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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위가 떨어져 깨진듯한 굉음과 함께 소녀의 두꺼운 검이 한번 휘둘러졌다. 도저히 소녀의 몸에서 나온 힘이라고는 볼 수 없을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강하게 휘둘러진 이 묵직한 검은 그대로 적들의 무기와 함께 몸과 머리, 어깨등등 진로에 놓여진건 무엇하나 가라지않고 단박에 베어버렸다.

잘려진 몸조각이 기압차인지 뭔지로 피를 쏟으면서 빙그르르 돌아떨어진다. 잘려진 몸과 무기가 떨어진다. 핏줄기가 쏟아져 퍼부어진다. 강한 통증을 느낀 왼손이 부들부들 요동을 치고 소녀는 부어오른 왼쪽 뺨과 이마로인해 오른쪽 눈만을 매섭게 뜬채 숨을 헐떡였다.

"헉. 헉. 헉. 헉."

"검..사."

"?!"

목소리. 굵은 남성목소리를 지닌 그것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심한의 검사]




"검....사여!"

그랬다. 5m에 달하는 녹색의 괴물, 그것도 이번엔 자기 덩치에 맞춘 커다란 바위검을 든채로 말이다. 단지 몸이 군데군데 터지고 그들만의 피부색과 같은 피가 흐르는게 심한 상처를 입은것 같았다.

"아직도, 아직도 우리와 함께하진 않을것인가."

"조금전엔 동료들로 하여금 나를 죽일려고 했으면서, 이번엔 또 동료가 되라는 건가?"

"....아니. 그들과 나는 관계없다."

"헤에, 그럼 그 상처는 나때문에 동료들에게서 얻은 상처란 말이야?"

"그것도....관계없다."

그것은 땅 아래다 향한 검을 들어올렸다.

"그런가. 너는 아직 모르는 것인가. 어쨋든 너에게 있어선 반나절정도만해도 이미 충분한 시간, 그 대답은 아마도 영원히 변하지 않겠지."

녀석은 말을 끝마치자마자 바로 그 큰 검을 휘두르며 소녀를 향해 덤벼들었다. 소녀또한 검이 위로향한것을 보고선 몸을 아래로 젖히고 오른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퍼억!

아무렇게나 돌을 깎아만든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검이었기에 날부분마저 울퉁불퉁한게 돌몽둥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좋을 무기였기에 검과 함께 두동강이 나는건 피할 수 있었으나, 또다시 온몸이 치이면서 뼈가 박살나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튕겨지면서 멀리 날아가던 소녀의 몸은 이윽고 강바닥에 펑하니 떨어져서야 멈출 수가 있었다. 온몸을 피에 이어서 물로적신 여검사, 검을 땅에다 팍 찍고서 일어나 숨을 헐떡일때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아있는게 놀라울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커억, 큭. 헉. 헉. 하악, 하악."

숨을 쉴때마다 피가 함께 입밖으로 쏟아져나왔고 부들부들 떠는 다리는 강물의 차가움에 더해져서 그 힘을 계속 잃어가고 있었다. 뒤로 완전히 꺾여져서 뼈가 살을 뚫고나와있던 왼쪽팔, 이제는 왼쪽어깨도 반쯤 잘려서는 너덜너덜 걸려있는게 소녀 본인도 소름끼치게 만들정도였다.

'이, 이 특수 옷이 아니었으면, 저녁때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죽었을꺼야. 아니. 이미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렸고, 밤의 강이 체온을 급격히 빼앗아가고 있어. 이대로는....죽는다!'

쿵 쿵. 적은 천천히 그 큰 몸집을 이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과 대면하기전에 났던 상처또한 천천히 치료되어가는게 지친 기색이라곤 한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적은 반대로 컨디션이 가면갈수록 더욱 좋아지고 있었다.

'이익!'

다짜고짜 코트안에 있던 또다른 거대한 서브머신건을 빼들곤 놈을 향해 쏘았다. 나무를 꿰뚫고 웬만한 돌도 부셨던 모양만 서브머신건이지 크기는 일반 소총과 맘먹을정도로 커다란 서브머신건. 허나, 그것조차도 놈에겐 통하지 않았다.

