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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야.."

자신이 떨어진 절벽위를 바라보며 한 소녀가 중얼거렸다. 만 13살정도로 보이는 외모에 갈색 단발머리, 무슨 특별한 날인듯 상의와 하의가 번쩍거리는게 새옷이라는걸 증명했지만 방금전의 사고로인해 양다리의 스타킹은 완전히 찢어진 상태였다.
긴팔티도 왼쪽이 너덜너덜한게 이미 떨어졌다봐도 상관없었고 또다른 문제는 양다리가 '아야야'라고 작게 신음을 낸것에비해 상처가 피도 꽤나 흐르는게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절벽, 그것도 몇 m나 되는 깊이에 경사가 질대로져있는 절벽. 혼자서 올라가는건 불가능했기에 할 수 있는건 계속 소리치며 살려달라는 것뿐이었다. 언제부턴지 다리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눈물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내렸고 소녀는 더욱 목청껏 울부짖었다.

"시끄러워."

한참 울면서 도움을 청하고 있을때, 절벽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봤자 쓰잘데없는 짓이야. 이런 곳에 오는 인간은 이때까지 너 이외에는 서너달에 한두번, 그것도 정부에서 조사를 위해온것 뿐이었으니까."

굵고 낮은 목소리, 섬뜩한 남성의 목소리가 안쪽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거기다 이 깊이나 경사를 보면 알겠지만 포기하는게 좋을껄? 아니면 너무 시끄러워서 견디기가 좀 힘들거든."

인위적으로 만든듯한 돌계단, 그것의 안쪽에선 마치 감옥이라도 되는듯 창살로 막혀있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햇빛이라곤 위쪽에서 매우 가파른 각도로 내려오기에 입구부근밖에는 보이지가 않는 동굴, 그곳엔 무언가가 두눈을 부릅뜨며 갈색단발의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The Forgotten Guardian]





"다녀오겠습니다!"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마을 가장자리의 집대문이 쾅하고 열리며, 갈색 단발머리의 꼬마가 뛰쳐나갔다.

"유니야! 어두워지기 전엔 꼭 들어와야한다!!"

열린 문안에선 30대중후반으로 꼬마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여성이 다른 아이들에게 음식을 건네주면서 걱정에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어찌됐든 소녀는 벌써 몇십미터를 넘게 달리고 있었기에 멀리서 손을 흔들며 안부만을 전할 뿐이다. 한손에는 작은 바구니하나를 천으로 덮어놓고서, 소녀는 달리고 또 달렸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이고 평야를 통하는 길은 한쪽밖에 없는 분지지형, 그 평야를 지나서 가다보면 어느샌가 흙과 바위밖에 없는 죽음의 땅이 펼쳐져있는 곳에서 홀로 신기하게 살아숨쉬는 마을, 지금 이곳에서 한 소녀가 뛰쳐나와 산위로 향해 달리고 있다.
어느샌가 포장도로는 끝났는지 자갈과 흙으로 이루어진 울퉁불퉁한 지역을 넘어서고, 나무가 빽빽히 있어서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거라고 생각되는 곳을 작은 체구를 이용해 요리조리 뚫고가간 소녀는 낭떠러지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절벽에 이르러서도 두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저씨!!"

휙하니 절벽위를 뛰어선 허공을 향해 몸을 날린 소녀, 약 10여미터 공중에서 그녀는 양 절벽사이를 발로 차고차면서 속도를 천천히 줄인뒤 안전하게 무릎을 꿇으며 좁은 지형에 착지했다. 만 열넷살 소녀라고는, 아니 인간은 절대 불가능한 움직임을 별 상관도 없이 행한후 두 손으로 바구니를 감싸든채 안쪽의 동굴을 향해 달려가는 소녀.

"아저씨! 오늘막 만든 빵가지고 왔어!"
"시끄러워. 분명 두번다시 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안쪽의 창살이 박힌 감옥과도 다름없는 동굴, 그곳의 입구부근 벽에 몸을 기대며 바깥을 바라보는게 영락없이 죄수와도 같은 청년이 창살안쪽에서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에, 그래도 도움을 받으면 꼭 보답을 하라고 엄마한테 배웠단 말야."
"그럼 두번다시 오지말란 말이야. 음식이라면 이미 썩어넘친다고. 내가 원하는 건 조용하고 고요한 생활뿐이야."
"안돼. 그런건 보답이 아니라고 엄마가 그랬어."
"그럼 가서 다시 배운뒤에 두번다시 찾아오지마."

