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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4)[8]

2007.01.25 23:43

울프맨 조회 수:189

모든 상황은 영준에게 불리했고,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남은 것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가장 단순한 행위뿐이었다.
그것이 영준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으며, 가장 현명한 행위인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주저하고 있는 영준의 선택을 부추기는 것이 있었다.

[딸랑]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딸랑]

마치 메아리치듯 사방에서 울리는 알 수 없는 소리.
영준은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소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허사였다.
들리는 성향으로 보아 소리의 정체는 방울소리와 같은 것이었지만, 주위에 방울 비슷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흔들만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었다.
병원의 모든 사람들은 일찌감치 증발하지 않았던가!
만약 누군가 남아있다 쳐도 병원에서 방울 따위를 흔들 일은 없었다.
설혹 흔들 일이 있다 해도 방울 같은 작은 소리가 들리게 하려면 누군가가 근처에 있어야 했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곤 시체와 영준 뿐.

‘설마.....’

영준은 의심의 눈초리로 잠시 시체를 훑어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소리는 마치 환청처럼 귀를 막아도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뭐야....’

결국 영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은 손을 풀었다.
지금은 당장 앞에 직면한 위기에 대처해야할 상황, 환청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소리 때문에 주의를 빼앗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귀에서 손을 치우는 동시에, 그 동작이 1초만 늦었어도 듣지 못했을 ‘진짜’소리가 영준의 귓전을 울렸다.
덜그럭, 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
영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목적은 이것이었나....’

영준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엔 영준대신 섬뜩한 빛을 발하는 금속성의 물체가 몸을 깊이 묻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준이 사용했던 부러진 링거걸이였다.
상대는 환청 같은 방울소리로 영준의 주의를 팔게 한 다음 시체를 움직여 영준을 처치하려 한 것이었다.
만약 알아차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거나 시체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면 운동신경이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영준은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시체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었다.

‘괴력은 무시무시하지만, 상대는 나보다 느리다....’

아까 영준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시체가 움직일지, 괴력에 비해 속도는 어떤지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공격을 피하느라 시체와의 거리도 충분히 떨어졌고, 상대는 분명히 영준보다 느렸다.
게다가 갑자기 뒤를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사라진 지금, 영준이 도망치는데 주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대는 사지만 멀쩡할 뿐, 속도에 있어선 우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좋아! 나잡아 봐~~~~라!!!”

영준은 기세등등하게 외치고 복도를 지나 로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거의 걷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대가 많이 느리지만 적어도 뛰고 있는 영준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이대로 달려서 계단 문을 잠그는 거야!’

영준은 기본 전략을 고수하기로 했다.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그 변수는 영준의 계획에 차질을 줄 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저런 상대를 상대로 버틴다면 충분한 시간을 끌 수 있을 테니까......
또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찾기엔 너무 늦었기 때문에 영준은 그대로 로비를 가로질러 비상계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막 문을 잠그려는 순간.
정신없이 로비를 달릴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정문의 변화를 영준은 비로소 보고야 말았다.
코너에 가려져 직접 보이지는 않았지만, 로비 바닥에 길게 늘어진 무수한 그림자로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입구 유리문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수가 수십을 넘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가득 하다는 것을.
영준은 그제야 다인이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시체. 요 며칠 새 병원마다 시체가 없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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