조금씩 작은 상처를 내고는 있었으나 그것만으론 이 괴물을 저지하기엔 너무도 화력이 부족했다. 풍덩, 적이 어느샌가 그 큰발을 강에다 내딛자 급히 손에든 총을 버리며 검을 쥐어든 소녀. 반쯤 잘려든 왼쪽 어깨며 부어터진 얼굴반쪽에 후들거리는 다리, 마음만이 앞서가고 있었다.

'막아선 안돼. 비껴내는 거다. 여긴 강이 흐르고있고 녀석은 몽둥이를 검처럼 사용하려하고 있어. 그러니까 비껴내면..!'

콰직!

크게 휘둘러진 적의 몽둥이, 그것을 방향만 바꿔내려한 소녀의 검은 쥐고있던 팔과 함께 공중으로 퍽하니 날아가버렸다.

"!!"

소리없는 비명이,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비명이 소녀의 마음속에서 질러진다. 잘려나간 오른팔과 검, 너덜너덜거리기만하는 쓸모없는 왼팔, 부어오른 살로인해 눈물만 흘릴뿐인 왼쪽눈, 덜덜 떨고있는 것외에는 존재가치가 의심되는 양다리, 그리고 소녀의 머리위로 다시 그 괴물의 바위검이 떨어지려 할때였다.

-정말 너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이다

파앗.

갑자기 주변이 모두 새하얗게 변했다. 모래가루 하나, 나무 한그루 없는 이곳은 그저 새하얀 무(無)의 공간. 그곳에 소녀는 피로 물들인 갈색 단발머리를 이리저리 고개와 함께 흔들거리고 있었다.

-의존해야할건 오로지 자기자신뿐이다. 내 스승이 종종했던 말이지.

등뒤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따뜻하거나 온화하진 않지만 꽤나 그리운 기척이었다.

"와주었구나, 아저씨."

-네가 온거다, 꼬마. 늘 오지말라고 말했는데도 너는 늘 약속을 어기다가 결국 이런곳까지 와버린거지.

"이것은....환상? 난 죽은거야?"

-그렇게 믿는다면 그 믿는 그대로 일이 실현될것이다.

"그렇구나. 이상과 함께 희망을 품고, 적과 함께 절망을 부순다. 아저씨가 해준 말이었지."

-정확히는 내 스승이 말한걸 너에게 알려준거지.

"....아저씨라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꺼야?"

-처음말한 그대로다. 의존해야할건 오로지 자신뿐이야. 검에 의지하지 말고, 총에 의지하지 말고,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너만을 의지하라.

허상같이 뒤에 서있는 남자를 비록 소녀는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를 알고 있었다.

-깔봐라. 얕봐라. 자만하라. 오만하라. 그렇게 한없는 자신감을 품고 한없는 적의를 뿜어내라. 나를 제외한 모두를 이용하고, 오로지 나만을 도와라. 자신을 이해할 생각을 하지말고 자신을 복종시켜라. 그것이 나의 전술이다.

"그렇구나.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아."

-그럼 이제 돌아가라. 너의 전장으로. 나를 이용하되 의존은 하지마라. 너만을 생각해야하는 거다. 여기까지온 수고를 위해 마지막으로 베푸는 배려니 명심해라, 소녀.

"하지만 가끔씩은 놀러와 줄거지?"

-이해를 전혀하지 못했군.

"그런건 이해한 쪽이 이상한거라고."

-후후후후. 뭐 됐다. 어차피 기대도 안했으니까. 너같은 바보가 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재밌는 것이지.

"정말이지. 아저씬 너무 못됐어."

어느샌가 소녀또한 긴장을 풀고 장난을 치는것 같았다. 그녀도, 남자도 웃어보았다. 그리고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교감도 없이 동시에 하늘을 바라봤다.

-잊지마라. 구할 수 없는 생명은 이미 죽은것이다. 그 답은 모두가 알고있다. 허나, 알고서도 망설이고 거부하기에 모두가 틀린 길로 빠지는 것이다.

"그 답은, 올바른 것일까?"

-올바르고 아니고는 답에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시행하는 자에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

-기억하라. 끝까지 의존해야 할것은 자기자신뿐이다. 내 스승의 가르침이자 나의 지표중 하나이다. 이제 그만 가라. 그리고 두번 다시 나를 떠올리지마라.

