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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저기 저 하늘을 봐 [2. DREAMs(1)](수정)

2006.11.14 17:07

크크큭 조회 수:188

"그럼, 소영이가 이 문장을 한번 해석해 볼까?"

정 중앙에서 묵묵히 교과서와 칠판만을 번갈아 쳐다보던 소녀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무나도 넓고 끝이 없는 우주는 우리들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가 될 것이다."

"잘했다. 수준급의 의역이었어. 자리에 앉도록."

드르륵 하고 의자 끄는 소리가 한차례 들리는 것으로 그녀는 클래스메이트들에게 자신이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앞쪽으로 흘러내린 단발머리를 뒤로 넘기며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금 집어 들고는 수업에 집중했다.

"여기서 보이는 that은 진주어 가주어...."

"흐아아아암..."

영어라면 영 관심이 없는 윤형은 하품을 해서 쩍 벌린 입을 영어에게 보이기 싫어서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아무도 자신의 하품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음에도 그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집중을 하려고 해도 외국놈들의 꼬부랑 말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해서 앞에 있는 친구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세명아."

"응?"

"허리좀 펴. 너 그러면 나중에 꼬부랑 할아버지 된다."

".....알았어. 선생님 오시면 깨워줄게."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고 주고받는 낮은 목소리의 대화로 대충 거래를 성립한 윤형은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려고 얼굴을 책상에 갖다댔다.

"........."

그는 마침 떨어진 펜을 주우려고 허리를 돌린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단발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줬는지 구불구불한 머릿결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윤형을 3초정도 바라보더니 홱하고 고개를 돌려 그대로 칠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방금전 그 눈빛은 누가봐도 '너 그렇게 살다간 인생 종친다.'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기에 윤형은 얼굴에 오만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처럼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    ☆    ☆






한소영.
출석번호 38번.
그녀는 교내 수석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은 엄청난 인재였다. 성적은 항상 톱인데다가,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라서 음악시간에는 선생님 대신에 항상 피아노를 도맡아 치기도 했다. 소문으로는 중 3때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서 잠깐이긴 했지만 세간에 관심도 받았다고 했다. 외모도 빼어난 편이라 화영고 내에서는 거의 아이돌급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기도 했다.

그런 그녀도 한가지 흠이 있다면 친구가 없다는 것. 내성적인건지 아니면 나 이외의 사람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성격인건지는 몰라도, 클래스메이트들 그 누구도 수업시간에 발표하는것 이외의 잡담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보통 쉬는시간에는 친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제 봤던 드라마 이야기라던가 최근에 생긴 남자친구이야기 같은걸 할텐데 그녀는 그런 모임에 한번도 눈에 띈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자리인 정 중안의 책상에 틀어박혀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픈 외국서적을 읽고 있는 모습만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걸 묻는 이유가 뭐야?"

교내 넘버원 정보통인 세명에게 소영에 대한걸 물은 윤형은 그의 얘기를 듣고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걔는 내성적인게 아니야."

"그럼?"

"이기적인거지."

세명은 윤형의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렸다.

"확신할 수 있어?"

"응."

윤형은 연습장에 저번에 그리다 만 천체 망원경을 이어서 그리며 세명을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건성 말을 내 뱉었다.

"확실해. 나 같은 인간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고."

"소영이 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 그 누구라도 그렇게 본다고, 네 녀석은."

"말 다했냐?"

"미안, 농담이었어."

들고있던 샤프를 거꾸로 쥐고 세명에게 한차례 협박아닌 협박의 시선을 뿌린 윤형은 곧 샤프를 거두고 다시 망원경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    ☆    ☆






윤형은 천천히 눈을 뜨고 허리를 세워 주변을 둘러봤다.

"........"

왜 아무도 없지...? 점심시간인가. 아닐텐데. 점심시간이라도 북적이는 급식소며 매점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가한 시간을 노리려고 교탁에 있는 컴퓨터로 대전액션 게임을 즐기고 있는 녀석들이 있어야 진정한 점심시간인데. 아니, 그보다 지금 몇시야?

"........."

아! 오늘 수요일! 젠장, 선택이동수업 있는 날이었잖아!!

윤형은 허겁지겁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연습장과 샤프를 옆구리에 끼고 교실 문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점점 가까워 오는 문고리를 잡기 위해 문이 열렸다.

잠깐, 문이 열려? 나 아직 손잡이도 안잡았는....

"우와아아악!"

"꺄아아앗!"

문이 열리며 마침 들어오는 한 사람과 그대로 정면 충돌을 하고 말았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눈을 뜨니 곰돌이가 보였다. 테디베어인가? 뭐야, 곰 치곤 되게 못생겼네.

하는 찰나에 곰돌이가 사라지고 가냘퍼 보이는 양 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직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윤형은 인상을 구기고 혹시나 싶어 시선을 약간 올렸다.

거기엔 역시나 한 소녀가 윤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서야 회전을 시작한 윤형의 머리는 슬슬 자신이 실수 한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미, 미안해! 급해서 그만..."

"......."

그녀는 윤형이 뻗어오는 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와 치마자락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지구과학 선생님이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아까 전 그 상황은 마치 없었던 일인 마냥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미건조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에..."

"그럼."

그녀는 엉덩이를 두어번 털어내더니 제자리에서 휙 돌아서 그대로 지구과학 선택 수업이 있는 1학년 4반 교실로 향했다.








☆    ☆    ☆





-주르르르륵.

라면 국물이며 면이며 바닥에 줄줄 흐르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형은 멍한 머리로 자신의 앞에 놓인 상황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분홍색 운동화를 신은 소녀가 옥상의 난간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간 너머의 저 멀리 솟아있는 산을 바라 보고 있어서 그녀의 표정을 알 순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어?"

윤형은 라면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눈을 한번 비벼봤다.

"어?"

달라지는건 없었다. 난간에 서 있던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봤기에 윤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녀를 마주 봤다.

"한...소영?"

그가 작게 내뱉는 말을 들은건지 듣지 못한건지 그녀는 으레 보여줬던 그 무서우리만치 표정없는 얼굴을 똑같은 코스로 다시 되돌려서 반대편의 산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내 망원경을 망가뜨린 범인이 당신이셨습니까, 한소영 양? 남의 망원경을 망가트려놓고 잘도 학교 생활을 하려고 했었냐? 앙? 여자라고 내가 봐줄 것 같아? 씹어먹어도 속이 편하지 않을거다, 소영아.

윤형은 결국 바닥에 전부 떨어져서 비어버린 컵라면 용기를 바닥에 내팽개 치고 그녀에게 천천히 걸어나갔다.

"소영아. 뭐 하나만 물어....보...자.......아아????"

그녀와의 거리 1m 남짓을 앞두고 그녀는 그야말로 믿기 힘든 광경을 연출 해냈다.

천천히 앞으로 기울어 지는 몸.
한번 더 돌아보는 그녀의 입술에 살짝 묻어나는 미소.
때마침 불어오는 시린 바람.

".......야아!!!!!!!!!!!!!!!!"

그녀는 난간 옥상을 넘어 지면과 만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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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이 안되네요;;
해결방법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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