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단편][심한의 고독]
2006.12.11 15:10
아하하하핫...전보다는 살짝 짧아요.
마지막전사완결내야하는데..THE LONESOME GUARDIAN도 써야하고.. 근데 이걸 쓰다니..(중얼중얼) 뭐 이것도 The lonesome guardian하고 이어져요~
..근데 누가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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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하아."
만약에 진실로 악임을 인정하고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인간이 있다면 과연 그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가. 현재까지의 가장 바람직한 결론은 미친놈이거나 신의 사도다. 대체로 전세계를 뒤흔들 가치관을 가지고있거나 기적을 행하지 않는 한 전자의 쪽이 거의 100%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미친놈. 지금 여기에 그 광기로 정신이 취해있는 자가 있다. 자신의 키보다 크고 두꺼운 검을 휘두르며 그 작은 키에 맞춘 갈색 롱코트를 입은 채, 괴물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과 싸우고있는 한 소녀가 있다. 스스로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기적이게 살아남으려는 한명의 검사가 여기에 있다.
"후우, 후우우우우."
갈색 빛 머리카락은 목 부분까지 길러져있긴하나 여기저기가 엉망징창으로 관리되어있는게 뭔가 야성의 미를 풍기는게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전투로인해 다듬어졌다는걸 내리 짐작가능케 해주고있었다.
평원 한중간에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만들어진 지저분한 모래길. 그 위에서 소녀는 수십 마리의 정체모를 괴물과 서로의 생명을 빼앗아대고 있었다. 날카로운 손톱을 날로삼고 단단한 피부와 강력한 근육을 또 다른 무기로 삼은 이것들은, 만약에 인간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더라면 틀림없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을거라고 확신을 주는 수준인데도 그 소녀는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걸 멈추지않았다.
머리를 향해 대각선으로 내리쳐지는 공격을 검을 돌려휘두르며 쨍하니 막아낸다. 그리고나서 녀석의 피부를 타고 미끄러져 나가더니 그대로 얼굴을 쳐버리는 소녀의 대검. 그렇게 녹색빛 피를 메마른 모래흙에다 뿌리며 그녀는 다시 검을 쥔 채 다른 녀석을 향해 겨눠들었다.
"헉, 헉, 헉, 헉."
흙먼지로 화장한 얼굴에 이곳저곳 베여진 상처가 피를 떨구며 덧칠을 해준다. 벌써 몇 놈이나 쓰러뜨린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죽여야 비로소 제대로 된 안식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을까.
순간 소녀는 자신을 비웃었다. 눈 한번 깜빡이면 목이 날아갈 상황인데 이따위 생각에 빠져있다니. 물러도 한참 물렀다. 싸워라 그리고 죽여라. 그것만이 오로지 해답이다. 놈들이 너를 죽이려하듯 너도 놈들을 죽여라. 너라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 마지막 정의였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에 가까운 기합을 외치며 어린 검사는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땅을 치고 뛰어올라 공격을 피하는 한편, 그대로 몸을 360도 검과 함께 돌리며 적의 상체를 세로로 두 동강낸다. 그리고서 다리를 접으며 땅바닥에 착지, 연이어 다음 목표를 향해 또다시 돌격.
그렇게 이번엔 웬 녀석이 커다란 바위를 양손으로 힘껏 녀석이 던지는걸 보고서 멈춰서 돌아가기에는 너무도 늦었다고 판단. 소녀는 이빨을 꽉 깨물며 뒤로 돌려잡은 검을 옆으로 날리듯 베었다.
콰앙!
아무리 돌조각이라곤 하나 그것의 일부분을 깨부수며 방향을 비껴내는 생물을 우리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돌덩이를 내리친 충격에 반대로 튕겨져나온 어린 검사는 그대로 땅바닥에 양 발이 닿자마자 또다시 뛰어올라선 대각선으로 적을 촥 베어버렸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답게 피를 토하며 몸을 떨구는 모습에 이미 기대할 수 있는 리얼리티는 제로.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세상. 그것에 정면으로 도전한 채 어린 검사는 다시 숨을 헐떡이며 검을 치켜들었다.
"하아, 하아, 하아."
허나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숨소리만 맴돌뿐, 어느샌가 놈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망갔다고?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도망을 갈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놈들이 인간을 내버려두고 도망갔다는 사실자체가 너무나도 넌센스하니까.
"큭!"
갑자기 풀숲에서 날아온 거대한 무언가에 검이 부닥치며 몸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일단 반사적으로 막아내긴 했으나 자신을 이정도나 강력하게 날려버리는 것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비정상적인 일상에 사는 그녀의 눈앞에 또다시 판타스틱한 상황이 일어난다.
숲 전체가 움직이고있다. 눈앞에서 나풀거리는 풀잎부터 저 멀리 지평선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일부분이 피리로인해 일어난 뱀이라도 되는듯 나풀나풀 공중으로 붕 떠서는 이쪽을 노려보고있었다.
"!"
아지랑이마냥 움직이던 것이 한순간 정지하더니 순간 화살처럼 잽싸게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남색코트를 펄럭이며 뒤로 살짝 도약하여 공격을 피하는 소녀. 콘크리트가 덮여있지는 않으나 맨땅을 스펀지마냥 가볍게 뚫을정도라니. 만약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면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땅바닥에 처박혔던 것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시 흐물흐물거리며 뽑혀져서는 그대로 공중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것이 연결되있는 풀숲쪽에선 3m정도의 거대한 녹색 곰 같은 것이 두팔을 벌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해치웠던 녀석들의 시체가 움직이며 녀석의 몸에 스르르 합체되고있다. 설마 이런 스킬마저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몸에는 뱀같이 스물스물거리는 징그러운 것을 수십 개나 달린 채 커진만큼 위험도는 배로 커졌다. 얼굴보다 더 큰 입을 쩍하니 벌리며 이빨을 드러낸 채, 녀석이 한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긴장하고있던 검사의 표정이 그 모습에 순간 코웃음을 쳤다.
"하, 하하. 하하하하. 뭐야. 힘만 늘었지, 움직임은 배로 둔해졌잖아. 그래, 좋아. 어디 덤벼보라고. 나도 도망가지않아. 네놈들을 모조리 전멸시키기 전까진 아무데도 안가니까!"
그녀의 도발인 말이 일으킨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녀석은 더욱 포효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반면에 말과는 달리 뒤로 조금씩 도망치며 놈에게 대응하는 검사.
확실히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졌긴하나 보통 인간이 봤을 때는 절대 '느리다'라는 말이 나올 수준이 아니었다.
성큼성큼 거대한 몸을 이끌고 가는 것이, 일반 중학생이 50m를 힘껏 달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스피드. 허나 검사는 뒤로 뛰면서도 간격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놈의 채찍 같은 날카로운 공격 또한 완벽하게 검으로 튕겨내고 있었다.
'이것들만 주의하면 되. 확실히, 전보다 강해졌긴해도 분리되었을 때보다는 분명히 느려졌어. 거기다 놈은 혼자다. 그렇다면 이 빌어먹을 채찍이 닿지않을만큼만 거리를 벌리면 되! 그리고나서 1초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투각!
잡생각 때문에 본체에 따라잡힌순간 내리쳐진 거대한 손톱. 어떻게든 피하긴 했지만 어느 샌가 날아든 반대쪽 손이 소녀를 위로 쳐날려버렸다. 데미지를 입은채로 허공에 붕떠버린 소녀. 하지만 그런대도 그녀는 몸을 움직이며 검을 잃은 양손을 허벅지로 향한다.
'1초라도 시간을 번다면, 무기를 바꿀 수 있어!'
커다란 서브머신건을 각기 한정씩 손에든 채 검사는 자신을 날려버린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다다!
벌떼같이 뿌려진 탄환이 그대로 바위며 나무며 그 몬스터를 포함한 모든 것을 꿰뚫어버린다. 채찍같이 이어진 것들도 죄다 찢겨 떨어지고 녀석본체 또한 두 다리를 펴고서 어떻게든 버티는게 고작이었다.
총알이 떨어진 서브머신건의 불이 멈추며 허공에서 떨어지던 소녀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모랫바닥에다 몸을 들이박고 말았다.
"크으윽!"
역시 그만큼 강력한 총을 공중에서 양손으로, 그것도 저렇게나 큼지막한 괴물에게 공격을 받은뒤 쓴건 무모했다. 허나 무모하지 않으면 뭐하리요. 이미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무모한대 베짱마저 없다면 이미 옛날에 죽었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땅을 누르며 몸을 일으킨다. 떨어졌던 검을 찾아쥐고, 이제 남은건 벌집처런 뚫린 놈을 끝장내는 것 뿐. 하지만 그보다 먼저 녀석의 몸에서 몇 개 붙어있던 채찍이 소녀의 얼굴을 향해 내찔러졌다.
"욱!"
볼 부위가 찢겨지며 피가 펑하니 터져나왔다. 역시 전체적으로의 데미지는 저쪽이 더 심하긴하나, 그 커다란 몸집만큼 효율성은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놈과는 달리 회복력이 높지않은 인간인 이상, 양쪽 다 치명상을 입은 이순간밖에 없는 것이다. 소녀는 검을 들고서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아아아아!!"
두세 개밖에 없는 놈의 채찍공격을 피하고 팔을 향해 검을 휘둘러 피를 터뜨린다. 계속해서 이번엔 머리를 공격, 하지만 놈의 팔도 괜히 두개가 아니었다. 반대쪽 손이 소녀의 몸통을 쳐서는 정신마저 흔들리게 해놓고 한번 더 힘껏 가격하여 그녀를 넘어뜨려 날린다.
몇 m뒤에 있던 나무에 몸을 찍으며 멈춰지는 소녀. 다시 검을 들며 제정신을 차리려하는 사이 놈의 창살 같은 채찍이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내찔러졌다..
"아아아악!"
오른손의 어깨와 함께 나무마저 간단히 뚫려버린 그것에 소녀의 몸이 옷걸이 마냥 매달려졌다. 살아있는 뱀처럼 녀석의 창살 같은 신체가 계속해서 뚫고 움직이며 피를 오른쪽 어깨에서 마구마구 터뜨려댄다.
"으아아아아아악!!"
살 내부가 휘어지며 신경과 뼈가 파괴되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정신을 쪼갠다. 손가락은 더 이상 검을 쥐지 못하고 이번에는 다른 창살채찍이 왼쪽허벅지를 뚫고 나무마저 통과하며 오른쪽 어깨처럼 똑같이 매달아버렸다.
비명소리는 두 배로 커졌고 소녀는 죄인인 마냥 박힌 채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그것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고통이 살짝 움츠러졌을 때, 나무전체를 검은 그림자가 덮으며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친 오른손대신 왼손을 높이 치켜들며 내리치려는게, 지금 맞는다면 소녀는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그대로 터져 죽어버리게 된다. 방법은? 빠져나갈 방법은 뭐냐. 이대로,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인가?! 그녀의 두뇌회로가 이것저것 혼란에 동조하던중, 놈의 무쇠주먹이 내리쳐졌다.
타앙!
그리고 한발의 총성이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날려졌다. 왼쪽 눈에 박힌 총탄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자 놈의 손톱은 소녀 위의 나무만을 뜯어버리고 만다.
놈인가. 놈의 짓인가. 아니, 녀석의 손에는 총같은건 쥐어있지않다. 그럼 어떤 놈인가. 아프다. 너무도 아프다. 그렇게 녀석이 고통을 정신으로 극복하며 다른 한쪽 눈을 뜬 순간, 두꺼운 날이 목을 베었다.
써겅!
오른쪽 어깨와 왼쪽 허벅지가 놈의 살아있는 창살에 박혔는데도 소녀는 오른쪽 발만으로 그 몸 자체를 함께 들어선 왼손에 쥔 검으로 목을 베어버렸다. 과다출혈과 무모한 움직임이 소녀를 억누르며, 그렇게 놈을 해치우자마자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전신에서 힘이 빠지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져 간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잃고가던중, 누군가 남녀 둘이 손에 총을 쥔 채 이쪽으로 달려오는게 보였다.