남색 코트와 남색 바지, 거기에 챙이 달린 남색 모자를 쓰고있는 긴 흰색머리 남자가 잔뜩 성을 내며 말했지만 소녀는 이미 그런건 익숙해졌다는듯 손에들고있던 작은 바구니에서 빵과 과일, 그리고 음료를 꺼내며 창살앞에 놓은후 자신도 부근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칫,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일부러 구워지자마자 바로 달려왔단 말이야."
"꼬마, 분명히 알텐데? 나가지만 못할뿐이지, 음식이고 뭐건간에 나조차도 아직 모르는게 이 안엔 잔뜩있단말이야. 그러니 어서 가지고 돌아가. 두번다시 오지마."
"..."

소녀는 갑자기 먹던걸 멈추고 이쪽을 홱하니 쳐다봤다.

"그, 그치만 이것도..이것도 분명히.."
"....하아."

우적. 울먹거리는 소녀의 얼굴을 보곤 청년이 마지못해 창살사이로 손을 내밀어 빵한조각을 집고선 씹어대기 시작했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진 않겠지."

턱을 쉴새없이 움직이며 빵을 계속계속 먹어대는걸 보고 금새 소녀의 표정이 환히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청년은 여전히 손과 입은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눈만은 창살너머의 하늘쪽으로 유지시키고있었다.
과일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않은채 한 남자와 한 소녀의 시간이 흘러만 간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소녀가 부근에 있는 천조각뭉치덩이에 앉아선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몇달이나 흘렀네. 아저씨가 날 도와주고나서 말이야."

시간은 소녀의 말대로 몇달전으로 거슬러 돌아간다. 가파를대로 가파른 절벽,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몇시간동안 쉴새없이 소녀는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날은 어두워져만갔고 목또한 터져만갈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동굴안의 남자는 너무나도 그녀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더 안쪽으로 들어가버려서, 이젠 완전히 모든게 깜깜한 가운데 혼자서있으니 열넷살 꼬마로썬 당연히 무서울 수 밖에 없었다.
갖가지 귀신, 유령, 괴물등 이야기속으로만 들었던 공포가 환상으로 찾아왔고 어느순간엔가 눈물을 터뜨려버린 소녀. 한참을 그곳에서 계속 울고 또 울고있으니 이번엔 이것에 졌는지 창살부근으로 남자가 다시 돌아와서는 손수건을 하나 건네주며 머물러주자, 비로소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춥고 배고픈 꼬마에게 남자는 창살사이로 부드러운 천조각 수십장을 묶어선 작은 사발에 음식을 담아, 같이 건네주었으며 손수만들었다는지 뭐라는지 이동식 난로도 들고와선 따뜻하게 몸을 추위로부터 보호해주었다. 또한 어린 나이에 공포로 자꾸만 몸을 감싸며 수그리는 소녀를 위해 말동무도 되어주곤했다.
소녀는 자신이 부근 마을에 사는 주민의 한사람이고 원래는 고아인지라 한 여성분에게 양자로 받아졌기에 가족은 어머니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그밖에 어머니를 정말정말 너무도 좋아한다든지, 학교에서 요리와 운동쪽은 꽤나 상위권이라든지, 예쁜 나비하나를 쫓다가 축제날 이곳에 떨어진 것에 대해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렇게 얘기할것이 사라지자 소녀는 당연한듯 남자에 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한숨을 쉬며 잠이나 쳐자라고 말한 그의 언행에 상처를 받아 울먹거리는 소녀, 어쩔 수 없이 그는 인상을 찌푸린채 알았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은 너무나도 큰 악한 일, 구체적으론 설명하기 힘들지만 살인이라던지 도둑질이라던지 그런것보다 훨씬 더 극악의 일을 꾸미려다 실패해서 이곳에 갇혀있다는 것, 이 안에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동굴을 막은 창살들은 자신의 DNA 및 각종 신체구조에 따라서 오로지 자기만을 나갈 수 없게한다는 것, 지금은 기회를 노리며 이렇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게 낙이라는 것등등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수도없는 대화속에서 결국 소녀가 자신이 이곳을 나갈 수 있냐며 말한 물음에 그는 힐끗 노려보다가 대략 조용한게 좋은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2주, 만약 그때까지 시끄럽지 않게만 한다면 너를 이 감옥같은 절벽에서 빠져나가도록 해주지."

하지만 처음엔 굳게 결심한 표정을 지으던 소녀도, 역시나 어린애라는듯 다음날 점심도되지 않은때부터 다시 날뛰기 시작하자, 짜증이날대로났고 거기다 화장실까지 찾는것에 완전히 질려버린 남자는 꼬마에게 약 한봉지를 건네준후 옆에선 웬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일단은 남자의 말대로 약을 먹고나니 아픈것이며 상처며 볼일을 보고 싶어하던것까지 모든것이 사라져간것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소녀, 남자는 지금 피우고 있는 향또한 그녀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는데 도움을 줄꺼라했고 그후 약간의 트레이닝, 정말로 간단한 훈련을 받은후 2주뒤였을까? 그런 말도안되는 신체기능을 얻게된 소녀는 혼자서 탈출해내는데 성공해버렸다. 두번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약속과 함께말이다.

