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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로 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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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구름에 휘날리고 달은 그 틈을 타서 지상을 바라본다. 이곳 상록마을은 이름그대로 다른 지역과 달리 1년내내 나무들이 잎을 피우며 초록색으로 물들어가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느 때와 달리 녹색잎보다는 사람들의 피와 비명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리아!"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레놀드가 방아쇠를 당기며 늑대인간 녀석을 하나 기어코 쓰러뜨렸다. 이미 몸에는 수많은 총구멍이 새겨져있었는데도 녀석은 레놀드한테 정통으로 머리가 깨지기전까지 살인을 계속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울만한 생명력.

"리아! 괜찮아?!"

"오빠.."

벽구석에서 몸을 움츠리고있던 소녀가 안심을 한건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레놀드는 그녀를 부축하며 애써 진정시키려 하였다.

"괜찮아. 괜찮을꺼야. 다 괜찮을꺼야."

하지만 이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 사실상 마을은 놈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했다. 총을 쏘며 저항하던 남자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갈갈이 몸이 뜯겨졌으며, 집안에서 숨어있던 사람들도 모두들 조금씩 죽어나간다.

그리고 이번에 발견당한 것은 리아와 레놀드. 운좋게 상처입은 놈이 들어와서 어떻게 해결은 봤으나, 총을 쏴버린 이상 곧 있으면 다른 녀석들이 몰려올것이다. 이제 이곳은 안전하지가 않다. 다른 곳으로 달아나야만 한다. 하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가 안전하단 말인가. 나레카가 놈들을 물리친지 하루도 지나지않았는데 이모양이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다시 이모양이다.

왜? 도대체 왜 그녀는 그들을 버린것일까? 애초에 그녀가 자신들을 돌봐줄 이유가 없다는걸 알고있다해도 레놀드는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원망스럽다. 검사가 원망스럽고 자신이 원망스럽다. 동생하나 지키지못하고 그 책임을 강한자에게 떠넘기는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오빠."

탄환을 몇개 챙기며 나갈채비를 하던 레놀드에게 리아가 입을 열었다.

"나레카언니는....돌아오겠지?"

"...응. 아마 뭔가 사정이 계신걸꺼야."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금은 믿는 길 밖에 달리 할 수 있는건 없을 것이다. 과연 자신이 리아를 데리고 놈들로부터 이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조금씩 들리는 놈들의 발소리를 뒤로한채 레놀드는 리아의 손을 잡고서 밖으로 나왔다.


        *        *        *


"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기합과 함께 거대한 검을 휘둘리자 인랑 하나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그전까지는 죄다 인랑의 형태였는데 이제는 개가 온몸에 뿔을 수십개 가지고 있는것이며 사람이 좀비마냥 걸어다니면서 기다란 채찍같은 촉수로 공격을 하는 것이 놈들이 본격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마을까지는 거리는 약 7,8백미터. 그런데 벌써 이정도 수의 녀석들과 조우하다니. 낮의 상처로인해 몸의 느려질대로 느려진 나레카에게 있어선 이걸로 자신마저 위험에 처한 상황.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욕설을 속으로 퍼부었다.

'왜지? 아까전과 달리 왜 또 이렇게 몸이 무거운거냐고. 상처가 이렇게나 깊었었나!'

사방에서 날아드는 녀석들의 공격을 칼로 쳐낼때마다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갈라지기 시작했다. 똑같다. 1년반전 그녀의 마을이 습격당할 때와 똑같다. 지금도 나약해서 어쩔줄 모르는 그녀는 누군가를 구하기는 커녕 자신의 목숨마저 놓쳐버리려 하고 있었다.

결국, 이 여행은 어떠한 해답도 가져다 줄 수 없었던 것인가. 아니, 상황을 보건데 이번엔 죽음이란 해답을 줌으로써 조금은 달라질것 같다. 그때도 이토록이나 위험했는데 어째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 그랬지. 그때는 그 남자가 있었지. 확실히 뭔가가 다르긴 달랐다.

힘을 잃은 손이 결국 검을 땅바닥에다 꽂은채 몸을 기대서게 만들었다. 이제는 홀로 서있을 수도 없다. 죽을때는 놈들의 시체를 땅에다 메운채 아침해를 볼려고했는데 아무래도 좀 꿈이 컸던것인가? 가만히 서서 숨을 헐떡거리고있는 나레카를 향해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덮었다.

"하, 하하하. 또 너냐? 엄마나 아빠복수라도 하려 왔나보지?"

