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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ntares[0.5막] -Follow me 19-

2007.01.16 20:23

히이로 조회 수:138

너무나 또렷한 목소리였다. 필립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의 호령소리. 그것은 자신의 상관이면서 양아버지, 나인발트 나이츠를 통솔하는 기사단장 외에는 낼 수 없는 음성이었다. 사리크경이 이끄는 나인발트 나이츠 본대가 드디어 필립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어서 상황을 파악해!”

더 이상 헬무트의 목소리에 장난기나 여유로움은 묻어있지 않았다.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 그 어떤 방비도 안한 채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던 병사들은 낙엽처럼 기사들의 검에 쓰러져가고 있었다. 헬무트가 재빨리 상황을 진정시켜 보려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그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망할! 놈들을 막아라! 아니, 모두 내 주위로 모여서 방어 대열을 취해!”

정말 심하게 당황했는지 명령마저도 횡설수설하는 헬무트. 그 엄청난 수의 상퀼로트가, 정말 하찮은 실수로 궤멸직전까지 몰리고 있다. 그리고 헬무트가 기사단의 출현에 당황한 사이, 이미 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 필립은 핏빛으로 변한 두 눈을 매섭게 치켜뜬 채 천천히,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금이면 구할 수 있어. 네르바를 구해야해.’

비명이 뒤섞인 협곡 내부에서, 필립의 발소리는 소리 없이 묻혀버렸다. 오로지 헬무트만을 노려본 채,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서서히 그에게 접근하는 필립. 마침내, 그가 생각한 만큼 거리가 좁혀지자, 그는 주저 없이 온 몸을 던져 헬무트에게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이게 마지막이다!”

“놈들을 막아라! 적의 수는 별 것 아닐……헛!”

헬무트가 필립의 고함소리를 눈치 챘을 때, 이미 필립은 그의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배틀엑스를 치켜들고 몸을 막으려는 헬무트. 그러나 종이 한 장 차이의 시간과 공간의 틈을 노린 필립의 검 마르니에는 전진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퓨숙!

날카로운 쇠붙이가 주저 없이 상퀼로트 총사령관, 헬무트의 목을 꿰뚫는다. 둑이 터지듯 사방으로 솟구치는 그의 끈적끈적한 혈액. 얼굴에는 필립의 존재를 알아챈 직후의 당혹감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필립이 거칠게 검을 목에서 뽑음과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네르바가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헬무트의 몸이 중심을 잃고는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우……억울한가? 그래 억울하겠지……. 아마 내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쿨럭, 지금 네가 달고 있는 계급장을 얻게 되었을 때의 방법으로 본인이 당하니 기분이 어떤가? 헬무트……. 어찌되었든, 완벽한 복수인건가…….”

별다른 감흥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만 들 뿐. 무미건조한 시선도 헬무트의 시체를 응시할 뿐이다. 그리고 힘겹게 마르니에를 검 집에 집어넣고, 네르바를 업으면서 헬무트의 시신을 향해 중얼거리는 필립이었다.
그녀를 업은 채 뒤로 돌아선 그의 눈에는 먼발치서 기세 좋게 돌격을 시도하는 헤이딕을 비롯한 남은 기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모습을 본 필립의 입가에는 살며시 작은 미소가 맺힌다. 적어도 지금은 혼란에 빠진 발사로크 군을 앞뒤에서 양동작전으로 협공할 수 있었다. 드넓은 평야가 아닌 좁은 협곡이었기에, 상퀼로트는 진형을 제대로 정비하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전투는 제국의 승리였다.

“이 노옴! 감히 네놈이 사령관님을!”

그러나 제국의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필립의 등 뒤에서 노기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반응해 힐끗 뒤를 돌아본 필립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리고 만다.
전투는 승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과 네르바의 생명은 위급한 상황이다. 헬무트의 죽음을 목격한 상퀼로트 한명이 무시무시한 고함을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 제길!”

있는 힘을 다해 네르바를 업고 달리는 필립이었다. 하지만 한쪽 팔이 부러지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얼마 가지도 못해 네르바를 업은 채로 땅바닥을 뒹구는 필립. 더 이상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이대로 적의 검이 자신의 몸을 꿰뚫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것 뿐.
이제 필립은 반사적으로 네르바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천적을 만난 고슴도치 마냥 전신을 최대한 둥글게 웅크린다. 별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네르바라도 무사히 지켜주고 싶었을 뿐.

“어서 필립경을 지켜라!”

이제는 익숙한 헤이딕의 걸걸한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뒤흔든다. 그의 외침을 들은 필립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미 상퀼로트는 검을 내리치고 있는 중인데 그런 고함이 자신과 네르바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헤이딕경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단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자신은 다른 이들처럼 개선하지 못한 채,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지 못하고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점일까.

“죽어랏!”

“우욱!”

상퀼로트의 외침과 더불어 필립의 오른 팔에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다. 겉으로는 고통에 차 신음을 내뱉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안도감이 정신을 감쌌다. 갑옷이 꿰뚫리지 않았다. 통증은 느껴졌지만 자신의 몸도 완전히 꼬치처럼 변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네르바는 무사하다는 뜻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필립은 충분히 만족했다. 온 힘을 다해 꽉 끌어안은 그녀의 몸에서 미약하지만 귀족 영애 특유의 감미로운 향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강렬한 환각제처럼 필립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고, 서서히 그의 의식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립은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Antares [0.5막] Follow m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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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요.

오랜만이에요

왜 짧냐구요?

긴 이야기는 자게에 쓸게요.

나 0.75막을 쓰고 싶어졌어요 [타앙!]

여기서 짜르고

계속 이어나갈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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