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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4)[7]

2007.01.25 23:42

울프맨 조회 수:166

-병(兵) 동(動) [3]

애당초, 모든 일이 생각대로 술술 풀릴 것이라고 예측한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지략가도 아니었고, 범인의 경지를 넘어서는 비상한 통찰력과 냉철한 감각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영준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아주 약간 생각이 깊고 특이할 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아이가 머리를 짜내어 세운 계획이라 봐야, 경험 많은 어른의 입장에서 볼 때, 코웃음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법.
그것도 상대가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특별한 경우라면, 그런 계획은 얼마나 가소롭게 여겨질 것인가?
영준은 지금. 그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었다.
응급실 문을 박차고 눈앞에 서있는 상대가 바로 그 증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거야.....’

영준은 머릿속을 자극하는 강렬한 소독약 내음을 느끼며,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새삼 되새기고 있었다.
우선, 전장의 선택부터가 실수였다.
상대가 보통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고, 때문에 일부러 사람이 많은 병원을 택한 것이었는데, 눈앞의 상대는 영준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결정적인 문제를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상대의 모습.....
생기 없이 까뒤집힌 허연 흰자.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못하는 입.
오르내리지 않는 가슴.
떡진채 몸 곳곳에 말라붙어 있는 피딱지..... 그리고.
소독약품 냄새.
그는 시체였다.
그리고 상대는 아마도 저 시체를 조종하는 것이 분명했다.
죽었다 다시 움직인 우진을 보았을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공포와 초현상으로 인한 동요가 영준의 머리를 둔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병원엔 사람이 많은 만큼 시체도 많은 법............’
뒤늦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영준은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가장 적합한 대피 처로 여겼던 병원은 사실 영준에게 알맞게 짜인 관과 같았던 것이었다.

‘이제……. 어떡한다……?’

상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일단 병원까지만 들어가라’ 라는 명령을 수행하고 대기하는 것처럼 그저 멍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영준 역시 문을 막다 엉덩방아를 찧은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눈앞의 시체가 괴기영화의 그것들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면 주저없이 도망치겠지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상대를 두고 영준은 섵불리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뒤로 도는 순간 당할지도 모른다....’

영준은 바로 직전, 상대의 가공할 만한 괴력을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분명 문을 막고 있던 영준은 어리고 또래에 비해 힘도 약했지만, 쉽게 열릴 정도로 호락호락하게 대처한 것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문을 미는 한편, 순간의 기지로 문손잡이에 링거걸이를 끼워 빗장으로 삼았으니, 이는 웬만큼 건장한 어른이라도 쉽사리 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분명 한쪽 손을 사용하지 못할 건너편의 상대는 그저 두어번, 문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금속제 링거걸이를 나무젓가락처럼 꺾어버린 것이었다.
영준은 이런 무시무시한 상대를 눈앞에 두고 함부로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괴물이, 결코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진의 경우처럼 저 시체가 직접조종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영준의 과감한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만약, 녀석이 아닌 척 하면서 영준이 어떻게 나오는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면, 그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영준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

어느 샌가 마음의 한구석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은 공포와 우려를 떨쳐버리려는 발악이었다.

‘단순하게! 이럴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해!!!’

영준은 언제 움직일지 모를 눈앞의 괴물을 노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계획이 틀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만큼 영준 자신은 영리하지도, 대담하지도 못했다.
영준은 서서히 몸을 추스르며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모든 상황은 영준에게 불리했고,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남은 것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가장 단순한 행위뿐이었다.
그것이 영준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으며, 가장 현명한 행위인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주저하고 있는 영준의 선택을 부추기는 것이 있었다.

[딸랑]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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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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