[심한의 고독]
"....?!"
악몽이라도 꿨는지 몸을 갑자기 일으키며 소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긴 어디인가. 자신은 풀숲에서 나자빠지지 않았나? 허나 벌레가 들쑥거리는 더러운 흙밭과 달리 그녀의 몸은 웬 마차 안에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있다.
오른쪽 어깨와 허리, 그리고 왼쪽 허벅지에는 붕대가 겹겹이 묶여져있는게 이미 어느 정도 응급처치가 끝난 상태고, 그녀의 불안과 달리 무기며 다른 장비나 옷가지들 또한 모두 바로 옆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쩐 일일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커튼이 살짝 걷혀지면서 태양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꼬마. 나이도 만13살 아니면 14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물이 담긴 대야와 함께 들어왔다. 커튼이 열린 너머로 보니, 2살 정도 더 위인 듯한 소년이 베레모를 쓴 채 말을 이끌고있었다.
누구지? 이들은 누구이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이들이 구해줬다면 왜 구해줬으며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냥 구해줬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혹시 또 다른 인물도 어디선가 있는 건 아닐까. 몸에 무슨 실험같은건 하지않았나. 온갖 불안이 소녀를 엄습하는 사이, 그녀의 앞에다 꼬마는 세숫대야를 놓으며 말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 너희들이 구해준건가?"
"네. 오빠가 기절하신 검사님을 이리로 모셔왔고 제가 상처를 약간 손봤어요."
"고맙긴한데… 어째서지?"
"네? 그, 그야 검사님이 저희를 위해 싸워주셨기에.."
아, 그러고보니 처음 놈들을 찾고서 무작정 달려들던중, 얼떨결에 그것들에게 둘러쌓여있던 두 꼬마를 구해준 기억이 있었었다. 소년이 앉아있는 부근에 라이플종류로 추측되는 총이 있는 걸로 보아, 만일 이 녀석이 그때 도와준거라면 장래에 꽤나 굉장한 사격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주변에 보이는 물건은 전부 가져왔는데, 혹시 저희가 빠뜨린 것은 없나요?"
"아아, 없어. 이게 전부야."
있다고해봤자 코트에 장검, 그리고 서브머신건 두정뿐이다. 나머지는 죄다 탄창들인데 전부 코트에 부착시켜놨으니까 잃어버릴 염려도 제로. 아, 지갑은 좀 중요할까? 소녀는 일어서서 옆에 벗겨져있는 상의를 걸치던 중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물었다.
"저기, 이 상처는 네가 치료한거야?"
"아, 네. 일단 봉합은 해놨지만 저도 자세히는 모르니까 이대로 저희마을에 가셔서 제대로 검사받아보시는게 좋을 거에요."
"리아. 그만 떠들고 이리와서 망이나 좀 봐달라고. 지금 막 깨어나신 분한테 그렇게나 떠들면 실례잖아."
말을 몰던 소년이 참다못해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자 '아차'하며 리아란 불린 아이가 급히 식사를 가져가기위해 달려갔다. 흐음, 오빠라도 되는걸까? 일단 얼굴이라도 기억할 겸 빤히 바라보자 갑자기 소년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수줍어하긴. 그나저나 상당한 수준의 상처였는데 어린애가 직접 바늘로 봉합까지 하다니. 도저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도 어리면서 남들을 꼬마취급하는 이 검사는 누군가의 행적같은 것에 한없이 감탄한적은 이때까지 한번밖에 없다. 그렇다. 한번밖에 없다. 검사는 옆에 놓여져있는 두 정의 서브머신건, 갈색코트, 그리고 커다란 검을 보며 생각했다.
"..."
그러고보면 벌써 어느 정도나 세월이 흘렀을까. 한 1년 반 정도는 지난거 같다. 갖가지 기억이 한장한장 다시 머릿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사람들에게 이 만화 같은 사실을 알리다가 미친년취급당한것. 눈앞에 나온 괴물을 쓸어버리자 이번엔 마녀취급당한것. 몇몇사람을 지키지 못하자 악마로까지 취급받은것.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취급받은것. 설마 배우지 못한 인간이, 아니 배울 건 다 배운 인간조차도 그렇게나 무지할 줄은 검사는 상상도 못했다.
'네가 오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지난 1년반동안 아마도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일 것이다. 온갖 욕설과 모함 끝에 결국 같은 인간에게까지 목숨을 위협당하게되자, 그녀는 더 이상 순수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이 손으로 인간을 죽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괴물을 죽이듯, 짐승을 죽이듯, 그렇게 과거의 세계대전이란 것처럼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건 어떤 면에서 이상할게 하나도 없으니까. 추악함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 지상최고의 생물이 인간이 아니었던가.
"저기 피곤하실 텐데 주무셔도 괜찮아요. 저희가 답례로 마을까지는 데려다 드릴 테니까요."
"..."
"호, 혹시 다른 데로 가셔야하는건가요?"
"아니. 그럼 좀 부탁할게."
그래, 일단은 좀 자두자. 저 정도까지 하는걸 보면 악의는 없을꺼다. 그랬다면 그전에 이미 묶어놓던지 목을 치던지 했겠지. 벌써 며칠째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싸우지 않았는가.
빵과 우유를 금새 먹어치운 검사는 코트와 장비를 모두 걸쳤다. 그리고 나무상자가 놓여져 있는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정도 휴식을 취해보는것도 너무 오랜만이군. 검사는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 * *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전혀."
주먹과 발을 돌리며 휘두르는걸 보고는 감옥과 같이 창살로 막혀있는 동굴암벽에서 하얀 머리 남자가 톤 하나 바꾸지않고 묵묵히 말했다. 동굴 앞으로 약 3,4m정도에는 높이가 10m는 족히 되는 암벽이 있는데 소녀는 몇주전 여기로 떨어져서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다시 위로 빠져나가기위해 그에게서 훈련을 받고있는것이다.
다행히 절벽사이공간은 폭만 좁지 길이는 꽤 되서 이리저리 생각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만 말이다. 어쨌든 남자에게서 오래 전부터 맡게 된 신비한 향으로인해 마법같이 신체가 강해져서 이제는 바위를 타는 요령만 파악하면 이정도 절벽이야 간단히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웬일인지 갑자기 1주전부터인가 신체훈련이 전투훈련으로 변해버렸다. 소녀는 눈을 덮은 갈색머리칼을 땀과 함께 넘기며 중얼거렸다.
"헥, 헥. 벌써 이 짓만 수십 번째라고. 말로만 설명을 듣는데 제대로 할 리가 없잖아."
"그럼 두말말고 저거랑 싸우란 말이야. 누구는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알아?"
"응."
남자는 주저없이 손에든 리모컨의 버튼을 꾹 눌렀다. 동굴쪽에서는 보이지않았지만 소녀에게서 몇 m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져 있던 기계가 순간 요동을 치며 달려오더니 수십 개의 팔을 마구 휘두른다.
옷걸이 같이 생겼지만 쇳덩이 팔이 8개나 대신 달려있는 이 기계는 아래쪽의 바퀴가 위아래로 지형에 맞춰 움직여주기때문에 이런 험난한 지형에서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맞춰져 있다. 동굴 내에서 그가 직접 분해한 후, 창살사이로 하나씩 소녀가 받아서 조립한 이 로봇은 일명 '훈련군1호'. 그가 자발적으로 소녀에게 준 최초의 선물일 것이다. 아니, 재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우아아아악! 갑자기 작동시키지 말라고!!"
"역시 이편이 훨씬 편하군."
저 팔들이 비록 두께 100mm가량의 고무와 천으로 꽁꽁 묶여져있다하더라도 쇳덩이는 쇳덩이다. 거기다 속도가 초당 세 번씩 팔을 얼마나 빨리 휘두르는게, 권투선수라도 한대 맞으면 망치로 가격당한것과 흡사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요리조리 피하고있기는 하다만 점점 뒤로 갈 공간이 적어짐에 따라 이따금씩 들어오는 주먹은, 설사 방어했다 해도 너무나 아팠다. 소녀의 신체로도 한 20대정도 맞고나니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리는걸 보고 남자는 정확한 순간에 버튼을 딸각거리며 기계를 정지시킨다.
"거리를 벌려서 도망치려만하지말고 제대로 집중해라. 규칙적인 움직임인만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이,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코피를 흘리며 소녀가 분을 표한다. 허나 남자는 여전히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어떤 훈련이라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우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야?"
"글쎄다."
남자는 눈동자를 감은 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멍한 그의 표정에서 소녀는 단 한번도 기쁨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다른 감정을 찾은 적이 한번도 없다. 오로지 무념무상. 그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남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니 다리로는 굳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충분히 이곳을 나갈 수 있다. 지금 이 훈련은 여길 나가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나간 이후를 위한 훈련이니까."
"나간 이후?"
"그래."
소녀는 남자와 거리를 불과 1m도 내지 않고있기는 했으나,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 상태로, 그렇게 한쪽은 말없이 지켜보고서, 다른 한쪽은 벽에 기댄 채 앉아서 얘기를 하고있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너라는 존재는 이미 너무도 무서운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너의 힘에 질투를 느낌과 동시에 공포를 느끼겠지.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은 이해하질 못하는 것을 배척하고 억압하지. 굴복시키고, 안된다면 죽인다. 그 존재를 말살시켜서 두려움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말이야. 그래. 소녀, 너는 공포가 되버린거다."
"... 아저씨도 공포인 거야?"
"글쎄. 무언가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있고 느끼지않는 사람이 있듯, 나를 다르게 여기는 사람도 있더군. 물론 너무도 적었지만 말이야."
소녀는 그 말에 입을 살짝 벌리며 뭔가 다른 표정으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곧 혀를 차며 이미 의도를 알아차렸다는 듯 말한다.
"착각하지 마라, 꼬마. 다수가 느끼는 공포를 공포로 보지않는 사람은 긴 시간을 들여서 그것을 이해해냈기 때문이다. 공포가 공포라고 불린다는 건 절대 변하지않아."
"하지만 나도 아저씨가 무섭지는 않은걸?"
"....역시 지금의 너를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겠군."
"정말이라니까!"
"그래. 알았다."
품에서 수건을 꺼내고선 남자는 소녀의 얼굴 여기저기의 피를 닦아주었다. 무언가 상당히 어색하긴 하지만 소녀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남자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공포를 공포로 느낀 자보다, 공포라고 인식하지 못한 자를 더욱 경계하라. 그 진실 뒤에 오는 절망감은 누구에게나 끔찍할 테니 말이야."
"그거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
"... 정말 귀여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군."
당시의 그 말을 얼마나 깊이 새겨들었는지는 기억나지가 않는다. 단지, 아마도 이게 그와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본 날일 것이다.
* * *
총알이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검사는 검을 쥐었다. 허나 아무것도 없다. 계속해서 들리는 총성을 청각으로 대강 짐작해보니 약 2km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는 것 같다.
헌데 여기는 어디지? 확실히 그녀 자신은 마차 안에 있기는 하나, 마차는 허허벌판을 달리기보다 어두운 동굴 속에 처박혀있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장소에 문득 긴장을 하며 검에 쥔 손에 더욱 힘을 넣는다. 하지만 그것은 곧 허무하게 풀어졌다.
"아, 일어나셨어요?"
옆에 있던 긴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머릿속에든 기억에 따르면 이 꼬마는 그 소년과 함께 있던 리아라는 아이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검을 코트에 걸린 가죽갈고리에 가로로 끼운 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여긴 어디지?"
"그게.."
