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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Project Cyber]2

2006.08.13 19:25

울프맨 조회 수:160

1-4: 지원군

[일어나세요....]

뭐야... 난 앞으로... 4일 정도는 늦잠을 자도 된다고.... 내 귀에서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바깥세계와 나만의 이상세계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벽. 이불을 내 머리 위까지 덮었다.

[일어나세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빨리요.]

도대체 뭐가... 친절하시긴 하지만.. 난 좀 더 자고싶다..

[빨리 일어나세요. 빨리]

“나가!!!!”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걷으며, 소리친 나였지만..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요며칠새 너무 무리해서 신경과민일까.. 아픈 머리를 만지며 부스스 일어나던 나에게 모든 의문을 풀어주는 그런 나의 동작을 일순간에 멈추게 하는 무뚝뚝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일어나세요... 마스터..]

내가.. 내가.... 미쳤단 말인가... 어떻게 저 소리를 여자의 목소리로 듣다니.....
당장 스피커를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스피커를 던지려던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의문에 스피커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도대체 내방에 스피커 같은 게 있었던가........
100만을 겨우 넘는 월급으로 비싼 물가에 허덕이며, 방세, 수도세, 전기세 등으로 1/3을 날리고, 정기 저축과 컴퓨터 점검 및 필요부품 업그레이드 비를 감안하면, 난민 못지 않은 비참한 삶을 누리고 있던 내가.. 스피커를 장만해?
안 그래도 전기세를 줄이기 위해, 2주일 전에 TV를 처분했고, 보관해 먹을 음식이 없는 탓에 냉장고를 갔다 버렸다.. 평소에 인스턴트로 생활하던 터라 내 성격상 집은 인스턴트음식 봉지로 매우 난잡한 상태였고......?!
눈을 비비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미친게 틀림없다... 도둑이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누가 먼저 한건 했다구 믿고..) 내방이.... 말끔하게 정리되다니!!!!!

“도대체 어떤 놈이!!!!!”

“저예요.. 양선배..”

구석에서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히 방안을 둘러볼 때는 없었던 놈인데.... 안경을 쓰고 핼쓱한 얼굴의 이 수상한 친구는 엉금엉금 기어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잊으셨어요....? 한국아시아 대학교 1년 후배.. 김주만이에요.... 선배가 어제 술드시고 부르셨잖아요....”

기억이 난다... 이 녀석.. 별명 유령 김씨... 어디에 있든 존재감이 없어서, MT나 동아리 활동 갈때마다 심령사진이 찍혔다 싶으면 놈이었다... 아까 내가 이 녀석을 발견하지 못한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그래서.. 저 스피커랑 이 방의 정리는 네가 한거야?”

“선배.... 제가.. 미쳤어요..? 제가 선배 방에... 왜... 스피커를 놔... 줘요...?"

.....................................느릿느릿한 짜증나는 말투... 미쳤냐고?

“그래! 너 잘났다! 이자쉭!!”

“아악.. 살려줘요..”

내가 놈의 배를 깔고 올라타 정신없이 구타하고 있던 중, 잠시 주먹을 멈추고 다시 한번 물었다.

“너아님 누구야, 앙?”

“한명 더불렀잖아요....선배... 무거워요.... 도대체 몸무게가...”

“입다물어, 임마!!--”

“아아악...”

놈이 걸레가 되기까지 남은 완성률 5%.... 완성을 앞두고 나는 주먹을 멈췄다. 한명 더불렀다고? 갑자기 오한이 돈다... 설마...........

[덜컥!]

문이 열렸고, 내 단칸방안으로 불길한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나와 유령김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 그림자를 바라보았고.....

“오이! 양군 깼네? 잘잤어? 와! 주만이도 있네?”

비닐봉지에 술과 이상한 잡동사니들을 가득 사서 들어오는 저 녀석.. 같은학번, 이만희!! 내가 저걸 왜 불렀을까?!!!

1-5. 3인의 동거.