"응, 아저씨. 하지만 또 올께. 아니, 반드시 또 오고말꺼야. 그때는 이런 곳보단 좀더 즐거운 곳에서 얘기할꺼니까."

파캉!

어느샌가 돌아온 그녀의 전장, 머리위에서 내리쳐지던 바위검. 그것은 일직선으로 똑바로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를 명중시키는데 실패한채 그녀의 옆에있는 작은 돌조각만 부숴버렸다.

'마, 말도안돼. 이 거리에서 빗나갔다고?!'

녹색빛 거인이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을때 어린 여검사는 자신의 검과 그것을 쥐고있던 팔이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움직일 체력이 남았다고?!'

너덜너덜거리던 왼쪽 어깨의 뼛조각들이 서로 움직이면서 다시 소녀의 몸을 복구시킨다. 꺾여진 왼팔또한 끼긱거리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소녀의 품안에있던 웬 보석이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찌기 한 남자가 준 물건. 오래전에 그와 헤어질때 받은 선물이었다.

'그랬구나. 나는 처음부터 헤어진게 아니었구나.'

부르텄던 왼쪽 얼굴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을때 이미 왼팔또한 완전히 새것처럼 회복된지 오래였다. 검을 쥐고있는 자신의 잘린 팔을 든채 다시 어깨에다 붙이는 소녀, 뼛조각들이 다시 서로를 이으면서 힘줄과 근육, 그리고 피또한 서로를 잇기 시작했다.

검사의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괴물이 급히 정신을 차리며 다시 돌격을 해왔다. 시간을 끄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녀석의 직감은 정확했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녀석은 알고있었을 것이다. 상황이 역적되었음을, 소녀가 매우 유리했음을 말이다.

자신에게 달려들며 바위검을 휘두르는 5m짜리 괴물을 향해 소녀또한 그 큰 칼을 양손에 꼭쥔채 달려들었다.

'나는 낮에 이미 한번 베는데 성공했어. 그렇다면 두번, 세번 베도 이상할건 아무것도 없어!'

쉬이이익! 공기중의 원소들을 베어가르며 녹색거인의 거대한 바위검과 소녀의 굵은 검이 서로를 가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바위검을 가르며 날아가던 어린 검사의 커다란 칼날은 궤도상에 있던 적의 허리마저 함께 쩍 베어버리는데 성공했다.

"!!"

잘려진 바위검의 긴부분이 떨어지며 서로가 떨어져나가려는 괴물의 상체와 하체, 피들이 마치 촉수처럼 길게 늘어지더니 서로를 다시 붙이려했지만 소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다시 그것을 향해 달려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에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대응하라.

그녀의 귀에는 들려왔다. 약 1년전, 그녀를 강하게만든 한 남자가 해주던 말이 똑똑히 다시 들려왔다.

-기적에는, 기적으로 대응하라.

푸각!!

아래에서부터 땅을 가르며 나아가던 소녀의 검이 휘로 크게 치켜올려졌을때, 그 거인의 몸은 다시또 이번엔 좌우로 쩍하니 갈라졌어야만했다. 네조각으로, 그것도 검이 동반한 충격파와 압력때문인지 거대한 차이로 서로 떨어진 몸조각들, 녀석은 소녀를 향해 나지막히 말했다.

"훌륭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폭탄이 터진것처럼 피를 쏟으며 분해가 되어 산산조각났다. 밤하늘에 구름한점 끼어있지 않는데도 소녀가 서있는 강가에 비가 내린다.

괴물의 녹색피로 만들어진 녹색피가 달빛에 반짝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양쪽 무릎을 강속에다 꿇으며 소녀는 고개를 위로젖힌채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아니, 휴식을 취한 순간이었다.

"훌륭해요. 훌륭해요, 검사님!"

"!?"

이번에 들린 목소리는 그 괴물의 것이 아니었다. 하긴 이미 그 괴물은 자신의 손에의해 완전히 산산조각나버렸으니까. 그렇다면 누구? 이런 참혹한 전장에 또 어떤 사이코가 있단말인가.

