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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말하는 고양이2

2006.08.18 21:13

붉은눈물 조회 수:219

[퍽]

고양이의 꼬리가 내 얼굴에 정확하게 가격을 했다. 순간 내 눈에는 검은 바탕에 흰 별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 모습에 고양이는 조금은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고양이의 눈은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져 있었고, 앞발로는 땅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치, 너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고양인지 모르는 거로구나. 난 한번도 영역다툼에서 져 본적이 없단 말야. 내 것은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고양이라고. 여기 오른쪽 귀 모서리가 톱니처럼 뜯겨진 거 보여?>

그랬다. 정말로 <말하는 고양이>의 오른쪽 귀의 삼분의 일이 잘려져 있었다. 흰 털에 갈색줄무늬가 귀부터 시작하는 멋진 털을 가지고 있었다. 귀의 흉터만 아니었다면, 사랑받으면서 길러지는 집고양이처럼 깔끔하고 귀티가 흐르는 멋진 외모였다.

<이건 정말로 커다란 고양이 두 마리와 싸우다가 생긴 상처야. 비겁하게 둘이 한꺼번에 양쪽에서 덤비더라구. 그 놈들 중 한 명은 애꾸가 되어 버렸을거야. 내가 발톱으로 그 놈 눈 한쪽을 찍어 줬지. 봐, 이렇게.>

<말하는 고양이>는 눈을 번뜩이며 그 때 자신이 얼마나 잘 싸웠는지를 몇 컷의 모션으로 보여 주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세상과 싸워 이겨야만 살아남는 거야. 언제까지 착한 척 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낄 것 같아? 추운 겨울 날 쓰레기를 뒤져서도 모자란 양의 먹이를 조금이라도 나눠 주게 될 거 같아? 그 때는 어떤 허영심도 가질 수 없게 되는 거야. 본능만 남는 거지. 그렇게 되면 너희 인간들이 좋아하는 그 알량한 가면들을 쓰고는 살아남지 못할걸. 네가 너무 답답해 보여서 특별히 이야기해 주는 거야. 나는 굉장히 바쁜 몸이란 말이지. 즉,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는 거라고. 너 내 말은 듣고 있는 거야?>

나는 고양이의 물음에 살짝 수긍의 미소를 띄어주었다.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넌 그렇지 않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고양이의 말이 어느 정도 맞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이 고양이는 변변치 못한 인간보단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수긍하기에는 나도 인간이기에 마음 한구석에 움찔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야, 너 말야. 내가 귀중한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적어도 대답은 해야 하는 것 아냐? 기면기다 아니면 아니다. 대꾸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이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인정이 아니냔 말야. 이래서 인간들은 이중적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여간 고양이보다 나은 점이라고는 손톱에 낀 때만큼도 없다니깐.>

고양이는 점점 인간에 대한 불평을 나에게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 고양이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 건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균형이 잡히지 않았고, 계속 한쪽으로 기울기만 했다. 과음을 한 탓일까?

<어, 그만 가려고? 아직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못 했어. 너 말야. 정말 둔한 거 아니니? 고양이가 된 걸 이제 그만 알아차려야 되는 거 아냐? 생각을 해봐. 말하는 고양이가 있을 것 같아? 네가 고양이니까 대화가 되는 거지. 가끔 그런 일이 세상에는 벌어지고 있기는 해. 물론 조금은 특별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말야. 언제부턴가 고양이가 된 사람들이 너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단 말야. 나로써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하나 둘 교육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인데 말야. 참 별일이지?>

고양이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내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말하는 고양이>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나는 이미 멋진 검은 털을 가진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된 것이었다. 손질이 잘 된 검은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제법 맘에 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뭔가 당한 것 같은 느낌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불현듯, <말하는 고양이>가 말을 건 사람들이 고양이가 되는 것인지, 고양이가 되어서 <말하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고양이와 대화를 나눈 기억의 흐름은 중단된 채, 새로운 기억의 끈으로 시작된 테잎은 연결되었다. 새로운 기억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새로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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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이봐요 학생? 여기서 자면 얼어 죽어요. 아무리 늦여름이라도 그렇지, 초가을도 된단 말이요. 이봐요 학생.”

“우으음”

눈이 부셨다.

무언가 밝은 빛이 내 눈을 멀게 하는 것만 같았다. 심봉사가 눈을 뜰 때에도 이러한 빛이 눈을 부시게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봐요. 학생! 일어나래도. 남의 집 담벼락에서 이렇게 자버리면 어떻게 해요.”

누군가 나를 깨우는 소리였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고양이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정신없이 일어나서 나는 힘껏 눈을 떴다. 분명 나는 두발로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젊은 사람이 무슨 술을 그렇게 마니 마셨누? 어서 집으로 가요.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어. 밤새 여기서 잤으면, 몸이 많이 상했겠구만.”

“네 감사합니다.”

“감사할게 뭐있누. 어서 집으로 가봐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옷자락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버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잠들어 있던 전봇대는 우리 집이 코앞에 보이는 골목의 모퉁이였다.

“야옹. 야옹 야옹”
문득 귀에 들리는 익숙한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담벼락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며 울고 있었다. 잠시 나를 내려다보던 고양이는 빙그르르 돌아 담벼락을 타고 지붕위로 올라가버렸다. 그 고양이는 어젯밤 나를 훈계하던 그 말하는 고양이가 틀림없었다. 조금은 반가운 마음이 샘솟고 있었다. 하루 밤의 잔소리가 나는 꽤나 맘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말하는 고양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꿈을 꾼 것은 아니었을까?

말하는 고양이.

그것은 어쩌면 한심하게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을 그리고 숨막히게 돌아가는 이 인간세상을 경고하기 위해서 나타난 고양이요정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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