"....정말 대단했어, 아저씨. 진짜로 날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주다니 말이야. 뭐, 마을에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 버렸지만, 헤헤."
"나한테는 그 한바탕 소동이란게 너때문에 70번째를 돌파했다."

콧방귀를 끼며 마지막남은 음료를 마신뒤 바구니속에다 끼워넣는 긴 하얀 머리에 커다란 챙이 달린 남색모자를 쓴 청년이 말했다.

"이제 그만 가봐. 또다시 부모걱정이나 시키지나 말고, 그리고 나와의 약속도 어기지말고말이야."
"헤, 알았어."
"부디 이번에는 진짜로 알았으면 좋겠군."

바구니를 챙기며 돌아가던중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소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 이젠 나도 여기에 잘 못올지도 몰라. 하지만 아저씨 말대로 이 힘이나 아저씨에 관해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테니 걱정마. 그리고 언젠가 내가 꼭 꺼내줄께."
"또 오겠단거냐? 진담이니까 돌아오지마라. 이런 곳이나 나라는 녀석이 뭐가 좋길래 오는거야. 보답은 충분히 받았고 이제는 받기도 싫으니까 여기 올시간엔 남자친구나 만들던지 아님 돈이나 벌어."
"헤헷."

살짝 웃으며 제대로된 대답을 회피하는 소녀, 그 모습에 남자는 눈을 감고선 동굴에 기대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선 입을 삐쭉 내민채 '할까말까'하며 고민하다 이윽고 그는 오른손으로 무언가하나를 집어든채 소녀를 불렀다.

"꼬마."

휙. 무슨 보석같은 것을 소녀에게 던지고선 남자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번을 끝으로 나또한 수다를 떨수 없을지 모르기에 한가지 좋은걸 알려주도록하지."

칠흑속에서도 커다랗고 동그란 두눈과 익살스런 미소만은 번뜩인채 남자는 말을 이었다.

"가끔씩이나마 잊지마라. 심심할때마다 기억하라. 너는 이미 인간을 초월한 인간이 아닌자. 더이상 '일반'이란 길속엔 묻혀있지 않은자. 혹시라도, 행여라도 아주 조그만 것 하나, 아주 사소한 일 하나, 있을 수 없는 것이 일어난다면, 존재할 수 없는게 존재한다면."

그의 눈은 짐승보다도 사나웠고 미소는 그 어떤 악인보다 더 역겨웠으며 썩어있었다.

"그에 맞춰 대응하라. 있을 수 없는 일에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대응하라. 존재할 수 없는 존재에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대응하라."

마치 이 다음의 일을 예견했는지 그는 눈을 더욱더 크게뜬채 정신이 완전히 돌았다는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적'에는, '기적'으로 대응하라."





소녀가 떠난지 약 2시간정도 흘렀을까, 흰머리 죄수남자와의 약속만을 제외하면 다른 것은 모두 지킨다는듯 분명히 해가 지기전에 소녀는 마을언저리에 나타나선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부턴 놀러만 다닐 수는 없을것이다. 그날 그녀는 모든걸 잃어버렸었으니까. 몇달전 소녀는 유일한 단 한명의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가다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갑작스런 지진이 일어나버리고 말았으니까. 그 지진에 어머니가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렸으니까. 그렇게 죽어버렸으니까.

"..."

갑자기 극복했던 슬픔이 되살아난듯 눈시울이 따가워지는게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집이 되어버린 고아원, 차마 안까지는 들어가지못하고 계단근처에서 그 하얀머리 남자처럼 벽에 등을기댄채 누워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소녀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소풍을 가자고 조른날에 이런 일이 난것을 그녀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패닉에 빠져 울지도 진정하지도 못한채 달리다가 떨어진게 그 남자가 있던 동굴이었던 것이고 날마다 그를 찾아간 것은 외로움을 잊기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현실을 잊고 산다는건 그 하얀머리 아저씨도, 그리고 죽은 어머니도 살아있다면 원하질 않을테니까. 내일부턴 모든걸 바꿀것이다. 조금씩조금씩 자신을 바꿔나갈 것이다. 그렇게 어느샌가 잠에 빠지게된 후였다.

"유니야! 유니야, 어서 일어나봐!!"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거의 전부가 모두들 후레쉬를 손에든채 입구근처에 모여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 유니야!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네?"
"니 엄마가 돌아왔다고!"
"?!"

화들짝 놀란 몸이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올랐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을 자신도 입구근처에 달려와서 바라보는 소녀,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있었다. 아니,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그날 지진으로 실종된 몇몇 다른 사람들도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이쪽으로 애써 미소를 지은채 팔을 흔들며 다가오고있었다.

