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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집앞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아, 아니~ 괜찮아.”

집까지 데려다 주려는 격연의 호의까지 무시하면서, 나는 이 조폭들만 탈것 같은 비싸보이는 차에서 내렸다. 목적지에는 거의 다왔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장림동의 예량(霓魎)마을에 도착할수 있을것이다. 내가 살던집은 바로 그곳에 있다.

“가는건가요?”

자동차 창문에 매달려서 유감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희연이에게 나는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에도 만날수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마. 알았지?”
“우응~”

꿍해있는 표정으로 우물거린다.
이게 꽤 귀여워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뭐… 참아야겠지.

“그럼 송월씨, 주소라도 가르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아, 주소? 그러니까…”

가방에서 펜과 메모지를 꺼내어, 주소를 적어 격연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이후에 한번 찾아뵐게요.”
“응. 그땐 수면가스가 아니라 꼭 맛있는거 사와야해.”

네, 하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그의 어깨 위엔… 여전히 그 속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희연아. 언니 먼저 가봐야겠어. 다음에 또 만나면, 내가 도미로피자 사줄게. 약속이다!”
“응? 정말? 약속이에요 언니!”

그렇게 새끼손가락 걸고 복사에 코팅까지 한 이 약속은, 분명 꼭 지켜지리라 생각된다. 왜냐면 이 아이의 성격이라면… 내일 당장 우리집으로 찾아올수도 있는 노릇이니 말이다. 뭐, 별일 없다는 전제하겠지만.

“아… 송월씨. 이건 제 휴대전화 번호. 무슨일 생기면 연락 주세요.”
“응. 알았어. 핀치일땐 꼭 연락할게!”
“네. 조심히가세요.”
“언니 잘가~ 다음에 봐요~”

창 밖으로 손 흔들며 가는 두녀석. 그리고 검은 차. 그것은 여름 햇살에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길을 밟으면서, 노을에 져가고 있었다.

저녁시간.
격연과 희연이 탄 자동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였다. 한창 노을이 질 시간… 붉은 하늘이 머리위를 뒤덮었을 때,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아~ 그냥 이격연 그사람 차타고 집까지 갈걸 그랬나~”

여기서 예량마을까지 걸을려면 몇시간을 걸릴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차에서 내린 이유는… 뭐, 신세지고싶지 않아서랄까나. 아무리 그래도 수면가스 먹여서 날 납치한 녀석들이라고! 음! 아직 확실히 신용할수 없단 말이야!

아스팔트길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도로. 그저 주위는 수풀로 된 언덕들 뿐이였다. 인기척이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수풀 저 멀리, 지금쯤 격연이 가고있을 장림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길로 쭉 가다보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타고가야겠어.”

아까 차타고 오면서 이쪽으로 지나는 마을버스를 하나 발견했으니, 그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걸 타고가면 분명 예량마을까지 갈수있다. 뭐, 몇시간씩이나 걸을 수는 없으니…

터벅터벅, 발걸음이 울리는 소리.
초여름, 저녁매미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때, 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다.
인기척 하나 없다.
그저 있는 것은 저녁매미의 울음소리. 그리고 나 자신의 숨소리. 그리고 기웃기웃 해가 져가는 소리. 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는 일상의 소리에서… 난 불쾌함을 느꼈다.

“뭐야…”

기분나빠…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터벅터벅, 분명 이건 내 발소리다.
터벅터벅, 분명 이 발소리는 내 발걸음과 동시에 들리고 있다.
터벅터벅, 아스팔트가 뜨겁다.
터벅터벅, 그래. 그것은 노을이 질 무렵이다.
터벅터벅, 황혼이 대지를 덮었을때의 일이였다. 그런데……


지이이이이익.        


…이건, 무슨 소리지?

