이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니까 그 천사라는 게 뭔데, 컨셉이냐?

“그러니까 그 천사라는 게 뭔데, 컨셉이냐?”

“컨셉이라니. 이 몸은 대천사 미카엘의 신검 수호 기사단을 목표로 하고 있는 천사 김 오다!”

천사가 왜 이름이 그래! 김 오, 외자이름이냐? 까마귀? 금 까마귀? 그런 거야? 앙?

“참고로 금 김에 까마귀 오다.”

세상에.

“무슨 천사가 이름이 그따위야!”

“낸들 아냐!”

아, 별로 마음에 드는 이름이 아니었던 겁니까.

“요즘은 천사들도 담당구역에 따라서 이름을 따로 짓고 있다고. 나는 여기 한반도를 담당하는 지역장인 환인님의 비서인 최 호님의 다섯 번째 수련생이기 때문에 여기 언어로 짓는 수밖에 없었다고. 게다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야. 나라고 이게 좋은 줄 알아? 좀 멋들어지게 꼬부랑글씨로 휘갈길 수 있는 이름이면 좀 좋아? 그래도 환인님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라 버리지도 못한단 말이야…….”

울고 있어. 아니 진심으로 미안하긴 한데, 이름가지고 놀리는 건 별로 좋은 게 아니거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뻥이 좀 심하잖아.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과대망상증에 걸리기라도 한 거야? 아니 뭐 하는 거야. 남의 집 바닥에 자기 이름 같은 거 쓰지 말라고, 게다가 한자잖아.

“그만! 남의 집에 낙서하는 그 경우는 뭐야!”

흐느껴 우는 그녀석의 몸이 들썩일 때마다 땅을 향해 치렁치렁 뻗은 머리카락 뒤로 면발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어이, 이봐 이름가지고 놀린 건 미안한데, 그만 나가줬으면 하거든?"

“……못나간다.”

미치겠네. 어이 아저씨. 옷은 홀딱 벗고 라면을 얼굴에 붙인 채로 울고 있는 날개달린 남자를 집안에 가만히 둘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거든 나는?

“나가. 나가라면 나가지 못나가긴 뭘 못나가! 불법 침입이라고. 범죄라고!”

“못나가. 천사는 자기 이름을 인간에게 밝히면 그 인간과 바로 계약 직행이라서. 그 인간이 죽을 때까지 옆에 붙어 있어야 해…….”

그건 무슨 소리십니까.

“아,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아니 그보다 일어나지 마라 보면 안 될 곳이 보인다. 어이 일어나지 마!

“환인님 최 호님 죄송합니다. 이 불초소생은 당분간 여기 붙어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이, 뭐하는 거야.”

다가오지 마. 뭐야, 경찰에 신고도 안했는데 덮칠 생각이냐? 울면서 다가오지 마란 말이야. 이상한 말도 하지 마. 기분 나빠.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이 집구석에서는 도망갈 곳도 없다. 이미 벽에 등이 붙어버렸다. 몸에서 번쩍이는 빛이 한층 더 밝아져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어이 내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이유가 뭐야. 손목은 왜 잡는 건데.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경우는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건가 보다. 우와아악. 얼굴 치워. 필사적인 도리질 그거다. 어지러워 미치겠네.

“가만히 있으라니까.”

뭔 일입니까. 내 몸은 왜 멈췄습니까. 움직일 수가 없잖아. 얼굴 치워! 제발 살려줘!

“그……. 헙!”

아 라면 냄새는 기분 좋아……가 아니라. 입술이 닿았잖아! 내 첫 키스는 남자랑? 변태한테 빼앗긴 건가. 오, 부디 첫 키스는 평범하게 여자랑 하기를 빌었는데, 이걸로 내 인생도 쫑인가. 어이 눈은 왜 감는 건데? 미치겠네.

“푸하~!”

개운하다는 그 표정은 뭐야. 나는 드럽거든? 기분 정말 최악이거든? 이 빛은 뭐냐. 눈부셔. 아, 금방 사라지는 군.

“자 이걸로 계약 완료입니다. 자 이제부터 너는 내 시종이야. 자 어서 내 라면을 끓여라.”

몸이 움직인다.

“이게 무슨 짓이냐.”

최대한 쏘아보자. 지금 내 기분을 전부 눈으로 응축시켜 쏘아보면 호랑이라도 기겁을 할 거다.

“무슨 짓이긴, 계약 한 거야. 내가 인간계에서는 너한테 최초로 내 이름을 밝혔으니까. 그에 따른 천사와 인간의 맹약이지. 규칙이니까. 그리고 방법이 입을 맞추는 것 밖에 없어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한 거다. 나도 남자 녀석하고 입 맞추는 것 따위 별로 좋은 건 아니다만, 일단은 내 실수기도 하고. 일단 계약을 맺으면 무를 수는 없고, 이제부터 너는 내 시중을 드는 거지. 그러다가 내가 기분이 내키면 너한테 내 천사의 권능을 빌려주는 거…….”

퍼억.

“그런, 인간한테 불리한 계약 조건 따위 인정 못한다!”

금 까마귀 녀석이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야 그렇겠지. 당황스럽겠지. 나도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거든.





계속



아, 정신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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