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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쳐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그곳은 텅빈 열차 안. 이제 막 열차를 탔을때와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온 후였다. 아니, 아무리 열차가 텅 비기로소니 이렇게 텅 빌수가 있는가? 이래뵈도 대한민국 제 2의 도시인 부산행 기차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본 결과, 열차칸 맨 뒷좌석에 앉은 나는 저 앞쪽에 한두명 정도의 여행객이 앉아있는걸로 봐서, 아무래도 4차원의 세계라거나 이런데에 떨어지지는 않았은 것 같다. 보통 그런데에 떨어지면 열차째로 나 혼자만 가게 되잖아? 그런거 싫단 말이야!

“아니… 나 요즘 수상한 나라의 폴을 너무 많이 봤나…”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세계~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이마를 짚어보았다. 뭐, 그래봤자 아무것도 안나오겠지만 말이야.
차창밖을 쳐다보니 바로 눈앞에는 초록색 언덕이 있었다.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것 같은 풍경. 창문이라는 네모난 틀이 스크린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뭔가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것이, 서울에서는 절대로 볼수없는 풍경이였다. 아무래도 시골사람들에겐 이런 풍경마저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겠지.

아버지는 시골이라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시골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서울사람들에게 있어서 부산은 촌동네일것이다. 지역감정이라는것을 어찌어찌해도 없어지지 않는 이 나라의 큰 문제중 하나이니까. 그런의미로 나의 고향도 부산이고, 어머니의 고향도 부산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서울촌놈이 부산촌년과 결혼해서 나 같은 아이를 낳았다는 이말씀. 이건 아무래도 서울과 지방간의 지역감정 패퇴가 아니겠는가? 핫핫핫!
…그런 헛소리를 골라가며 하고있는 동안에, 난 금방 재미가 없어졌다. 창밖의 풍경도 필름 돌아가는 것 같아서 꽤 재밌긴 하지만, 이것도 곧 질려버리고 말이지. 그렇게 할 것을 찾고있는동안 내 머릿속에 생각난건.

“아! 신문이라도 사놓을걸.”

기차역에 가면 그렇게 많이파는 신문을 하나 안사놓았다. 책이라도 한권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혼자 후회하고 중얼거리며 좌석에서 뒹굴거렸다.

열차에서는 낡은 에어컨이 비명을 지르며 굴러가고 있었다. 덜컹덜컹덜컹. 왠지 위험해보여. 곧바로 튀어나와서 날 덮칠 것 같은 느낌? 거기다가 이 위험해 보이는 에어컨에서 부는 바람마저 시원하지가 않다. 아아~ 이미 나의 커다란 가슴계곡 사이에는 땀이 차버렸는걸요?
뻥이지만.

“애초에 나한테 계곡이 있을리가 없잖아… 아니. 이렇게 말하니 왠지 비참한데.”

혼잣말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헛소리를 골라 지껄이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그닥 아무도 없지? 불편한것도 없겠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
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박차 일어난다. 음, 도난의 요지가 있으니 핸드백은 필수 불가결! 그렇게 열차칸의 뒷문을 열고 화장실칸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딱딱한 바닥. 아무래도 열차의 칸과 칸 사이라서 그런지 심하게 흔들리는것도 알수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의 일을 보고 나왔을 때… 난 그남자와 만났다.

“엇,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살짝 부딪쳤는지 사과부터 먼저 하는 그. 그런 그에게 난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답해주었고, 그도 이내 미소로 보답하며 열차의 출구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다. 아아, 반대편 칸 승객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돌아가려 하고 있을 때.

「이번역은 부산역, 부산역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선 잊으신거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엇, 벌써 부산역 도착했나?”

나의 외침에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열차에서 내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이런, 잠자는사이에 사전 안내방송을 해버린건가? 매너없구만 한국철도공사. 그렇게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내가 앉았던 자리를 확인해 보았다. 놔두고 가는 것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열차의 출구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이질감을 느꼈다.
내 눈은 사람들의 어깨 위로 인간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을 볼수 있다. 개인신상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망상까지. 이 모든 것이 문자가 되어 내 눈에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것이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난 세상의 이질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말하자면… 지금은 익숙해졌다랄까? 저정도의 한줄도 안되는 망상은 무시하면 되는것이니 말이다. 사람 많은곳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지만…….