꼬마의 얼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낌과 함께 검사는 동굴 속에 있는게 둘뿐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 천을 걷고 밖으로 나오자 수십 명의 아녀자와 아이들이 같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공포로 떠는 모습까지 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총성,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들이 숨어있는 동굴, 구석에 보이는 식량, 옷가지등등의 갖가지 잡상자들. 이 사실들이 검사에게 대강의 진행상황을 전해주었다. 서브머신건의 탄창을 갈아끼우고 소녀는 다시 검을 빼 들었다.
"그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온 것 같군."
그녀의 검끝이 향한 동굴바깥쪽에서 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베레모를 쓴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의 앞에는 덩치가 2m는 족히 넘는 거대한 괴물, 녹색의 늑대인간 같은 것이 돌담을 깨부수며 나타나선 손톱이 달린 팔을 들어올렸다.
"레놀드!"
가까이에 앉아서 마찬가지로 돌담을 벽으로 삼아 총을 쏘아대던 사람 몇몇이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괴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서너 발의 총알로는 놈을 어떻게 저지할 수는 없다. 단지 녀석이 목표를 바꿔서 허공을 찢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사람 두세 명의 상반이 갈리는 일을 초래할 뿐.
"아아아아악!!"
마지막까지 방아쇠를 당기며 쓰러지기보다는 입이 먼저 죽음을 인식하고 베여지는 인간들. 아아 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 그들은 과거 인간이 지상을 지배했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재차 2,3명의 사람을 찢어지자 회색 빛 돌담이 이제는 아주 빨갛게 문신을 새기게 되었다. 총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오로지 거리로 이겨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잡힌 이상 뭔가를 기대하기는 너무도 힘들다. 설령 이 녀석을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동안 다른 놈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얼마나 접근하고있을까.
한명, 한명 그렇게 모두들 종이조각처럼 찢겨나간다. 멀리서야 가능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붙게되니 녀석은 방아쇠를 당길 시간도, 조준할 시간도 주지않았다. 얼마나 사람이 죽었을까. 이윽고 녀석은 다시 레놀드라 불린 소년을 향해 다가와서는 그 끔찍한 손을 들어올렸다.
"아, 아아아아악!!"
파각!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소년의 머리 옆에 있는 돌담을 거대한 손이 무너뜨렸다. 허나 그가 내지른 비명과 달리 목아지가 날아가버린건 괴물쪽! 놈이 쓰러짐과 함께 한 여성의 목소리가 소년에게 들려왔다.
"타이밍이 좋았던 모양이군."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년의 앞에 멈춰섰다. 검은머리의 작은 소녀는 고삐를 쥔 채 마부석에 앉아있었고, 그 커다란 마차 앞에는 갈색머리의 또 다른 여자가 긴 코트를 휘날리며 피 묻은 검을 쥔 채 그를 노려보고있었다.
레놀드, 리아의 오빠는 그녀를 눈앞에 둔 채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걸 느꼈다. 멀리서 총만 쏘아 댄 그였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죽인 건 죽인 것이었기에 공포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서있는 검사는 어쨰서 그 끔찍스러운 괴물보다 훨씬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있느냔 말인가.
"아니, 어떻게 보면 최악의 타이밍일지도."
공포스런 검사가 말하기 무섭게 레놀드가 기대고있던 돌담을 8마리의 괴수들이 넘어서며 나타났다. 애초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싸웠을 때부터 놈들의 수는 약 10마리정도. 그런데 그렇게나 먼 거리에서 쏘았을 떄도 해치운 건 기껏 두 마리정도 였다. 아니, 한 마리는 검사가 없앴으니 그것마저 계산한다면 자신들이 얼마나 놈들에게 있어서 열세적인지, 그리고 놈들의 힘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충분히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 검사는 표정을 한치도 바꾸지않은 채 검을 쥐고있냐는 말인가. 레놀드는 두려웠었다. 그 자신이 죽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을 잃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두려웠다. 그래서 검사를 피난소에 같이 보냈다. 어쩌면 하고 기대는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 갈색머리 여성은 그런 자신과 다른 것일까? 나이도 많아봤자 1,2년밖에 높아보이지 않는데도, 그녀는 이 상황에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스스로가 먼저 그 근원에다가 몸을 내던지느냔 말이다.
푸샥!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던 레놀드의 앞에서 피가 한줄기 터져올랐다. 일단은 분풀이였는지 검사를 둘러싼 녀석 중 하나가 그를 향해 손을 내찔렀는데 그걸 그녀는 단숨에 놓치지않고 냅다잘라버린 것이다. 시뻘건 인간의 피와는 달리 찬란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녹색의 피가 허공에 치솟으며 햇빛에 반짝거리자 그것은 곧바로 전투의 신호가 되었다.
다른 녀석들 모두 일제히 소녀를 향해 덤벼들고 검사는 자기 키만한 검을 아래다 힘껏 찌르고서는 그것을 장대높이뛰기처럼 이용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땅에 박힌 검은 운동에너지로 깨끗이 뽑히고 놈들은 훨씬 더 밀집된 상태로 다다른 현황. 그녀는 오른손으로 검을 바꿔 쥔 후 왼손으로 서브머신건을 꺼내 쏘았다.
어지간한 돌담정도도 단번에 뚫어버리는 이 총알의 파괴력 앞에서는 제아무리 이들이라 할지라도 데미지를 입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소녀자신도 포함해서.
"큭!"
적들의 푸른 피가 마치 분수처럼 솟아오름에 따라 검사의 몸에도 통증이 쌓여갔다. 가뜩이나 무리가 가는 총인데 이번에는 아예 갈대로갈 자세로 쏘아서인지 탄창 안에든 탄환도 반정도 밖에 쓰지 못했다. 실제로는 저것이 상당한 롱 매거진이란 걸 생각하면 많이 쏜 것 같지만 그것은 인간을 상대로일 때나 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쌓아 놀 때로 쌓아 논 피로가 통증과 함께 겹쳐져서인지 왼쪽어깨의 움직임이 부드럽지가 않았다. 어찌됐든 중력이 있는 이상 몸은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날개 없는 생명체로써 최악중의 최악인 상황! 소녀가 아무리 대단하다하지만 공중에서는 노데미지를 받는다는 건 힘들다. 놈들이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그녀는 이빨을 꽉 깨물며 욕설을 지껄였다.
"칫!"
검을 아래쪽으로 휘두르면서 동시에 몸 자체를 물구나무서는 포즈로 바꿔버린다. 팔이 상체에 붙어있기에 똑바른 자세로는 아래쪽에서부터 치솟는 공격을 막아내기가 힘들지만 이렇게 반대로 바꾸면 그 악조건을 약간은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이 검은 길이도 만만치 않게 길고 두꺼운 것이 그야말로 비검. 남은 건 그녀 자신이 거꾸로 된 상태에서도 평상시와 같은 움직임을 내보이는 것뿐이다.
거꾸로 된 자세라면 피가 반대로 쏠리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세상이 뒤집어 보이고 적의 공격또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막아내야하는 만큼, 차라리 정상적일 때가 오히려 나을법한 상황이다. 허나 그녀는 힘껏 몸과 검을 돌리면서 모든 공격을 튕겨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자, 다시 검의 무게를 이용해 몸을 돌려놓고는 착지를 시행한다. 아까 전 총탄비를 퍼부은 공격으로 해치운 건 한 마리. 이제 7마리가 남은 가운데 검사는 뒷걸음질로 도망을 치면서도 서브머신건을 쏜 충격으로 부가된 통증에 이빨을 깨물어 참으며 속으로 외쳤다.
'젠장. 이정도로 움직임을 낼 바에는 그냥 거꾸로 서지말고 싸우는 편이 나았잖아!'
뭐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 공중에서 친구들과 싸울 때는 절대로 머리를 땅으로 향하지 말길 바란다. 그나마 메리트가 있다면 적의 공격이 이쪽한테 전혀 다르게 보이는 만큼, 적한테도 이쪽의 공격도 다르게 보였다는 정도. 요컨대 적이 이쪽보다 싸움에 익숙하지는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요 1년반동안 그녀가 싸워온 횟수는 아마도 잠을 잔 횟수와 맘먹을 만큼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거기다 이정도 도망쳤으면 총을 쏘지않는 이상 리아와 레놀드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녀는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1년반. 그간의 전투는 틀림없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빨을 내밀며 으르렁거리는 이 맹수들이 아까처럼 사방에서 덮치기 전에 이번에는 소녀쪽에서 먼저 발을 내딛었다. 길이 약 160cm, 두께 약 5cm, 검폭은 20cm가 되는 검이 놈들을 향해 달려들어선 아래쪽에서 위로 휘둘려지는 상단공격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상단공격에 있는 힘껏 팔을 굽었다피며 내찌르는 괴수의 하단공격.
두 괴물의 공격이 서로 맞부딪치자 마치 유리가 깨지듯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에 울려퍼졌다. 둘의 각기 다른 공격은 서로를 상쇄시키고 몇걸음 물러서게 만든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소녀쪽에서는 벌써 자세를 바꿔 잡은 후 다시 품으로 파고들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상단공격으로 내리쳤다는 것.
마치 양손으로 모서리를 쥐고 든 종이를 커터 칼로 힘껏 잘라버리듯 깨끗하게 놈의 몸이 좌우로 갈렸다. 그렇게 첫 타겟을 가른 후, 둔탁한 검은 계속해서 휘둘러져서는 땅바닥을 내리쳐서 조종자의 몸을 그녀 자신이 내딛은 발과 함께 멈추게 만들었고, 그 후 곧바로 다음 타겟을 향해 또 한번 휘둘러졌다.
"아, 아아.."
수십m 떨어진 자리에서 리아와 레놀드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눈 한번 깜빡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살기위한 욕망이 이토록이나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그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몸을 두 발짝 더 위험 속에다 내던졌다. 소녀는 매번 이렇게 자신을 내던져서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공포에 오히려 동조하면서 두려움을 제거하는 방식. 이따금씩 말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죽을 때 그들도 죽는다는 것을 뇌 속에 상기시키는 방식.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마음을 다지는 한편, 동시에 그들의 목숨은 죽어봤자 얼마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똑똑히 뇌속에다 새겨논다.
그들 때문에 오히려 이쪽이 필요를 넘어서버린 압박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이용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양심이 견디는 데까지 이용하자. 레놀드가 그녀를 피난소에 보낸 것이 그녀 자신의 안전과 아울러 리아를 보호하기위해 서였다는 것처럼, 맨 처음 그들이 검사를 마차에 함께 태운 것은 또다시 이 괴물들을 만날까봐 두려웠기에 이용했을 거라는 것을 잊지않는다.
그렇다. 잊지않는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모든게 악(惡)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않는다. 악을 처단하기위해서 마음을 칼날보다 더욱 날카롭게 만들어라! 그것이 그녀가 따르는 그의 가르침 중 하나였다.
육신이 더욱 놈들의 피를 뽑아내며 전투를 즐기면 즐길수록, 하나 둘 숨어있던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의 광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검을 양손으로 쥔 채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연속으로 베어버리기. 검을 정반대방향에서부터 시작해서 땅에 꽂은 발을 축으로 삼아 부채꼴모양으로 힘껏 휘둘러내려쳐기. 큰 검의 위력을 잘 이용하면서도 큰 검에 맞지않는 속력으로 소녀는 검을 휘둘렀다.
두 다리로 땅을 차고 뛰어선 상단공격을 시도한다. 그리고 녀석이 그것을 두 팔로 막을 경우에는, 작은 키를 이용하여 땅에 착지한 순간 단번에 뛰어들어 굵은 양다리를 일참! 소녀의 검이기에 가능한 것일 테고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소녀가 검사이었기에 가능한 움직임. 그것이 흙모래 공터에서 녹색빛 핏줄기와 함께 펼쳐졌다.
