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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월영각

2006.11.13 11:17

붉은눈물 조회 수:190

<월영각> -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

[ 雪影至愛(설영지애) - 눈의 그림자가 사랑에 미치게 되다. ]

1.

눈이 내렸었나.. 눈이 내렸었나..그때

붉은 눈이 한숨이 되어 내렸었나..그때

하이얀 내 마음이 그대로 인해 붉게 변한다 해도

당신께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붉은 꽃으로 짓이겨지겠나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의 끝에는 시린 눈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어린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눈보다 더 새하얀 천에 쌓여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의 빛도 칠해져 있지 않았다.
살이 에이는 듯한 추위였지만,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 속에 아이는 점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

월영각 그곳은 조선시대 최고의 기방으로서 고위 관리들만이 드나들 수 있으며, 학식과 가무 그리고 미모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기녀를 양성해내는 기생들의 학교와 같은 곳이었다.

장녹수와 같은 야망도 지니고 있으면서 왕조차 건들이지 못했던 이 월영각은 모든 사내를 자신들의 품에 안아 모든 일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여인들의 거처였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이름을 따 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춘향각과 여름의 싱그러움을 가득 품은 하향각, 가을의 차가움과 풍요로움을 머금은 추향각과 겨울의 차가움과 그윽함을 담아둔 동향각.

이 네 곳의 안채와 그 중심부에 있는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월영각까지 이곳은 말 그대로 집 안에 자연을 담아둔 아름다운 곳이었다.

***

탁탁탁

경쾌하게 대나무 막대기가 그 끝을 떨었다.
소리에 놀란 몇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러 아이들 사이로 홍조를 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홍조를 띈 한복에 차가운 눈동자

아이는 붉은 빛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설화가 일어나 이야기 해보아라.”

병풍을 등지고 앉아있던, 고귀한 모습의 한 여인은 설화라 부른 아이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모름지기 월영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무에 능통하여야 하며, 자신의 사내를 제대로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설화라 불린 아이는 그 모습만큼이나 붉은 기운을 토해내고 있었다. 여인은 조용히 이 아이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니라. 모두들 물러가고, 매화, 풍화, 우화, 설화만 남도록 해라.”

여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네 명의 아이는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네 명의 아이는 서로 품고 있는 기운이 달랐기에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서로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여인은 잠시 아이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우리 영월관의 방침을 알고 있느냐?”

여인의 질문에 눈이 부시게 하얀 한복을 입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득 뽐내고 있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매 정월이 되면, 자신의 사내를 고르는 축제인 월흔제가 열립니다. 그 전에 영월관의 네 개의 안채의 주인이 결정됩니다.”

아이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여인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잘 알고 있구나. 매화의 말대로 보름 후면, 월흔제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 너희들을 남게 한 것이다. 너희는 가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당찬 기운이 가득하니 네 개의 안채 주인자격이 충분하다고 보여 졌다. 하여, 각 주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너희를 각 안채의 봉오리로 지정할 터이니 각별히 행동을 주의하도록 하여라.”

여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 명의 아이들의 얼굴에는 작은 그늘이 생겼다.

네 개의 안채의 주인이라는 자리는 어린소녀들이 감당해 내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여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매화는 그 성격이 온화하며, 하얀 기운이 가득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너는 지금부터 춘향각으로 건너가 봉오리가 되도록 하여라. 또한 풍화는 그 성격이 부드러우며, 신선하고 푸르른 기운이 가득하다고 판단되어졌다. 그리하여 너는 지금부터 하향각의 봉오리가 될 것이다. 또한, 우화는 그 성격이 변덕스럽지만, 그 변덕스러움이 사람의 마음을 부릴 수 있는 기술이며, 쌀쌀맞은 찬 기운이 느껴진다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너는 지금부터 추향각으로 건너가 그곳의 봉오리로써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화는 동향각으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너의 성격은 찬 서리가 내리는 것 마냥 날카롭고 차갑기 그지없다. 자신의 사내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기질을 가졌으니, 그곳에서 봉오리로써의 역할을 잘해내리라 생각된다. 너희 넷은 보름 뒤인 월흔제에서 봉오리로서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야 할 것이다.”