"아아, 모두 살아있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어서 의사선생님을 불러와! 다친 사람이 상당수 있다고!!"
"아버지도 살아계셔! 저기 우리 아버지도 계신다고!"

모두가 즐거워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소녀는 혼자서 멍하니 선채 그들을, 자신의 어머니를 그저 지켜보았다.

-혹시라도, 행여라도 아주 조그만 것 하나, 아주 사소한 일 하나, 있을 수 없는 것이 일어난다면

걸어오는 어머니, 그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어머니이다. 그 미소나 표정 하나하나가 전과 다름없이 똑같았다.

-존재할 수 없는게 존재한다면

하지만 이 마음은 왜 이럴까. 어째서 자꾸만 그 남자의 목소리만이 머릿속에 울려퍼지는걸까.

-그에 맞춰 대응하라

어째서 기쁨이라던가 환희라던가 행복이란게 느껴지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에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대응하라   존재할 수 없는 존재에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대응하라

어째서 더욱더 슬픔과 고독만이 느껴지는걸까.

-기적에는, 기적으로 대응하라

그때 누구 하나가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실종됐다돌아온 사람 하나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는 그를 보고서 소리를 지르는 갈색머리 소녀.

"아, 안돼에에에에!!"

푸각!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자신의 부모를 맞이하러간 한 남자는, 돌아온 부모의 몸에서부터 튀어나온 수십개의 창살에 몸이 뚫린채 시체가 되어버렸고, 이 모습에 마을사람들이 모두 놀라 하나둘 후레쉬를 떨어뜨리는 동안, 실종되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씨익 변하면서 모두들 몸에서 부드러운 칼날을 수십개 꺼낸채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자그대로 학살 혹은 사냥이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그리고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진실에 모두들 실종된 가족의 이름을 부르다가 창살에 하나둘 꼬치가 되어갔다.




"?!"

마을에서 떨어진 산속의 절벽, 그곳 깊숙한 곳에 위치한 창살로 막혀있는 동굴안 입구부근에서 챙이 달린 남색 모자를 쓰고있던 남자가 무언가에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그렇군. 와버린건가?'

하늘에 떠있는 만월을 바라본채 생각하던 남자의 머릿속에 누군가, 어린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 열두살정도에 갈색단발머리, 거기다가 재수없게 언제나 히죽히죽 웃다가 금새 펑펑 울어버리는 표정, 무엇이 웃긴건지 미소마저 지어졌다.

-아저씨. 아저씨는 말은 그렇게해도 참 착한것 같아

"후우."

-우리 가족은 말이지, 엄마하고 나밖에 없어. 만약 아저씨가 내 아빠가 된다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서 하는 소리냐?"

-아저씨가 내 아빠가 된다면 말이지, 정말로 나 기쁠거 같아

"꼬맹이가 못하는 소리가 없군. 아무리 어리다지만 나이에비해서 한없이 무능해....한없이 순수해."

고개를 들어서 남자는 동굴안쪽 구석의 어딘가 거대한 철장문을 바라본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사람의 이미지가 그려졌고 분위기또한 매우 다르게 변해버렸다. 그를 향해 칼을 내밀려 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는 아직도 믿을 수 없어! 나는 믿지를 않아! 형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걸..그것이 고의라는걸 나는 믿지않아!!

입을 굳게 다물고선 눈은 반쯤 감은채 남자는 계속 그 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형만은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지금은 막아보이겠어. 하지만 나는 믿어! 언젠가, 다시 원래의 형으로 돌아온다는걸!

오른손을 슬며시 들어서 얼굴앞에 가까이 놓은채 남자는 가만히 내려보며 추억을 회상했다.

-그렇기에 이것들을 차마 없앨수가 없어. 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러니 봉인해 놓겠어. 이곳에 저 무기와 병기, 그리고 형을 묶어두겠어.

쓰윽 고개를 돌려 남자의 시선은 이제 철장을 향한다.

-하지만 나는 믿어! 그렇기에 말하겠어. 언젠가, 만약 형이 다시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구하기위해, 그리고 놈들과 싸우기위한 마음을 가졌을때! 형의 힘을 갉아먹는 이 철장과, 저 무기고의 문은 다시 열릴꺼야. 그때의 형을 위해서 다시 열릴꺼야.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는 철장을 향해 손을 갖다대었다.

-나는 아저씨가 내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

파직!!

강한 전기쇼크가 철장에 접촉한 손가락을 타고 몸에 전달되자 그는 손을 탁 빼며 다시 바라보았다. 지금도 손가락 주위에 지직거리며 육안으로 선명히 보이는 전기파장, 그가 피식 웃으며 '그럼그렇지'라고 생각할때였다.

철컹.