기분나쁜 소리다. 절대로 일상의 울음이 아니였다. 저녁매미의 울음소리도 아니다. 나의 숨소리도 아니다. 방금전까지 들려오는 발소리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그래. 마치 그것은 그것과도 같았다. 그것과도 비슷했다. 뼈에서 살코기를 발라내는 소리… 그래. 덜 익은 고기를 찢는 소리. 그리고, 피비린내!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바닥을 박찬다. 아까의 발소리는 무시한다. 달리는것이 먼저다. 이 피비린내가 나는 곳으로 달린다. 신기해. 다리는 저절로 움직여졌다. 그래, 목적지로 저절로 움직여졌다.
짙어지는 냄새. 시끄러운 소리. 내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숨소리. 그리고, 강한 사념…

소리가 들리는 수풀에 다달았을 때, 난 얼굴을 찡그림과 동시에 오만 물음표를 다뛰어 냈다. 수풀속에 숨어있는 인영(人影)… 그리고 찔려오는 피비린내. 그 수풀속은… 자그만한 지옥이였다.

“누, 누구냐!”

무언가를 말해야되는데, 딱히 할말도 없었다. 아니, 말이 잘 나올수도 없었다. 멋대로 지껄이는 단어… 난 천천히 수풀속으로 그 발을 들이고 있었다.

인영(人影)은 아무말도 하질 않고, 뒤도 돌아보질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주물럭, 주물럭. 부시럭 부시럭. 무언가 비닐봉지에 담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기분좋은 소리가 아니였다. 그리고, 그런 불쾌함이 지속될 때… 내 눈은 또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인영(人影)의 어깨위엔 글씨가 있었다. 그래… 문자. 인간의 진실이라고 부르는 그것. 하지만, 그것은 왠지… 복잡하게 얽혀져 있었다. 여러가지 문자와 문장이 얽혀져,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었다. 알아볼수 없는 단어의 외침… 그래, 그것은 완벽한 광기였다.
핸드백의 휴대전화에 손이 간다. 이건, 내가 어찌할수 있는게 아니야… 일단은 경찰에게 신고를 해서… 라고 생각했을즈음.

“크──”

…희열에 차 웃는 소리.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광기밖에 채워지지 않은 이 인간이라는 것의 진실. 그리고 눈앞의 붉은지옥. 흔들리는 눈동자. 떨리는 손길. 내가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을 때.

“캬악!”

인영(人影)이라고 불렀던 새카만 그것은, 짐승의 목소리가 되어 날 덮쳤다.




- 5 -



“정신 들었어요?”
“아…”

귀에익은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꽤 잘꾸며진 방… 푹신푹신한 침대가 내 온몸을 감싸고 있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이곳이 부잣집이라는 것을 내게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그야, 나도 이래뵈도 부잣집 딸이였으니까…

“여긴…”

머리가 아프다. 정신이 없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내가 왜 이런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방금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지금 막 고개를 쳐들어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 일순간 낯익은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격연…”
“네. 송월씨. 괜찮으세요?”
“아, 응… 머리가 쪼끔 아픈 것 말고는 몸에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왜 여기있지?”

내 물음에, 그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고선 다시 말했다.

“기억이 없으신건가요?”
“아니, 잠시만… 나 분명 너희들이랑 헤어지고 나서…”

버스를 탈려고 하다가… 아.

“그사람! 그사람은 어떻게 됐어!”
“그사람이라니…”
“나 봤다고! 그사람 분명 그 수풀속에서 이상한걸 하고있었어. 그거 있잖아? 살인! 그런걸 하고 있었다니까! 분명 이상한 비린내 나는건 그거 분명히 피비린내……”

…를.
피비린내가 어떤 냄새인지를… 어째서 내가 알고있는거지?

“아, 알았어요. 진정해요 송월씨. 그러니까… 이걸 보세요. 오늘 조간신문이에요.”

격연이 신문뭉치를 건네주자, 난 거리낌없이 그 신문뭉치를 받았다.
그리고 1면에 대문짝 만하게 붙여져있는 그것은… 분명.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사건. 지금 그 신문의 1면은 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친절하게도, 첫번째 희생자부터, 바로 어제 송월씨가 본 희생양의 간단한 정보까지 모두 나와있군요.”
“어제…? 잠시만, 그렇다면…”

오늘은…

“네. 송월씨를 어제 그 수풀속에서 발견한건 순찰중인 경찰이였습니다. 그 후 곧바로 이쪽으로 연락이 왔고, 저희가 송월씨를 모시게 된거죠. 그리고, 지금은 송월씨가 쓰러진 뒤 그 다음날 아침입니다.”
“그럼, 어제 내가 본 장면은…”
“아무래도,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사건의… 살해현장이였겠죠.”