여인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네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가벼운 목례를 했다. 여인은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기세를 보였다. 아이들은 같은 동작으로 자세를 바꾼 뒤,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끝 마쳤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이야기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신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만들었는데, 눈은 뜨지 못하게 한 채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신의 장난이기도 하거니와 어느 쪽이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욕망을 실현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여자는 서쪽 끝에 있는 동굴에 남자는 동쪽 끝에 있는 동굴에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 지나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길 한가운데 바짝 마른 나뭇잎을 쌓아두었다. 어느 날 여자가 날 파리와 같은 곤충의 소리로 팔을 휘젓다가 손톱으로 자신의 눈을 긁게 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자신이 볼 수 없었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 한가운데 나뭇잎이 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로 나뭇잎을 적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면서 남자가 살고 있는 동쪽 끝의 동굴에 도착하였다. 여자는 손톱으로 남자의 눈도 뜨게 하였다. 그리고는 즐거운 한때를 보낸 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남자에게 밤에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었다. 남자는 여자가 보고 싶어 신의 눈을 피해 밤에 그 길을 지나가다 나뭇잎을 밟고 지나갔다. 그로인해 신은 남자가 먼저 지나갔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평생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너희들이 얻어야 하는 주제는 무엇이냐?”

여인의 긴 이야기가 끝나고, 그 이야기의 끝을 장식하는 질문에 네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시 후, 홍조를 띈 한복을 입고 있던 아이가 다소곳이 손을 들었다. 여인은 설화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수업중 제가 대답한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됩니다. 월영각의 네 주인으로서 저희는 자신의 사내를 품어낼 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현명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요.”

설화는 당찬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설화의 대답을 듣고 있던 여인은 그런 설화의 모습에 감탄하였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인은 네 아이를 각자 자신의 안채로 돌아가게 물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곁을 지키고 서있던 여인에게 입을 열었다.

“난이야. 저 아이는 장차 큰 아이가 될 것이다. 이 월영각을 빛낼 아이가 들어온 게지. 너는 내 뒤를 이어 월영각의 주인이 될 테지만, 저 아이는 자신의 사내를 품어 이 시대를 품어낼 아이인 게야.”

“처음 저 아이를 데려왔을 때부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니.”

“그랬었지, 처음 너를 데려왔을 때는 향기로운 난초를 보는 듯 했다. 그리하여 너의 이름을 난이라고 짓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저 아이는 처음 데려왔을 때, 차가운 눈의 내음이 났단다. 내 뒤를 잇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저 아이의 기운이 너무 강하였지. 월영각에 두기엔 아까운 아이야. 쯧쯧.”

어머니라 불린 여인과 그 옆을 지키고 서 있던 난이. 이 두 여인은 네 아이가 나간 문을 바라보면서 침묵을 유지해 나갔다.


***

월영각.
달의 그림자가 미치어 그 고매한 기운을 감추고 있는 그곳.

비록 기방이기는 하나 그 규모는 경복궁의 1/3만하고, 조선전기부터 그 세력을 널리 떨치어 모든 남자들을 사로잡았던 매혹의 굴.

달의 그림자로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한 그곳은 부산의 완월동(玩月洞)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본래 그곳은 부산 토속의 말을 사용해야하나, 정치적 색채가 강한 곳이었기에 서울말을 가르치고 배우며 지방이되 지방이 아닌 곳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기생은 해어화(解語花)라 하여, 본래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 불렀다. 그들을 재주는 팔되 몸은 절대로 팔지 않는 "1패"와 은근히 몸을 팔기도 하는 "2패", 그리고 몸을 주로 파는 "3패" 세 종류의 기생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월영각은 해어화(解語花)로서의 가르침과 함께 재주를 익히고, 모든 분야에 두루 능통하도록 배움을 받는 곳이었다.

앞에 보이는 바다의 잔잔함과 탁 트인 푸름을 근처에 있는 자갈치시장에서의 소박한 서민들의 삶을 뒤에 등지고 있는 천마산의 싱그러움을 배워 나가는 곳인 월영각.

바로 그곳에서 조선시대와 같이 과거의 기생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아름다운 한 이야기가 비눗방울을 타고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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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같은 부분이랄까요..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안녕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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