"...... 호오."

무언가 안쪽 깊숙한 곳에서 철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인해 바깥쪽으로 천천히 조금씩 열리는 거대철문, 그것은 틀림없는 무기고로써 안에는 수십가지의 총과 칼, 도끼등등과 함께, 내부에는 거대한 석상같은 무언가가 정렬되어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마을은 이미 이집저집 어느것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불길에 휩싸여 타버리고있다. 생존자는 숨을 거칠게 쉰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갈색단발의 소녀 한명뿐, 다른 사람들은 죽어서 몸이 완전히 뜯겨지거나 혹은 잘은 몰라도 놈들의 동료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피부색이 모두들 녹색으로 변한채, 몸 여기저기선 길게 뾰족한 총수를 수십개 꺼내들고 놈들은 소녀를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쉬익, 한녀석의 몸에서 뻗어나온 수십개의 창살이 소녀를 향해 날아들자 그녀는 뒤로 몸을 돌고돌면서 피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잘 알다시피, 생존자는 오로지 자신 한명. 이 마을에 있는 모두가 적인 셈이니, 공격한번 피했다고 안심하는건 불가능하다.

"!"

집을 뒤로두어서 공격범위를 앞쪽으로 줄일작정이었지만 이 괴물들의 칼날은 그 집마저 반으로 쩍하니 가르며 날아들어왔다. 다시 몸을 뒤로돌린후 손으로 땅을 쳐서, 빙글빙글 돌며 피하긴했으나 이번엔 돌담을 깨뜨리며 놈들의 창살같은 피부가 수십개 날아든다.
몸을 앞으로 살짝, 어깨를 옆으로 살짝, 얼굴을 뒤로 살짝, 그리고 왼발과 오른발을 한발짝씩만 앞으로뒤로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유지시킨채 모든 공격을 피해내는 소녀, 하지만 자신은 혼자고 적은 여럿, 거기다 한명당 최소 저런 괴상망측한 촉수를 열개이상은 지니고 있으니 언제까지고 피한다는게 될리가 없었다.

"!?"

발을 한발짝 움직인다는게 잘못해서 옆에있던 돌에걸려 몸을 넘어뜨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며 그녀의 주변을 반경 7,8m정도에서 에워싼 녹색피부의 마을 사람들, 괴물들.
일단 퇴로부터 차단해서 천천히 가지고 놀 생각인걸까? 어찌됐든 이걸로 단순히 도망치는것만으론 안된다는걸 깨달은 소녀는 이빨을 꽉 깨물고 있다가 순간 손에 무언가가 집히는걸 느꼈다.

"이건.."

정원손질용 칼이다. 가지치기를 위해 만들어진 칼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없는것보단 100배는 낫다고 결론지으며 양손에 꽉 쥐어든채 일어서는 소녀.

'녀석들도 단번에 저 많은 촉수를 사용하진 못한다. 기껏해야 한번에 서너개가 최고, 그것을 모두 비껴쳐낸후 목을 벤뒤 방패로 삼는다. 그리고 이 괴물들이 시체에 박힌 자신의 신체를 빼던중 빠지지 않을때, 신체에 너무도 세게 박혔는지라 잘 빠지지 않는 녀석들이 생길때, 그 녀석쪽을 향해 죽어라 달려가면 도망칠 수 있어. 그래, 살아날 수 있어....하지만..'

쉬이이익! 몇개의 날들이 공격을 해오자 소녀는 그것을 칼로 비껴내려 튕겨냈다.

'하지만..하지만..!'

계속해서 이번엔 몇배나 수가 늘어난 뾰족한 적들의 촉수, 그것을 하나하나 놀라운 실력으로 쳐내면서도 소녀의 몸은 계획대로 어느 하나를 향해 달려들어 방패로 삼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죽은거야? 정말로 끝나버린거냐고?! 존 아저씨..슈르힌 선생님...모두, 모두, 정말로 죽은거냐고?!!'

피쉭! 잠시 딴생각을 하던사이 결국 수가 불대로불은 공격에 하나의 칼날같은 신체가 소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

콰앙!!

그리고 그것은 소녀의 눈앞에서 터져 사라져버렸다. 의아해보이는 표정으로 잠시 멍하니있는 소녀, 소녀와함께 같이 멍하니 서있는 녹색 피부에 마을 사람들..그리고 공격은 이어졌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아아앙!!

한번에 서너명씩 폭탄이 터지듯터진 충격에 모두들 몸뚱아리가 산산조각 부서지며 불타버린다. 그렇게 소녀의 주위를 에워싸던 마을 사람들을 한번에 수십명씩 날려버린 폭발은, 그녀의 근처에 놈들이 서있는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마지막에는 뒤쪽에 붙어있던 두 집을 통째로 부숴버리면서, 누군가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분명 충고하지 않았나. 기적에는 기적으로 대응하라고."
"아.."