형태는 곰의 형태이나 덩치는 약 3m에 팔은 뒤에 두개가 더달려있는 무시무시한 맹수가 성큼성큼 나레카의 앞으로 걸어왔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 여기저기서 돋아난 뱀들이 허공을 아지랑이처럼 돌며 날카로운 이빨을 그녀에게 들이내밀고 있는게 아무래도 최후의 장식은 이녀석의 손으로 결정날 것 같아보였다.

아아 젠장. 하필이면 저따위 녀석한테 죽다니. 인랑이 백배는 미남이겠다라고 정말 느끼며 나레카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녀석의 거대한 손이 모두 동시에 우뢰같이 내리쳐진다. 허나 다리는 커녕 손가락 하나에도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아아 인생 바이바이~. 나레카는 실소했다.

-진짜 구제불능이구나.

순간 몸에서 힘이 갑자기 느껴졌다. 검을 땅에서 뽑음과 동시 거의 한스텝으로 놈의 몸을 세방향으로 절단. 가볍다. 몸이 너무도 가벼웠다. 통증같은 건 느껴지지 않고 정신은 오히려 한층 맑아진 상태에서 나레카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건 도대체.."

보스가 쓰러지자 남은 녀석들이 동요를 느끼며 모두 동시에 땅을 차고 달려들었다. 탈출구를 고른다면 오로지 공중. 하지만 나레카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몸을 빙빙 돌며 검을 360도 회전시켰다.

무기대신 사용하는 뿔이며 발톱이며 모든 것이 작살이 나며 놈들의 몸을 동강냈다. 하단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일부러 살짝 한스텝 늦게 뛰어보기도하지만 그 엄청난 회전속에서도 시시각각 놈들에 맞춰 궤도가 변하는 나레카의 검 앞에서는 무용지물. 단 몇십초만에 수십마리가 모두 아작이 났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때와 마찬가지다. 그 목소리는 도대체 누가 어디서 왜 부르는 것인가. 굵으면서도 매우 가늘고 날카로운 그 목소리는 그녀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 아저씨?"

-무슨 얼어죽을 아저씨야.

맞다. 그 남자다. 과거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남자. 1년전에도 환각인지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녀를 구해주었던 그 남자. 하얀 머리에 긴 챙이 달린 청색 모자와 청색 롱코트를 입으며 언제나 하늘만을 바라보던 남자. 그의 목소리였다. 나레카는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저씨구나!"

-아니라고 했잖아.

"에?"

깜짝놀라며 나레카는 눈을 크게뜨며 놀랐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말이 귀담아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상한건 지금 이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그럼 도대체 이 목소리는 어떻게..

-여기다 여기. 니놈 왼쪽 손목말이다.

정신적으로 들려오는 걸로 추정되는 목소리에 따라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코트가 걷히며 드러난 손목에는 빨간 보석이 달린 금팔찌가 하나 달려있었는데 여느 때와 달리 보석은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에에? 서, 설마.."

-그래. 이게 나다.

"파, 팔찌가 말을 한다고?!"

-늑대인간도 걸어다니는데 팔찌가 말하면 어디가 잘못됐나?

이건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일단 하나 알 수 있는건 이 팔찌는 정신적으로 상대에게 직접 목소리를 전할 수 있지만 이쪽은 입아프게 말해야한다는 것.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왜 이제와서 대화를 시도하냐는거다.

이거 혹시 이중인격이란건가? 너무 지칠대로 지친나머지 정신이 분열해버려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닐까하며 두려워하는 소녀, 심정을 대강 눈치챘는지 팔찌가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몇가지 알려주자면 너와의 대화는 이번이 딱 세번째다. 내 목소리가 네가 아는 누군가로 들리는 이유는 너로인한 것이고.

"나 때문이라고?"

나레카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래. 에스카리브는 사용자와 직접적이게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목소리는 사용자의 의식이 결정한다. 아마도 가장 듣고싶은 목소리거나 아님 가장 인상깊은 목소리로 결정된거겠지. 자세한건 나도 잘 모른다.

에스카리브. 그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넘겨준 이 팔찌의 이름. 사용용도는 그때 써보긴했으나 그날 뒤로 두번다시 작동을 안하길래 그동안 망가진줄로 알고있었다. 허나 설마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니.

하지만 왜 자기를 이제와서 도와주는걸까. 위급한 순간에만 도와준다면 어째서 1년전에는 도와주지 않은 것인가. 이녀석이 말한대로 세번쨰라면 오늘 낮과 아까 그 남자를 만날때와 그리고 지금이다. 왜 이제와서야..

-뭔가 궁금한것 같지만 이쪽도 시간이 없는 관계로 멋대로 말하도록하지.

