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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저기 저 하늘을 봐 [1. MEETs(3)]

2006.11.05 10:29

크크큭 조회 수:173

이 아파트 옥상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는건 아니었다. 평소에는 거의 공터 취급 하다 시피 하다가 어쩌다 한번 큰 세탁물,그러니까 이불빨래라던지 침대커버같은걸 햇볓 쨍쨍한 날에 널어놓기 위해 한 두사람 올라오는게 전부였다. 게다가 요즘은 날씨가 점점 추워져 이불빨래도 각자의 집 베란다에 널어놓은게 대부분이라 이 곳은 말 그대로 자신만의 비밀 아지트가 되는거였는데.



나만의 공간이었는데.



처참히 널부러진 망원경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신발끈을 풀어헤친 운동화는 마치 자신을 향해 혀를 빼꼼히 내물고 조롱하는 듯 보였다.



여기가 왜 너만의 공간이니? 아무리 인적이 드물다곤 해도 아파트 옥상은 타인들도 거리낌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라구. 그렇게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니까 이런 비싼 망원경 따위를 테러당하는거야. 좀 더 깊게 생각하란



"닥쳐!"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발에 걷어차인 운동화는 바닥을 처참히 뒹굴었다. 벼랑끝에서 굴러떨어지는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한참을 굴러다니던 운동화는 곧 자리에서 멈추고 다시금 윤형을 바라봤다.



"씨발."



잘 하지도 않던 욕이 튀어나왔다. 화풀이의 대상이 범인이 아니라 조그만 운동화에 불과하단 사실이 너무 자존심 상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멍청했던거니?



"후우..."



윤형은 옥상의 난간에 주저앉아 등을 맞댔다. 차가운 계절, 벽의 한기가 그대로 등으로 스며들어 척추까지 시렵게 만들었다. 내뿜는 입김마저도 차가운 웃음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은 달도 없고 구름도 없어서 천체관측하기 딱 좋은 날인데.



"유성도 봤는데..."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엉망이 된 망원경을 주섬주섬 챙겨 들기 시작했다.





















































-일어나세요~ 아침이에



-퍽.



"헉!"



항상 이런식으로 잠을 깬다. 듣기 거북한 여자 목소리가 한문장을 채 말하기도 전에 신경질적으로 알람을 때린다. 그리고 그 아픔에 잠을 깨는 매일. 윤형의 아침은 항상 아픔으로 시작한다.



"일어났니?"



"네."



어머니의 목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조그맣게 새어들어오는것을 느끼고는, 대충 얼버무리며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확실히 겨울이라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데도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김밥말듯 자신의 몸을 돌돌만 윤형은 그대로 다시 잠에 빠졌다.



"윤형아."



"네..."



"8시다."



"헉!"



이걸로 '매일 같은 아침풍경 1년' 이라는 대 기록을 수립했다. 항상 마무리는 8시에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나즈막한 목소리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버지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윤형의 귀를 때렸고, 윤형은 늘 그랬듯 깜짝 놀라며 이불을 휙 재껴 던져버리고 후다닥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허겁지겁 이빨을 닦고 머리를 감은 뒤에 젖은 머리를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놓은 교복에 손을 갖다댔다.



"윤형아, 아침은..."



"늦었어요!"



이걸로 '매일 같은 아침 대사 1년' 이라는 기록도 갱신했다. 30초 라는 놀라운 시간으로 교복 입는 시간을 단축한 윤형은 깽깽발로 양말을 신는데서 고전했다. 결국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그는 개의치않고 계속해서 양말 신는 행위를 계속 이어갔다.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오..."



-쾅.



험악한 소리가 한차례 울리고 윤형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는 1을 가리키고 있었다. 3초간 뒤통수를 벅벅 긁던 윤형은 곧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1층에서 부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따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이대로 계단을 향해 1층까지 전속력으로 뜀박질을 시작하는거야.



그의 노력 덕분에 엘리베이터보다 빠르게 1층에 도착할 수는 있었다.



"허억...허억..."



하지만 문제는 학교까지 뛰어갈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



-뚜루루루루..



"여보세요? 거기 콜택시죠? 여기..."



결국 이렇게 될거 뭐하러 그 아침에 난리를 피웠는지 모르겠다.

















☆    ☆    ☆















HR시간은 8시 30분이었지만 나는 콜택시의 도움으로 20분이나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교실에는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 두세놈 책상에 달라붙어서 늘 그랬듯 수학이며 영어 문제집을 붙잡고 아침부터 힘겨운 전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필통과 연습장만 들어있는 텅빈 가방을 가장 뒷자리에 놔두고 교실을 벗어났다.



"윤형아."



"아, 정동수 이 자식. 왠일로 이렇게 일찍 학교를 다 나오냐."