낮익은 남성의 굵은 목소리, 폭탄에 터져 불타버리고 있는 두 집안에서 당당히 뚜벅뚜벅 걸은채 손에는 무식하게 커다란 총인지 대포인지를 들고있는 남색 코트에 남색 모자를 쓴 하얀 머리의 남자가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저씨!"

사나운 눈매에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는 두손으로 총을 겨눠든채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녹색피부의 마을 주민들을향해 폭탄같은 탄환을 마구 쏘았다. 한번 그가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집과함께 사람들이 4,5명씩 몸이 터져버린다. 그렇게 한참을 쏘아댄후 그가 소녀의 곁으로 뛰어내려오자 그녀는 반가운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역시 도와주러 왔구나!!"
"시끄러. 또 멋대로 판단하지마, 꼬마. 너한테 준 보석은 추적기였다고. 난 이 주변 지리를 모르기에 널 이용한 것뿐이야."

탄환이 떨어진 그 무식한 캐논을 옆에다 떨군후 왼손으론 개틀링건용 총구가 달린 또 거대한 샷건같은 것을, 오른손엔 커다란 검을 허리에서 뺀후 그녀에게 건네주며 그는 중얼거렸다.

"그따위 장난감으로 뭘 어쩌려는거냐?"
"이, 이 칼은?"
"내 쌍검중 한자루다. 비록 일반 장검보다 훨씬 길고 두께도 몇배나 두껍지만 지금의 너라면 사용할 수 있을터."
"응."

양손으로 꽉 잡고선 그 큰 검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소녀, 아니 약간 비틀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아까전과는 달리 기합이 팍 들어가있고 동요의 기색이 없어보이는 표정은 그녀가 다음 전투때엔 능숙하게 다룰것을 예견해주었다.
왼손에든 개틀링샷건에 허리에 찼던 긴 탄환줄을 끼우고선 오른손으론 반대편 허리에 달려있던 자신의 다른 한자루의 검을 빼어든채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격준비를 하고있는 남자에게, 소녀가 중얼거렸다.

"아저씨, 난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모두들 다 내 친구인데, 나에게 잘 해주었는데, 그런데도 나는 싸워야만하는걸까?"
"너는 네가 살고싶은건지 죽고싶은지도 모르는거냐?"

소녀의 질문에 여전히 변함없는 퉁명스런 말투로 하얀머리의 남자가 모자를 눌러쓰며 대답한다.

"답은 맨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단지 모두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뿐, 답을 알고있는이상 받아들여야하는데 계속 망설이기만하다가 그대로 끝나버린거다. 추구해야할 답이 하나이기에, 추구해야할 길도 하나였는데, 망설이고 인정하지않았기에 인간들은 죽음이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거다."
"....응, 그런거네."

하나둘 몰려오는 적들 가운데, 소녀쪽에 또다시 낮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똑같은 녹색피부에 녹색머리칼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유의 머리스타일과 드레스는 소녀에게 있어서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명심해라, 꼬마! 너는 이미 그런 보통 녀석들과는 다르다. 너는 강하고 침착하고 신중하다. 남은건 자기자신을 끝까지 믿는것이다, 꼬마!"
"응! 걱정마, 아저씨!"

그것은 소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소녀가 그토록 좋아하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어머닌 지금 다시한번 죽었다. 소녀가 휘두른 검에 두세조각이 나면서 그것은 죽었, 아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대로 기세를 북돋아 계속계속 다리를 멈추지 않는 소녀, 날아드는 날카로운 공격을 두꺼운 검으로 비껴낸후 곧바로 주저없이 적의 몸을 두동강 내버린다. 검의 회전을 멈추지않고 계속 돌려서 그 옆에 서있던 동료를 함께 베고 또 베었고, 그후 다른 적들을 향해 달려들어선 이번엔 녀석들의 무기와함께 한꺼번에 베고 또 베었다.
남자또한 정면에서 몰려오는 수십의 적들을 향해 왼손에든 거대한 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3개의 실린더가 개틀링건과같이 돌아가면서 샷건총알만큼이나 두꺼운 탄환이 초당수십발씩 토해졌으며 당연히 이것을 맞은적은 도저히 눈으로는 보기가 끔찍할 정도로 온몸이 몽땅 터져서 구멍나 죽어버렸다.
그렇게 한번 왼손을 90도 오른쪽으로 돌린것만으로 눈앞의 모든적들이 죄다 터지고터지고 또 터져버렸고, 탄환이 떨어져서 '틱'하는 소리가 나자, 남자는 오른손에 든 검을 휘두르며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푸각! 푸쉭! 푸쉭! 푸쉬쉬쉭!

