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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3)[4]

2006.07.18 23:43

울프맨 조회 수:162




[성지 대학병원]




소연은 버스차창 너머로 병원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자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내가 왜 병원 같은 곳에 가야하는 거야....?’



소연은 여자애치곤 몸이 건강한 편이었다.

흔히 어릴 적 한번씩 단골처럼 들르는 감기, 배탈 따위의 잔병치레도 그녀에겐 먼나라 얘기처럼 낯선 일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병원에 가본 경험은 소연에겐 거의 전무...

그나마 병원에 가본 경험이라곤, 아주 가끔 치과에 간 것과 친구나 친척 병문안 몇 번이 고작이어서 소연에게 병원은 좋은 기억이라곤 그다지 찾아보기 힘든 꺼림칙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꺼려하는 병원을 소연은 지금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억지로..... 자기도 아닌 다른 사람 일 때문에...... 라고 생각이 미치자 소연은 고개를 확돌려 뒷좌석에서 태평하게 졸고 있는 영준을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할일 많아 죽겠는데, 얘는 화장실에서 코피가 터질게 뭐람....?’



소연은 병원오기전의 일들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영준이 다른 반 애에게 업혀 코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 온 모습을 처음 봤을 땐,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얀 교복 와이셔츠를 시뻘겋게 물들여 놓을 만큼 영준의 상태는 심각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자친구 문제 따위는 제쳐두고 병원까지 바래다주기로 한건데,...... 영준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부축 받은 팔을 풀더니 제 발로 멀쩡히 걷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버스에 올라타선 ‘도착하면 깨워줘’ 따위의 무성의한 말 한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나 남은 자리를 영준이 잽싸게 앉아버리는 바람에 소연은 영준의 가방까지 든 채로 쭉 서서 와야만 했다.-그 가방도 돌려주려하면, ‘이봐 난 환자라고.’ 또는 ‘휴식이 필요해’ 따위의 말을 하며 밀어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겨우 자리에 앉은 것도 불과 두세 정류장 전.

이제 막 힘든 팔다리를 좀 쉬어줄까 하는 참에 병원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소연아. 넌 착한 일을 하고 있어........ 암. 착한일이지............... 복 받을 거야...... 그래 참자....’



소연은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곤, 잠에 푹 빠진 영준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아무리 얄미워도 녀석은 어디까지나 ‘환자’ 였으니까........

그런데,



“영준아. 다왔어 일어나.”



영준은 소연의 조심스러운 배려에도 일어나기는커녕 소연의 손을 탁하고 쳐버리며 옆으로 몸을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 지나간다니까......”



영준은 다시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다시 반대쪽.........



“어이.........”



...................



“안내려?”



..................



결국. 참다못해 폭발한 소연이 영준의 몸을 난폭하게 흔들었지만, 영준의 반응은 가히 가관이었다.

한쪽 눈만 실눈을 뜬 채 주위를 흘끔 둘러보고는 말없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오랜 소꿉친구인 소연이 그 수신호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5분만 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미 버스는 내려야할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야!!! 임마!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이야?! 보자보자 하니까.... 안 일어나!!!”



소연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자신이 버스 안에 있다는 사실도, 그 버스 안에 사람이 가득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태평하게 잠에 빠져 있는 영준의 얄미운 코를 있는 힘껏, 비틀어버렸다.

분노로 가득한 소연의 일격은 무방비상태로 방치된 영준의 코에 작열했고, 소연의 손가락엔 ‘오도독’ 하는 둔탁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 전해졌다.



“와아아아악!!”



언제나 둔해보였던 영준도 이때만큼은 예외였다.

이미 한번 다친 코를 꺾어버렸으니 그 고통이야 오죽 할까..........

처음의 비명을 끝으로 구석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만 찔끔거리며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영준.

그리고 그런 영준을 향해 소연은 밉살스럽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아퍼? 아프지? 그럼........ 병원가야지~ 많이 아프겠다~ 빨리 병원가야지~ 응? 응?”



평소 같다면 당하고 가만히 있을 영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소연은 너무나 살기등등한 모습이어서, 영준은 잠자코 아픈 코를 감싸 쥐고 버스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영준과 소연은 원래 내릴 곳에서 두 정류장이나 지나버렸지만, 다행히 도보로 10분정도 거리여서 그다지 멀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 병원까지 오는 동안 영준은 단한마디도 입밖에 내밀지 않았다.

보통 아까 같은 일 직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삐졌구나!’라고 상상 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오랜 친구인 소연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준은 꿍한 일이 있으면, 결코 쌓아두거나 마음속으로 묻어두는 녀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버리지 않으면, 스스로가 답답함을 못 견디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영준의 침묵은 역시나 평소의 버릇,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해....’



소연은 앞서서 걷는 영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영준은 오늘 수상한 모습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녀석이 약골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빈혈로 쓰러질 만큼 폐인은 아니었다.

적어도 최소한의 건강은 챙겨오던 녀석이 화장실에 쓰러져 코피를 쏟았다는 것 자체가 오랫동안 알아온 소연으로선 쉽게 이해되질 않는 것이었다.

아침에 영준의 태도가 뭔가 석연치 않았던 것도 그랬고, 아이들이 영준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도 그랬다.



‘어제 일도 그랬잖아......’



네 명이 죽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해놓고 뭔가를 급히 숨기듯 셋이라고 말을 바꾼 영준.

그리고 육교...... 그리고.............



“앗!!!”



소연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지끈’하는 충격.

바늘로 콕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이 소연의 머릿속을 유린해오고 있었다.

잠깐의 충격이 가시고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소연은 놓친 생각의 끈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 기억 속을 더듬었다.



‘뭐였지... 육교이후에.....’



그러나 아까와 같은 고통이 또다시 소연의 머릿속에 엄습해왔다.

어제를 생각할 수 없었다.

육교 이후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려 노력할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머리를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머릿속을 쥐어짜는 무시무시한 두통.

아침에도 이와 같은 두통이 있긴 했지만, 가벼운 것이어서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지금의 고통은 아침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뭐...뭐야! 이거....!!!”



끔찍하게도 멈추지도 않았다.

처음의 것은 시간이 지나 가라앉는 듯 했지만, 다음의 두통은 가라앉을 법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멈추지 않고 점점 그 강도가 더해가는 것이었다.

처음의 고통이 바늘로 후비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것은 그야말로 망치로 짓이기는 듯한 무시무시한 통증이 소연의 머릿속을 울리고 있었다.



‘...............!!’



손에서 영준의 가방이......... 그리고 그녀 자신의 가방이 미끄러져 내렸다.

주워야겠지만, 전신주에 간신히 몸을 기대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위가 이상하게 아른거리는 것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소연은 마지막 힘을 다해 영준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생각에 잠긴 영준. 뒤에서 소연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녀석은 갈 길만 가고 있었다.



‘이쪽 좀 봐........................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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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환상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덥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너무 과해서 탈이겠죠.....
다들 덥고 습한 여름에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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