괴물의 수는 어느 샌가 일곱에서 하나로 줄어들고 소녀 또한 다친 몸을 이끌고 부린 움직임으로 인해 이제는 검에 기대어 설 수 밖에 없게된다. 왼쪽 팔은 저릴 대로 저린게 가만히 있어도 덜덜 떨고있고 육신의 내부는 그전싸움에 당한 상처로 요동을 치고있다. 이대로라면 설령 아무리 검사가 다쳤다 하더라도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뻔하겠지.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아차!'
자신감이 생각보다 많아서 살짝 숨을 돌리고있는 틈에 일은 이미 벌어지고 말았다. 놈들의 조각난 시체들이 뱀처럼 변하더니 스르륵 움직여서는 남은 한마리의 몸에 합쳐져서는 하나의 또 다른 괴물을 탄생시켰다.
허공을 아지랑이 마냥 나풀거리며 이빨을 번뜩이는 수십 마리의 뱀. 그 뱀들의 숙주이자 조금 전만해도 인랑(=늑대인간)의 형태였으나 이제는 덩치가 3m를 넘으며 네 개나 되는 팔을 보유하고있는 새로운 괴수. 수시간 전,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를 반 이상 절단시켜버린 녀석과 또다시 조우하게 되고 말았다. 아니, 그 이상의 녀석과!
"큭!"
입을 쩍 벌려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내세우며 몸에 연결된 뱀들을 화살같은 스피드로 찔러보낸다. 이것들 앞에서는 아무리 그녀가 재빠르다 하더라도 도망치는 것만큼은 불가능하다. 화려한 검풍으로 소녀가 간신히 튕겨내는 가운데, 이번에는 후방에서도 공격이 파고들어왔다.
왼쪽 팔의 살점이 쫙 찢어져서는 코트를 조각내며 시뻘건 피를 내뿌린다. 이걸로 무기교환따위는 생각해볼 수도 없게 되었다. 한 팔로 교체를 했다가는 아주 잘근잘근 놈에게 몸이 찢겨져 버릴 테니까.
더구나 이 놈은 그 조그만 뇌도 진화를 했는지 자신을 점점 본체쪽으로 유인해내고 있다. 지금의 녀석에게 한방 얻어맞았다가는 몸이 단숨에 수십 개로 나눠져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 귀찮은 지렁이 자식들을 어떻게든 빨리 제거하는 수밖에.
소녀는 스스로가 유인해 들어가는 한편 최대한 뱀들도 한쪽 방향으로 몰리게 유도해냈다. 숙주자체의 속도는 그녀에 비해서는 한참 떨어진다. 수시간의 전투 때, 그녀는 녀석이 한 발짝 다가오는 동안 최소 10m이상은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즉각 시도에 들어가라. 검사의 본능이 그렇게 속삭였다.
후방의 녀석들을 튕겨내고 정면의 녀석들이 공격하는 순간 스스로가 숙주쪽을 향해 달려든다. 본체와의 거리는 녀석의 발로는 한 발짝, 허나 놈에게서 뻗어나온 뱀들이 숙주와 이어진 몸뚱이 부분은 이 순간 그녀와 매우 밀착하게 된다.
그렇게 본체쪽으로 다가간 순간 앞발을 땅에다 내찌르며 반작용으로 멈춰서서는 검을 원으로 휘둘러 뱀들의 몸통을 죄다 절단시켜버린다. 동시에 본체가 앞으로 나오는 시간동안 날렵한 몸놀림으로 다시 뒤로 빠져나가면 작전은 대성공. 아아, 만약 녀석의 속도가 그렇게나 빠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퍼억!
몸을 뒤로 튕기는 그 짧은 사이, 녀석은 바로 코앞까지 파고들어왔었다. 그렇게 어깨 위에 달린 두 팔로 소녀의 공중도약을 저지하는 한편, 아래쪽에 달린 팔로는 힘껏 가격을 해댄다.
시속 수십km의 속도로 달려든 자동차와 부닥친 마냥 빙글빙글 돌며 나가떨어지는 소녀. 허벅지의 상처가 다시 벌어져서는 바지아래쪽에다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하지만 엄살을 부릴 수는 없다. 다시 검에 의지한 채 일어서서 소녀는 자신을 향해 한발짝한발짝 놀라운 스피드로 다가오는 청피부의 괴물을 지켜보았다.
'이, 이럴 수가. 설마 스피드마저 이 정도나 향상되었다니... 완벽한 계산실수다. 놈이 더욱 강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니! 완벽한 실수야!!'
육체가 제대로 따라주질 않는만큼 정신또한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다. 설사 트럭에 치인다해도 이정도로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놀라서 혀를 깨물지않았다는 것에 감사는 하고있다만 곧 그것은 후회로 변해버릴 것 같다.
적은 비록 장거리공격수단을 잃었지만 동시에 이쪽의 스피드를 빼앗는데 성공했다. 지능대결에서조차 패배해버리다니! 반쯤은 이제 포기가 마음을 지배하는 가운데 검사의 몸을 무언가가 움켜잡았다.
"리, 리아!"
기척마저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팔을 목에다 매고는 허리를 잡아서 옮겨주려하고 있다. 자신을 살리려하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나 가련한 몸으로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가뜩이나 상상조차 깨뜨릴 공포를 가진 괴물이 접근하는 가운데 이 아이는 여기서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바, 바보냐! 당장 돌아가!!"
"되, 될 꺼에요! 둘이서라면 도망칠 수 있어요!"
"무슨 미친 짓거리야! 지금이라면 아직 기회가 있어! 당장 도망치라고!!"
"싫어요!!"
여전히 검사의 몸은 꿈쩍도 하지않고 검사자신또한 이 애를 내던져버릴 힘이 남아있질않다. 놈과의 거리는 앞으로 약 12m, 앞으로 3,4초면 모든게 끝장나겠지. 검사는 두 눈을 꼭 감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녀를 안았다.
곧 있으면 엄습할 죽음, 하지만 귓가에 들려온건 사신의 목소리가 아닌 수십 발의 총성과 놈의 비명소리다. 눈꺼풀을 열고서 의식을 집중하자 녀석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정지해있는게 보였다. 아니, 저지되어버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총을 들고는 놈을 향해 마구잡이로 쏴대고 있었으니까.
"애들한테만 맡기지 말라고!"
"쏴라! 쏘는 거다!"
기관소총으로 대응하고있다만 저 덩치의 맹수가 그런 무기로 꿈쩍하겠냔 말인가. 거기다 저토록 아무렇게나 쏴대는데 말이다.
"바, 바보같은.."
생각보다 반동이 심하지않으면서도 심한 것이 총이란 것이다. 그런 무기를 적이 보인다고 그냥 무턱대고 쏴버린다면, 아무리 놈이 거대하다한들 한 발짝에 몇m를 거뜬히 달리는 녀석이 두 손 놓고 맞아줄 리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뒤를 잡혀서는 단번에 모두의 몸이 써걱하며 썰렸다. 수 초 만에 귀찮은 파리들을 제압하고서 괴수는 다시 검사와 리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이제 한쪽 팔뿐. 이 다리로는 리아를 데리고 뛸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소녀가 그렇게 죽음을 인식한 순간 괴수의 거대한 발톱이 둘을 향해 덮쳤다.
-집중해.
챠캉!
갑자기 머리 속에 횡하니 울려퍼진 한마디가 소녀의 오른손으로 하여금 검을 휘두르게 해서 그 압박적인 공격을 튕겨내게 만든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아또한 여전히 그녀에게 매달린 상태. 헌데 그녀는 놈의 공격을 튕겨내버렸다.
어째서지. 어떻게 이런 검술이 갑자기 자신에게 가능하단 말인가. 순식간에 높아진 자신의 실력에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는 소녀. 재차 녀석이 이번에는 네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두르자 그녀는 또 다시 눈을 꽉 감고는 리아를 감싸안았다.
-눈을 감고서 어떻게 싸우자는 거야!
"!"
또다. 뇌내자체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것은 선명히 소녀의 의식을 깨우고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리아를 감싸안았던 오른팔이 풀어지면서 검을 들고는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낸다. 아니 측면을 쳐서는 바깥쪽으로 비껴낸다.
그렇게 찔러지는 주먹의 팔 부분을 검으로 쳐서는 공격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조금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공격이 이제는 확실하게 하나 둘 각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간 놈은 균형을 잃었다.
-잡아라! 뚫어버려!!
파각!
바위조각이 깨지는 소리와 흡사한 충격음이 울려퍼지며 소녀의 검이 괴수의 중심부분을 향해 내찔러졌다. 그렇게 후방부에 피가 픽하니 솟아나오는 가운데, 소녀는 검을 힘껏 위로 쳐올렸고 몸이 반쯤 좌우로 갈라져버린 괴물은 괴성을 내지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사방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검사의 몸에 매달려있던 리아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는 완전히 망가져있는 괴수의 시체를 보고 소리쳤다.
"이, 이겼다! 검사님이 이겼다! 이겼다고요!!"
목청껏 내지른 소리가 멀리 있던 사람들의 귀에까지 울려퍼진다. 이어서 소녀가 방방뛰며 내지르는 기쁨에 그들도 다같이 함성을 질러댔다. 리아는 검사의 손을 붙잡으며 기쁨을 만면에 표했다.
"이겼어요, 검사님! 검사님이 이겼다고요!"
"아, 아아. 그래.."
쓰러진 괴수의 시체와 반쯤 또다시 피범벅이 된 자신을 둘러보며 검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방금 전 들린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야 그렇지만 지금 이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에 입각한 가운데 도움을 극도로 호소하자 만들어진 환청이 아니었을까. 검사가 궁금증에 휩싸여 있는 것도 잠시, 그녀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외쳐댔다.
"괴, 굉장해! 이 애가 정말로 쓰러뜨렸어!"
"대단하구나 얘야! 정말 고맙다!"
갑작스런 환영. 기쁨으로 달려드는 사람들.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리아가 먼저 입을 열며 물었다.
"검사님. 검사님은 이름이 뭐에요?"
"이름?"
"네. 이름이요."
갑자기 사람들이 조용해지면서 그녀와 리아를 바라본다. 긴장을 해서였을까.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레카. 유우 나레카."
다시금 사람들의 환호성이 퍼지고 리아는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방금 전 목소리가 울린 것에 대한걸 순간 잊어버리고 혼란을 겪는 소녀. 이 날, 처음으로 그녀는 피를 묻히고서 누군가에게 환영 받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는 걸 느끼고 있을까. 아아, 아마도 느끼고 있을테지.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기억해내고 있을까? 과거 한 남자가 그녀에게 해줬던 말들을.
'착각하지 마라, 꼬마. 다수가 느끼는 공포를 공포로 보지않는 사람은 긴 시간을 들여서 그것을 이해해냈기 때문이다. 공포가 공포라고 불린다는 건 변하지않아.'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분위기에 휩쓸린 가운데 어느덧 그녀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명심해라. 공포를 공포로 느낀 자보다, 공포라고 인식하지 못한 자를 더욱 경계하라.'
소녀의 곁에는 리아라는 꼬마가 있다. 여기저기 엉성하게 관리되 있는 그녀의 갈색머리와 달리, 윤기나는 흑색머리칼을 가진 한 소녀가 그녀의 곁에 있다.
'그 진실 뒤에 오는 절망감은..'
그리고 그녀는 과연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이날 소녀는 처음으로..
'누구에게나 끔찍할 테니 말이야.'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날로부터 1년반, 소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이란 존재를 알려주었다.
[심한의 고독 part 1 finished]
마지막전사완결내야하는데..THE LONESOME GUARDIAN도 써야하고.. 근데 이걸 쓰다니..(중얼중얼) 뭐 이것도 The lonesome guardian하고 이어져요~
..근데 누가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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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하아."