쿵, 하고.
두통이 없어지는것과 동시에 새롭게 어지러움증이 몰려왔다. 그럼, 뭐야… 내가 어제 본 그것은 확실한 살해현장이였고, 내가 어제 본 그 그림자는 범인이였다… 그리고 난, 그 범인에게 습격받았지만 이렇게 살아있다……

신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큼지막하게 ‘부산 연쇄 살인사건의 9번째 희생양 발견!!’이라고 적혀있었다.

“언론도 정말… 피해자를 희생양이라고 표현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들인지 모르겠군요.”

그 말에는 질책이 서려있었지만, 난 그런걸 무시하고 기사의 내용을 내려읽어 갔다.

부산에서 일어나는 어린이 연쇄 살인극.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9명.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지, 어쩌면 더 많은 어린이가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다.
신기하게도 그 현장에는 증거라고 할수 있는 증거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그저 피투성이가 된 어린 여자아이의 시체와 유품만이 싸늘하게 식어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건이 현재 사회의 이슈가 되고있는 이유는… 외국의 연쇄살인범과 같은 독특하고 미스터리한 살해방법에 있는듯 하다.
발견된 여자아이들의 연령대는 대략 9세~13세까지의 아이들. 이 아이들은 모두 혼자가는 귀가길, 어두운 저녁이나 밤을 이용해 어린아이를 살해현장으로 데리고가 성폭행을 일삼은 뒤 무참하게 살해한걸로 ‘알려져 있다.’ 살인에 이용된 흉기는 어린 아이들의 옷가지, 벨트 및 가방끈으로 교살. 그리고 복부의 내장을 모두 끄집어내어 어딘가에 유기해놓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제까지의 9명의 피해아동중 모든 피해아동의 내장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체의 가슴에 씌여진 문자이다.
그래. 마치 낚서하듯 쓰여진 문자들. 그것은 대부분이… 인간이 저지를수 없는 행실.

“첫번째 피해아동의 가슴엔 ‘죽였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피해아동의 가슴엔 ‘또 죽였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의 피해아동의 가슴엔 빽빽하게 하하하 등과 같은 웃는 소리를 써 놓는가 하면, 어린이들이 그릴만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낙서도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 내용은 신문에는 없는데. 어떻게 알고있지?”

격연의 눈이 나를 본다. 무기력한 눈. 하지만 그것은 이내 어색하지 않은,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위화감이 드는 미소로 말했다.

“하하, 그건 차츰차츰 이야기하고…”

말을 잇는 격연.

“송월씨. 방금 일어나셨는데 죄송하지만… 어제의 일, 기억하십니까?”
“음… 대강은 기억해.”
“그럼 죄송하지만… 조금이라도 설명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설명…
아무래도 이녀석은 이번 사건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내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겠지. 유일한 목격자로써 경찰서나 병원에 있어야 할 내가 여기있는것도, 아마도 제일그룹 차기 상속자의 힘일것이다.

“잘은 기억 안나… 그러니까. 너네 차에서 내려서 조금 걸을려다 보니까, 느낌이 이상해서… 그러다가 이상한 비린내가 나는곳을 따라가보니, 그곳에 살해현장인 풀숲이 있었어.”

“그 풀숲에서 뭔가… 이상한걸 발견하지 않았나요? 범인의 얼굴이라던가…”
“얼굴은… 기억안나. 못본것 같아. 하지만…”

그 전에.
발걸음과 맞지않는 발소리가 생각났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무시했다.

“나, 인간의 진실이라는걸 볼수 있잖아? 그래서 그 범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생각을 봤어… 그런데 그게. 잘 보이지 않았어.”
“잘 보이지 않았다니? 저희 집사처럼 말인가요?”
“제이? 아니… 그사람하고는 많이 틀린느낌이야. 그사람이 봄날 아스팔트 바닥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라면, 그 범인의 진실은… 아직 하나도 그 자리를 못찾은, 어지럽혀진 직소퍼즐이겠지.”

