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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4)

2006.08.03 00:40

울프맨 조회 수:144

1-4. 병(兵) 동(動)

“하아........”

어긋나도 단단히 어긋나버린 지금의 상황에 영준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되는 게 아닌데........”

영준이 예상한 기한은 오늘 하루.
그리고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도 꾸물거리며 빌딩 사이로 모습을 감춰가고 있었다.
마치 핏빛처럼 물들어가는 하늘, 다가올 어둠을 예고하는 하루의 마지막 빛은 영준이 있는 작은 방마저도 금세 붉게 물들여 버렸다.
밤의 예고.
그것은 영준에게 있어서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원래 영준은 병원에 올 생각이 없었다.
병원을 핑계로 학교를 빠져나와 그 후의 계획을 차차 생각해볼 양이었는데, 영준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런 사고로 일이 꼬여버린 것이었다.

'그게... 다 이 녀석 때문이지.........’

소파 위에서 한창 단꿈에 빠져 있는 소녀.
연소연. 이 녀석이 갑자기 쓰러져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안 좋은 상황까지 밀리진 않았을 터.
그러나 기어코 따라와 버스 안에서 다친 코를 비틀어 대고, 결국 짐이 되버리기 까지 했지만, 영준은 왠지 소연이 밉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 친구라고 자기를 걱정해준 결과니까...........말하자면 동기는 좋았지만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랄까...
영준은 소연의 담요를 잘 정돈해주었다.

“자. 이제 어쩐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시한부라고 가정한 영준에게 시간만큼 귀중한 가치는 없었다.
일정이 틀어졌다고 마냥 죽을상을 하고 있을 여유가 영준에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고쳐먹은 즉시, 영준은 행동으로 옮겼다.
영준은 혹시라도 소연이 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리며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인적 없는 병동은 폐허를 연상케 하는 정적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영준과 소연이 있는 곳은 대학병원.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병동은 병원이 증축하여 옆 건물로 옮기고 남은 구 병동으로 지금은 병원의 기자재 창고 같은 곳으로 전락해 버린 건물이었다.
따라서 이곳은 하루정도 몸을 감추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구병동이 인적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영준에겐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구 병동과 신 병동은 바로 옆에 인접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대학병원은 이곳 신토에선 상당히 이름 있는 병원이어서 그 신 병동엔 언제나 병원을 찾는 인파가 상주하는 곳이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 병원만큼 24시간 사람들이 거주하며 그만큼 안전한 곳도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여기 온 것도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란 얘기로군........’

영준은 그렇게 자기 위안을 삼으며 복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어둠에 익숙해진 것인지, 어둡기만 했던 복도의 전경이 천천히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이 소화전이랑, 호출기는 쓸만하군....’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병원의 각종 장비와 약재를 놓은 곳이어서 그런지 관리는 상당히 철저한 모양이었다.
복도의 벽은 시멘트가 우수수 떨어질 만큼 낡았지만, 소화경보기나 병원본당으로 호출하는 인터폰 등은 모두 교체한지 몇 달 되어보이지도 않는 신형이라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거라면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어............’

휴게실 바로 옆의 인터폰과 소화전을 확인한 영준은 바로 그 옆에 있는 비상용 손전등을 집어 들었다.
복도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준은 불을 키고 싶지 않았다.
이미 밖이 상당히 어두워져 있어서 아무도 없는 건물에 갑작스럽게 불이 켜지는 모습은 눈에 굉장히 잘 뜨일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위치를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달칵. 하고 경쾌하게 올라가는 스위치 소리. 다행히 손전등도 멀쩡한 모양이었다.
영준은 흔히 그렇듯, 손전등을 이러지러 휘휘 돌려보며 불빛이 휘둘리는 것을 확인 한 다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이 아무리 사람들의 이목이 많고 사건이 터지면 시끄러워지는 곳이라곤 하지만, 이 구 병동은 역시 동떨어진 창고였다.
적어도 구조정도는 파악해 두어야 차후 일어날 일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는 해둘 수 있는 것이며, 그 정도의 대비도 해두지 않았다간 어리면서 체력도 약하기까지 한 영준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 되는 것이었다.

‘여긴... 비상 탈출용 도르레가 있는 곳이로군....’

소연이 있는 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붉은 상자를 발견한 영준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머릿속에 꼼꼼히 체크해 두기 시작했다.
사실, 영준으로선 이런 장비를 사용할 자신이 들진 않았다.
이곳의 높이는 3층. 거기다 이런 어둠속에서 사용경험이 없는 탈출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따위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영준은 사용도 하기 어려운 그런 물건들을 무심코 넘기진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선 하나라도 알아두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한 10분쯤 걸렸나..............’