다시 방송사를 찾은 것은.. 작업 5일정도 되던 날...

[부장실 부장:박봉구]

이 인간을 또 보러 왔다는 생각에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비참했지만, 눈 꼭 감고 어릴 적 감기약 들이키는 식으로 참아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감기약은 몸에라도 좋지...’

[똑똑똑...]

“들어오세요.”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대리석 명패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글라스를 준비해 가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놈의 광채덕분에, 놈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오. 자네가 웬일인가..?”

역겹게 반가운 척 하지 마라.. 아침에 먹은 컵라면이 넘어올 것 같다....

“혹시.. 작업의 기한에 대해서 문제가 있어서 왔나보지..?”

능글맞은 구렁이... 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턱을 괴었다.
하긴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혼자서 그 2가지 일을 10일 안에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계산하는 일은, 금방 할 수 있을 테니까.
다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놈은 아마도 작업기한을 갖고 나를 애태울 생각인가보지만, 오늘은 강압적으로 관철시키기로 마음먹고 왔다. 부장의 책상에 양손을 소리가 나도록 내려치며 박부장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비굴해질 생각은 없다.

“그렇습니다. 혼자서 10일 안에 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동료 몇 명과 기한을 10일정도 늘려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걱정 말게 기한은 10일정도 늘려줄 수 있네. 하지만..”

놈은 의외로 순순히 허락했다. 하지만 역시 뒤에 꼬리를 붙이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자네와 같은 실력을 가진 동료들도 몇 명 있긴 있지만.. 모두 바빠서 말이지....”

바쁘다니....?

“자네의 일은 자네가 현재하고 있는, 질답프로그램 하나만으로 축소 시켜주겠네, 다른 팀에서 작업을 늦게 시작했거든...”

놈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다.. 다른 팀? 작업?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 같은 말단사원 하나에게 우리 프로그램의 사활을 맡길 순 없다 이거지, 그래서 다른 부서에서도 몇 명 인원을 뽑아서 같은 작업을 시키는 거네. 분발하게, 가장 우수한 작품이 선정될 테니까.. 아마, 나하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 시간도 없지 않을까?”

“저를....... 믿을 수 없다 이겁니까......?”

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처음과는 얘기가 다르다..

“무슨 섭섭한 말을, 나는 자네를 아주 믿어. 단지 경쟁을 하면,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으리란 거지.”

무시다.. 나에 대한 무시다. 인사조차 하지 않고, 부장실을 박차고 나오는 내뒤에, 놈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 했다.
물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은 아주 잘알고 있다. 처음부터 나에게 그렇게 얘기를 해주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미 며칠이나 지나서.. 나에게 연락하나도 없이 자기들 내키는 대로 결정하다니.. 무시다. 나의 실력에 대한 무시였고, 나의 존재에 대한 무시였다.

“박봉구!!!!”

[퍽!]

경멸스런 박부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방송국 외벽에 주먹을 꽂았다.

정 그렇다면.. 네놈들의 기대를 확실히 뭉게주겠다! 너희들이 고른 그 어떤 녀석들이 만든 것보다, 더 우월하고 월등해 주겠다! 반드시..!!
그리고 그날밤을 어떻게 넘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어났을 때는, 쓰레기로 넘실거리던 나의 단칸방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있지도 않은 스피커까지 생겼다.
그리고.....................

"양군! 거의 1년만에 보는 거잖아~. 일은 그만하고 오랜만에 동문회나 벌이자!!응?"

"...살....려줘요... 선배....... 전 어젯밤에.. 한숨도 못잤다구요.............."

들어오자마자 맥주캔을 따들고 설치는 이상한 여자와. 산송장하나가 고요하고 아늑하던 나의 신성한 안식처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14일만 참자.......................
주만이의 밤을 샜다는 얘기에 재빨리 노트북을 점검해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술김에 사람을 잘못 부르지 않았다..... 방바닥에 펼쳐져 있는 프로젝트 문서와 초주검이 되어 가는 주만이, 그리고 엉성하지만, 말하기 시작하는 나의 프로그램..........
모처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게된 걸까........ 맥주캔 따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우리 세사람이 다시 모이게 된 것을 축하하는 하룻밤의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팀이 재결합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1-6. 낯선 방문.