음…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기억나는건… 범인이 비닐봉지 같은것에 무엇을 담고 있었다는 것일까나… 뭐, 생각나는 대로라면 미친놈이라는게 딱 맞는 녀석이야.”
“그렇군요. 생각나는건 그거밖에?”
“음… 일단은 그래. 나중에 또 기억나면 말해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힘없게 대답하며 방을 나가려는 녀석을.

“잠깐 기다려. 나한테는 아무것도 이야기 안하고 너 혼자 갈려고?”
“아, 하하… 그렇네요.”

전혀 몰랐다는 표정.
정말… 이녀석은 속마음이 보이질 않으니 도통 무슨생각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자면 머리는 쪼끔 아프더라도, ‘진실’이 보이는게 더 나을때가 있긴 있구나…

“뭐가 궁금한가요?”

격연이 침대 옆의 조그만한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일단은 여기는 어디야?”
“여긴 저희집이에요. 원래는 한식집이지만, 이방만이 특별히 양식으로 개조한거죠. 맘에 드세요?”
“아니… 원래부터가 난 한식에 물들여 있었는지 이런건 잘 적응이 안돼. 푹신푹신한 침대도… 뭐, 그래도 이런것도 새로운 느낌이잖아? 나쁘진않아.”
“그렇군요. 감사해요.”

뭐가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저기 어딘가에 내버려두고, 난 다시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무엇인가요?”
“넌 왜그렇게 이번 사건에 대해서 민감하지?”

경찰과, 언론을 속이면서까지 나로부터 범인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려는 태도. 그것만 해도 이 사건에 대한 충분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이어지는 9번째 희생자. 그리고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잔인한 사체손상. 유기된 여자아이들의 내장. 가슴의 낙서.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써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여러 젊은이들에게 꽤 자극적인 충격으로써, 관심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도 많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관심이 있다 정도가 아니다. 독점하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과는 개별적인 조사를 하고있고, 개별적인 자료를 모아오고 있다.
그런 그가… 이 사건에 관심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건…….”

덜컹

“어서와요 언니──!!”

문이 세차게 열리는 소리. 그리고 뛰어들어오는 그림자. 그것은 분명 낯익은 목소리. 그 그림자는 이내,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풀썩, 하고 주저 앉아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희연아.”
“응, 언니. 보고싶었어. 괜찮아요? 다친덴 없어요?”
“그래그래. 괜찮아. 많이 걱정했어?”
“응~ 많이 걱정했어요~ 그래도 많이 안다쳤으니 다행이다~”

허리를 껴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희연이를 꼭 끌어안는다.
강아지같이 귀여운 녀석… 집에 들고가고싶어~

“오빠, 오빠오빠! 언니한테 이상한짓 안했죠!?”
“했을리가…”
“언니, 언니언니! 오빠가 이상한짓 했어요!?”
“으응, 아냐. 그런거 안했어.”
“다행이다!”

부비적 부비적.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웃고있는 희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며 좋아하고 있었다. 아, 정말 집에 데리고가버린다~

“그 처자냐… 격연아.”

끼릭.
낡은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오래된 마루바닥이 삐걱이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리고 인기척… 문 밖에는, 휠체어에 앉은 한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머리와 수염을 길다랗게 늘어뜨린 그 모습은… 마치 신선과도 같은 모습. 그 신선 같은 노인의 뒤에는 휠체어를 끌고온 한 메이드가 예의를 차리며 서있었다.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격연의 할아버지라고 불린 그 노인은 휠체어를 끌고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네, 맞아요. 이분이 은송월씨. 돌아가신 은영식씨의 따님분 되십니다. 그리고 또… 할아버지께서 말하신 ‘그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사람?
알수없는 대화가 오고가는듯 했다.

“은송월… 송월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아, 네.”
“그래그래… 송월아.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나와 잘 알고지내던 사이였지.”

추억을 더듬어가는듯… 옛날 이야기를 하는듯, 노인은 눈을 감고 나지막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이칠원… 늙은이의 이름은 기억할 필요는 없네. 그저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아.”