그런것이다.
내 눈은 인간의 ‘진실’을 볼수있다. 의사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난 사람의 속마음을 모두 꿰뚫어볼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권침해를 무시하는 능력이 아닐수가 있는가? 뭐, 나도 좋아서 생긴 능력은 아니지만……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본것만으로도 난 확신을 가졌다. 열차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을 보고서 확실해졌다.

그래, 확실히…
내 눈은 인간의 진실을 보는게 아니지, ‘볼수있는것이구나’.


그때. 내가 보고있는 한 남자의 어깨 위에는… 글자같은거 하나 보이지 않았다.



- 2 -



남자는 아까 나와 부딪힌 남자였다. 잘 차려입은 검은색 정장.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코끝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뿔테안경이 꽤 잘 어울리는 남자. 그런 평범한 남자의 어깨 위에는… 그렇게 평범하게 생각했던 인간의 ‘진실’이 없었다.

“안보여”

저 남자만.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어깨위에는 분명 있는데. 저 일렁거리는 문자가 분명 있는데… 저 남자만이 없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없는게 당연한 것이다. 그게 보통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것이다. 하지만… 내 눈은 보통사람의 것이 아닌걸? 이런걸 보통 초능력이라 하지않아? 난 정상이 아니란 말이야!!
이상하잖아? 내가 보는 세계는 이게 정상이야. 인간의 속마음이 보여야 정상이라고. 하지만, 저사람은 안보이잖아? 마치 정상인이 어떤 돌연변이의 속마음을 읽는것처럼… 이상해. 나한테는 이 광경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야. 왜곡된 공간… 그런것이라고 할까? 저 남자의 주위만… 일그러져 있는 느낌.

그래.
어쩌면 이사람도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눈이 정상이 아닌것처럼… 저사람도 정상이 아닐수도 있겠지. 뭐,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나? 아니면 나같이 눈이 맛이간거야? 눈이 죽음을 본다던가 이런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망상을 하며 플랫폼에 발을 디딘다. 남자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그래, 괜찮다면 미행을 해보는것도 좋지 않을까? 만약 나랑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나름대로 동질감이 생기니까 말이야. 만약 정말로 나와 같은 능력을 지고 있다면… 상담할 사람이 한명 더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건 동료같은 것이 아닐까?

“신문사세요!”

인간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등을 뒤쫓는동안,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안돼. 시선이 흔들린다. 놓치겠어──

“신문사세요!”

내 팔을 잡아당긴 것은 한 주근깨 꼬마아이. 그 꼬마아이는 모자를 눌러쓰고, 옆구리에 신문뭉치를 끼고 콧물을 닦으며 외쳤다. 아, 네녀석 때문에 넘어졌잖앙.

“호외에요! 신문 꼭 사주세요!”
“아, 정말! 잠시만 이거 놔봐, 꼬마야!”

그렇게 꼬마의 팔을 뿌리치고 남자가 있었던 곳을 바라본다. 제발 있기를, 아직 놓치지 않았기를… 그렇게 바랬지만, 그 수많은 인파속에 그 남자는 없었다. 아무리 어깨에 문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수많은 인파속에서 찾기란 사막에서 비즈찾기겠지.

“신문 안사실거에요?”

이 꼬마녀석이 아직도……

“호외에요 호외! 먼곳에서 오신분들은 대부분 이일 때문에 오지 않나요?”

꼬마는 그렇게 물으며 내게 신문을 들이댔지만, 난 그 신문을 다시 꼬마의 손에 꼭 쥐어주고서 말했다.

“꼬마야. 누나 지금 바쁘거든? 그러니까 다음에 보자!”
“누나.”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리려고 했지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난 다시 뒤를 돌아봐 꼬마를 내려다볼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담담했기에.

“누나.”
“왜그래?”
“왜 아까 그 남자 뒤를 쫓는거야?”

…어? 이 꼬마… 어떻게 알았지?

“미안해 누나야. 이것도 일이라서 말이지?”

치이이이익.

그걸로 끝이였다. 아무래도 향수 같은 조그만한 스틱이였다. 눈앞에 있는 꼬마는 그 스틱을 손에 쥐고 있었고, 어느샌가 스틱에서는 약간은 촉촉한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아아, 마치 가스총 같은거 있잖아 가스총? 그런거였는데… 그 가스가 시야를 모두 뒤덮기도 전에, 난 잠들어 버린것이다.



- 3 -



“탕수육이 먹고싶은데…”
“안되요. 난 피자가 좋다구요!”