만약에 진실로 악임을 인정하고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인간이 있다면 과연 그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가. 현재까지의 가장 바람직한 결론은 미친놈이거나 신의 사도다. 대체로 전세계를 뒤흔들 가치관을 가지고있거나 기적을 행하지 않는 한 전자의 쪽이 거의 100%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미친놈. 지금 여기에 그 광기로 정신이 취해있는 자가 있다. 자신의 키보다 크고 두꺼운 검을 휘두르며 그 작은 키에 맞춘 갈색 롱코트를 입은 채, 괴물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과 싸우고있는 한 소녀가 있다. 스스로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기적이게 살아남으려는 한명의 검사가 여기에 있다.
"후우, 후우우우우."
갈색 빛 머리카락은 목 부분까지 길러져있긴하나 여기저기가 엉망징창으로 관리되어있는게 뭔가 야성의 미를 풍기는게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전투로인해 다듬어졌다는걸 내리 짐작가능케 해주고있었다.
평원 한중간에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만들어진 지저분한 모래길. 그 위에서 소녀는 수십 마리의 정체모를 괴물과 서로의 생명을 빼앗아대고 있었다. 날카로운 손톱을 날로삼고 단단한 피부와 강력한 근육을 또 다른 무기로 삼은 이것들은, 만약에 인간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더라면 틀림없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을거라고 확신을 주는 수준인데도 그 소녀는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걸 멈추지않았다.
머리를 향해 대각선으로 내리쳐지는 공격을 검을 돌려휘두르며 쨍하니 막아낸다. 그리고나서 녀석의 피부를 타고 미끄러져 나가더니 그대로 얼굴을 쳐버리는 소녀의 대검. 그렇게 녹색빛 피를 메마른 모래흙에다 뿌리며 그녀는 다시 검을 쥔 채 다른 녀석을 향해 겨눠들었다.
"헉, 헉, 헉, 헉."
흙먼지로 화장한 얼굴에 이곳저곳 베여진 상처가 피를 떨구며 덧칠을 해준다. 벌써 몇 놈이나 쓰러뜨린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죽여야 비로소 제대로 된 안식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을까.
순간 소녀는 자신을 비웃었다. 눈 한번 깜빡이면 목이 날아갈 상황인데 이따위 생각에 빠져있다니. 물러도 한참 물렀다. 싸워라 그리고 죽여라. 그것만이 오로지 해답이다. 놈들이 너를 죽이려하듯 너도 놈들을 죽여라. 너라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 마지막 정의였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에 가까운 기합을 외치며 어린 검사는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땅을 치고 뛰어올라 공격을 피하는 한편, 그대로 몸을 360도 검과 함께 돌리며 적의 상체를 세로로 두 동강낸다. 그리고서 다리를 접으며 땅바닥에 착지, 연이어 다음 목표를 향해 또다시 돌격.
그렇게 이번엔 웬 녀석이 커다란 바위를 양손으로 힘껏 녀석이 던지는걸 보고서 멈춰서 돌아가기에는 너무도 늦었다고 판단. 소녀는 이빨을 꽉 깨물며 뒤로 돌려잡은 검을 옆으로 날리듯 베었다.
콰앙!
아무리 돌조각이라곤 하나 그것의 일부분을 깨부수며 방향을 비껴내는 생물을 우리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돌덩이를 내리친 충격에 반대로 튕겨져나온 어린 검사는 그대로 땅바닥에 양 발이 닿자마자 또다시 뛰어올라선 대각선으로 적을 촥 베어버렸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답게 피를 토하며 몸을 떨구는 모습에 이미 기대할 수 있는 리얼리티는 제로.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세상. 그것에 정면으로 도전한 채 어린 검사는 다시 숨을 헐떡이며 검을 치켜들었다.
"하아, 하아, 하아."
허나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숨소리만 맴돌뿐, 어느샌가 놈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망갔다고?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도망을 갈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놈들이 인간을 내버려두고 도망갔다는 사실자체가 너무나도 넌센스하니까.
"큭!"
갑자기 풀숲에서 날아온 거대한 무언가에 검이 부닥치며 몸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일단 반사적으로 막아내긴 했으나 자신을 이정도나 강력하게 날려버리는 것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비정상적인 일상에 사는 그녀의 눈앞에 또다시 판타스틱한 상황이 일어난다.
숲 전체가 움직이고있다. 눈앞에서 나풀거리는 풀잎부터 저 멀리 지평선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일부분이 피리로인해 일어난 뱀이라도 되는듯 나풀나풀 공중으로 붕 떠서는 이쪽을 노려보고있었다.
"!"
아지랑이마냥 움직이던 것이 한순간 정지하더니 순간 화살처럼 잽싸게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남색코트를 펄럭이며 뒤로 살짝 도약하여 공격을 피하는 소녀. 콘크리트가 덮여있지는 않으나 맨땅을 스펀지마냥 가볍게 뚫을정도라니. 만약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면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땅바닥에 처박혔던 것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시 흐물흐물거리며 뽑혀져서는 그대로 공중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것이 연결되있는 풀숲쪽에선 3m정도의 거대한 녹색 곰 같은 것이 두팔을 벌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해치웠던 녀석들의 시체가 움직이며 녀석의 몸에 스르르 합체되고있다. 설마 이런 스킬마저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몸에는 뱀같이 스물스물거리는 징그러운 것을 수십 개나 달린 채 커진만큼 위험도는 배로 커졌다. 얼굴보다 더 큰 입을 쩍하니 벌리며 이빨을 드러낸 채, 녀석이 한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긴장하고있던 검사의 표정이 그 모습에 순간 코웃음을 쳤다.
"하, 하하. 하하하하. 뭐야. 힘만 늘었지, 움직임은 배로 둔해졌잖아. 그래, 좋아. 어디 덤벼보라고. 나도 도망가지않아. 네놈들을 모조리 전멸시키기 전까진 아무데도 안가니까!"
그녀의 도발인 말이 일으킨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녀석은 더욱 포효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반면에 말과는 달리 뒤로 조금씩 도망치며 놈에게 대응하는 검사.
확실히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졌긴하나 보통 인간이 봤을 때는 절대 '느리다'라는 말이 나올 수준이 아니었다.
성큼성큼 거대한 몸을 이끌고 가는 것이, 일반 중학생이 50m를 힘껏 달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스피드. 허나 검사는 뒤로 뛰면서도 간격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놈의 채찍 같은 날카로운 공격 또한 완벽하게 검으로 튕겨내고 있었다.
'이것들만 주의하면 되. 확실히, 전보다 강해졌긴해도 분리되었을 때보다는 분명히 느려졌어. 거기다 놈은 혼자다. 그렇다면 이 빌어먹을 채찍이 닿지않을만큼만 거리를 벌리면 되! 그리고나서 1초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투각!
잡생각 때문에 본체에 따라잡힌순간 내리쳐진 거대한 손톱. 어떻게든 피하긴 했지만 어느 샌가 날아든 반대쪽 손이 소녀를 위로 쳐날려버렸다. 데미지를 입은채로 허공에 붕떠버린 소녀. 하지만 그런대도 그녀는 몸을 움직이며 검을 잃은 양손을 허벅지로 향한다.
'1초라도 시간을 번다면, 무기를 바꿀 수 있어!'
커다란 서브머신건을 각기 한정씩 손에든 채 검사는 자신을 날려버린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다다!
벌떼같이 뿌려진 탄환이 그대로 바위며 나무며 그 몬스터를 포함한 모든 것을 꿰뚫어버린다. 채찍같이 이어진 것들도 죄다 찢겨 떨어지고 녀석본체 또한 두 다리를 펴고서 어떻게든 버티는게 고작이었다.
총알이 떨어진 서브머신건의 불이 멈추며 허공에서 떨어지던 소녀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모랫바닥에다 몸을 들이박고 말았다.
"크으윽!"
역시 그만큼 강력한 총을 공중에서 양손으로, 그것도 저렇게나 큼지막한 괴물에게 공격을 받은뒤 쓴건 무모했다. 허나 무모하지 않으면 뭐하리요. 이미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무모한대 베짱마저 없다면 이미 옛날에 죽었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땅을 누르며 몸을 일으킨다. 떨어졌던 검을 찾아쥐고, 이제 남은건 벌집처런 뚫린 놈을 끝장내는 것 뿐. 하지만 그보다 먼저 녀석의 몸에서 몇 개 붙어있던 채찍이 소녀의 얼굴을 향해 내찔러졌다.
"욱!"
볼 부위가 찢겨지며 피가 펑하니 터져나왔다. 역시 전체적으로의 데미지는 저쪽이 더 심하긴하나, 그 커다란 몸집만큼 효율성은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놈과는 달리 회복력이 높지않은 인간인 이상, 양쪽 다 치명상을 입은 이순간밖에 없는 것이다. 소녀는 검을 들고서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아아아아!!"
두세 개밖에 없는 놈의 채찍공격을 피하고 팔을 향해 검을 휘둘러 피를 터뜨린다. 계속해서 이번엔 머리를 공격, 하지만 놈의 팔도 괜히 두개가 아니었다. 반대쪽 손이 소녀의 몸통을 쳐서는 정신마저 흔들리게 해놓고 한번 더 힘껏 가격하여 그녀를 넘어뜨려 날린다.
몇 m뒤에 있던 나무에 몸을 찍으며 멈춰지는 소녀. 다시 검을 들며 제정신을 차리려하는 사이 놈의 창살 같은 채찍이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내찔러졌다..
"아아아악!"
오른손의 어깨와 함께 나무마저 간단히 뚫려버린 그것에 소녀의 몸이 옷걸이 마냥 매달려졌다. 살아있는 뱀처럼 녀석의 창살 같은 신체가 계속해서 뚫고 움직이며 피를 오른쪽 어깨에서 마구마구 터뜨려댄다.
"으아아아아아악!!"
살 내부가 휘어지며 신경과 뼈가 파괴되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정신을 쪼갠다. 손가락은 더 이상 검을 쥐지 못하고 이번에는 다른 창살채찍이 왼쪽허벅지를 뚫고 나무마저 통과하며 오른쪽 어깨처럼 똑같이 매달아버렸다.
비명소리는 두 배로 커졌고 소녀는 죄인인 마냥 박힌 채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그것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고통이 살짝 움츠러졌을 때, 나무전체를 검은 그림자가 덮으며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친 오른손대신 왼손을 높이 치켜들며 내리치려는게, 지금 맞는다면 소녀는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그대로 터져 죽어버리게 된다. 방법은? 빠져나갈 방법은 뭐냐. 이대로,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인가?! 그녀의 두뇌회로가 이것저것 혼란에 동조하던중, 놈의 무쇠주먹이 내리쳐졌다.
타앙!
그리고 한발의 총성이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날려졌다. 왼쪽 눈에 박힌 총탄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자 놈의 손톱은 소녀 위의 나무만을 뜯어버리고 만다.
놈인가. 놈의 짓인가. 아니, 녀석의 손에는 총같은건 쥐어있지않다. 그럼 어떤 놈인가. 아프다. 너무도 아프다. 그렇게 녀석이 고통을 정신으로 극복하며 다른 한쪽 눈을 뜬 순간, 두꺼운 날이 목을 베었다.
써겅!
오른쪽 어깨와 왼쪽 허벅지가 놈의 살아있는 창살에 박혔는데도 소녀는 오른쪽 발만으로 그 몸 자체를 함께 들어선 왼손에 쥔 검으로 목을 베어버렸다. 과다출혈과 무모한 움직임이 소녀를 억누르며, 그렇게 놈을 해치우자마자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전신에서 힘이 빠지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져 간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잃고가던중, 누군가 남녀 둘이 손에 총을 쥔 채 이쪽으로 달려오는게 보였다.
[심한의 고독]
"....?!"
악몽이라도 꿨는지 몸을 갑자기 일으키며 소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긴 어디인가. 자신은 풀숲에서 나자빠지지 않았나? 허나 벌레가 들쑥거리는 더러운 흙밭과 달리 그녀의 몸은 웬 마차 안에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있다.