나이 지긋하게 보이는 그 할아버지는… 나이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굉장히 깔끔하게, 뚜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정말로 신선같아!

“아아! 은송월이라고 해요!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머리를 긁으며 말하자, 할아버지는 얼굴가에 주름진 미소를 지으며 말하셨다.

“그래그래… 대부분의 이야기는 격연이에게 들었단다. 서울에서 예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구나.”
“아, 아뇨! 이격연씨가 도와주신 덕분에 꽤 쉽게 올수 있었습니다!”

그래. 수면가스까지 먹고 말이지…
내가 그말과 동시에 격연의 얼굴을 쳐다보니, 나와 눈이 마주친 격연은 어설프게 웃고있었다. 하하하… 미안하긴 미안한가봐.

“음… 몸은 괜찮나? 어제 살인범에게 습격받았다고 들었는데…”
“아, 괜찮아요.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거 말고는 다친데 없어요.”
“그렇군… 다행이로고.”

눈을 살며시 감으며 미소짓는 할아버지. 그 모습이 왠지 편안해 보여서 보는 나마저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는 격연이에게 들었네. 사람의 마음을 볼줄 안다면서?”
“아, 네… 볼줄 알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내 속마음도 보이나?”

천천히, 할아버지의 어깨위를 본다. 움직이는 문자들, 흔들리듯이 보이는 그것은… 문자라기 보다는──

“보이긴 보이지만…”
“문자가 아니다?”
“네…”

점과 선의 이어짐.
마치 모스부호와도 같은 그것은, 내가 읽을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아니였다.

“역시…”

역시라니?

“무슨일이세요 할아버지?”
“송월양. 이 할애비가 너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해줘도 괜찮겠니?”

무슨선물?
속으로 그렇게 물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는 등 뒤에있는 메이드로부터 낡은 조그만한 케이스를 하나 건네 받았다. 그것은 마치… 보석상자같은것. 하지만 묘하게도 길이가 긴 그것은 필통같이도 보였다.

“이것은… 안경이란다.”

끼익.
낡은 케이스가 열리는 소리. 그곳에는… 그 낡고 고풍스러워보이는 케이스와는 사뭇 다른, 과거에는 새하얬지만… 이제와선 누렇게 변색되어버린 천이 싸여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변색된 천을 풀자, 그 안에는… 고풍스러울정도로 깔끔한 검은색 뿔테안경이 있었다.

“하하… 이 안경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하려면 어디서부터 말해야될지 모르겠다만…”

할아버지는 안경다리를 펴고, 형광등에 그 안경을 비추어 보였다. 뿌연 렌즈… 그것은 손수 손수건으로 닦아가며,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그래… 송월양. 옛날에 이런 사내가 있었네. 사람의 마음을 읽을줄 안다고 말한 사람이… 말이야.”

사람의 마음을… 읽을줄 안다고? 그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단 말인가?
마음이 혼란스러워 진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어지러운 머리를 눌러 잠재우고, 나는 되물었다.

“…정말인가요?”
“그렇지… 나의 절친한 친구였어. 그는 어느날 갑자기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지. 마을사람들… 그러니까 이 마을 사람들이였겠군. 주위사람들의 마음속을 보고, 그 속마음을 그대로 읽어내렸지… 그래. 마치 그건 귀신과도 같았어.”

젖은 눈동자. 추억을 더듬어가는 그 눈동자는…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사람들은 그 친구를 싫어했지. 기분나쁘다고 했네. 그리고 그 친구 역시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지…
하지만 어느날이였어. 마을에 어느 잡상인이 들어왔지… 그 잡상인은 여러가지의 물건을 팔고 있었어. 마을 공터에 앉아, 지나가던 꼬마아이들은 물론이요 장보고 돌아오는 아낙네들의 시선마저 이끌게 하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네. 그중… 이 안경이 있었지.”

반짝.
렌즈가 반짝였을 때, 노인의 눈은 분명 렌즈 너머의 세계를 보고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친구가 보았을… 그 세계를.