시끄러운 대화소리에 조금씩 조금씩 눈꺼풀이 띄여지는 것을 느꼈다. 아, 잠들어버린것인가? 언제? 언제 내가 잠들어버린것이지? 그리고 여긴 어디고? 아, 정말… 불편한게… 소파인가?
주위를 둘러보자, 그곳은 콘크리트 기둥밖에 보이지 않았다.

“탕수육이 더 저렴하고 맛있잖아? 피자같은건 느끼해서 지지라고 지지~”
“뭐얏! 탕수육 같은 저급한 음식따윈 먹지 않는다구요! 적어도 피자정도는 되야… 그거있잖아요 그거! 도미로 피자!”
“야~ 너 피자같은것만 그렇게 먹다가 살찐다? 아니, 뭐. 더 살찔것도 없어보인다만~”
“뭐, 뭐에요! 숙녀한테 실례네요!”

즐거운듯한 대화였다. 그러고보니, 저 목소리 둘 다 들어본듯한 느낌이…
기억의 저편. 난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시야가 확실히 확보되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을 때, 확실해졌다.

“아앗!!”

내 목소리.

“어엇!!”
“우왓!?”
“………”

두명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세명이였다. 이런,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 보통 고수가 아닌데? 라는 살짝의 농담도 한번 섞어줘보자.

“깨어났네요”
“응, 깨어났어”
“음”

처음에 말한건 꼬마 여자아이. 그리고 두번째로 말한건 뿔테안경의 남자. 마지막으로 가벼운 신음을 낸 남자는 아니, 5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외눈안경의 아저씨다. 왠지 중후해 보이는걸?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건, 세사람 모두 검은색 일색의 정장차림이라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건……

“다, 당신은!!”
“아, 이제야 알아보셨어요?”

아까 화장실에서 나와 부딪히고 ‘진실’이 안보인다고 내가 미행하려고 했던 그 남자가 아닌가!?

“당신이 왜 여기있는거야!!”
“아니, 그것보다 보통은 ‘내가 왜 여기있지?’라고 물어봐야 정상 아닌가요…”

그러고보니 그렇네.
갑작스레 할말이 없어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누워있던 것은 낡은 소파. 주위를 아무래도 주인없는 건물인 것 같았다. 짓다 만 빌딩같은것일가? 주위에는 온통 콘크리트 바닥과 기둥밖에 없었고, 유리창으로 메워져 있어야할 창문은 창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그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아직 낮인가…….
창문에서 눈길을 돌려 꼬마 여자아이를 쳐다본다. 어디서 많이본듯한… 뺨의 주근깨.

“앗, 너는!!”
“아, 이제야 알아보셨어요?”
“욘석. 따라하지마.”

꼬마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를 하는것과 동시에 뒤의 뿔테남자가 꼬마의 머리를 춉으로 때린다. 이야, 가차없는걸.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말했다.

“아까 신문팔이 꼬마 아냐!? 남자앤줄 알았는데!”
“하핫, 사실은 숙녀랍니다!”

긴 머리카락이 무릎에 닿는다. 아무래도 저길이라면… 태어나서 한번도 머리를 안자른 것 같은데? 대단해. 머리를 저정도로 기를수 있다니…
어쨌든, 장난꾸러기 같은 주근깨와는 어울리지 않는 길다란 흑발이였다.

“으음… 뭐야. 잠시만,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미행하는 것을 알고 이 꼬마가 날 납치했다는거야? 그럼, 저 꼬마는 당신의 보디가드 같은것인 셈인가?”
“뭐, 그런거죠.”

헤죽, 하고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내며 대답하는 남자.
그 미소가 왠지 때려주고싶었지만 이내 참았다.

“이 꼬마가?”
“무시하지마요. 이래뵈도 강하다구요.”
“하긴, 그런 꼬마한테 당한 내가 할말은 아니지…”
“도대체 무슨말을 할려고 했길레……”

허탈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는 꼬마를 보고선 난 나도 모르게 미소지은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어떻게 알았냐면 아까부터 날 보고있는 저녀석의 얼굴마저 웃고있으니까. 재수없어 왠지.

“아아~ 어쨌든 그래서… 내가 자고있는동안 이상한짓은 안했겠지?”
“걱정마요. 내가 잘 지켜줬어요.”
“어차피 아무짓도 안할려고 했어.”