설마 방금전 죽인녀석과 마찬가지로 지능을 가진 동료인가? 아니, 그러기엔 이 목소리는 너무도 낮이 익었다. 그렇다. 오늘 잊어버리기에는 이 목소린 너무도 기억속에 새겨져있었다.

"그 상황에서 역전을 해버리다니, 정말 훌륭해요. 검사님."

"....너 어떻게 된거지?"

"네? 제가 뭐가 어때서요?"

어둠이 함께 머물고 있는 숲속에서, 사악한 녹색의 맹수, 즉 괴물들과 함께 낮에 보았던 갈색머리의 소년은 유쾌하게 웃으며 서있었다.

"검사님도 이상할거 없잖아요. 우린 동류니까요."

"그래, 알것 같군. 그 거인녀석이 배신한게 아니라, 네가 다른 녀석들을 꼬드긴거였어."

"꼬드기다뇨. 모두들 다 원해서 저한테 온거라고요. 겉만 그럴싸한 말보다는 솔직하고 믿을만한 것은 힘일테니까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낮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머뭇거리면서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배려하던 모습, 그것은 연기였을까 아니면 지금 이것이 연기인것일까. 문득 소녀에겐 과거 그 남자로부터 들었던게 몇가지 떠올랐다.

-너같은 경우엔, 그리고 나같은 경우에는 억지로 이런 힘을 갖게된 것이지만, 분명 세상에는 이것을 앞으로 자연스럽게 어느날 얻게되는 녀석이 나올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 애란건가.'

-어째서인지는 너무도 복잡하니까 일단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각성같은거라고 보면된다. 아직 나도 완전히는 모르지만 각성한 인간의 경우, 단번에 신체와 정신이 세워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아마도 매우 위험할테지. 단기간에 이룩한 것만큼,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이상도 찾기 힘들테니까. 거기다 그것을 이룰 힘마저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그러니 늘 조심하고 경계하라. 그들은 너와 동류니까.

"그래서 네가 하고싶은건 뭐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소녀는 검을 겨눈채 이제는 너무도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소년을 향해 매섭게 쏘아 말했다.

"하고싶은거라뇨. 갑자게 웬 이상한 소리를.."

"웃기지마. 하고싶은게 있을꺼아냐. 그토록 넘치는 힘을 얻었다면, 뭔가 이룩하고 싶었던게 있을꺼아냐. 가령 복수라던가."

"하, 하핫. 복수라뇨."

소년은 씨익 웃으며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거라면 이미 끝냈는걸요."

"!?"

순간 깜짝놀라며 고개를 마을쪽으로 향했다. 이 언덕너머 아래에서 평안히 있어야할 작고 조용한 마을, 너무도 멀리있었기에 그리고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기에 눈치를 채지못했지만 지금 그 마을 전체가 환하게 불타오르고있었다. 아주 환하게 아주 밝게 말이다.

"정말 힘들었었다고요. 부모가 죽었는데 아무도 말은 믿지않고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질 않나, 동생놈들은 꼬맹이라고 티내면서 이것저것 떼쓰며 짜증을 부리질 않나. 어리다고해서 사람을 부려먹고 임금은 매번 제대로 주지도 않지, 살아서 도움이 안되는 것들은 일찍 죽는게 남을 위한거라고요."

"....그래, 확실히 짜증나지. 너도 말이야."

"하하하, 이런이런. 검사님이라면 이해해주실줄 알았는데."

"이해를 못하는게 아니야. 단지 난 한순간에 저렇게 변해버린 녀석이 내 앞에서 구역질나는 괴물들과 함께 히히덕거리며 웃는게 짜증이 날 뿐이지."

"아아, 죄송해요. 그래도 역시, 제가 아무리 인간에서 멀어졌다하더라도 갑자기 동료가 된다고하니까 통 믿지를 않아서말이죠. 증거를 보여달라잖아요."

"호오, 무슨 증거? 아무래도 점점 더 너를 좋게봐선 안될것 같군."

"검사님을 동료로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새카맣게 태워버리는거요."

쉬이이익! 소년의 몸에서 긴 촉수가 몇개 늘어뜨려져서는 소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두 손으로 쥔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그것을 튕겨내는 소녀, 허나 연이어서 끊이질 않는 그의 공격은 하나같이 날카로웠고 육중한 무게가 실려있었다.