영준은 일자로 쭉 뻗은 복도의 끝에 도달하자 손전등을 돌려 지나온 길을 비춰보았다.
소연이 있던 방이 거의 복도의 끝부분이었으니까 복도의 끝에서 끝을 온 셈이었다.
그리고 걸린 시간은 10분. 영준이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천천히 온 것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오래 걸린 시간은 아니었지만, 위급할 경우를 생각하면 굉장히 긴 편이었다.
이 건물 구조상, 계단은 양끝 복도에만 위치해 있어서 만약, 한쪽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도망친다면 반대편까지 도달 하는 시간은 적어도 2,3분이상은 걸린다는 말이었다.
‘너무 늦어....’
영준은 다시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숨는 장소가 넓으면 넓을수록, 도망치는 입장에선 좋은 상황이지만, 이렇게 뻥 뚫린 일자형 통로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할 곳도, 숨길 곳도 없는 이 일자형 복도는 그야말로 공포영화 감독들이 본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큼 소위 ‘각’이 나오는 훌륭한 곳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쫓고 쫓기고 하는 등장인물들은 결국엔 유일한 탈출구. 반대쪽 통로가 막혀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공포영화의 법칙이 아닌가...........
영준은 자꾸만 머릿속을 메워오는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우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2층으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3층이 서류보관창고여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보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역시나 사람은 가려운 곳이 있으면 긁고 싶은 것이 당연한 지라, 아까부터 불안한 출입문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것이었다.

‘뭐... 겸사 겸사야... 그런 3류 공포영화들 때문이 아니야.’

영준은 그렇게 몇 번이고 속으로 되새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준. 자신이 평소 무시하던 그런 3류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고 불안해지거나 하는 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 영준의 눈앞에 2층을 알리는 표지판이 들어왔다.
그러나 영준은 몸을 돌려 1층으로 향했다.
역시, 2층을 살펴보는 것보다 출입문이 중요했던 것이었다.
3류 공포물의 레파토리가 마음에 걸려서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겠지만, 쫓기는 입장에서 퇴로에 관한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보통은 잠겨있을 리가 없는 문.
영준은 지나치게 신중한 자기 자신을 탓하며 헛걸음이 분명한 길을 내려가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 1층으로 향하는 첫 계단에 발을 내딛으려는 영준의 귀에 소리가 들렸다.
청각을 비롯한 오감이 둔하디 둔한 영준에게도 분명히 들리는 소리.
그것은 인기척은 아니었다.

[.........]

무언가가 뻑뻑하게 억지로 밀리는 듯한 소리.
마치 오래된 문이 삐걱거리며 밀리는 듯한 소리가 바로 위. 3층에서 들려왔다.

‘!’

비록 몸은 둔했지만, 영준의 판단은 몸과 같지 않았다.
영준은 듣자마자 그 소리가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그것은 영준이 신경조차 쓰지 않은 통로.
영준은 올라오는 소리가 두드러지게 큰 계단만을 생각했지, 중앙의 엘리베이터는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은 복도의 가운데. 물론 엘리베이터는 1층에 가운데 출입구가 있었기에 이용하기에 용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ㅗ’ 자 형식으로 신병동과 맞닿아 있는 구병동의 위치 때문에 보통은 구병동을 이용하려면 가까운 영준이 있는 입구를 사용하지 일부러 가운데 입구까지 돌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엘리베이터가 아무리 편하다 해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가운데 까지는 끝 입구에서 조금 먼 거리였다.
보통 2,3층의 거리를 움직이려면 환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단을 이용한다고 들은 영준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은 예상 밖의 경우였던 것이었다.

‘큰일이다!’

영준은 급한 마음에 급히 3층으로 올라가려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생각일 뿐. 영준은 태도를 바꾸어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소리를 줄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본다면 굉장히 겁쟁이로군 하고 여길 수도 있는 행동.
하지만 영준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지금 3층에 있는 것이 ‘적’이라면 아무런 대비도 되지 않은 자신이 올라가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숨어서 사태를 지켜보려는 것이었다.

‘소연이 있는 방만 들키지 않으면 돼..............’

영준은 손전등을 끄고 최대한 위층의 상황을 알기 위해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주위는 고요했다.
구병동을 집어삼킨 어둠은 그곳의 소리마저 집어 삼킨 듯, 주변은 또각 거리는 2층의 시계소리, 그리고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영준의 작은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영준이라도 발걸음 소리정도는 똑똑히 들을 수 있는 것.
그러나.
1분이 지나도, 아니, 몇 분이 흘러도 주위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정적.
암흑과 같은 정적.
그리고 그런 정적을 양식으로 영준의 불안감이 커져만 갈 때,
소리가 들렸다.

[덜컥]

영준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
영준은 평소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그의 몸이 용수철처럼 솟구쳐 올랐다.
이미 자신의 안위는 잊은 지 오래.
오로지 단 하나의 생각이 영준을 3층으로 이끌고 있었다.

‘소연이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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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망전이의 마지막 타이틀이 될(맞아?--;;;) 병동입니다.....
2장 제목은 뭘로 할라나--;;;;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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