교실 문을 벗어나자마나 맞딱뜨린건 전교에서 개그맨이라고 소문난 동수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었다. 항상 HR시작하기 1분전, 심하게는 1초전에 아슬아슬하게 담임에게 걸리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왠일로 아슬아슬 대기록을 무참히 박살내고야 말았다. 동수는 입가에 만면의 미소를 띄우고 윤형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렸다.



"어제 서버가 폭파하는 바람에 일찍 잤거든."



무슨 말인고 하니 몇년째 하던 온라인게임 서버가 폭주하는 바람에 꽤나 장시간동안 서버점검을 했다는 말이었다. 윤형은 콧방귀를 뀌며 동수가 했던 행동 그대로를 그에게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고작 이유라는게 그거냐?"



"고작이라니! 어제가 이벤트 마지막이었다고! 덕분에 시가 3000만골드를 육박하는 희귀 아이템을 구경할 권리를 날려버렸어! 홈페이지에 관리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무성의한 답변만이 내 가슴을 치고 달아나더라."



그는 흥분해서 침을 한냄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아아, 알았어." 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시간을 봤다.



AM 08:20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등교를 위한 아이들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클래스안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각각 HR 시작전에 뭐라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뭔가를 끄적이는 놈들로 넘쳐났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교실 앞문이 열리며 옆구리에 출석부를 끼고 왼손에 커피를 담은 머그컵을 든 담임이 들어왔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 하루도 열심히 지내보자."



안경을 껴서 그런지 상당히 지적이게 보이는 담임. 항상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그의 모습때문에 별명도 젠틀맨이었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런 별명이 나온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클래스의 남자건 여자건 할 것 없이 모두 그를 잘 믿고 따르는 편이었다. 윤형 역시 그의 신사다운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    ☆    ☆











수업시간 내내 망원경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분홍색 줄무늬 운동화의 정체는 뭘까. 급한 나머지 벗겨진 운동화를 놔두고 달아난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아. 주변엔 아무도 없었을거고, 아무리 급해도 벗겨진 운동화를 버리고 도망갔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망원경이 망가지고 범인이 어찌할바를 몰라 도망가려 하는데 마침 내가 들어왔고, 그 긴박한 상황에서 운동화가 벗겨진거라면?



"아아!"



"그래, 윤형아. 이 문제 답 알겠니?"



"그런거였어!"



"그런식으로 알겠다고 말만 하지말고 나와서 풀어봐."



"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윤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있었다. 황금타이밍이라고 해야할까. 그때 마침 물리는 학생들에게 이 문제의 답을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던 찰나였다. 윤형은 그것도 모르고 연신 감탄사만 내뱉고 있다가 물리의 부름이 퍼뜩 정신이 든 것이었다. 물리는 한번 씨익 웃어보이더니 윤형에게 다가갔다.



"나가."



"네?"



"나가라고."



"네..."



물리는 자신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특히 싫어한다. 모든 선생들이 다 그런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물리만큼은 그런 성향이 아주 강하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수업도중에 재채기만 해도 극한의 히스테리를 부리는 성격이니 말 다한거 아닐까.



윤형은 변명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교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어차피 한번 쫓겨나면 다시는 불러들이지 않는 선생이고, 다음시간이 점심시간이기도 하니까 매점이나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발걸음을 매점으로 돌렸다.























"아줌마, 여기 1000원요."



그는 컵라면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 150원으로 매점에서만 파는 특제 찐만두를 하나 집어 먹었다. 매점에는 딱히 앉아서 먹을만한 공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수업중인 교실에 들어가서 천연덕스럽게 라면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먹기위해 많이 모이는 곳은 옥상이었다. 윤형은 컵라면에 물을 담아서 조심스럽게 학교의 본관 계단을 밟았다. 혹시나 돌아다닐 선생님들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수업도중에 컵라면을 사들고 교실 복도를 괜히 어슬렁거리다가 10분일찍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선생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라면이고 뭐고 그날 점심시간은 다 날아갈게 뻔하니까. 윤형은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폈다.



"좋아."



그는 잽싸게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보통 학교는 옥상을 폐쇠하기 마련인데, 사립 화영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자율을 존중해준다는 의미로 옥상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다른건 몰라도 이건 참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옥상의 문을 열었다.



".........."



세찬 바람이 한차례 불어오고, 윤형은 옷깃을 여미며 바람을 막는데 충실했다.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라면이나 먹어야한다는 사실이 참 처량하기도 했지만, 이미 물까지 넣은 라면을 버리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기에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근처의 아무 벤치에나 앉아서 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아니, 그는 뚜껑을 열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는 멍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소녀의 신발은 분홍색 줄무늬 운동화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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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큼은 제대로 끝내보고싶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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