기세좋게 수분동안 인간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달리며 인간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힘으로 놈들을 단번에 서너명씩 베어버리는 남자, 남자보다는 약간 떨어지지만 지지않게 마찬가지로 초인의 힘을 발휘하며 눈앞의 적들을 쓸어버리는 소녀, 이미 괴물은 겉보기만으로 녹색이고 온몸에 괴상한 촉수가 튀어나온 녀석들이아닌 이 두 남녀였다.
날아오는 촉수를 검등으로 쳐낸후 계속해서 몸을 회전시켜 다음번에는 몸을 두동강으로 베어버리는 갈색단발의 소녀, 무차별적으로 가리지 않고 그냥 팍 달려들어선 한번에 와르르 수십놈을 베어버리는 남색 코트와 모자의 남자, 그렇게 학살을 하는쪽이 바뀌고서 둘이 신나게 싸우고 있을때였다.

"!"

갑자기 멀리서부터 괴성이 울려퍼져왔다. 추악스럽고 길고 마치 모든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섞은듯한 그런 소리였다. 이미 어느정도 눈에 보이는 적들은 전부다 해치우고서, 두 남녀는 멀리 소리가 들린 평야쪽으로 눈에다 힘을 주며 집중을 했다.
거리상으로는 터무니없이 먼거리에서 들려와 눈으로는 당연히 보일리가 없지만, 이미 이 둘의 눈은 강해질대로 강대해져서인지 어째서인지 그 먼거리를 넘어가서, 그곳에 있는 '무언가'를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괴물, 온몸에 집채만한 뱀의 얼굴같지만 늑대의 이빨을 가졌고 황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눈은 다섯개나 달려있는, 그런 괴물같은 생물체들이 집합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해일이었다.

"뭐, 뭐야 저것들은?!"
"쳇, 생각보다 시간이 없군. 어이, 꼬마!"
"?"

코트안주머니에서 무언가 금팔찌같은것을 꺼내 던지고선 남자는 반대쪽으로 몸을 휙 돌리고선 소녀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얘기했다.

"'에스카리브'라는 거다. 위급한 순간이 오면 오른팔에 차고서 중앙의 보석일 힘껏 눌러라. 그러면 그것은 너에게 힘을 줄것이다. 허나, 신중하라, 소녀여. 그것은 동시에 너에게 같은 팔찌를 지닌 자로부터의 위험을 건네줄것이며, 네 일상을 영원한 전쟁으로 바꿀 것이다. 가혹하고 무거운 선택이지만 지금의 너라면 가능할터. 이미 일반 인간의 신체도, 생각도, 마음가짐도 초월한 너라면 가능할터. 자신의 결정에 따라오는 미래또한 같이 바꾸어내라, 소녀."
"아, 아저씨는 어떻게할꺼야? 나를 도망치게 하는동안 저것과 싸워서 시간을 벌 셈이야?"
"착각하지마라. 나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뿐이야. 그러니까 너는 방해하지말고 사라지면 되는거야. 그럼 이제 가라. 더이상 지체했다가는 그 팔찌로도 힘이 부족할지 모른다고."

대략적으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눈치는 챈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자기멋대로인 상상일까? 하지만 소녀는 그런것에 고민하지 않고 그에게 크게 소리쳤다.

"이름!"
"뭐?"
"내 이름은 유나레카. 사람들은 줄여서 유니라고 불렀어. 아저씨는?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흥, 안타깝게도 그런건 잊은지 오래다. 정 알고 싶으면 지금 네가 지어라."
"지, 지어? 내가?"
"그래.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정하고 가버리라고."

살짝 당황하던 소녀는 분위기가 이럴게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되새기면서 궁리하다가 이윽고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티로....그래, 티로. 티로라고 불러도되, 아저씨?"
"센스감각 제로인 이름이군. 그럼 이제 그만 가라. 더이상은 내가 짜증나니까 말이다, '유니'."
"으, 응!! 티로도 꼭 살아야해!"
"시끄러워. 죽는다는 소린 한마디도 안했다고."

멀리 달려가는 소녀쪽을 힐끗 돌아본후 다시 눈을 정면으로 남자는 돌렸다. 마치 해일과도 같은 이 거대괴물들의 집합체는 여기저기서 괴상한 머리를 드러내며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게 속도는 시속 수십키로, 그 해일의 높이는 약 40m쯤 되는거 같았다. 오른손에든 검을 턱하니 앞에다 꽃으며 바람에 코트와 머리카락을 펄럭이면서 남자는 씨익 웃었다.

"크크큭. 오랜만의 녹슨 몸을 훈련하는데는 정말로 딱 좋은 상대로군."

가까이 오면 올수록 괴물들의 속력은 훨씬더 빨라졌고 점점더 눈알이터진 말에 악어이빨이라든지, 수십마리의 구더기에 가시가달려있다던지의 형태를 몸 곳곳에 보이면서 그것은 달려들고 있을때 남자는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나는 심한의 황제."