오른쪽 어깨와 허리, 그리고 왼쪽 허벅지에는 붕대가 겹겹이 묶여져있는게 이미 어느 정도 응급처치가 끝난 상태고, 그녀의 불안과 달리 무기며 다른 장비나 옷가지들 또한 모두 바로 옆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쩐 일일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커튼이 살짝 걷혀지면서 태양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꼬마. 나이도 만13살 아니면 14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물이 담긴 대야와 함께 들어왔다. 커튼이 열린 너머로 보니, 2살 정도 더 위인 듯한 소년이 베레모를 쓴 채 말을 이끌고있었다.
누구지? 이들은 누구이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이들이 구해줬다면 왜 구해줬으며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냥 구해줬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혹시 또 다른 인물도 어디선가 있는 건 아닐까. 몸에 무슨 실험같은건 하지않았나. 온갖 불안이 소녀를 엄습하는 사이, 그녀의 앞에다 꼬마는 세숫대야를 놓으며 말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 너희들이 구해준건가?"
"네. 오빠가 기절하신 검사님을 이리로 모셔왔고 제가 상처를 약간 손봤어요."
"고맙긴한데… 어째서지?"
"네? 그, 그야 검사님이 저희를 위해 싸워주셨기에.."
아, 그러고보니 처음 놈들을 찾고서 무작정 달려들던중, 얼떨결에 그것들에게 둘러쌓여있던 두 꼬마를 구해준 기억이 있었었다. 소년이 앉아있는 부근에 라이플종류로 추측되는 총이 있는 걸로 보아, 만일 이 녀석이 그때 도와준거라면 장래에 꽤나 굉장한 사격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주변에 보이는 물건은 전부 가져왔는데, 혹시 저희가 빠뜨린 것은 없나요?"
"아아, 없어. 이게 전부야."
있다고해봤자 코트에 장검, 그리고 서브머신건 두정뿐이다. 나머지는 죄다 탄창들인데 전부 코트에 부착시켜놨으니까 잃어버릴 염려도 제로. 아, 지갑은 좀 중요할까? 소녀는 일어서서 옆에 벗겨져있는 상의를 걸치던 중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물었다.
"저기, 이 상처는 네가 치료한거야?"
"아, 네. 일단 봉합은 해놨지만 저도 자세히는 모르니까 이대로 저희마을에 가셔서 제대로 검사받아보시는게 좋을 거에요."
"리아. 그만 떠들고 이리와서 망이나 좀 봐달라고. 지금 막 깨어나신 분한테 그렇게나 떠들면 실례잖아."
말을 몰던 소년이 참다못해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자 '아차'하며 리아란 불린 아이가 급히 식사를 가져가기위해 달려갔다. 흐음, 오빠라도 되는걸까? 일단 얼굴이라도 기억할 겸 빤히 바라보자 갑자기 소년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수줍어하긴. 그나저나 상당한 수준의 상처였는데 어린애가 직접 바늘로 봉합까지 하다니. 도저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도 어리면서 남들을 꼬마취급하는 이 검사는 누군가의 행적같은 것에 한없이 감탄한적은 이때까지 한번밖에 없다. 그렇다. 한번밖에 없다. 검사는 옆에 놓여져있는 두 정의 서브머신건, 갈색코트, 그리고 커다란 검을 보며 생각했다.
"..."
그러고보면 벌써 어느 정도나 세월이 흘렀을까. 한 1년 반 정도는 지난거 같다. 갖가지 기억이 한장한장 다시 머릿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사람들에게 이 만화 같은 사실을 알리다가 미친년취급당한것. 눈앞에 나온 괴물을 쓸어버리자 이번엔 마녀취급당한것. 몇몇사람을 지키지 못하자 악마로까지 취급받은것.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취급받은것. 설마 배우지 못한 인간이, 아니 배울 건 다 배운 인간조차도 그렇게나 무지할 줄은 검사는 상상도 못했다.
'네가 오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지난 1년반동안 아마도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일 것이다. 온갖 욕설과 모함 끝에 결국 같은 인간에게까지 목숨을 위협당하게되자, 그녀는 더 이상 순수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이 손으로 인간을 죽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괴물을 죽이듯, 짐승을 죽이듯, 그렇게 과거의 세계대전이란 것처럼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건 어떤 면에서 이상할게 하나도 없으니까. 추악함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 지상최고의 생물이 인간이 아니었던가.
"저기 피곤하실 텐데 주무셔도 괜찮아요. 저희가 답례로 마을까지는 데려다 드릴 테니까요."
"..."
"호, 혹시 다른 데로 가셔야하는건가요?"
"아니. 그럼 좀 부탁할게."
그래, 일단은 좀 자두자. 저 정도까지 하는걸 보면 악의는 없을꺼다. 그랬다면 그전에 이미 묶어놓던지 목을 치던지 했겠지. 벌써 며칠째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싸우지 않았는가.
빵과 우유를 금새 먹어치운 검사는 코트와 장비를 모두 걸쳤다. 그리고 나무상자가 놓여져 있는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정도 휴식을 취해보는것도 너무 오랜만이군. 검사는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 * *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전혀."
주먹과 발을 돌리며 휘두르는걸 보고는 감옥과 같이 창살로 막혀있는 동굴암벽에서 하얀 머리 남자가 톤 하나 바꾸지않고 묵묵히 말했다. 동굴 앞으로 약 3,4m정도에는 높이가 10m는 족히 되는 암벽이 있는데 소녀는 몇주전 여기로 떨어져서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다시 위로 빠져나가기위해 그에게서 훈련을 받고있는것이다.
다행히 절벽사이공간은 폭만 좁지 길이는 꽤 되서 이리저리 생각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만 말이다. 어쨌든 남자에게서 오래 전부터 맡게 된 신비한 향으로인해 마법같이 신체가 강해져서 이제는 바위를 타는 요령만 파악하면 이정도 절벽이야 간단히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웬일인지 갑자기 1주전부터인가 신체훈련이 전투훈련으로 변해버렸다. 소녀는 눈을 덮은 갈색머리칼을 땀과 함께 넘기며 중얼거렸다.
"헥, 헥. 벌써 이 짓만 수십 번째라고. 말로만 설명을 듣는데 제대로 할 리가 없잖아."
"그럼 두말말고 저거랑 싸우란 말이야. 누구는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알아?"
"응."
남자는 주저없이 손에든 리모컨의 버튼을 꾹 눌렀다. 동굴쪽에서는 보이지않았지만 소녀에게서 몇 m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져 있던 기계가 순간 요동을 치며 달려오더니 수십 개의 팔을 마구 휘두른다.
옷걸이 같이 생겼지만 쇳덩이 팔이 8개나 대신 달려있는 이 기계는 아래쪽의 바퀴가 위아래로 지형에 맞춰 움직여주기때문에 이런 험난한 지형에서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맞춰져 있다. 동굴 내에서 그가 직접 분해한 후, 창살사이로 하나씩 소녀가 받아서 조립한 이 로봇은 일명 '훈련군1호'. 그가 자발적으로 소녀에게 준 최초의 선물일 것이다. 아니, 재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우아아아악! 갑자기 작동시키지 말라고!!"
"역시 이편이 훨씬 편하군."
저 팔들이 비록 두께 100mm가량의 고무와 천으로 꽁꽁 묶여져있다하더라도 쇳덩이는 쇳덩이다. 거기다 속도가 초당 세 번씩 팔을 얼마나 빨리 휘두르는게, 권투선수라도 한대 맞으면 망치로 가격당한것과 흡사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요리조리 피하고있기는 하다만 점점 뒤로 갈 공간이 적어짐에 따라 이따금씩 들어오는 주먹은, 설사 방어했다 해도 너무나 아팠다. 소녀의 신체로도 한 20대정도 맞고나니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리는걸 보고 남자는 정확한 순간에 버튼을 딸각거리며 기계를 정지시킨다.
"거리를 벌려서 도망치려만하지말고 제대로 집중해라. 규칙적인 움직임인만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이,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코피를 흘리며 소녀가 분을 표한다. 허나 남자는 여전히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어떤 훈련이라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우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야?"
"글쎄다."
남자는 눈동자를 감은 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멍한 그의 표정에서 소녀는 단 한번도 기쁨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다른 감정을 찾은 적이 한번도 없다. 오로지 무념무상. 그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남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니 다리로는 굳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충분히 이곳을 나갈 수 있다. 지금 이 훈련은 여길 나가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나간 이후를 위한 훈련이니까."
"나간 이후?"
"그래."
소녀는 남자와 거리를 불과 1m도 내지 않고있기는 했으나,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 상태로, 그렇게 한쪽은 말없이 지켜보고서, 다른 한쪽은 벽에 기댄 채 앉아서 얘기를 하고있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너라는 존재는 이미 너무도 무서운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너의 힘에 질투를 느낌과 동시에 공포를 느끼겠지.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은 이해하질 못하는 것을 배척하고 억압하지. 굴복시키고, 안된다면 죽인다. 그 존재를 말살시켜서 두려움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말이야. 그래. 소녀, 너는 공포가 되버린거다."
"... 아저씨도 공포인 거야?"
"글쎄. 무언가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있고 느끼지않는 사람이 있듯, 나를 다르게 여기는 사람도 있더군. 물론 너무도 적었지만 말이야."
소녀는 그 말에 입을 살짝 벌리며 뭔가 다른 표정으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곧 혀를 차며 이미 의도를 알아차렸다는 듯 말한다.
"착각하지 마라, 꼬마. 다수가 느끼는 공포를 공포로 보지않는 사람은 긴 시간을 들여서 그것을 이해해냈기 때문이다. 공포가 공포라고 불린다는 건 절대 변하지않아."
"하지만 나도 아저씨가 무섭지는 않은걸?"
"....역시 지금의 너를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겠군."
"정말이라니까!"
"그래. 알았다."
품에서 수건을 꺼내고선 남자는 소녀의 얼굴 여기저기의 피를 닦아주었다. 무언가 상당히 어색하긴 하지만 소녀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남자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공포를 공포로 느낀 자보다, 공포라고 인식하지 못한 자를 더욱 경계하라. 그 진실 뒤에 오는 절망감은 누구에게나 끔찍할 테니 말이야."
"그거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
"... 정말 귀여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군."
당시의 그 말을 얼마나 깊이 새겨들었는지는 기억나지가 않는다. 단지, 아마도 이게 그와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본 날일 것이다.
* * *
총알이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검사는 검을 쥐었다. 허나 아무것도 없다. 계속해서 들리는 총성을 청각으로 대강 짐작해보니 약 2km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는 것 같다.
헌데 여기는 어디지? 확실히 그녀 자신은 마차 안에 있기는 하나, 마차는 허허벌판을 달리기보다 어두운 동굴 속에 처박혀있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장소에 문득 긴장을 하며 검에 쥔 손에 더욱 힘을 넣는다. 하지만 그것은 곧 허무하게 풀어졌다.
"아, 일어나셨어요?"
옆에 있던 긴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머릿속에든 기억에 따르면 이 꼬마는 그 소년과 함께 있던 리아라는 아이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검을 코트에 걸린 가죽갈고리에 가로로 끼운 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여긴 어디지?"
"그게.."
꼬마의 얼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낌과 함께 검사는 동굴 속에 있는게 둘뿐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 천을 걷고 밖으로 나오자 수십 명의 아녀자와 아이들이 같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공포로 떠는 모습까지 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총성,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들이 숨어있는 동굴, 구석에 보이는 식량, 옷가지등등의 갖가지 잡상자들. 이 사실들이 검사에게 대강의 진행상황을 전해주었다. 서브머신건의 탄창을 갈아끼우고 소녀는 다시 검을 빼 들었다.
"그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온 것 같군."
그녀의 검끝이 향한 동굴바깥쪽에서 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베레모를 쓴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의 앞에는 덩치가 2m는 족히 넘는 거대한 괴물, 녹색의 늑대인간 같은 것이 돌담을 깨부수며 나타나선 손톱이 달린 팔을 들어올렸다.