"으, 이익!"

"소용없어요. 아무리 복원했다지만 체력이 소모된것만큼은 사실이라고요. 거기다 그런 큰 검으로는 제 공격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요."

볼살을 베면서 소년의 창살같은 촉수가 홱하니 얼굴옆을 지나갔다. 이어서 찢어진 코트아래로 드러난 왼쪽 팔을 긁고가는 그것, 채찍같으면서도 화살의 특성을 가진, 그러면서도 강한 무게와 재질을 겸비한 이것은 놀라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있었다.

점차 회복된 새살갖에 다시 새로운 상처가 생기기 시작하며 소녀의 이마에선 다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캉 캉 캉 캉

이리저리 양손으로 휘둘러보긴 하지만 그 많은 공격을 다 막어내기에는 역시나 역부족, 이것이 각성한 자의 힘이란 말인가. 불완전하긴하나 그 위력이나 특징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 좀전의 위기가 또다시 검사에게 돌아온것이다.

"검사님. 웬만하면 함께해보자고요. 저도 이렇게 생긴 녀석들과 내내 지내긴 좀 역겹다고요. 게다가 전 검사님이 싫지도 않아요."

캉 캉 캉 캉

"검사님도 살고 싶잖아요. 살아서 복수하고 싶잖아요. 살아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뭔가를 이루고 싶잖아요."

캉 캉 캉 캉 캉

"단순히 다른것뿐이라고요. 우리가 인간과 다른것처럼, 이들은 조금더 다를뿐이에요. 그걸 모르는게 아니잖아요, 검사님."

캉 캉 캉 캉 캉 캉 캉 카앙

"검사님, 자꾸 그러시면 저도 어쩔 수가 없.."

카앙! 카앙! 카앙! 카앙! 카앙! 카앙! 카아아앙!!

쳐내는 소리가 점차 많아져갔고 또한 강해져갔다. 소녀의 검, 그것은 놀랍게도 이제는 그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있었다. 빠르게 폭풍처럼 움직이는 그녀의 몸과 검은 단 하나도 놓치지않고 소년의 공격을 상쇄시켜나간다. 보다 정확히,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그녀의 검은 이제는 소년의 촉수를 베어버리고 있었다.

한두개 잘려지자 이번엔 동시에 달려드는 수십의 촉수, 소녀는 몸과 함께 검을 휘둘러돌리며 그 모든것을 단번에 죄다 베어버렸다.

"아, 아닛?!"

그리고 반격을 가하는 그녀의 칼날, 쉬익하니 바람을 가르고 지나간 검은 소년의 왼쪽 팔다리를 베어버렸고 이어서 계속 돌더니 주변에 서서 구경하던 그 맹수들의 목아지를 쳐내기 시작했다.

키에엑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는 녹색의 맹수들, 허나 소녀의 검앞에서 그 모든것은 간단히 베이고 또 베일뿐 무엇하나 막을수가 없었다.
톱날을 향해 날아드는 종이조각처럼, 소녀를 향해 달려드는 모든 적들은 그들만의 녹색 피를 뿜어내며 그 큰 검앞에 베어져나갈뿐이었다.

왼쪽 팔다리가 잘린채로, 아무런 신음도 호소하지 않은채 서서 소년은 소녀를 바라보며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말도안돼. 어째서지? 내가, 내가 더 완전해져있는데도!"

잘려진 팔다리가 흐물흐물 변하면서 소년의 몸뚱이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변하기 시작하는 소년의 육체.

눈동자는 커다랗게, 이빨은 굵고 단단하게, 턱은 늑대처럼 길고 강력하게, 몸은 좀전의 거인처럼 크고 거대하게 그리고 양팔은 길고 날카로운 칼날로 변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인간임을 추구하고 있는 주제에!!"

카앙! 카앙! 카앙!

소년이 바람처럼 휘두르는 커다란 두 칼날을 소녀또한 큰 칼을 휘두르며 막아내자 불꽃이 튀겨나왔다. 키가 6m도 넘게 커진 소년에게 주어진 날카롭고 긴 두 팔, 두개의 채찍검, 그것은 소녀의 검과 실력을 겨루며 잡아먹기위해 날뛰고 있었다.