하긴 확실히 이쪽도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니까. 하지만 이것도 그것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중요해?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이딴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그녀가 그토록 염원하던 것 중 하나로, 말하자면 그녀가 목숨을 던져가며 갈망했던 꿈과 비슷한거니까.

-에스카리브는 사용자와 의사소통을 할 뿐만아니라 강대한 힘마저 지원해줄 수 있다. 그 대신 사용자에게 놈들과 영원히 싸워줄 것을 요구하지. 일종의 계약이라고 보면된다.

"그, 그런 무서운 조건이 있었단 말이야?!"

-아아 그렇다. 싫으면 해약하면 되니까 그렇게 걱정하진 마.

"해약? 그건 어떻게 하는거지?"

-나는 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러니 그냥 듣기만 해줬으면 한다.

"....응."

아무래도 지금 해약에 관해선 알려주고 싶지 않은것 같아보였다. 확실히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지 않은게 이상하겠지. 계약이라. 그러고보면 그 남자도 신중할 것을 당부했던것 같았다.

그럼 지금까지 자신이 놈들과 싸워온 이유는 이녀석의 바람이라는건가? 아니, 그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의지. 나레카는 갖가지 의문속에서도 자신또한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머리를 비우고 에스카리브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지금 네 몸이 평상시와 완전히 다른 것이 증거중 하나다. 신체에 우리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서 세포자체를 강화시키지. 어떻게보면 변신과 같은거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한가지. 그것은 강함. 인간으로써의 강함이 아닌 인간이 아닌 너같은 존재의 강함. 그것이 열쇠다.

강함. 그 단어가 나레카의 가슴 한 구석을 내리찔렀다.

-짐작은 했겠지만 지금 이렇게 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네가 강해서가 아니라 네 주변 녀석들이 강해서다. 좀전에 만났던 녀석이나 지금 주변에 있었던 녀석들 때문이지. 그리고 놈들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있다.

"?!"

-너도 본적은 있을거다. 아마도 정확히 1년반전 너는 분명히 그것을 보았겠지. 내 원래의 주인과 함께.

1년반전의 일이라면 나레카에게는 자기마을이 멸망한 일밖에 떠올릴 수가 없다. 원래 주인이라면 들으나마나 팔찌를 넘겨준 그 남자. 그리고 그와 함께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면 하나. 갖가지 녀석들이 한데 뭉쳐서는 모든걸 휩쓸어버렸던 죽음의 파도. 그런 것이 또 온단 말인가?!

-물론 그날보다는 터무니 없이 약한거지만 그래도 지금의 너한테는 무리다. 내가 도와준다해도 무리야. 거기다 이미 너무 늦었다. 그들은 포기하고 도망쳐라. 도망치고..도..망..쳐라..

갑자기 목소리가 수그러드는걸 보고 나레카는 깜짝 놀랐다. 안된다. 아직 끝나면 안된다. 확실히 쓸만한 정보가 몇개있기는 했지만 이런 것 때문에 기다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또다시 그런 놈들을 만나야 대화할 수 있다면 도대체 그것은 언제이며 그때 자신은 살아있을 수나 있겠는가.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잠깐 기다려! 아저씨는? 아저씨는 어떻게 됐지? 아저씨는 도대체 누구야! 나한테서 무얼 바라고 있었던거지? 놈들의 정체와 목적은 뭐야! 대답해!!"

보석의 불빛이 사라지자 대화가 불가능하다는걸 알면서도 나레카는 욕설을 퍼부으며 근처에있던 나무를 주먹으로 쳤다. 화가 났다. 자신의 나약함에 너무도 화가 났다. 이때까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 자신이 약해서였고 지금도 너무나 약하기에 대화는 커녕 도망을 쳐야한다. 그들을 버려야만 한다. 그것이 최종결론.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면 모를까 이런 세계에서 약한건 곧 죄다. 아니, 꼭 이런 세계가 아니더라도 약한건 언제나 죄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강함을 동경하고 좋아했다. 그것은 순수한 동기. 그렇기에 그 남자에게서 힘을 받은 뒤로도 한번도 오만하게 남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보니 여전히 자신은 약하기만 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아직도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 광기가 부족하다. 그들을 저버릴만큼 강하지도 않고 그들을 구할만큼 강하지도 않다. 너무도 어정쩡한 상태. 소녀가 다시 한번 나무를 치자 그것의 중심부가 박살이 났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해!'

부어터진 얼굴로 나레카는 울분을 삼키며 속으로 소리쳤다. 밤바람이 차다. 역시 추위는 인간에게 좋지않다. 순간 눈물이 흐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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