오늘은 우리 3사람이 모여서 일을 시작한지 2일째. 즉, 내가 일을 시작한지 8일째 되는 날이다. 1월 15일.. 두 번째 일요일이 돌아온 날.
평상시라면, 4시보다 2시간 정도 늦은, 6시쯤에 일어났다가 달력을 보고 안심하며 다시 잠에 들 때였겠지만, 지난 며칠간 어느 정도 새벽잠을 자지 않게 되었기에 지금 몸은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뿐했다.
이틀동안 큰 진전은 없었다. 처음 모인 날은 술파티로 하루를 소비해 버렸고, 다음날 아픈 머리를 짚으며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이 다되어 시간의 대부분을 낭비해 버렸기 때문에 실제로 한 일은 거의 없었다. 단지, 내 후배 ‘유령김’이 내가 해야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분을 파악하고, 음성화작업의 기초를 마련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수 없이 그날 밤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과 지금까지의 작업성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쳤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해논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들은 그정도면 원래의 목적을 거의 달성했다고 여기는 듯 했다.
그리고 오늘. 녀석들이 갖가지 필요한 짐을 옮기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기에, 할 일없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작업에 부족하지 않도록 부품을 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외출을 하기로 했다.

“준철오빠!!”

막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맥빠지게 만드는, 간단하게 말하면 정말 듣기 싫은 꼬마 애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예에~이?”

뒤로 돌아서며 힘없이 대답하는 나. 눈앞에는 다갈색 머리를 뒤로 묶은 중3의 소녀가 잔뜩 눈을 치켜 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주인의 딸. 윤지은..이었다..

“너 학교 안가냐?”

“바보야?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너는 수험생이잖아.”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고. 수험생이라니!”

세상 참 좋아졌다..... 나때에는 중학생때 염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등학생이라면 모르겠지만.......... 게다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니... 잠시 말문이 막혀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는 간신히 한마디 꺼냈다.

“아직 방세낼 때 안됐어.”

주인 아줌마 대신 충실한 방세 징수자인 녀석을 띄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들먹이고 싶지 않은 사실을 강조해야만 했다. 그러나 녀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기가 막히다는 듯 딱 잘라 버린다.

“우씨. 내가 오빠 만날 때 맨날 방세 때문에 만나는 줄 알아?”

“뭔데?”

솔직히 그거 아니면 뭐겠냐마는........ 녀석은 내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마주 대고, 크게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오빠! 혼자 사는 방에 여자 끌어들이지마!”

“뭐, 뭐?”

이 꼬맹이 녀석은 얼굴까지 시뻘개져가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3명이 며칠 동거를 한 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미혼 남자 사는 방에 여자 끌어들이고, 술마시고 노는 거 하지마!”

“왜?”

“그야...................................”

녀석은 잠시 얼굴이 붉어진 채 우물쭈물 거리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나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야! 이상한 소문이 나면 집값 떨어지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그런 거 하지마!!!”

“결국은 방세 얘기 때문이었잖아.....”

“아니야!!”

나는 지은이의 앞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꼬맹아. 남의 일에 관심 쓰지 말고, 공부해. 너도 이제 고등학생 되잖아. 응~? 꼬맹아.”

“뭐. 뭐야?! 내가 왜 꼬맹이야!!”

“나보다 키커지면 꼬맹이라고 안 부를게. 하하 그럼 나는 나간다~.”

역시 단순한 녀석을 놀리는 건 재밌다. 녀석의 악쓰는 소리를 뒤로하며, 대문을 걸어 닫고 나왔다. 파랗게 개인 하늘. 좋은 아침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단골가게에서 좋은 물건을 구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며, 막 나서려는 참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나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이.. 양.. 준철씨.. 인가요?”