그에비해서 160cm도 되지않는 키에 입고있는건 어울리지않는 남색코트, 검풍에 이리저리 나풀나풀거리는 짧은 갈색 머리칼, 그리고 검 한자루. 보통 검보다 훨씬 길고 두꺼우며 과거 한 남자가 사용했던 검 한자루.

그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눈앞에 서있는 소년, 아니 괴물의 공격을 튕겨내고 있었다. 울고불며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수한 괴물, 소녀는 계속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막아냈다.

-잊지마라. 구할 수 없는 생명은 이미 죽은것이다.

좌우로 쉴새없이 날아드는 괴물의 날카롭고 유연한 채찍검, 그리고 그것을 마찬가지로 좌우로 휘둘러지며 막아내고 되쳐내는 두껍고 긴 칼날. 그러던중 속임수로, 그것이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날아들었을때 소녀는 반대쪽에 들어든 공격에 제대로 방어를 못하고 튕겨져나갔다.

-올바르고 아니고는 답에의해 결정되는게 아니라 그 답을 시행하는 자에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튕겨져나간 소녀는 다시 일어섰다. 두손엔 커다란 검을 한자루 꼭 쥔채 이마에는 피를 흘리면서도 그녀의 두 다리는 일어섰다.

"이번에는 막을 수 없을껄? 당신이 그렇게 인간인척하는이상 막을 수는 없어!"

그 괴물의 양팔이 위로 치켜들어지면서 서로가 합쳐지더니 굵은 창으로 변하였다. 양팔을 내려 이 랜스를 소녀를 향해 일직선상으로 겨누며 소년은 달려들었다.

"죽어버려!!"

그리고 소녀의 검이 날았다. 거대한, 마치 폭탄과도 같은 무지막지한 랜스를 향해 도약하는 소녀, 그리고 그녀와 함께 이 무지막지한 창을 향해 날을 휘두르는 검 한자루.

두 괴물의 무기가 서로 맞닿았을때, 정확히 괴물의 랜스 첫끝부분이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소녀의 검은 아무런 저항없이 그대로 그것을 수직으로 쩍하니 몸과 함께 갈라버렸다.

"!"

잘려나갔다. 완전히 그리고 정확히 소년괴물의 몸이 왼쪽어깨부터 오른쪽 다리까지 비스듬히 좌우로 쪼개지면서 소녀는 무릎을 굽히며 착지했고 그것은 쿵하니 쓰러졌다.

뒤돌아서서 검을 손에쥔채 걸어가는 소녀, 이미 괴물은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나 잘려진 그 상태 그대로였다. 쿨럭거리며 피를 토하는 소년, 어린 여검사는 오른손엔 검을쥔채 왼손으로 그를 부축였다.

"컥, 커헉, 커헉. 거, 검사님. 저는 잘못된것일까요?"

"..."

"하아, 하아. 저에게 앙갚음을 한 자에게 그것을 돌려주는게 잘못이라면, 저같은 사람은 늘 당하고만 사는게 정의인건가요?"

"..."

"아, 아아 검사님. 어머니가 보여요. 아버지가 보여요. 동생들이....보여요."

허공을 잡으려던 소년의 손이 땅끝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소년은 마지막엔 웃으며 눈을 감았다. 조용히 소녀는 소년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이미 이 주위에 검사와 검사가 들고있는 소년의 시체외에 또다른 것이 있냐면 녹색 맹수의 시체와 그것의 피뿐일것이다.

조심히 소녀는 오른손에 쥔 검을 코트의 갈고리에 가로로 고정시킨후 소년을 안고선 강가를 향해 걸어갔다. 물살은 느리지는 않았으나 세차지도 않았고 그다지 맑지도 않았으나 흐리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곳에 소년을 떠내려보내며 소녀는 머리칼과 옷을 정돈했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는게 하루가 지나갔다는걸 보여주었다.

삐죽삐죽 조금씩 어긋나있는 갈색단발머리와 작은 소녀의 키에 맞게 제작되어진 남색롱코트, 거기다 2m정도에 달하는 커다란 칼을 지닌채 어린 여검사는 삶을위한 다음 발걸음을 조용히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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