"레놀드!"
가까이에 앉아서 마찬가지로 돌담을 벽으로 삼아 총을 쏘아대던 사람 몇몇이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괴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서너 발의 총알로는 놈을 어떻게 저지할 수는 없다. 단지 녀석이 목표를 바꿔서 허공을 찢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사람 두세 명의 상반이 갈리는 일을 초래할 뿐.
"아아아아악!!"
마지막까지 방아쇠를 당기며 쓰러지기보다는 입이 먼저 죽음을 인식하고 베여지는 인간들. 아아 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 그들은 과거 인간이 지상을 지배했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재차 2,3명의 사람을 찢어지자 회색 빛 돌담이 이제는 아주 빨갛게 문신을 새기게 되었다. 총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오로지 거리로 이겨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잡힌 이상 뭔가를 기대하기는 너무도 힘들다. 설령 이 녀석을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동안 다른 놈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얼마나 접근하고있을까.
한명, 한명 그렇게 모두들 종이조각처럼 찢겨나간다. 멀리서야 가능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붙게되니 녀석은 방아쇠를 당길 시간도, 조준할 시간도 주지않았다. 얼마나 사람이 죽었을까. 이윽고 녀석은 다시 레놀드라 불린 소년을 향해 다가와서는 그 끔찍한 손을 들어올렸다.
"아, 아아아아악!!"
파각!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소년의 머리 옆에 있는 돌담을 거대한 손이 무너뜨렸다. 허나 그가 내지른 비명과 달리 목아지가 날아가버린건 괴물쪽! 놈이 쓰러짐과 함께 한 여성의 목소리가 소년에게 들려왔다.
"타이밍이 좋았던 모양이군."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년의 앞에 멈춰섰다. 검은머리의 작은 소녀는 고삐를 쥔 채 마부석에 앉아있었고, 그 커다란 마차 앞에는 갈색머리의 또 다른 여자가 긴 코트를 휘날리며 피 묻은 검을 쥔 채 그를 노려보고있었다.
레놀드, 리아의 오빠는 그녀를 눈앞에 둔 채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걸 느꼈다. 멀리서 총만 쏘아 댄 그였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죽인 건 죽인 것이었기에 공포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서있는 검사는 어쨰서 그 끔찍스러운 괴물보다 훨씬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있느냔 말인가.
"아니, 어떻게 보면 최악의 타이밍일지도."
공포스런 검사가 말하기 무섭게 레놀드가 기대고있던 돌담을 8마리의 괴수들이 넘어서며 나타났다. 애초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싸웠을 때부터 놈들의 수는 약 10마리정도. 그런데 그렇게나 먼 거리에서 쏘았을 떄도 해치운 건 기껏 두 마리정도 였다. 아니, 한 마리는 검사가 없앴으니 그것마저 계산한다면 자신들이 얼마나 놈들에게 있어서 열세적인지, 그리고 놈들의 힘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충분히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 검사는 표정을 한치도 바꾸지않은 채 검을 쥐고있냐는 말인가. 레놀드는 두려웠었다. 그 자신이 죽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을 잃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두려웠다. 그래서 검사를 피난소에 같이 보냈다. 어쩌면 하고 기대는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 갈색머리 여성은 그런 자신과 다른 것일까? 나이도 많아봤자 1,2년밖에 높아보이지 않는데도, 그녀는 이 상황에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스스로가 먼저 그 근원에다가 몸을 내던지느냔 말이다.
푸샥!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던 레놀드의 앞에서 피가 한줄기 터져올랐다. 일단은 분풀이였는지 검사를 둘러싼 녀석 중 하나가 그를 향해 손을 내찔렀는데 그걸 그녀는 단숨에 놓치지않고 냅다잘라버린 것이다. 시뻘건 인간의 피와는 달리 찬란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녹색의 피가 허공에 치솟으며 햇빛에 반짝거리자 그것은 곧바로 전투의 신호가 되었다.
다른 녀석들 모두 일제히 소녀를 향해 덤벼들고 검사는 자기 키만한 검을 아래다 힘껏 찌르고서는 그것을 장대높이뛰기처럼 이용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땅에 박힌 검은 운동에너지로 깨끗이 뽑히고 놈들은 훨씬 더 밀집된 상태로 다다른 현황. 그녀는 오른손으로 검을 바꿔 쥔 후 왼손으로 서브머신건을 꺼내 쏘았다.
어지간한 돌담정도도 단번에 뚫어버리는 이 총알의 파괴력 앞에서는 제아무리 이들이라 할지라도 데미지를 입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소녀자신도 포함해서.
"큭!"
적들의 푸른 피가 마치 분수처럼 솟아오름에 따라 검사의 몸에도 통증이 쌓여갔다. 가뜩이나 무리가 가는 총인데 이번에는 아예 갈대로갈 자세로 쏘아서인지 탄창 안에든 탄환도 반정도 밖에 쓰지 못했다. 실제로는 저것이 상당한 롱 매거진이란 걸 생각하면 많이 쏜 것 같지만 그것은 인간을 상대로일 때나 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쌓아 놀 때로 쌓아 논 피로가 통증과 함께 겹쳐져서인지 왼쪽어깨의 움직임이 부드럽지가 않았다. 어찌됐든 중력이 있는 이상 몸은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날개 없는 생명체로써 최악중의 최악인 상황! 소녀가 아무리 대단하다하지만 공중에서는 노데미지를 받는다는 건 힘들다. 놈들이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그녀는 이빨을 꽉 깨물며 욕설을 지껄였다.
"칫!"
검을 아래쪽으로 휘두르면서 동시에 몸 자체를 물구나무서는 포즈로 바꿔버린다. 팔이 상체에 붙어있기에 똑바른 자세로는 아래쪽에서부터 치솟는 공격을 막아내기가 힘들지만 이렇게 반대로 바꾸면 그 악조건을 약간은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이 검은 길이도 만만치 않게 길고 두꺼운 것이 그야말로 비검. 남은 건 그녀 자신이 거꾸로 된 상태에서도 평상시와 같은 움직임을 내보이는 것뿐이다.
거꾸로 된 자세라면 피가 반대로 쏠리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세상이 뒤집어 보이고 적의 공격또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막아내야하는 만큼, 차라리 정상적일 때가 오히려 나을법한 상황이다. 허나 그녀는 힘껏 몸과 검을 돌리면서 모든 공격을 튕겨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자, 다시 검의 무게를 이용해 몸을 돌려놓고는 착지를 시행한다. 아까 전 총탄비를 퍼부은 공격으로 해치운 건 한 마리. 이제 7마리가 남은 가운데 검사는 뒷걸음질로 도망을 치면서도 서브머신건을 쏜 충격으로 부가된 통증에 이빨을 깨물어 참으며 속으로 외쳤다.
'젠장. 이정도로 움직임을 낼 바에는 그냥 거꾸로 서지말고 싸우는 편이 나았잖아!'
뭐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 공중에서 친구들과 싸울 때는 절대로 머리를 땅으로 향하지 말길 바란다. 그나마 메리트가 있다면 적의 공격이 이쪽한테 전혀 다르게 보이는 만큼, 적한테도 이쪽의 공격도 다르게 보였다는 정도. 요컨대 적이 이쪽보다 싸움에 익숙하지는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요 1년반동안 그녀가 싸워온 횟수는 아마도 잠을 잔 횟수와 맘먹을 만큼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거기다 이정도 도망쳤으면 총을 쏘지않는 이상 리아와 레놀드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녀는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1년반. 그간의 전투는 틀림없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빨을 내밀며 으르렁거리는 이 맹수들이 아까처럼 사방에서 덮치기 전에 이번에는 소녀쪽에서 먼저 발을 내딛었다. 길이 약 160cm, 두께 약 5cm, 검폭은 20cm가 되는 검이 놈들을 향해 달려들어선 아래쪽에서 위로 휘둘려지는 상단공격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상단공격에 있는 힘껏 팔을 굽었다피며 내찌르는 괴수의 하단공격.
두 괴물의 공격이 서로 맞부딪치자 마치 유리가 깨지듯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에 울려퍼졌다. 둘의 각기 다른 공격은 서로를 상쇄시키고 몇걸음 물러서게 만든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소녀쪽에서는 벌써 자세를 바꿔 잡은 후 다시 품으로 파고들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상단공격으로 내리쳤다는 것.
마치 양손으로 모서리를 쥐고 든 종이를 커터 칼로 힘껏 잘라버리듯 깨끗하게 놈의 몸이 좌우로 갈렸다. 그렇게 첫 타겟을 가른 후, 둔탁한 검은 계속해서 휘둘러져서는 땅바닥을 내리쳐서 조종자의 몸을 그녀 자신이 내딛은 발과 함께 멈추게 만들었고, 그 후 곧바로 다음 타겟을 향해 또 한번 휘둘러졌다.
"아, 아아.."
수십m 떨어진 자리에서 리아와 레놀드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눈 한번 깜빡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살기위한 욕망이 이토록이나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그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몸을 두 발짝 더 위험 속에다 내던졌다. 소녀는 매번 이렇게 자신을 내던져서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공포에 오히려 동조하면서 두려움을 제거하는 방식. 이따금씩 말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죽을 때 그들도 죽는다는 것을 뇌 속에 상기시키는 방식.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마음을 다지는 한편, 동시에 그들의 목숨은 죽어봤자 얼마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똑똑히 뇌속에다 새겨논다.
그들 때문에 오히려 이쪽이 필요를 넘어서버린 압박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이용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양심이 견디는 데까지 이용하자. 레놀드가 그녀를 피난소에 보낸 것이 그녀 자신의 안전과 아울러 리아를 보호하기위해 서였다는 것처럼, 맨 처음 그들이 검사를 마차에 함께 태운 것은 또다시 이 괴물들을 만날까봐 두려웠기에 이용했을 거라는 것을 잊지않는다.
그렇다. 잊지않는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모든게 악(惡)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않는다. 악을 처단하기위해서 마음을 칼날보다 더욱 날카롭게 만들어라! 그것이 그녀가 따르는 그의 가르침 중 하나였다.
육신이 더욱 놈들의 피를 뽑아내며 전투를 즐기면 즐길수록, 하나 둘 숨어있던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의 광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검을 양손으로 쥔 채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연속으로 베어버리기. 검을 정반대방향에서부터 시작해서 땅에 꽂은 발을 축으로 삼아 부채꼴모양으로 힘껏 휘둘러내려쳐기. 큰 검의 위력을 잘 이용하면서도 큰 검에 맞지않는 속력으로 소녀는 검을 휘둘렀다.
두 다리로 땅을 차고 뛰어선 상단공격을 시도한다. 그리고 녀석이 그것을 두 팔로 막을 경우에는, 작은 키를 이용하여 땅에 착지한 순간 단번에 뛰어들어 굵은 양다리를 일참! 소녀의 검이기에 가능한 것일 테고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소녀가 검사이었기에 가능한 움직임. 그것이 흙모래 공터에서 녹색빛 핏줄기와 함께 펼쳐졌다.
괴물의 수는 어느 샌가 일곱에서 하나로 줄어들고 소녀 또한 다친 몸을 이끌고 부린 움직임으로 인해 이제는 검에 기대어 설 수 밖에 없게된다. 왼쪽 팔은 저릴 대로 저린게 가만히 있어도 덜덜 떨고있고 육신의 내부는 그전싸움에 당한 상처로 요동을 치고있다. 이대로라면 설령 아무리 검사가 다쳤다 하더라도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뻔하겠지.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아차!'
자신감이 생각보다 많아서 살짝 숨을 돌리고있는 틈에 일은 이미 벌어지고 말았다. 놈들의 조각난 시체들이 뱀처럼 변하더니 스르륵 움직여서는 남은 한마리의 몸에 합쳐져서는 하나의 또 다른 괴물을 탄생시켰다.