점점 해일처럼 밀려오면서 괴물들은 더욱더 발광을 떨었고 남자쪽을 향해 그것들은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나의 영광은 썩어버린 시간을 위하고, 하나의 수치는 앞으로올 시간을 위한다."

부직 부지직 부서진 집들을 헤치며 또다른 녹색 피부의 마을 주민들이 몸에서 날카로운 촉수를 꺼낸채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상실된 멸망.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고, 현재를 위해 과거를 버리며, 과거를 위해 미래를 버린다."

밀려오는 해일의 뒤쪽에서 거대한 형상이 하나 괴물들의 몸이 만들어내고 있다. 기사의 투구를 쓴 그것은 상체만 이루어져있으나 커다란 검을 한손에 들어올린채 그 적의는 이 남색 코트와 모자의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원망의 사슬."

거리는 점차 가까워져서 마을과 이 직경 400m짜리 괴물해일과의 거리는 앞으로 약 100m.

"나와 함께 모두를"

거리는 단숨에 제로로 치닫았고 주변에 있던 녹색피부의 마을 주민들의 촉수와 밀려오는 해일에 있던 각종 몬스터의 얼굴과, 그리고 그 해일의 뒤에 있던 거대 기사의 검이 남자를 향해 내리쳐졌다.

"잡아, 먹는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풀도 한포기 나있지 않은 황무지위에서 갈색에 짧은 머리의 소녀가 지친 숨을 몰아쉬며 커다란 검을 들고있다. 지친 소녀의 몸은 더이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였다.

"아저씨. 괜찮은거지? 죽은게 아닌거지....그렇겠지? 왜냐하면 아저씨는 강하니까. 한낱 꼬맹이인 나를 이런 초인으로 만들어주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은거겠지?"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검을 어깨에 기대어놓은채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소녀. 그런 소녀의 앞에서 역겨운 비명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턱하고 절벽위에서 올라왔다. 손을 땅에다 턱집고서 몸을 끌어올린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손바닥크기만해도 몇m는 되었고 들어올려진 몸은 상체밖에 없었으며 상체의 크기는 약 26m를 넘을정도였다. 그렇게 얼굴과 상반신, 그리고 한쪽팔에는 부러진 검을 쥔채 녹색의 몸을 이루고있는 그것은 녹색의 피를 흘리며 괴로운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소녀는 멍한 상태로 땅바닥을 바라보면서 남자가 주었던 팔찌를 오른팔에다 찼다.

"이것은 분명히 사용하라고 준거겠지, 아저씨? 왜냐하면 당연하니까. 이것을 사용하는건 너무나도 자연스런 이치니까."

상반신을 땅바닥에 댄채 그것은 부러진 검을 크게 들어올려선 눈앞의 소녀를 향해 내려쳤고 소녀는 팔찌에 달린 붉은 보석을 힘껏 눌렀다.

"살고싶냐 죽고싶냐는 질문에서, 답은 정해져있으니까."

땅바닥이 순간 덜덜덜거리면서 멀리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쾅,하고 폭발같이 산언저리를 부수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단숨에 소녀가 있는곳까지 날아와서는 커다란 검을 들어서 그 녹색기사의 부러진 검과함께 녀석을 절벽째 두동강 내버린다.
두꺼운 3,40여미터의 검이 땅바닥을 내리치자 크나큰 지진이 주변에 울려퍼졌고 이 검을 들고있는 거인, 온몸이 강철로 이루어진듯 보이는 로봇의 한손위에 갈색단발의 소녀는 큰 대자로 뻗은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찌를 찬 오른팔엔 이상한 붉은기운같은게 한번 휘갘으면서 문신같은 것을 얇게 만들었고 원래 양쪽이 파랗던 그녀의 눈중 오른쪽 눈은 빛깔이 초록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소녀는 피곤함때문인지 몸을 좀더 활짝 뻗었고 입가에는 미소를 지은채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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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분들은 마지막의 남자 대사에 '앗 저건..'하실지 모르시는데 맞습니다. 우윽, 슬.전.때부터 썼지만 제가 맨처음에 글쓰는건 그냥 막쓰는게 아니라 다 의미가있어요..ㅠㅠ)(퍽!)

아, 그리고...제 사정을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2년전부터 바빴습니다. 그래서 슬.전.도 도중에 연재를 그만뒀군요. 지금은 좀 나아져서 다시 쓰기시작했고, 그리고 드디어 8월달에 제게 한달정도의 휴식이 주어집니다. 미리 소설을 쓰게된다면 올릴것이나 그게아니면 그기간동은 그냥 막 놀생각입니다. 안온다고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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