“젊은시절의 나는, 그 친구를 데리고 잡상인에게 데리러 갔네. 기분전환이라도 시켜준다는 셈이였지. 그렇게 친구와 잡상인은 만나게 되었고, 잡상인은… 뚫어져라 친구의 눈동자를 노려보기 시작했네. 그리고 건네준 것이 이 안경이지.
‘이 안경을 끼고있으면 보여서는 안되는게 보이지 않을것입니다.’ 라는 말만 남기고, 잡상인은 곧바로 마을을 떠나버렸지… 그리고 이 안경은, 그 친구가 죽었을 때 내게 남겨준 유일한 유품이였네.”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는 새로운 천을 꺼내 안경을 감싸 케이스에 집어넣고서는… 그 낡은 케이스를 나에게 건네어 주었다.

“송월양. 아까 내 속마음이 안보인다고 했지?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점과 선으로 나타났을거야… 안그런가 송월양?”
“…네, 그렇습니다만.”
“이 안경의 원래 주인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나의 마음을 보았다네. 그때부터 내 마음속이 이렇게 보였다고 하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말 모르겠구만…”

‘한번 껴보게’, 라고 하며 권유하는 할아버지의 말에, 난 케이스에 그 안경을 꺼내서 코 위에 걸쳐보았다. 다행히, 도수는 없다. 그런데…

“…정말, 보이지 않아…”
“아직 그 안경이 제기능을 해서… 다행이구만.”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그 알수없는 기호들의 일련도. 희연이의 도미로피자 노래도. 보이지 않아. 인간의 속마음이라는게…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아. 정말… 이 사람들에겐 이 세계가 평범한 세계일텐데…

“송월양.”
“에… 네?”
“명심하게. 그 눈을 자주써선 안되네. 송월양.
타인의 속마음이라는건 절대로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네. 그런것을 볼수있단는 것은… 그 눈이 보통 인간이 가진 눈의 능력을 뛰어 넘었다는 것이지. 하지만, 그 능력에 얻는데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네. 그 대가라는 것이… 너무나도 커다랗다는 것이야.”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내 친구는 먼저 시력을 잃었네. 그리고 안구가 썩어갔고, 결국은 그것이 뇌까지 침투해 뇌사해 버렸지. 하지만… 그 친구는 꽤 잘 버텨온거라네. 내 생각에는… 그 안경이 없었더라면 뇌사하기도 전에 머리가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속마음──를 받아들이지 못해 폭주했을거세.”

그것은… 친구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경고였다.
안경 렌즈 밖의 세계는 너무나도… 평범해 그지없어.

“그 눈의 능력이 진화하면… 나중엔 사물에 깃든 과거까지 볼수있을거세. 하지만 그때는… 이미 위험한 상태일게야.”
“사물에 깃든 과거를 볼수있다니…?”
“이런건… 말로 설명하기가 조금 난해하군… 하하. 다음에 설명하도록 하세. 지루해하는 아이도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는, 침대 위에서 잠이든 희연이를 인자한 얼굴로 내려다 보았다.

“송월양.”
“네?”
“이 아이를 잘 대해주게. 부모를 잃고 지 사촌오빠만 믿고 살고있는 아이야. 송월양이 함께 있어준다면… 하하. 이 아이는 정말 좋아하겠지.”

돌아가는 수레. 할아버지의 등 뒤에있던 메이드가 휠체어를 이끌고,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난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돌아보게되었다.

“하하… 오늘은 말을 너무 많이했군. 난 이만 가서 쉬겠네… 송월양. 편히 쉬다 가게나.”
“아아,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할아버님.”
“할아버님이라니… 그냥 편하게 할아버지라고 부르게나. 하하.”

할아버지는 복도 모퉁이로 사라지며, 그렇게 말했다.
조용한 방의 분위기. 들리는것은 한 어린 소녀의 숨소리였지만… 그 침묵을 깬 것은.

“그럼, 편히쉬세요 송월씨.”
“잠시만, 이격연씨. 나 이런데 누워있을 시간없어… 이만 가야──”
“오늘만큼은 편히 쉬세요. 살인범에게 습격당해 충격이 꽤 클텐데… 너무 무리하시면 안되요. 댁까지는 제가 차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답변도 듣지않고, 격연은 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저… 침대에 누워있는 한 소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어 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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