허공을 아지랑이 마냥 나풀거리며 이빨을 번뜩이는 수십 마리의 뱀. 그 뱀들의 숙주이자 조금 전만해도 인랑(=늑대인간)의 형태였으나 이제는 덩치가 3m를 넘으며 네 개나 되는 팔을 보유하고있는 새로운 괴수. 수시간 전,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를 반 이상 절단시켜버린 녀석과 또다시 조우하게 되고 말았다. 아니, 그 이상의 녀석과!
"큭!"
입을 쩍 벌려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내세우며 몸에 연결된 뱀들을 화살같은 스피드로 찔러보낸다. 이것들 앞에서는 아무리 그녀가 재빠르다 하더라도 도망치는 것만큼은 불가능하다. 화려한 검풍으로 소녀가 간신히 튕겨내는 가운데, 이번에는 후방에서도 공격이 파고들어왔다.
왼쪽 팔의 살점이 쫙 찢어져서는 코트를 조각내며 시뻘건 피를 내뿌린다. 이걸로 무기교환따위는 생각해볼 수도 없게 되었다. 한 팔로 교체를 했다가는 아주 잘근잘근 놈에게 몸이 찢겨져 버릴 테니까.
더구나 이 놈은 그 조그만 뇌도 진화를 했는지 자신을 점점 본체쪽으로 유인해내고 있다. 지금의 녀석에게 한방 얻어맞았다가는 몸이 단숨에 수십 개로 나눠져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 귀찮은 지렁이 자식들을 어떻게든 빨리 제거하는 수밖에.
소녀는 스스로가 유인해 들어가는 한편 최대한 뱀들도 한쪽 방향으로 몰리게 유도해냈다. 숙주자체의 속도는 그녀에 비해서는 한참 떨어진다. 수시간의 전투 때, 그녀는 녀석이 한 발짝 다가오는 동안 최소 10m이상은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즉각 시도에 들어가라. 검사의 본능이 그렇게 속삭였다.
후방의 녀석들을 튕겨내고 정면의 녀석들이 공격하는 순간 스스로가 숙주쪽을 향해 달려든다. 본체와의 거리는 녀석의 발로는 한 발짝, 허나 놈에게서 뻗어나온 뱀들이 숙주와 이어진 몸뚱이 부분은 이 순간 그녀와 매우 밀착하게 된다.
그렇게 본체쪽으로 다가간 순간 앞발을 땅에다 내찌르며 반작용으로 멈춰서서는 검을 원으로 휘둘러 뱀들의 몸통을 죄다 절단시켜버린다. 동시에 본체가 앞으로 나오는 시간동안 날렵한 몸놀림으로 다시 뒤로 빠져나가면 작전은 대성공. 아아, 만약 녀석의 속도가 그렇게나 빠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퍼억!
몸을 뒤로 튕기는 그 짧은 사이, 녀석은 바로 코앞까지 파고들어왔었다. 그렇게 어깨 위에 달린 두 팔로 소녀의 공중도약을 저지하는 한편, 아래쪽에 달린 팔로는 힘껏 가격을 해댄다.
시속 수십km의 속도로 달려든 자동차와 부닥친 마냥 빙글빙글 돌며 나가떨어지는 소녀. 허벅지의 상처가 다시 벌어져서는 바지아래쪽에다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하지만 엄살을 부릴 수는 없다. 다시 검에 의지한 채 일어서서 소녀는 자신을 향해 한발짝한발짝 놀라운 스피드로 다가오는 청피부의 괴물을 지켜보았다.
'이, 이럴 수가. 설마 스피드마저 이 정도나 향상되었다니... 완벽한 계산실수다. 놈이 더욱 강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니! 완벽한 실수야!!'
육체가 제대로 따라주질 않는만큼 정신또한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다. 설사 트럭에 치인다해도 이정도로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놀라서 혀를 깨물지않았다는 것에 감사는 하고있다만 곧 그것은 후회로 변해버릴 것 같다.
적은 비록 장거리공격수단을 잃었지만 동시에 이쪽의 스피드를 빼앗는데 성공했다. 지능대결에서조차 패배해버리다니! 반쯤은 이제 포기가 마음을 지배하는 가운데 검사의 몸을 무언가가 움켜잡았다.
"리, 리아!"
기척마저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팔을 목에다 매고는 허리를 잡아서 옮겨주려하고 있다. 자신을 살리려하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나 가련한 몸으로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가뜩이나 상상조차 깨뜨릴 공포를 가진 괴물이 접근하는 가운데 이 아이는 여기서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바, 바보냐! 당장 돌아가!!"
"되, 될 꺼에요! 둘이서라면 도망칠 수 있어요!"
"무슨 미친 짓거리야! 지금이라면 아직 기회가 있어! 당장 도망치라고!!"
"싫어요!!"
여전히 검사의 몸은 꿈쩍도 하지않고 검사자신또한 이 애를 내던져버릴 힘이 남아있질않다. 놈과의 거리는 앞으로 약 12m, 앞으로 3,4초면 모든게 끝장나겠지. 검사는 두 눈을 꼭 감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녀를 안았다.
곧 있으면 엄습할 죽음, 하지만 귓가에 들려온건 사신의 목소리가 아닌 수십 발의 총성과 놈의 비명소리다. 눈꺼풀을 열고서 의식을 집중하자 녀석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정지해있는게 보였다. 아니, 저지되어버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총을 들고는 놈을 향해 마구잡이로 쏴대고 있었으니까.
"애들한테만 맡기지 말라고!"
"쏴라! 쏘는 거다!"
기관소총으로 대응하고있다만 저 덩치의 맹수가 그런 무기로 꿈쩍하겠냔 말인가. 거기다 저토록 아무렇게나 쏴대는데 말이다.
"바, 바보같은.."
생각보다 반동이 심하지않으면서도 심한 것이 총이란 것이다. 그런 무기를 적이 보인다고 그냥 무턱대고 쏴버린다면, 아무리 놈이 거대하다한들 한 발짝에 몇m를 거뜬히 달리는 녀석이 두 손 놓고 맞아줄 리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뒤를 잡혀서는 단번에 모두의 몸이 써걱하며 썰렸다. 수 초 만에 귀찮은 파리들을 제압하고서 괴수는 다시 검사와 리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이제 한쪽 팔뿐. 이 다리로는 리아를 데리고 뛸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소녀가 그렇게 죽음을 인식한 순간 괴수의 거대한 발톱이 둘을 향해 덮쳤다.
-집중해.
챠캉!
갑자기 머리 속에 횡하니 울려퍼진 한마디가 소녀의 오른손으로 하여금 검을 휘두르게 해서 그 압박적인 공격을 튕겨내게 만든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아또한 여전히 그녀에게 매달린 상태. 헌데 그녀는 놈의 공격을 튕겨내버렸다.
어째서지. 어떻게 이런 검술이 갑자기 자신에게 가능하단 말인가. 순식간에 높아진 자신의 실력에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는 소녀. 재차 녀석이 이번에는 네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두르자 그녀는 또 다시 눈을 꽉 감고는 리아를 감싸안았다.
-눈을 감고서 어떻게 싸우자는 거야!
"!"
또다. 뇌내자체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것은 선명히 소녀의 의식을 깨우고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리아를 감싸안았던 오른팔이 풀어지면서 검을 들고는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낸다. 아니 측면을 쳐서는 바깥쪽으로 비껴낸다.
그렇게 찔러지는 주먹의 팔 부분을 검으로 쳐서는 공격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조금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공격이 이제는 확실하게 하나 둘 각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간 놈은 균형을 잃었다.
-잡아라! 뚫어버려!!
파각!
바위조각이 깨지는 소리와 흡사한 충격음이 울려퍼지며 소녀의 검이 괴수의 중심부분을 향해 내찔러졌다. 그렇게 후방부에 피가 픽하니 솟아나오는 가운데, 소녀는 검을 힘껏 위로 쳐올렸고 몸이 반쯤 좌우로 갈라져버린 괴물은 괴성을 내지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사방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검사의 몸에 매달려있던 리아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는 완전히 망가져있는 괴수의 시체를 보고 소리쳤다.
"이, 이겼다! 검사님이 이겼다! 이겼다고요!!"
목청껏 내지른 소리가 멀리 있던 사람들의 귀에까지 울려퍼진다. 이어서 소녀가 방방뛰며 내지르는 기쁨에 그들도 다같이 함성을 질러댔다. 리아는 검사의 손을 붙잡으며 기쁨을 만면에 표했다.
"이겼어요, 검사님! 검사님이 이겼다고요!"
"아, 아아. 그래.."
쓰러진 괴수의 시체와 반쯤 또다시 피범벅이 된 자신을 둘러보며 검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방금 전 들린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야 그렇지만 지금 이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에 입각한 가운데 도움을 극도로 호소하자 만들어진 환청이 아니었을까. 검사가 궁금증에 휩싸여 있는 것도 잠시, 그녀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외쳐댔다.
"괴, 굉장해! 이 애가 정말로 쓰러뜨렸어!"
"대단하구나 얘야! 정말 고맙다!"
갑작스런 환영. 기쁨으로 달려드는 사람들.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리아가 먼저 입을 열며 물었다.
"검사님. 검사님은 이름이 뭐에요?"
"이름?"
"네. 이름이요."
갑자기 사람들이 조용해지면서 그녀와 리아를 바라본다. 긴장을 해서였을까.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레카. 유우 나레카."
다시금 사람들의 환호성이 퍼지고 리아는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방금 전 목소리가 울린 것에 대한걸 순간 잊어버리고 혼란을 겪는 소녀. 이 날, 처음으로 그녀는 피를 묻히고서 누군가에게 환영 받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는 걸 느끼고 있을까. 아아, 아마도 느끼고 있을테지.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기억해내고 있을까? 과거 한 남자가 그녀에게 해줬던 말들을.
'착각하지 마라, 꼬마. 다수가 느끼는 공포를 공포로 보지않는 사람은 긴 시간을 들여서 그것을 이해해냈기 때문이다. 공포가 공포라고 불린다는 건 변하지않아.'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분위기에 휩쓸린 가운데 어느덧 그녀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명심해라. 공포를 공포로 느낀 자보다, 공포라고 인식하지 못한 자를 더욱 경계하라.'
소녀의 곁에는 리아라는 꼬마가 있다. 여기저기 엉성하게 관리되 있는 그녀의 갈색머리와 달리, 윤기나는 흑색머리칼을 가진 한 소녀가 그녀의 곁에 있다.
'그 진실 뒤에 오는 절망감은..'
그리고 그녀는 과연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이날 소녀는 처음으로..
'누구에게나 끔찍할 테니 말이야.'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날로부터 1년반, 소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이란 존재를 알려주었다.
[심한의 고독 part 1 finished]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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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te_S
2006.12.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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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 더 히트
2006.12.13 10:22
먹티가 뭐에요 먹티가!(크앙!) 나쁜 루네티씨!(퍽!) 일단 오랜간만이에요우~>_<)//
와하핫, 다음편에서보면 좀더 녀석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근데 쓸때마다 바뀐다는거~)
훈련군1호는 스테인리스비스므리한걸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을수가 있어요!(퍽!)
으윽..그나저나 루네티님외에는 못 읽으실거같네요;; 다음부터는 양을 확실하게 줄여야겠어요..흑흑 -
Lunate_S
2006.12.14 03:12
흐흥, 양을 줄이기 보단, 하나의 편이라도 양을 분담하면 되지 않을까요- 3-!
그리고 훈련군의 대한 질문은, '재료를 어디서 구했을까'였지만, 고쿠씨가 잘못 알아들은 결과, 이상한 대답이─. [도주]
악으로 악을 벤다! 역시 녀석다운 발언일까나, 낄낄.
(그러고 보니, 훈련군 1호는 뭘로 만들었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