요즘 보기드문 검은 장발머리를 지닌 여성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자세히 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만..?”

그녀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던 듯, 주소가 적힌 듯한 쪽지를 주머니에 구겨넣으며 아주 기쁜듯한 미소를 띄었다.
미인이었다. 입고있는 하얀 정장으로 보아서 고급 인텔리 여성 같았다. 그런사람이 이런 시대에 안맞는 집을 찾아오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겠지만.... 왜 나를?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DVC 방송국 소속. 뉴스부서 스포츠국 스포츠중계제작 차장인 나유미라고 해요.”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하지만.. 차장? 그런 관료급의 인사가 왜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그것도 우리 방송국의...

“찾아온 손님을 밖에 오래 세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닐텐데요?”

“아! 죄송합니다. 일단 안으로..”

나는 방금 닫고 나온 대문을 다시 열고 들어왔고, 꼬맹이 지은이는 내가 데려온 인텔리 미인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건 내 책임이 아니란 말이다!
결국 모처럼의 즐거운 쇼핑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키지 않는다...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은 도대체 왜 나를 찾아온 걸까.........?

1-7. 경쟁자.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방은, 손님을 접대하거나, 그외 공식적인 용도로 쓰이기에는 아주 부적합하다는 것을....
갑자기 찾아온 나유미차장.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서 일단 방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감히 들어오라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다.
만희가 꼬박 꼬박 치워주긴 했지만, 여전히 구석을 장식하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들, 그리고 사람이라면 갖고 있어야 하는 필수품들은 거의 없는 방...
하지만 어쩌랴..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하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시죠....”

일단 뭐라도 대접해야 했다. 냉장고가 없으니 과일 같은 게 있을 리가 없고, 유일하게 대접할수 있는 물건은 매일 먹는 인스턴트커피. 그러나 방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 세련된 인텔리 미인인 그녀는 이런 인스턴트 커피 보다는 고급원두 커피가 어울릴 듯 했다.
그러나 그런건 꿈같은 소리....

“고마워요.”

일단 컵에 담은 커피를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실히 미인이다.. 하지만. 역시 그것보다는 내 계획을 망쳤다는 것에 그리 좋은 감정은 들지 않았다. 아무튼 중요한건...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계속 궁금하던 것을 말했다.

“......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

영문모를 그녀의 말에 커피를 마시려던 나는 컵을 내려놓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 아무리 보아도 기억에는 없는 얼굴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만나보고 싶었다니? 그러나 그녀는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며 찬찬히 얘기를 시작했다.

“당신에 대해서 여러모로 조사해 보았죠.”

“나에.. 대해?”

“양준철. 2011년 6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출생. 5살에 서울로 이사와서 초중등 학교를 마쳤죠.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고, 중학교때 어린 나이로 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서 유망한 신인으로 알려졌고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모두 돌아가시고 태백의 할아버지에게 맡겨져 네트스쿨(요즘의 사이버대학과 유사. 모든 분야의 학교교육을 집에서 받을 수 있는 고차원 교육 시스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했죠.”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추었다. 아마도 내 반응을 살피려는 모양인 것 같다.

“상세히도 조사하셨군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죠?”

“지금까지 다. 유망한 신인이었던 당신이 할아버지의 사고사로 프로그래머의 진로를 포기한 것과 대학에서 두명의 친구를 만나 다시 프로그래밍에 손을 대게 된 것까지..”

그녀를 바라보는 내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감정에 대해서 솔직한 편인 나였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그 기억의 영상을 머리에서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비오던 날 거대한 불도저를 붙잡고 울던 기억을.........

“남의 사생활을 조사해서 미안하군요. 하지만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었어요. 제가 상대하게 될 사람에 대해서...”

‘?!’

나차장은 나의 노트북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몇 가지 파일을 다운 받고 자동 종료하게 해놓은 것이었는데 아직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박부장님이 뽑은 사람 중에 하난가요?”