다시 뿔테안경 남자와 꼬마아이를 쳐다본다. 이 두사람, 정말 친해보이는걸?
그런 생각중에 잠시 잊고있던 사람이라고 하면… 외눈안경의 중년남자일까나?

“그러니까… 당신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아, 내 이름은 은송월. 고향집을 찾을려고 부산으로 왔어.”
“제 이름은 이격연. 단순한 백수라고 생각해주세요. 저희가 하는일이 꽤 복잡해서 말이죠. 그리고 이 아이의 이름은 이희연. 제 사촌동생이죠.”
“숙녀의 머리 함부로 만지는게 아니에요!”

이격연이라고 밝힌 남자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자, 뾰루퉁한 표정으로 그에게서 빠져나와 내 옆자리에 털썩, 하고 앉는다.

“언니, 아까는 미안해요. 쫌 거칠게 대하다보니…”
“아니아니, 괜찮아.”

아하하, 라고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소녀. 그 모습이 굉장히 천진난만했다.

“희연아? 숙녀라면 그렇게 머리긁는게 아니야.”
“아~”

실수했다는듯이 겸염쩍게 웃는 소녀를 보고있자니, 서울에 홀로 놔두고 온 의붓동생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그녀석도 이또래일텐데……

“아, 그러고보니 그쪽분은?”

내가 눈빛으로 중년남자를 가리키자 그는 앗차, 했다는 시피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이사람은 그냥 제이라고 불러주세요. 집사거든요.”
“안녕하십니까. 집사인 제이입니다.”

기계적인 인사를 하는 중년남자. 그 인사에 난 당황해서 ‘아, 안녕하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럼 서로 소개도 끝났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그러고보니 잊고있었던 것이 있었다. 이사람들은 지금 날 납치한 납치범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미행을 할려고 한 사람들이였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난 그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있다는 것.

“절 미행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대답여하에 따라서 당신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결정됩니다.”

그 목소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래,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살인까지 하겠다는 프로페셔널한 느낌? 아니, 지금 나 이렇게 한가하게 생각할 틈이 없잖아? 목숨의 위협을 받고있다고! 정말, 생각해라. 생각해내라. 변명을 생각해내라.

“말못할 이유라도 있나요?”
“예…”

남자의 어깨위에는 여전히 아무런 문자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앉아서 조용히 상황을 구경하고 있는 희연의 어깨위에는 분명 문자가 보이는데… 도미로피자~ 도미로피자~ 하고 말이야.

“그럼 다른걸 묻겠습니다. 저희가 누군지 아십니까?”
“아… 아까 당신이 말했잖아. 단순한 백수라고. 아마도 집사에 보디가드까지 있는걸 보니 어딘가의 놀고먹는 재벌2세겠지, 안그래?”

내가 말을 잘못한건가? 내 말이 끝난것과 동시에 세사람의 표정이 바뀐다.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한마디 내뱉는다는게…

“…그정도까지 알고있었단 말인가.”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멍충아!!!”

백수에다가 집사, 보디가드까지 있으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잖아!!
정말, 이녀석들은 바보가 아닌가 싶다.

“음… 그렇다면 별수없군요.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송월씨는 고향을 찾아서 부산에 오셨다고 했죠?”
“뭐, 그랬…죠.”

뭐가 별수없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게 정말인지 어떻게 믿죠?”

아, 정말… 이사람들 뭐야? 눈앞에 날 심문하는 남자의 어깨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어깨위에는 온통 ‘도미로 피자~’ 뿐이다. 그리고 집사라고 밝힌 중년남자의 어깨 위에는… 문자가 아닌 아지랑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일렁이는 연기 같은……
도대체 뭐하는 집단이야?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건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을수도 있지요.”

전혀 믿고있지 않는다는 말투.
신뢰받고 있지 못한건가… 이 이상한 집단, 내가 무슨말을 해도 납득을 할수 없을테지만, 그래도 한가지 이야기는 할 수가 있을것이다.

“알았어요. 제가 부산에 온 이유, 그리고 당신을 미행한 이유 모두를 이야기 해주겠어. 하지만 그 전에 나도 한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괜찮겠어?”
“얼마든지요.”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그 물음에 세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에 검은양복 일색으로 입고 사람을 아무렇게나 납치하는 녀석들은 정해져 있어. 안그래?”
“저희를… 폭력조직 같은걸로 생각하시는건가요?”
“그래. 그정도가 딱 적당한 것 아니겠어?”
“하하하! 하긴. 조직은 맞긴 맞죠. 폭력은 조금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럼 뭐하는 조직이란 말이야?”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하죠. 이런거 아무한테나 말하면 안되는데… 뭐”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일어서는 남자.

