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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저기 저 하늘을 봐[1. MEETs(2)]

2006.10.17 15:27

크크큭 조회 수:240

윤형을 중심으로 주변 풍경은 스피디하게 진행되었다. 사사삭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흘러가는 주위의 건물들 때문에 약간은 어지러운 느낌도 받았지만 지금 그런걸 신경쓸 때냐! 아직 가게까지는 이렇게 힘껏 달려서라도 5분이나 남았는데. 게다가 시간은 이미 10분 오버. 3분만 늦어도 닦달을 하다못해 일 하는 내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가게 실장이라는 직분을 가진 양정우 씨의 얼굴을 생각하니 달리고 있는 동안에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니, 등골이 오싹해지는건 단지 맞부딪히는 바람이 차가워서일까.
확실히 요즘 들어서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분명 망원경을 설치할 때 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산들바람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접 부는 바람을 역행하면서 달리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눈을 때려올 때마다 방금한 생각은 엄청 바보스러웠다는 말을 곰 씹으며 시내를 내달렸다.

-땡그랑.

"죄, 죄송합니다!"

"어이쿠, 장윤형씨. 15분이나 늦었네. 뭐 하다가 늦었어?"

예상했던 대로 가게의 주방 안에서 학창시절 꽤나 깐죽거렸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후다닥 가게의 홀을 지나 식기가 놓여있는 뒷공간에서 앞치마를 꺼내 급하게 묶으며 실장이 있을 주방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15분이나 늦은 윤형이가 인사를 하러 왔구나."

"에, 예에..."

15분이나 늦었으니 어쩌랴. 그저 뒷 말을 흐린 채 미안하다는 듯 웃을 수 밖에. 윤형은 앞치마를 둘러 맬 때 부터 긁고있던 머리를 연신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뭘 웃어 임마. 빨리 청소하고 나가서 수족관 열어."

"네? 네..."

실장은 특유의 그 목소리로 윤형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윤형은 긁던 머리를 슬그머니 내리며 조용히 가게를 나가 수족관을 열고 간판의 불을 켰다.

'초밥집'

"푸훗."

여기서 일 한지가 한달이 다 되어가는 윤형도 간판 불을 켤 때마다 웃곤 한다. 가게 이름이 '초밥집'이라니. 점심 메뉴를 뭘로 할까 매일을 고민하는 한 무리가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은 뭘로 먹을까 라는 안건을 내 뱉은 친구A 에게 B가 '초밥집'이라고 대답을 한다. C는 '그러니까 어디 초밥집?' 이라는 말만 연거푸 내뱉고 있고, A와 B는 그게 진짜 가게 이름인지 아닌지를 대놓고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티격태격 하고 있는거다.

"풋."

청승이라고 생각한다.
버젓이 있는 음식집 이름을 가지고 진짜니 가짜니 따지는 것도 웃길 뿐더러, 옆에서는 그게 가게 이름인줄도 모르고 끈질기게 친구 A,B에게 물어보고 있는 상황이라니.

"수족관 문 열었으면 들어와서 청소해 짜샤."

"아, 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웃긴 간판을 보고 잠시 망상을 하던 윤형은 실장의 호통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가게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다음주에 보자."

"안녕히 계세요."

늦게까지 일하게 될 가게 식구들에게 먼저 작별의 인사를 고한다. 윤형은 그대로 몸을 틀어 또다시 집에서 왔을때 처럼 집까지 뛰어갔다. 낮에 뛰었던 것이 시간 약속에 대한 압박 때문에 어쩔수 없이 뛰었던 거라면, 이번은 달랐다. 지금 가면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기대감과 더불어 망원경은 잘 있을까 하는 불안함. 그 둘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지금 윤형에게는 뛸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해 또한 짧아졌다. 한창 바쁠 시간에 저무는 해는 퇴근 할 때 쯤에는 기어코 모습을 감춰버리고 달에게 그 자리를 내 줘 버린다. 윤형의 발 움직임은 점점 잦아들더니 이윽고 뛸 때와는 다른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든다.
오늘은 뉴스를 보고 후다닥 망원경을 설치 했다.
집에 갈 때까지 결코 기다릴 수 없다.
지금이라도 오리온이 잘 있는지, 혹시나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물건인지 확인해 봐야지.
그리고 오리온이 있을 법한 자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어...?"

분명히 뭔가 반짝 했는데.

"........"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오리온 좌를 뚫어져라 살펴봤다.

반짝하던 물건은 3cm가량의 꼬리를 달고 다시 한번 반짝.

"유, 유성이다!"

그, 그렇지! 소원! 소원을 빌어야해!
저기, 그러니까, 에, NASA에 취직할 수 있게 해줘!
크리스마스 전까지 여자친구가 생기게 해줘!
랍스타를 먹을 수 있게 해줘!
그리고, 그리고...

하곤 윤형은 오른쪽 눈을 슬쩍 떴다.
반짝거리던 '그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유성을 대신하고 있는 오리온 좌는 윤형을 향해 몽둥이를 치켜들고 '그런 유치한 소원 따위가 이뤄질것 같으냐!' 라고 외치는 듯 싶었다. 윤형은 한숨을 내쉬며 오리온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너도 내가 비는 소원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니?"

"........."

대답할 리가 없는 오리온이었지만, 윤형은 피식 웃기만 했다.

"그럼, 다시 힘내서 뛰어볼까."

차가운 밤바람으로 피곤함과 함께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며 윤형은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집에 도착한 윤형은 씻는 것도 뒤로 미뤄두고 곧바로 옥상으로 향했다. '17층 입니다.' 라는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건 말건 문이 열리자마자 재빠른 움직임으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보다 낮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할 수는 없었고, 결국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자체 라이트 기능에 의지해 망원경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윤형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들이밀며 망원경이 있을 법한 곳을 돌아다녔다.

망원경은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뭐, 뭐야 이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리 파편들.
이런데서 유리창 같은거 깨는 장난, 나쁜짓인데.
그리고 이 구부러진 삼각대는 도대체 뭐야? 누가 여기서 사진이라도 찍으려다가 무심결에 걸려 넘어진 게 마침 삼각대였던거야?
에에, 이 경통은 내 망원경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상표까지 똑같잖아?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건지 원. 완전히 찌그러져서 도저히 쓸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이거?

"내 망원경! 도대체 어떤 자식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몇년이 지나든 재수가 없는 운세는 어쩔수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3년전에는 애지중지하던 자전거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고, 재작년에는 집에 까지 도둑이 들어서 몇년을 동고동락한 컴퓨터를 들고 갔었다. 작년 일은 너무나도 기가 차서 말을 하기엔 입이 아플정도였다. 내가 무심코 던진 테니스공에 놀이터에서 잘 놀던 꼬맹이 하나가 맞고 쓰러져서 거품을 물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테니스공을 맞아야 거품을 물고 쓰러질 수가 있는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꼬맹이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펴봤다. 후에 공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발작이라는걸 알았지만 그땐 정말 심장마비걸려 돌아가시는줄만 알았다.

그리고 올해는 세달치 용돈에 해당하는 돈을 탈탈 털어 장만한 망원경의 살해사건이었다. 윤형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살해사건의 처참한 광경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뭐, 뭐지...?"

망원경의 파편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던 윤형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어떤 물건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멍한 머리를 일 깨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 물건을 손으로 집어든다.

"운동...화?"

그건.
여자애들이나 신을법한 조그만 사이즈의 운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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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서 미뤄둔 작품들을 하나 둘씩 궤도에 올리는 크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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