“그럴리가요! 전 보도국이 아니라 스포츠국 소속인걸요.”

밝게 미소지어 보이는 그녀. 왠지 그다지 나쁜적대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차장은 활성화되어 있던 대화프로그램을 발견하고 불러내었다.

“이게.. 당신이 만들고 계신건가 보군요.”

그녀는 대화명을 변경시킨 후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향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Guest: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네요.]

[Servant: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마스터가 아니군요.]

[Guest: 네. 전 마스터가 아니고 그 사람의 친구에요.]

친구? 내가?

[Servant: 친구.......?]

[Guest: 당신의 마스터를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랍니다.]

[Servant: 그런가요. 반갑습니다!]

녀석은 첫대화를 나눈 이후로 꾸준한 업데이트 덕에 상당부분이 진보되어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거의 작업을 한일도 없고 여유도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한 문법과 정보 업데이트는 한번 켜놓기만 하면 따로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꾸준히 이루어 질 수 있었다.

[Guest: 그럼 잘있어요.]

[Servant: 예!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녀는 그것을 끝으로 프로그램을 종료시켰다. 그리고 알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지어보인다.

“좋아요.”

“그런가요?”

“제대로 상대할 기분이 드는데요?”

정찰... 같은 거였군... 이쪽의 정보와 계획이 어느정도 유출당한 듯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다지 나쁜 기분이 느껴지진 않는다. 왜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호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선전포고로군요.”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박부장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기분이 좋게 하는 이유중 하나 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말고도 5명이 더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각 부서에서 컴퓨터에 전력이 있었던 사람들한테 전부 이 일을 지시 한 것 같아요.”

“그럼 전부 다 찾아가 보았나요?”

“아니요.”

문을 나서며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밝게 미소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당신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다시한번 소개하죠. 25세 나유미 차장입니다. 잘부탁드리죠.”

“저야말로..”

똑같이 손을 뻗어 악수를 했다. 내 나이와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이미 다 그녀가 알고 있을 테니까..... 대문을 나가 골목길 사이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많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서 찾아왔고,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에게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잠시 악수를 한 손을 바라보았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그대로 느껴진손... 하지만 어찌됐건 간에 적이다. 25살에 차장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보통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개 주차장이 34인데.......
쉬운 상대가 아니다. 전력을 다해야 할 듯한 경쟁자.... 그렇지만, 긴 흑발의 미인이 경쟁자라는 사실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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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모티브는 쵸비츠가 나오기전.. '안드로이드 아나운서 마이코'라는 작품에서 따왔죠.. 미연시를 했던적이 있어서 (게임제작이 꿈이었던터라..) 미연시처럼 만들어 보려고 여러종류의 여성들을 등장시키는것이 기획중의 하나였습니다^^;;.....
차후의 구체적인 줄거리를 대충 설명하자면... 우여곡절끝에 시스템을 완성하고, 방송국에서 로봇의 원형이 될만한 모델을 모집하기위해 공채를 열죠.
거기서 우편과 사진만 보낸 한 여성이 당선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진히로인(퍽)...
사연또한 기구해서 휠체어에서 평생 일어날수 없는 몸이기에 꿈인 아나운서가 될수 없었고, 그래서 그 이루지 못한꿈을 대신 지켜보고 싶다는 사연으로 당선이 되어 제작이 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해서... 결국 뉴스프로는 망하고;;;;; ..........

결국 덤이 되버린 녀석은 주인공 집에 맡겨지고, 주인공은 그 압도적인 전기세에 한숨을 쉬지만, 그래도 그(로봇)의 미소를 위안삼으며 새 일자리를 알아보려 하고 그럽니다만..... 해피로 진행되지 못하는 스토리였죠.
그 미소와 친절한 태도에 끌리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설계한 프로그램.
기계적 원리에 의해 순환되는 태도 공식 반응.
연정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끼는 주인공...

이런식으로 전개될 이야기였는데 결국 봉인되었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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