“제일그룹 회장, 이준영 회장의 장남 이격연. 그리고 제가 부산에 온 이유는 친족회의 덕분에 온겁니다.”

…뭐? 제일그룹 회장의 장남이라고?
이럴수가… 그 거물의 아들을 이런데서 만나게 되다니. 이거 싸인이라도 받아놔야되는 것 아냐? 만약 이런남자를 꼬시는 여자가 있으면 완전히 대박이라고? 인생 역전이란 말이야!!

“그리고 나머지 둘은 아까 제가 소개했던 대로입니다. 아시겠죠?”
“응, 뭐…”
“그럼 이제 송월씨가 부산에 온 이유, 그리고 절 미행한 이유를 가르쳐 주십시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것일까.
난 도대체 무슨얘기부터 해야될까? 이 사람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야될까? 아니면 조금의 거짓말을 섞어서 해야할까? 아니, 이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먹혀들지 않을건 뻔하다. 그렇다면, 거짓말 같은 진실을…

“…알았어. 이야기 해줄게. 뭐, 미친년 취급해도 난 몰라?”

말해야된다.

“사실 말이야. 난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수 있어.”

그 한마디에 모두 놀라는 가운데, 옆에있는 한 꼬마녀석만이 깔깔 웃어대고 있었다.

“자, 잠시, 뭐? 언니? 푸하하… 지금 누구 놀리는거에요? 장난도 정도껏이라고~”
“희연아 조용히 하고 있어봐. 송월씨. 저희들이 그걸 어떻게 믿죠?”

격연이라는 남자의 물음에, 난 잠시 세사람을 번갈가며 보았다. 진실이 보이지 않는자와, 진실이 확실하지 않는자. 그리고…

“희연아. 너 아까부터 피자생각만 하고있지?”
“어?”
“네 마음속에서 도미로피자~ 도미로피자~ 노래를 부르고 있어. 어, 방금 피자헉꺼도 맛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어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

“희연아, 정말이야?”
“…방금까지 도미로피자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그건 아까 제가한말을 들었으면 대충 때려맞출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아까 피자헉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희연이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이외의 두사람은 꽤나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와, 언니. 어떻게한거죠? 어떻게 읽은거에요? 대단해! 나 언니 존경해도 되요? 그래도 되요?”
“희연아. 정신차려 욘석아.”

또 격연의 춉이 희연의 정수리에 강타한다. 이번엔 꽤 아픈가 머리를 감싸쥐며 고개를 떨어뜨리는게 꽤 귀엽다.

“그럼 송월씨. 제 생각도 읽으실수 있나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게 문제란 말이야!

“그게 당신을 미행한 이유야.”
“그거라니?”
“그러니까… 방금처럼 난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수 있어. 아아, 귀찮으니까 ‘진실’이라고 하자. 내가 아는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부르거든. 난 인간의 ‘진실’을 볼수있어. 그것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어깨 위에 문자로 떠올라. 그것의 내용은 그 당사자가 생각하는 속마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로 방금 희연이의 어깨 위에는 도미로피자~ 가 씌여져 있었지.”

정말? 이라고 묻는 꼬마아이와 납득하는 남자.

“그런데 오늘 당신을 봤어. 그 열차안에서 말이야.”

난 격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내가보는 세계에선 인간의 ‘진실’이 보여야 정상이야. 당신들이 보는 세계에선 당연히 보이지 않는게 정상이겠지. 그런데 만약에, 그래. 희연이가 만약에 내 속마음을 읽을수 있다고 봐? 하지만 희연이는 다른사람의 속마음을 읽을수 없고 내 속마음만 읽을수 있어. 그렇다면 보통 이상한건 희연이의 눈이 아니라 속마음을 모두 읽히게 만들수 있는 내가 이상한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는 세계가 그래. 속마음이 보여야 정상인 세계에서… 이격연 당신. 당신의 속마음만이 그때 보이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는 수많은 몽상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 당신의 어깨 위에서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래.”
“내 속마음이… 읽히지 않는다?”
“그래. 그리고 그건 제이… 당신도 그래요. 당신은 그래도 어깨 위에 무언가가 있긴 한데, 문자가 아니에요. 아지랑이같은것이 피어져 있다고 해야할까? 어찌됐든 당신 둘은 속마음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같네요.”

그 이야기에 집사는 그저 음, 이라고 짧게 신음할 뿐이였다. 아아, 당신 정말 대사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격연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라, 왜웃는거야?”
“아뇨. 그냥, 당연하다 싶어서요.”
“응?”

뭐가 당연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대충넘어가기로 하자. 이 이상 건들면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고소할지도 몰라!

“그럼 부산에 온 이유는?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온건가요?”
“아니, 그 이야기는 할필요 없지 않아? 당신 미행한 이유는 이미 설명했잖아.”
“그래도, 듣고싶은걸요.”

아~ 왠지 골때리는 녀석과 만난듯 싶다.
뭐, 그런 녀석에게 모든걸 설명하려는 나도 참 이상하지만.

“뭐, 저도 제대로 소개하도록 하죠. 사실은 전 국회의원 은영식의 딸, 은송월입니다. 부산까지 온 이유는… 뭐, 집안에서 쫓겨났다고 보는게 좋을거야”

내 말에 세사람은 동시에 놀란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고인의……”
“이야, 그건은 이야기하지 말아줘. 별로 담고싶은 화재가 아닌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게 왠지 역효과였는지, 약 두명의 녀석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미안해요 송월씨.”
“미안해요 언니~”
“아니아니, 괜찮아. 벌써 잊어버렸는걸?”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아있는 소녀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아버지가 죽은 후로, 새엄마한테 유산상속에 밀려났어. 그래서 하나뿐인 고향인 부산으로 오게된거지. 뭐, 부산에 아버지가 내 앞으로 남겨준 별장이 있다길래 가보는 중이야. 어차피… 옛날에 내가 살았던 곳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쌍둥이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내 잊혀졌다.

“불운의 여제구나… 백설공주같아요!”

희연이는 울먹울먹거리며 내 팔을 붙잡았다. 아, 이런 여동생도 있으면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쯤, 격연은 여전히 재수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 별장이 어디있는지는 혹시 아세요?”
“음, 그러니까 내 기억으로는 장림동에 있는걸로……”
“와아! 우리가 가는곳이랑 같은데잖아?”
“어? 정말?”
“네. 저희도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차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괜찮으시다면 같이 타고 가실래요?”
“아니, 뭐… 괜찮아. 나도 거기까지 가는데에 차비는 충분히 있고. 요즘은 지하철도 있어서 금방금방이거든.”
“에이~ 그래도 같이가요!”
“음~ 희연이는 언니랑 같이 가고싶어?”
“응! 언니 엄청 좋아요!”
“오호라. 언니앞에서 거짓말 하면 안돼! 언니는 희연이 속마음 다 알고 있으니까!”
“엇, 어엇? 아 안돼. 난 언니를 좋아해 난 언니를 좋아해 난 언니를 좋아해…….”

하아.
마인드 컨트롤인가. 확실히, 이것도 효과가 있는지 희연이의 어깨위에 떠오른 글자들이 점점 ‘난 언니를 좋아해’로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뭐, 바뀌기 전에도 ‘꼭 언니랑 가고싶다’라던지 ‘좋은사람’이라는 문자가 보였지만… 이런거 함부로 보면 안되는 것 아냐? 하핫.

“이거~ 어쩔수없네? 희연이를 봐서라도 같이가야겠어?”
“어? 정말? 언니최고!”

짓다 만 낡은 콘크리트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장까지 넷이서 함께 갔다. 어쩜, 차까지 검은색이야?

“나의 취향~”

…아예 노래를 불러라 노래를 불러.
왠지 내또래로 보이는 이사람, 이격연은 검은색이 취향인가 보다. 양복부터 시작해서 차까지 검은색 일색. 뭐, 남의 취향에 딴지걸만큼 나도 여유로운건 아니지만… 일단 타야겠지?

푹신푹신하고 볼륨있는 소파. 운전석에는 네비게이션이 있고, 뒷좌석에서는 TV까지 볼수있는 엄청난 차였다. 아무래도 운전은 집사라고 불린 중년남자가 하고, 조수석에는 이격연이라는 녀석이. 그리고 뒷좌석에는 나와 희연이가 앉게 되었다. 뭐, 희연이와 같이있으면 부담 없으니까 만사 오케이?
이리하여 나는, 이 이상한 집단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차를 타게되었다. 뭐, 앞으로 어떤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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